180. 디데이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활토 덕분에 전호 호텔의 실적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R 크림까지 서비스한다? 그것도 원하는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선우현이 단서를 달았다.
“공짜는 아니고.”
“당연하죠! 그게 다 수익인데! 그리고 유상 서비스라도 상관없어요. 그 서비스는 다른 호텔이 아니라 우리 호텔을 선택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해요.”
그녀가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한 달. 앞으로 한 달 실적만 놓고 보면 업계 1위는 우리 전호 호텔이 될 거예요. 다른 호텔에 갈 고객을 객실이 다 찰 때까지 빼앗아올 테니까요.”
그녀가 장담했다.
“그 실적을 무기로 쓰면 전준성을 확실히 이길 수 있어요.”
선우현이 말했다.
“그럼 그럽시다. 필요한 R 크림의 수량을 이야기해봐요.”
전상미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맞잡았다.
“많을수록 좋….”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때 꼭 필요한 수량을 계산해서 보고하라고 할게요.”
“일단 쓸 건 보내줄 테니까 바로 시작해요. 필요한 수량은 실제로 사용해보고 나서 계산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선우현 씨는 정체가 천사세요? 하늘에서 내려오셨어요?”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말했다.
- 쳇. 눈치챘나?
“챘겠냐.”
- 농담입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럼 이제 상미 씨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는데.”
전상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배시시 웃었다.
“서누현 씨. 뭘 원하세요? 말만 해요.”
“일단 코맹맹이 소리로 이름 이상하게 부르는 거 하지 맙시다.”
“칫.”
돈은 경영권 싸움을 하는데 쓰는 것도 부족할 테니 됐고.”
그녀가 감동했다.
“그런 사정까지 생각해줘서 진짜 고마워요. 돈은 생기는 대로 다 쏟아붓고 있거든요.”
전호 그룹의 경영권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우호지분들도 움직였다. 이미 찢어졌던 전호 그룹 계열사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느 계열사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건 전상미조차 장담하지 못했다.
그 싸움이 너무 치열해서 전상미는 외부에 투자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선우현은 전상미에게는 투자를 받거나 백기사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에 전상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상미 씨의 경영권 싸움에는 언론 플레이도 포함되어 있지요?”
“당연하죠. 모든 공격과 방어가 언론 플레이를 끼고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 쪽과 선이 닿는 기자가 아주 많아요. 물론 저쪽도 많지만요.”
“그 기자 인맥으로 일 하나 도와줬으면 합니다. 화력을 한방에 쏟아부을 일이 있어서.”
전상미가 큰소리쳤다.
“뭐든 말만 해요. 우리 호텔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지원사격을 할게요. 언제 하면 돼요?”
“곧.”
◈ ◈ ◈
선우현은 미리 건물 대출을 최대로 받아뒀다. 활토와 R 크림, 소형 금속 부품 제조기술로 번 돈도 즉시 쓸 수 있게 준비했다.
태양 백화점에서는 R 크림과 활토를 담보로 자금을 빌렸다.
거기다 구하니와 남미연이 맡긴 150억도 있었다.
선우현이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을 만나 말했다.
“길성 박 회장님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최종훈도 준비한 걸 말했다.
“일단 우리 JHC 테크는 백기사로 참전할 겁니다.”
JHC 테크는 최종훈이 과반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백기사 참전을 결정하면 어지간하면 진행된다.
그러니 그건 따로 준비했다고 할 만한 게 아니다. 그가 준비한 건 따로 있었다.
“활토와 R 크림으로 쌓은 인맥 중 몇 곳을 끌어들였습니다. 우리가 지분을 매입한다는 걸 남들이 눈치채기 어렵게 도와줄 겁니다.”
“그 업체들을 선정한 기준은요?”
“활토가 꼭 필요한 사람이 사장으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뒤통수를 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최종훈이 장담했다.
“정보를 누설한 회사 사장은 앞으로 활토는 구경도 못 할 테니까요.”
◈ ◈ ◈
4선 국회의원 박재곤이 말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준비는 철저히 했겠지?”
비서가 대답했다.
“예. 의원님. 기자회견장은 어제부터 작업해 세팅을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다른 의원들과 국장급 공무원들도 오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은? 기자가 제일 중요해.”
“보안을 위해 아직 부르지는 않았습니다만, 사전작업은 끝냈습니다. 연락만 하면 순식간에 모일 겁니다.”
박재곤이 시계를 본 후에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시간 됐군. 바로 연락 돌려.”
“알겠습니다.”
◈ ◈ ◈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선우현에게 연락했다.
- 박재곤 의원실에서 중요한 기자회견이 있다면서 기자들을 모으고 있어요.
“무슨 내용인지는 밝혔습니까?”
- 아니요. 내용은 비밀이래요.
“흔한 기자회견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는데….”
- 기자회견 장소가 호텔이에요. 그 호텔에 알아봤는데, 어제부터 기자회견을 공들여 준비했다더라고요.
“좋은 기사를 써달라고 호텔로 부르는군요. 밥이라도 맛있는 거 주겠지. 그럼 오늘이 디데이군요.”
- 우리 쪽은 준비 다 됐어요. 선우현 씨가 신호만 주면 바로 할게요.
“박재곤의 기자회견은 언제 시작합니까?”
- 두 시간 후에요. 시간이 빠듯한데 괜찮겠어요?
“충분합니다.”
◈ ◈ ◈
최성철은 주가조작 작전주 전문가다. 그가 모니터를 보며 손을 비볐다.
“드디어 이날이 왔다.”
팀원 세 명도 살짝 흥분한 얼굴이었다.
“팀장님. 이건 우리가 했던 작전 중에서 역대급입니다. 이거 한 방이면 우리도….”
“쉿.”
최성철이 덕구파 조 과장 쪽을 슬쩍 본 후에 보안처리 된 외국 메신저로 물었다.
[우리 자금은?]
[영혼까지 끌어모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작전을 시작하면 밖에서도 슬쩍 묻어서 들어갈 겁니다.]
[한 방에 우리도 부자가 되는 거죠. 이번 작전이 끝나면 하와이 가서 한 일 년 놀다 오시죠.]
최성철이 메시지를 보냈다.
[의뢰인이 눈치 못 채게 우리 몫을 끼얹어야 한다. 들키면 우린 다 죽어.]
◈ ◈ ◈
오경훈 기자는 그 건물 다른 사무실에 붙잡혀 있었다.
식사로는 하루에 컵라면 한 개만 제공됐다. 큰 컵도 아니고 작은 컵이었다. 그것도 불어터진 채로 제공되고, 손이 묶인 채로 먹어야 했다.
“하루에 컵라면 하나는 너무하잖아.”
지난 며칠간 먹은 거라곤 그게 다라서 도망칠 힘이 없었다.
“이 새끼들이 나를 죽이려는 거야? 살려주려는 거야?”
잘 대해주는 건 아닌데 굶기는 것도 아니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먹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의 눈앞에 짜장면과 탕수육이 놓여 있었다. 짜장면은 비벼서 주었고, 탕수육에는 소스를 부어놓았다.
오경훈은 그 짜장면을 먹는 게 겁났다.
“이거 혹시 최후의 만찬이야?”
◈ ◈ ◈
박재곤 의원이 기자회견장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가 달에 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광개토 기지에 대원을 상주시켜 달에 있는 그 많은 자원을 선점해야 한단 말입니다!”
박재곤의 뒤에 ‘달 광개토 기지 프로젝트’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앞자리에 있던 기자가 마이크를 받아 물었다.
“현재 기술로 유인 달기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아직은 기술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선행기술 연구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관련 예산은 국회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선행연구에 관한 보도자료가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다른 기자가 자료를 보며 물었다.
“이 선행연구 항목은 어떻게 선정된 겁니까?”
“국내 업체의 능력으로 연구할 수 있으며 미래에도 꼭 필요한 항목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이 선행연구를 주도한 업체가 나중에 본 프로젝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까?”
박재곤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연히 기술을 확보한 곳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해야지요. 정치적인 이유나 다른 외부 요소가 아니라, 기술 하나만 보겠습니다. 이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니까요.”
기자들이 보도자료에 적힌 연구 항목들을 확인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 조건에 맞는 업체가 어디지?”
“빨리 찾아봐!”
갑자기 두 번째 줄에 있던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가 마이크도 없이 큰소리로 물었다.
“이 연구 항목이면 스래곤이 제일 유리하겠는데요?”
박재곤이 대답했다.
“특정 업체 이름을 지금 언급하는 건 너무 이른 것 같군요. 모든 건 기술력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선정될 겁니다.”
“하지만 이 연구 항목들만 보면 스래곤의 경쟁력이 제일 높잖습니까?”
기자들은 대부분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들이 소속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
“스래곤에 대해 빨리 알아봐!”
박재곤이 방금 질문한 기자를 슬쩍 보았다. 기자가 공격적으로 질문했는데도 그는 기분이 좋았다.
박재곤이 속으로 웃었다.
‘기자가 딱 좋은 포인트에 필요한 말을 했어.’
스래곤을 이야기한 기자는 떡밥만 투척하고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박재곤이 생각했다.
‘소정훈 사장이 넉넉히 챙겨줬겠어.’
특정 업체의 이름을 언급해달라고 기자를 매수한 건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다. 박재곤은 오늘 온 기자 중에 누가 바람잡이 역할을 맡을지는 몰랐다.
박재곤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광개토 기지 선행연구 주관 기업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기술력을 보고 선정할 겁니다. 기자회견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 ◈ ◈
박재곤의 기자회견은 TV 생중계는 아니다. 대신에 기자가 속보를 띄우면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는 있다.
최성철의 주가조작 작전팀은 그래서 기사가 뜨기만 기다렸다.
계속 검색창을 두드려보던 팀원이 보고했다.
“속보에 스래곤 이름이 나왔습니다!”
최성철이 손뼉을 쳤다.
“오케이! 시작됐다! 이제 우리 차례다!”
덕구파 조 과장의 팀도 흥분한 얼굴로 뒤에 섰다. 조 과장이 말했다.
“이런 규모의 작전은 나도 처음 본다. 이거 재미있겠….”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조 과장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뭐야?”
외부 CCTV를 맡은 조직원도 작전팀의 모니터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가 황급히 CCTV 모니터를 확인했다.
“누가 왔는데요?”
밖에서 선우현이 말했다.
“가스 점검 나왔습니다. 안에 계신 거 압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야. 빨리 보내.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
조 과장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 여기에 가스가 있나?”
“없죠. 여기는 사무실인데.”
조 과장은 밖에 있는 사람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몇 명이나 왔어?”
“혼자입니다!”
“일단 그 새끼 잡아!”
문앞에 다가가 있던 조직원이 문을 활짝 열었다. 그가 선우현을 붙잡으려고 밖으로 나가며 손을 뻗었다.
“케엑!”
나가던 놈이 그대로 뒤로 날아가 책상 사이에 처박혔다.
조 과장의 부하들은 모두 살이 많이 찌고 덩치가 컸다. 그런 덩치가 고속으로 날아가 책상에 처박혔다.
책상 철판이 우그러들고 집기가 날아갔다.
주가조작 작전팀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악! 무슨 일이야!”
선우현이 앞으로 내지른 발을 내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가스 점검 왔다고.”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 그런 궁색한 핑계를 대니까 들키잖습니까? 사무실에 가스 점검이라니요.
“어때. 문만 열렸으면 되지.”
덕구파 조 과장이 조직원에게 급히 물었다.
“저 새끼 아직도 혼자야?”
“예. 건물 외부까지 확인해도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하여간 이놈들은 날 항상 만만하게 본다니까.”
조 과장이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조직원 두 명이 선우현의 좌우로 천천히 이동했다. 선우현을 가운데 두고 조 과장과 조직원들이 삼각형으로 포위하는 게 목표였다.
선우현은 상대의 움직임을 무시하고 내부를 보며 말했다.
“이야아. 여기서 주가조작을 하는구나? 그런데 작전용 컴퓨터가 왜 그렇게 소박하냐?”
조 과장이 잭나이프를 꺼내며 목소리를 깔았다.
“하는 짓을 보면 형사는 아닌데, 어디서 왔냐?”
선우현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 위에서.”
“고위층이 보냈다고? 누구지? 냄새를 맡고 같이 나눠 먹자는 건가? 우리 빽이 누군지 알고는 있나?”
“알지. 박재곤.”
조 과장의 눈빛이 더 싸늘해졌다.
“어디서 보냈지? 같은 당이냐? 다른 당이냐?”
“당은 무슨. 국회가 당나라냐?”
선우현이 주가조작 작전팀 최성철과 팀원들을 가리켰다.
“야. 거기 너희들. 키보드에서 손 떼라. 마우스 클릭 하나만 해도 손가락 부러뜨려버린다.”
그러는 사이에 조 과장의 부하들이 자리를 완전히 잡았다. 조 과장의 눈이 번뜩 빛났다.
‘됐다! 세 방향에서 포위했다! 저놈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