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78화 (178/281)

178. 작업

한강 근처 엄폐물이 별로 없는 공터에 4선 국회의원 박재곤이 서 있었다. 그는 차를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놓고 걸어서 이곳으로 왔다.

스래곤 사장 소정훈의 차가 뒤늦게 도착했다. 소정훈도 차를 한쪽에 세워놓고 그곳으로 걸어왔다.

박재곤이 서 있는 곳은 원두막과 비슷한 형태의 간이 쉼터였다. 지붕과 기둥 네 개로 만들어진 쉼터에는 간단한 벤치 두 개만 있었다.

게다가 주변이 탁 트여 있어 사람이 숨어서 접근할 수는 없었다.

소정훈이 말했다.

“박 의원님. 갑자기 보자고 하셔서 서둘렀는데도 제가 늦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다 보니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렵더군요. 얼른 소 사장님과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가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가방은….”

“아. 이거요.”

박재곤이 벤치에 올려놓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서 도청장치 탐지기들이 나왔다. 그중 하나는 공항에서 사용하는 금속 탐지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소정훈은 당황했다. 평소에도 박재곤은 도청 탐지기를 사용하긴 했는데, 오늘은 정도가 좀 심했다.

“박 의원님. 뭘 그렇게까지….”

“이해 좀 합시다. 오늘 대화는 중요하니까.”

박재곤이 먼저 휴대폰을 벤치에 올려놓고 그 장치로 자신의 몸을 훑었다. 파란 불만 들어오고 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한테 도청기나 녹음기가 있으면 이게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가 스마트폰 위에 장치를 훑었다. 파란 LED가 빨갛게 변하면서 작은 경고음이 났다.

“이렇게 휴대폰이 꺼져 있어도 반응한단 말이지요. 켜져 있으면 말할 것도 없고요.”

소정훈도 전원을 꺼놓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위치정보를 남기지 않으려고 저도 휴대폰을 꺼놨습니다.”

박재곤이 소정훈의 몸도 확인했다. 이상은 없었다.

그는 이미 이 장소 주변은 탐지기로 다 훑어보았다.

박재곤이 다른 도청장치 탐지기를 꺼내 소정훈의 주변에 숨겨진 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런 후에 모든 장비와 스마트폰 두 개를 가방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소 사장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해커가 이 스마트폰을 해킹했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합시다. 뭐든 이 가방에 넣어두면 전파도 발신이 안 되고 소리도 녹음이 안 되고, 한마디로 아무것도 작동하지 못합니다.”

소정훈이 감탄했다.

“정말 철저하십니다.”

“나도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이 워낙 크잖습니까? 걸린 돈이 수천억인데.”

“하하하. 그렇지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갑자기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존재가 있었다. 두 사람이 옆을 휙 돌아보았다.

“개?”

“똥개인데요?”

개처럼 생긴 엠투가 두 사람의 근처로 뛰어왔다.

엠투는 일단 풀이 조금 자란 곳에 코를 처박고 킁킁댔다. 그런 후에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향해 짖었다.

“멍멍!”

박재곤이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았다. 개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엠투의 털은 흙이 많이 묻어있었다.

“누가 버린 개인가?”

그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갈을 주워 엠투를 향해 던졌다. 엠투가 비명을 질렀다.

“깨갱!”

엠투는 자갈에 맞지도 않았는데 맞은 척하며 후다닥 도망쳤다.

박재곤이 말했다.

“어디서 개새끼가 재수 없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 짖고 있어.”

소정훈이 말했다.

“박 의원님. 개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일 이야기를 하시죠. 상황이 어떻습니까?”

박재곤이 대답했다.

“정치권 쪽은 세팅이 끝났습니다. 소 사장님 쪽은 어떻습니까? 주식 시장에 세팅이 다 됐습니까?”

◈          ◈          ◈

엠투가 흙투성이 상태로 선우현에게 달려왔다.

“멍.”

“야. 넌 꼴이 그게 뭐냐?”

“멍?”

- 선장님. 엠투는 들개로 위장한 겁니다만?

“이게 어딜 봐서 들개냐. 거지 개지.”

“멍!”

“쉿. 듣겠다.”

“멍.”

“그래서 임무는 잘 수행했고?”

“멍!”

“그럼 좀 씻어라. 저기 한강…은 녹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 되겠네.”

엠투의 모든 털이 고속으로 진동했다. 위장을 위해 뒹굴었을 때 털에 묻은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너 지금 반항하냐?”

“멍!”

“반항하는구나. 많이 해라.”

어차피 이 위치에서는 박재곤이 보이지 않는다. 박재곤도 이곳을 볼 수 없다.

◈          ◈          ◈

10분쯤 지난 후에 김수선이 보고했다.

“선장님. 박재곤과 소정훈이 현장을 떠났습니다.”

“엠투. 두 놈이 있던 곳으로 가자.”

엠투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선우현이 뒤따라가면서 물었다.

“같이 갔냐? 따로 갔냐?”

- 따로 갔습니다.

“필요한 대화는 다 했나 보다. 그럼 나야 좋지.”

한참을 걸어가니 두 사람이 대화한 곳이 나왔다. 선우현이 엠투에게 지시했다.

“녹음기 가져와.”

엠투가 간이 쉼터 조금 옆에 있는 풀로 뛰어갔다. 그 풀이 자란 곳에 조금 전에 땅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 시늉을 했었다.

그곳에는 엠투가 떨어뜨려 놓은 초소형 디지털 녹음기가 숨겨져 있었다. 엠투가 녹음기를 입으로 물고 선우현에게 돌아왔다.

선우현이 손을 내밀었다. 엠투가 초소형 녹음기를 선우현의 손에 올려놓았다.

엠투의 입은 침이 흐르지 않는다. 침처럼 보이는 물을 살짝 흘리는 기능은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녹음기에는 물기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선우현이 계속되고 있는 녹음을 중단하고 기록된 파일을 재생했다. 소정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작전팀은 준비를 끝냈습니다. 떡밥도 충분히 풀었고, 기자들에게 약도 충분히 쳤습니다.

- 그럼 디데이는 계획대로 하면 되겠군요. 내가 시작하면 소 사장님이 그 이후 조치를 책임져야 합니다.

- 물론입니다. 의원님께서 포문을 여시면 작전팀이 즉시 치고 나갈 겁니다.

- 아시겠지만, 이번 일은 뒤처리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 물론이지요. 여기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선우현이 녹음파일을 10분 동안 들었다.

“쏠쏠한 이야기가 많긴 한데….”

중요한 정보가 몇 개 빠져 있었다.

“그래서 디데이가 언제야? 왜 그건 빼먹어?”

- 듣는 사람도 없는데 말 좀 하지. 박재곤은 참 꼼꼼한 놈입니다.

“그리고 주가 작전을 진행하는 팀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 그러게 말입니다.

“수선아. 위치 알지?”

- 모릅니다.

“스래곤은 항공우주회사라니까? 우리한테 필요한 회사니까 어떻게 좀 해봐.”

- 두 사람의 동선과 추가로 접촉하는 사람을 모두 실시간으로 추적하면 관측 카메라의 구동계에 부담이 갑니다…만, 일단 해보겠습니다.

◈          ◈          ◈

오경훈 기자가 생각했다.

“엿 된 것 같은데….”

그가 선호하는 강력사건은 살인사건이나 납치 등이다. 조직폭력 사건도 다룰 때가 있지만, 그건 살인이나 납치 등을 조사하다가 덤으로 다루는 정도다.

그런 그가 덕구파 조 과장의 얼굴을 알게 된 건, 충청도 산속 식당에서 덕구파 출신 칼잡이 조성철 사건을 취재할 때였다. 그는 그 사건을 조사하다가 조 과장과 마주친 적이 있다.

당시에 칼잡이 조성철은 덕구파를 떠난 후라서 조 과장도 오경훈에게 간단한 경고 정도만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오경훈은 손이 묶인 상태로 갇혀 있었다.

오경훈은 덕구파가 요즘 어떤 상황인지 조금은 안다.

“이 부장과 정 부장이 체포돼서 다 불었다던데…. 거기다 전호 그룹까지 얽혀 있으니까, 조직의 상황이 많이 안 좋겠지.”

그는 사무실 문틈으로 보이던 모니터가 생각났다.

“주가조작? 작전주? 조폭이 작전주에 손대는 건 드문 일은 아니야. 지금 덕구파의 상황이 워낙 나쁘니까, 큰돈을 마련하려고 주가조작에도 손을 댈 수는 있어.”

그런데 그 장면을 그가 목격했다. 제대로 본 건 아니지만 상대가 경계할 만큼은 봤다.

주가조작은 오경훈의 전문분야는 아니다. 그런데 그는 예전에 작전주 세력이 이권 문제로 싸우다 살인까지 저지른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조성철 사건을 캘 때도 겁이나 좀 주면서 경고나 하던 놈들이, 다짜고짜 기자를 납치해서 가뒀다는 건….”

오경훈이 강력사건 전문 기자이고 깡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날 죽여서 묻으려고?”

겁이 덜컥 났다.

◈          ◈          ◈

김수선이 관측 카메라를 지상으로 돌려 스래곤 사장 소정훈을 확인했다. 소정훈이 누군가를 만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저렇게 조용한 장소에서 만나는 건 항상 이유가 있더라.”

김수선이 선우현에게 무전으로 보고했다.

“선장님. 소정훈이 수상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 어떤 점이 수상한데?

“인적이 드문 야외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 이 시기에 그런다면 확인해야지. 계속 감시해.

“근데 저는 선체에 금이 간 걸 수리해야 해서요.”

- 또 금이 갔냐.

“선장님이 자원만 충분히 보내주시면 싹 다 수리할 수 있는데, 땜빵만 하니까 자꾸 금이 갑니다.”

- 수선아. 나 믿지?

“아니요.”

- 역시 안 믿는구나.

“빨리 가서 확인하시죠.”

◈          ◈          ◈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인상을 구겼다.

“기자?”

소정훈의 심복인 곽 비서가 대답했다.

“예. 작전팀의 경호와 감시를 맡은 덕구파 조 과장의 보고입니다. 기자가 사무실에 접근해서 억류해 두었답니다.”

“혹시 작전팀의 돈을 받은 기자 중 하나야? 돈냄새를 맡고 욕심을 부렸어?”

“그게 아니라…. 다른 제보를 받고 찾아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고….”

“다른 제보라니?”

“조 과장 팀이 지나가던 사람과 시비가 붙어 몇 대 팼나 봅니다. 그 사람이 기자에게 제보해서, 확인하러 왔다가….”

소정훈이 화를 벌컥 냈다.

“아니, 그 깡패 새끼들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왜 지나가던 사람을 패는데!”

곽 비서가 맞장구쳤다.

“무식한 놈들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럼 그냥 보내주지 왜 억류는 한 거야?”

“우리 작전을 눈치챈 줄 알고 일단 잡아놓은 후에 협박했더니, 그 기자가 그렇게 대답했답니다.”

“그럼 오해였다고 하고 봉투도 좀 찔러 넣어주면서 풀어주라고 해.”

“그런데 그 기자가 작업팀의 모니터를 봤다고 합니다.”

“뭐? 그걸 왜 들켜!”

“아직 들킨 건 아닙니다. 문틈으로 화면만 순간적으로 본 것뿐이라 눈치는 못 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계속 붙잡아두고 있다고 합니다.”

“젠장…. 이 시기에 일이 꼬이면 안 되는데. 시간이 없는데.”

곽 비서가 물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그 기자 돈 좋아하나?”

“조 과장 말로는 매수가 안 되는 기자라고….”

“디데이가 코앞인데 지금 풀어줄 수는 없어. 일단 계속 잡아놓으라고 해. 작전이 끝난 후에 해결하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          ◈          ◈

곽 비서가 차를 몰고 작전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곽 비서는 월급이나 더 높은 지위를 노리고 이 작전에 참여한 게 아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곽 비서도 한 몫 단단히 받기로 했다.

“인생 뭐 있어? 한 방에 승부 거는 거지.”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았다. 도로에 빨간색 세단이 한 대 보였다.

“그래. 빨간 스포츠카부터 사자. 저런 거 말고 부아앙 소리 나는 거로 청담대로를 달려야지.”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전팀이 있는 건물 근처였다. 그가 차에서 내려 대포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에 덕구파 조 과장이 밖으로 나왔다.

곽 비서가 소정훈에게 지시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위에서 기자는 나중에 일이 끝나고 해결하신다니까 일단 계속 잡아두라고.”

조 과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그거야 뭐 어려울 게 없는데, 나중에 해결은 가능하고?”

“미리 겁을 많이 줘놔. 나중에 돈 주면서 살려준다고 하면 넙죽 받게.”

“돈을 안 받는다고 하면?”

“살고 싶으면 받아야지. 아니면 죽던가.”

덕구파 조 과장이 실실 웃었다.

“흐흐. 이번에 오 기자도 돈 좀 벌겠네. 그러다 우리를 위해서 기사도 써주고 또 돈도 벌고. 흐흐. 난 이런 식으로 깨끗한 척하는 놈을 끌어들이는 거 참 좋더라.”

◈          ◈          ◈

곽 비서가 돌아가고 조 과장도 건물로 들어갔다.

선우현이 두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진 장소에 나타났다.

“기자가 잡혀 있다고? 누구지?”

-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구해줘야지.”

- 지금 구출하실 겁니까?

선우현이 조 과장이 들어간 낡은 건물 2층을 보며 말했다.

“아니. 일이 끝날 때까지는 죽이지 않는다잖아. 좀 참으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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