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사전 작업
국회의원 박재곤은 달기지 프로젝트에 조금이라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처 장관들을 한 명씩 만났다.
그중에는 제일 중요한 인물은 대학 동창으로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
“성 장관. 이건 대한민국이 달에 태극기를 꽂는 일이야. 성 장관 임기 중에 그 사업이 시작되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태극기는 착륙선만 보내도 꽂을 수 있어.”
“착륙선이 어떻게 달기지하고 같나. 달기지에서 대원이 매일 국기 게양식 하면 우리나라가 달을 점령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달 착륙선 프로젝트라면 나도 관심이 많아. 하지만 달 기지라니…. 박 의원. 그건 절대로 못 해.”
박재곤의 목소리가 커졌다.
“어허.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이렇게 성장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이 사람 이거 예전엔 안 그러더니, 장관 되고 나서 추진력이 없어졌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달기지는 무리인데….”
박재곤은 장관이 당연히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
국회의원은 실현되지 않을 일에 말만 던지는 일이 가끔 있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예산을 승인한다. 하지만 정부의 실무기관을 직접 지휘해 일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유로 떡밥만 던지다가 슬쩍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실무기관의 수장인 장관의 말은 국회의원의 그냥 던져본 말과는 무게가 다르다. 장관이 발언하면 실무진은 관련 자료를 분석해서 보고서라도 만든다.
박재곤은 그걸 알면서 일부러 무리한 주장을 했다. 그래야 대안이라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걸 요구했을 때 씨가 먹힌다.
박재곤이 본론을 꺼냈다.
“송 장관. 그럼 달기지 프로젝트의 선행연구는 어때?”
“선행연구”
“선행연구 정도는 예산이 많이 안 드는 수준에서 해줄 수 있잖아.”
“그쯤이야 뭐, 가능은 한데….”
“대신에 공식적으로 진행해야 해. 나도 그건 양보할 수 없어.”
박재곤이 당근도 내밀었다.
“이번에 도와주면 내가 다른 예산 편성할 때 신경 많이 써줄게. 다른 법안도 잘 챙겨줄게.”
송 장관이 입맛을 다셨다.
‘저예산으로 선행연구 하나 박 의원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예산 더 따오면 이익이지?’
“그렇다면야….”
“그럼 하기로 한 거다. 나중에 말 바꾸지 마.”
“알았어. 그런데 박 의원.”
송 장관이 4선 국회의원 박재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달기지를 지으려는 거야?”
박재곤은 핑계도 준비해 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그래. 송 장관이야 임기 끝나면 그만이지만, 나는 앞으로 국회의원을 오래 할 거야. 그럼 언젠가는 달기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송 장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무 오래 걸릴 텐데….”
박재곤이 다른 미끼를 던졌다.
“송 장관도 공천받아서 국회의원 되면 같이 진행해야지?”
“응? 공천이 어디 쉬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송 장관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장관 임기를 마치거나 중간에 그만둬도 갈 곳은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만큼 좋은 자리는 아니다.
4선 국회의원으로 당내 영향력도 상당한 박재곤이 말했다.
“담당 기관 장관인데, 그 사업이 실제로 진행되면 송 장관이 공천받아야지.”
“하지만 그 사업은 선행연구라 해도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최소 수십조의 예산이 들어가도 될까 말까 한 사업을 장관 혼자 추진할 수는 없다. 단순한 선행연구라 해도 태클이 들어올 게 뻔하다.
박재곤이 큰소리쳤다.
“송 장관은 공식적으로 추진만 해. 그러면 푸쉬는 내가 할 테니까.”
◈ ◈ ◈
박재곤이 스래곤 사장 소정훈을 실내에서 만났다.
“후우. 힘들다.”
소정훈이 물었다.
“박 의원님. 상황은 어떻게….”
박재곤이 씩 웃었다.
“나를 포함해서 국회의원 다섯, 장관 둘이 동의했습니다.”
소정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역시 박 의원님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국회의원들은 내 백업 역할이나 할 거고, 장관들도 적극적이진 않을 겁니다. 일은 내가 다 해야겠지요.”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달기지 프로젝트의 선행연구 사업 정도는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아무리 나라도 쉽지 않아요. 아마 선행연구가 끝일 겁니다.”
“우리 목표는 처음부터 거기까지였잖습니까? 그것보다 더 진행되면 판을 더 크게 벌일 수 있지만,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합니다.”
박재곤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럼 나는 내 몫을 했으니까, 이제 소 사장님 차례입니다.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세팅했습니다.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그 팀이 배신하지 못하게 대책을 세웠지요?”
“물론입니다. 전문가팀을 감시하는 팀이 따로 있습니다.”
“소 사장님은 일을 철저히 해서 참 좋군요. 하하하.”
◈ ◈ ◈
선우현이 인상을 썼다.
“전처럼 요릿집이나 술집에서 만나면 좀 좋아?”
박재곤과 소정훈은 지금 같은 건물에 있었다. 김수선이 그들의 만남을 포착했고 선우현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외부인의 진입이 어려울 정도로 보안시설이 잘 갖춰진 건물이다.
- 선장님은 오염지역….
“내가 침투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두 놈이 저 건물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어렵잖아.”
선우현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건물 내부에 있었다. 그래서 김수선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누가 납치된 것도 아닌데 다 때려 부수면서 쳐들어갈 수도 없고.”
- 놈들의 경계 레벨이 올라갔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러게. 왜 올랐을까?”
- 전상미를 경계하는 걸까요?
“박재곤이 전상미 사장을 경계했으면 스래곤 사장을 만날 리가 없지. 그게 아니라.”
선우현이 건물을 보며 말했다.
“주가조작 작전이 임박했겠지. 그래서 술집에서 의논할 수 없는 거겠지.”
◈ ◈ ◈
스래곤 사장 소정훈은 주가를 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그 계획의 선행 조건이자 핵심 중 하나는 박재곤 의원이다. 그가 나서서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작전은 시작조차 못 한다.
판이 깔린다고 해서 저절로 주가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경쟁업체들의 주가만 올라가고 스래곤은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손가락만 빨라도 스래곤의 주가는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스래곤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서, 주가가 두 배까지 오른다는 보장조차 없다.
달기지 테마는 성사만 되면 대박이지만 계획으로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주가에서 두 배가 아니라 열 배 스무 배로 올리려면, 박재곤이 불을 질렀을 때 그 위에 기름을 붓는 작업이 필요하다.
스래곤 사장 소정훈은 기름을 붓기 위해 테마 작전주 전문가를 끌어들여 팀을 만들었다.
팀장은 작전주 전문가 최성철이 맡았다. 그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언론 대응은 어떻게 됐어?”
“기사로 스래곤이 예전에 인수한 제조 업체의 활용 방안 떡밥 같은 걸 계속 뿌리고 있습니다.”
“봉투는?”
“계속 찔러주고 있습니다.”
“기자 관리 잘해라. 결정적일 때 기사를 쏟아내야 하고, 나중에 우리 쉴드도 쳐줘야 하니까.”
팀원이 씩 웃었다.
“일부러 돈을 잘 받는 기자들만 골라서 주고 있잖습니까? 그냥 봉투만 줘도 다들 잘만 받아먹습니다.”
최성철이 인상을 썼다.
“이 새끼야. 그런 놈들이 뭐 하나 서운한 거 나오면 얼마나 쉽게 삐지는 줄 알아? 삐져서 저격 기사로 찌르는 놈 나오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럼 넌 뒈지는 거야. 봉투만 주지 말고 관리 똑바로 해.”
“네!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그곳에는 그 팀만 있는 게 아니다.
한쪽 구석에는 덩치 네 명이 포커를 치고 있었다. 그들도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보냈다.
우두머리는 다들 조 과장이라고 불렀다. 조 과장이 물었다.
“최 팀장. 우리 밥 안 먹습니까?”
“시켜 드십쇼.”
“예산은 최 팀장이 관리하잖아. 오늘은 초밥이 땡기네.”
최성철이 팀원에게 지시했다.
“야. 초밥 시켜라. 한 사람당 패밀리 사이즈 하나씩 넉넉하게.”
팀원이 물었다.
“저희도요?”
“우리가 패밀리 사이즈를 어떻게 다 먹냐? 그러다 배 터져. 우리는 두 명당 하나씩만 해.”
“예.”
◈ ◈ ◈
선우현이 말했다.
“소정훈이 회사에 있을 때는 접근하기 힘들어.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를 노려야 하니까 동선을 계속 체크해.”
- 소정훈이 밖에서 작전주 이야기를 할까요?
“이야기는 안 하더라도, 밖에서 만나는 사람을 전부 확인하면 뭔가 나오겠지.”
◈ ◈ ◈
오경훈은 강력사건 전문 기자다.
그렇다고 강력사건만 기사로 다루는 건 아니다. 그것만 써서는 충분한 양의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는 사회면에 들어갈 기사를 주로 쓴다. 그러다 강력사건 제보가 들어오면 그쪽에 집중한다.
그는 지금 폭력사건의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뚱뚱한 사람 넷이 지나가길래 그냥 쳐다봤거든요? 눈 마주쳤다고 때리더라니까요.”
“그래서 신고는 했습니까?”
“했죠. 그런데 누가 때렸는지 찾기 어렵대요. 여기는 CCTV도 없으니까요. 아니, 여기 없으면 다른 데 있는 걸 찾아서라도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경훈이 제보자와 헤어진 후에 상황을 정리했다.
“덩치 넷이 지나가던 사람을 때린 사건….”
그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맞은 사람은 멍이 꽤 크게 들었지만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면 기사를 쓸 수 있는데, 그것도 모른다.
“제보자가 크게 다친 것처럼 말하더니 되게 멀쩡히 걸어 다니네. 오늘은 꽝인가 보다.”
오경훈이 한숨을 쉬었다.
“덕구파 칼잡이 조성철 사건이나 오민하 납치 사건 같은 걸 쓰다 보니까, 이런 작은 건 이제 양이 안 차.”
그는 조사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기왕 나왔는데 여기서 퇴근하고 밥이나 먹자.”
그가 근처 초밥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쪽에서 배달 상자에 초밥을 쌓는 게 보였다.
“음?”
패밀리 사이즈 여섯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장이 하는 말도 들렸다.
“이야아. 거기는 사무실도 별로 안 큰데 많이도 시킨다. 패밀리 사이즈 여섯 개라니.”
“누가 다 먹는 걸까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 잔치라도 하겠지.”
오경훈이 식당에서 자리를 고르는 척하며 배달 주소를 슬쩍 확인했다. 그런 후에 자리에 앉았다.
“덩치 넷에게 맞았다고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확인만 하고 갈까?”
◈ ◈ ◈
오경훈은 초밥을 먹은 후에 조금 전에 확인한 주소로 이동했다. 2층 건물이 있었다. 배달 주소는 그 건물 2층이었다.
그가 2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사람이 초밥을 좀 많이 먹을 수도 있지.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 ◈ ◈
주가조작 작전팀 사무실에는 외부를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덩치 중 하나가 당황했다.
“어? 형님. 누가 찾아왔는데요?”
“잡상인이냐?”
“아니요.”
조 과장이 모니터를 슬쩍 보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어? 저 새끼! 야. 저 새끼 잡아!”
“예?”
“빨리!”
◈ ◈ ◈
오경훈은 2층을 대충 둘러보고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괜히 왔어. 그냥 집에나….”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덩치 넷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조 과장이 건들거리며 물었다.
“어이. 오경훈 기자님. 여기는 또 어떻게 알아냈대? 대단한데?”
오경훈의 표정이 굳었다.
“덕구파 조 과장?”
오경훈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열린 문 사이로 모니터가 보였다.
조 과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사무실 안쪽 모니터에 주가 그래프가 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씨발. 저 새끼들은 문이 열린다 싶으면 화면을 빨리빨리 가려놨어야지.”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저거 덕구파에서 하는 거야?”
조 과장이 부하에게 지시했다.
“야. 오 기자님을 옆방으로 모셔라. 여기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아야겠다.”
덩치들이 오경훈의 양팔을 잡았다. 오경훈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이! 나 기자야! 기자! 나 건드리면 너희 다 큰일 나!”
“오 기자님. 소문 못 들으셨나? 우리도 요즘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기자님이라고 봐줄 여유가 없네? 뭐해? 옆방으로 끌고 가라니까!”
◈ ◈ ◈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만나는 사람들을 체크했다. 그런 후에 그 사람들의 동선을 다시 추적했다.
그중에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선우현이 직접 움직여 확인했다.
- 선장님. 소정훈과 박재곤이 다시 만나려나 봅니다.
“장소는? 또 술집이냐? 아니면 그 건물?”
- 목적지는 한강 근처 조용한 공간입니다. 박재곤은 거의 도착했습니다. 소정훈은 이동 중입니다.
“다시 밖에서 보네? 그럼 나야 좋지. 저번에 거기야?”
- 그때보다 더 주변이 트인 장소입니다. 몰래 접근해서 엿듣기 어렵습니다.
“그때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 보다. 그러면 오늘 대화를 꼭 들어야지.”
- 주변에 몸을 숨길 곳이 없는데 어떻게 접근하시게요?
“방법이야 있지. 가자. 엠투.”
“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