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테마
선우현이 엠투와 함께 박재곤 의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김수선이 목적지의 구조를 설명했다.
- 담장 안쪽에 대형 단독 건물을 중심으로 몇 채의 별채가 있습니다.
“저번 음식점하고 구조가 좀 다른가?”
- 높은 담장으로 가려졌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선우현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담장에 CCTV가 있었다.
김수선이 담장 CCTV가 그나마 적은 곳을 알려주었다. 선우현이 지시했다.
“엠투. 수선이나 내가 놓친 CCTV가 있으면 말해라.”
“멍!”
“그리고 넌 밖에서 망을 봐.”
“멍?”
“경계 임무야. 이거 중요한 거다?”
“멍!”
선우현이 CCTV의 위치를 분석했다.
“여기는 빈틈이 없네?”
- 선장님은 오염지역도 침투하는 베테랑이라면서요.
“못 들어간다고는 안 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엠투. 저기로 가서 반대쪽으로 뛰어가.”
엠투가 즉시 담장 쪽으로 달려갔다가 방향을 틀었다.
◈ ◈ ◈
CCTV 담당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하품을 하다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 뭔가 하얀 게 지나갔는데?”
직원이 레버를 조작했다. CCTV 하나가 옆으로 돌아갔다. 엠투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에이. 개새끼네.”
◈ ◈ ◈
선우현이 말했다.
“근무자가 화면 열심히 보고 있구나. 그러면 나야 좋지.”
- 그러게 말입니다.
CCTV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빈틈이 생겼다. 선우현이 그쪽으로 접근해 담장을 넘었다.
안쪽 중앙에는 넓은 단층 건물이 있었다. 그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 사이에 작은 별채도 몇 채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 박재곤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별채부터 다 확인해야겠다.”
- 찍어보시죠.
“내가 또 찍는 거 잘하지.”
그는 별채마다 조용히 접근해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했다.
네 개의 별채 중에 두 개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만 들렸다.
- 역시 찍는 행동만 잘하고 적중률은 낮군요.
“그래서 내가 복권은 자동으로만 사.”
세 번째 별채의 창문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어. 의원님. 노래 너무 잘하신다.”
“찾았다.”
- 다른 의원일 수도 있습니다.
박재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운동만 안 했어도 대학가요제에 나갔을 거야.”
“어머. 학생운동 하셨어요?”
“아니. 나 유단자야. 으하하하.”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있는지 잘 봐라.”
- 체크하고 있습니다.
선우현은 벽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리는 대화를 들었다. 김수선이 지원위성에 있는 장비로 목소리만 증폭해 주었다.
- 선장님. 귀를 더 바짝 붙이십시오.
“벽보다는 창문 쪽이 엿듣기 낫겠는데?”
그렇게 한참을 엿듣다가 선우현이 말했다.
“와…. 이놈들. 진짜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한다.”
- 야한 소리도 꽤 많이 들립니다.
“문란하게 노나 보다.”
- 저번에 전준형과 접촉할 때 이용한 음식점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여긴 음식점이 아니라 요정 같은 곳이야.”
- 여자들이 있는 곳에서 쓸만한 정보를 흘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러겠지?”
담장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멍멍!”
김수선이 말했다.
- 엠투입니다.
“누가 오나 보다.”
- 담장 안쪽에서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는 계속 있어 봤자 나올 게 없겠다. 저놈들의 진짜 대화는 이미 다 끝났을 테니까.”
선우현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전에 담장으로 다가갔다. 엠투가 밖에서 뛰어 CCTV를 유인해 빈틈을 만들었다.
선우현이 담장을 넘어 요정을 빠져나왔다.
“저기에 천호성은 없지?”
- 천호성의 스포츠카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지 여기 올 놈은 아니지. 이미지 관리에 엄청 신경 쓰는 놈이니까.”
선우현은 그 요정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편의점이 있었다.
그 요정에서 차가 나오면 편의점 앞에 있는 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가 그곳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기다렸다.
“국물이 얼큰하고 뜨끈하니 좋다.”
- 박재곤은 좋은 거 많이 먹고 마시면서 놀던데, 선장님은 컵라면이군요.
“컵라면도 칼로리바에 비하면 고급 요리지.”
- 부럽습니다.
엠투가 옆에서 선우현을 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수선아. 엠투가 눈이 빛났다. 이런 기능도 있냐?”
- 저도 엠투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라서요. 발광 신호 기능이라도 있나 봅니다.
“엠투. 너도 먹을래?”
“멍!”
“라면?”
엠투가 앞발을 편의점 유리에 붙어 있는 광고지로 향했다. 핫바 광고였다.
선우현이 핫바를 사서 엠투에게 주었다. 엠투는 앞발 두 개를 모아 핫바를 잡고 조금씩 먹었다.
“엠투한테 핫바 CF는 안 들어오려나?”
선우현은 컵라면을 다 먹고 나서 핫바를 먹으며 말했다.
“박재곤은 저 요정에서 누구와 놀고 있는 걸까.”
편의점 햄버거를 두 개 사서 엠투와 하나씩 먹고 아이스 커피까지 거의 비웠을 때 김수선이 보고했다.
- 박재곤의 차가 요정을 빠져나왔습니다.
“같이 있던 놈은?”
- 조금 늦게 나오고 있습니다.
박재곤의 차가 지나갔다. 조금 더 기다렸더니 차가 한 대 더 나타났다. 고급 외제차였다.
- 박재곤과 함께 흥청망청 놀던 사람의 차가 지나갑니다.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기사였다. 뒷좌석에 있는 사람은 차 유리의 색이 너무 어두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 어느 차를 추적할까요?
“뒤에 나온 차.”
선우현도 차를 타고 그 외제차를 미행했다.
◈ ◈ ◈
외제차는 고급 주택단지의 마당이 넓은 저택 앞에 도착했다. 뒷자리에서 남자가 내렸다.
선우현이 조금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서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
- 왜 그러십니까?
선우현이 예전에 인터넷을 검색해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사진 하나를 불러냈다.
“이놈이다.”
- 누구 사진입니까?
“스래곤 사장 소정훈.”
- 박재곤은 스래곤 사장과 요정에서 논 거군요.
“논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전준형과 덕구파 때문에 몸을 사려야 하는 이 시기에 만났다는 게 중요해.”
- 왜 이 위험한 시기에 굳이 만난 걸까요?
선우현이 닫히는 대문을 보며 말했다.
“스래곤 쪽에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 ◈ ◈
선우현이 최종훈의 집으로 찾아갔다. 최종훈의 여동생인 최민영이 같이 있었다.
그녀가 굉장히 반가워했다.
“어머! 우현 오빠!”
“너도 여기 있었네?”
“가끔 자러 와요. 이 집이 전망이 훨씬 좋으니까. 한강도 보이고.”
“이제 잠자리가 바뀌어도 잘 자나 보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빠가 준 활토를 거의 매일 먹었더니 잠도 푹 자고 괜찮아졌어요. 그거 건강에 진짜 좋나 봐요.”
“토마토는 원래 몸에 좋아.”
“보통 토마토가 그 꿈까지 안 꾸게 해주진 않잖아요.”
“그건 뭐…. 아. 내가 최 사장님하고 할 이야기가 있는데.”
최민영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저는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에요? 궁금한데….”
“듣다 보면 불편할 수도 있어.”
“괜찮아요!”
최종훈도 말했다.
“민영이는 믿어도 됩니다. 제 동생이고 입은 확실히 무거우니까요.”
최민영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우현 오빠를 곤란하게 하면 활토는 이제 못 먹잖아요. 전 진짜 입 꼭 다물게요.”
“음…. 뭐, 나중에 네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 설마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앉았다. 선우현이 쪼개진 전호 그룹의 경영권 전쟁과 전상미 사장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당분간 조심하면서 지내야 할 박재곤의 이야기도 했다.
그런 후에 스래곤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박재곤을 만났더군요. 고급 요정에서 흥청망청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어머. 고급 요정은 드라마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드라마?”
“막 중정 나오고 그런 거요.”
“아. 가게 이름은 따로 있지. 나도 그 시절을 생각하고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뿐이야.”
“우리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요정과 중정 중에 어디가?”
“웅…. 그냥 정?”
최종훈이 끼어들었다.
“이런 시기에 스래곤 사장을 요정에서 만났다면, 뭔가 있군요.”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전준형이나 덕구파로 인한 리스크를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큰 게 걸려 있겠죠.”
“그러면 역시….”
“유인 달기지 프로젝트겠지요.”
최민영이 손뼉을 쳤다.
“어머! 유인 달기지! 멋지다!”
“달에 하나 지어놓으면 멋지긴 하겠지.”
김수선이 말했다.
- 우리는 자원이 없어서 못 지었지만요. 자원이 그나마 있던 임무 초기에 하나 지어뒀어야 했습니다.
“달에 기지를 지었다 치자. 다 지은 후에 거기서 어떻게 올라오지? 달에서 이륙할 우주선이 없는데?”
- 잘?
“그리고 그때 자원을 낭비해서 지어놨으면 그 기지가 지금까지 버텼겠냐? 지원위성도 자원 부족으로 벌써 옛날에 쪼개졌을 거다.”
- 그건 그렇습니다.
최민영이 물었다.
“달기지를 만드는 거면, 박재곤이나 스래곤은 좋은 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종훈이 대신 대답했다.
“그걸 진짜로 지으면 우리나라 경제는 치명타를 맞아.”
“왜?”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퍼부어야 하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겠어? 다른 산업을 지원하는 데 들어갈 돈을 달기지가 다 빨아먹겠지.”
“그래도 성공하면 달의 자원을 지구로….”
“지금 기술력으로는 자원을 채굴할 수도, 지구로 가져올 수도 없다. 우리보다 돈이 훨씬 많고 우주 기술도 발달한 미국도 못해.”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달기지 건설사업은 못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지금은 못해.”
“한다면서.”
이번에는 선우현이 말했다.
“유인 달기지를 목표로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하고, 업체를 선정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럼 10년 뒤에는 하는 거예요?”
“못한다니까.”
“네? 그럼 왜 그런 발표를….”
“그 기술 개발의 1티어 주관사가 스래곤이 되면 주가가 치솟을 테니까.”
“네?”
“예산이 집행되기도 전에 주가부터 오를 거야. 요즘 스래곤 주가가 워낙 낮으니까, 열 배, 스무 배도 오를 수 있겠지.”
최민영이 손뼉을 쳤다.
“아! 나 이거 들어봤어요! 작전주? 테마주? 그거죠?”
“작전을 위해 달기지 테마를 만드는 거지. 스케일이 참 크네.”
최민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요. 주식 하는 사람들이 분석해보면 이상하다는 거 바로 알 거잖아요.”
“우리나라는 옛날에 이상한 국가사업을 많이 했어. 필요 없는 곳에 댐도 짓고, 강도 파고, 가스도 뽑아보고. 그러니까 정부에서 한다고 발표하면 작전 테마 재료로 삼기엔 충분해.”
최종훈도 맞장구를 쳤다.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조그마한 기업에 작전이 들어가서 주가가 대기업 대형 계열사보다 높아진 경우도 여러 번 있었어.”
최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런데 그러면 나중에 그 계획이 취소되면 주가가 다시 내려가죠?”
선우현이 말했다.
“당연히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지. 원래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고. 물론 작전 세력은 주가가 제일 비싼 고점에서 다 처분하겠지.”
최민영이 손뼉을 쳤다!
“아! 그러니까 오빠들이 거기 슬쩍 올라타서 돈을 왕창 버는 거군요! 잠깐만요! 나도 끼워줘요! 내가 그동안 모은 돈이….”
그녀가 멈칫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두 사람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민영아. 최 사장님이 용돈 안 줘?”
최종훈이 손을 흔들었다.
“카드 하나 맘대로 쓰라고 줍니다. 민영이가 먹고 쓰는 돈은 전부 제 계좌에서 나갑니다.”
최민영이 물었다.
“작전주에 올라타려는 거 아니었어요?”
“당연히 아니지.”
“그러면요?”
최종훈도 물었다.
“저도 궁금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야 당연히.”
선우현이 입맛을 다셨다.
“계속 진행하게 놔둘 겁니다.”
◈ ◈ ◈
박재곤은 동료 의원들을 만나 달기지 건설계획 이야기를 자주 했다.
“김 의원.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야. 그럼 다른 선진국들보다 앞선 것도 있어야지.”
“그건 맞는데요. 그게 왜 하필 달 기지입니까? 그것도 유인기지라니요.”
“폼 나잖아.”
“아니, 겨우 폼 때문에 그런 대규모 사업을….”
“이게 어디 나만 좋자고 그래? 김 의원 지역구에 항공 장비 관련 기업 있지 않아?”
“있기야 합니다만….”
“거봐. 이건 김 의원한테도 좋은 일이야. 그러니까 그냥 좀 도와줘. 내가 하는 거 따라만 오면 내가 나중에 잘 챙겨줄게.”
김 의원이 눈을 반짝거렸다. 박 의원이 다른 사람과 같이 해먹는 걸 잘한다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다.
“박 의원님. 진짜 잘 챙겨주셔야 합니다.”
모든 국회의원이 김 의원처럼 돈이나 이권에 쉽게 넘어오는 건 아니다. 박재곤은 일부러 욕심이 많은 국회의원을 골라서 부추겼다.
“당연하지. 나만 믿으라고. 그러면 나도 나중에 김 의원을 팍팍 밀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