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스래곤
선우현이 최종훈을 옥탑방 옥상에서 만났다.
최종훈이 활토 주스를 한 번이 다 마신 후에 탄성을 뱉었다.
“캬아. 달고 시원한 이 맛! 활토 주스를 한 번에 마시는 사치! 이런 건 정말 돈이 있어도 못 누리죠.”
활토는 가격도 비싸지만 공급량이 부족해서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최종훈보다 돈이 많은 사람도 주스로 만들어서 한 번에 다 마시진 않는다.
선우현이 물었다.
“스래곤의 재무구조는 알아봤습니까?”
“김 비서가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물론 상대가 눈치채면 망하니까 깊은 것까지 파진 못했습니다만.”
최종훈이 태블릿 PC에 김찬혁이 작성한 보고서를 띄웠다.
“스래곤은 항공우주기업인데 회사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더 나쁩니다. 적자를 크게 보고 있거든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오히려 까먹고 있다라…. 이유는요?”
“기술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그걸 극복하겠다고 대규모 차입금을 끌어들여 장비 제작 회사를 인수했습니다만, 시너지가 제대로 나지 않아 완전히 실패한 인수였다는 평가입니다.”
“회사 재무구조가 나쁘겠군요.”
“엉망이죠. 한마디로 표현하면 총체적 난국입니다.”
“흑자 전환은 어렵습니까?”
최종훈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미래를 누가 알겠습니까만, 제가 보기엔 어렵습니다. 흑자인 경쟁업체들이 기술에 투자하는 예산을 적자 상태인 스래곤이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스래곤은 결국 망하겠군요.”
“지금은 남은 차입금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일 년만 더 지나도 부도 위험이 현실화될 겁니다. 회사가 적자에 전망도 어두워서 차입금 상환이 어렵거든요.”
최종훈이 주가 차트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주가가 이렇게 계속 내리막입니다. 이러다 스래곤이 부도가 나면 이건 다 휴짓조각이 되겠죠.”
최종훈이 알아본 건 스래곤만이 아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박재곤 의원은요? 달 기지 건설 계획에 대해 나온 게 있습니까?”
최종훈이 다른 문서를 열었다.
“박재곤 의원이 달 유인기지 이야기를 다른 의원들에게 여러 번 말했다더군요.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한 건 아니지만요.”
“유인기지는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지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 소규모 기지는 가능하겠지만, 그 대가로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일 겁니다. 반면에 그걸 지어도 얻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프로젝트가 당장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군요.”
“실제로 될 리가 없으니까요.”
“그럼 그 전 단계는요?”
“예?”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 그걸 기업에 맡겨서 차근차근 개발하는 건 어떻습니까? 한 10년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로요.”
“달 유인기지가 겨우 10년으로 현실화될 리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사람은 생기겠지요.”
“아마도요?”
선우현이 주가 그래프를 보았다.
“그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기업은 주가가 폭등할 테고요.”
“뉴스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그렇겠지만, 그래도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라면, 국회에서 구체적으로 추진한다고 알려지는 건 어떻습니까? 그걸 언론에 대대적으로 기사화하는 거지요.”
최종훈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박재곤 의원이 나서면 무게가 다르긴 할 겁니다.”
“4선 의원이 다른 의원들을 움직여 관련 예산을 만들어주는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
선우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주가 작전 소재로 딱 좋네요.”
“그러니까 박재곤 의원이 그걸 이야기하고 다니는 게, 작전으로 주가를 띄워 한탕 크게 하려는 겁니까?”
“박재곤이라면 돈만 많이 벌 수 있으면 할겁니다.”
“대신에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텐데요.”
“타격 입은 건 더 많은 돈으로 메꾸면 됩니다.”
최종훈이 태블릿 PC로 눈을 돌렸다.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스래곤의 주가 그래프가 보였다.
“그럼 박재곤이 스래곤 경영진과 공모한 걸까요?”
“스래곤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면서요.”
“그렇죠.”
“어차피 망할 회사, 작전으로 주가를 띄우고 주식을 팔아치우면 열 배, 스무 배 먹는 건 일도 아니겠네.”
“이게 작전 소재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주가 띄우기에 성공한다면….”
최종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한강이 개미들로 넘치겠는데요?”
“대신에 박재곤과 스래곤 사장은 떼돈을 벌겠죠.”
최종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신고할까요?”
“증거는 있으시고요?”
“없지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신고는 불가능하겠네요.”
“지금 상황에서 신고해봤자 상대는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은밀하게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선우현은 신고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스래곤의 주식이나 좀 사볼까 합니다.”
최종훈은 당황했다.
“네?”
“돈 좀 빌려줘요.”
“네?”
“내가 가진 돈으로는 많이 모자라서.”
최종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작전에 올라타서 돈을 불리려고….”
“에이. 그건 아니지요.”
“아하하. 그렇지요? 휴우. 난 또. 당연히 그럴 분이 아닌 걸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못 믿으신 거 같은데요.”
최종훈이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럼 왜 스래곤의 주식을 사려는 겁니까?”
선우현이 대답했다.
“항공우주회사 스래곤. 그 회사가 필요해서요.”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 선장님! 이제야 본격적으로 일하시는군요!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뭐든 다 하겠습니다!
“수선아. 레드 포션 하나 더?”
-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에너지를 뽑아내 재처리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쇼!
“너한테 허리가 있다고?”
- 확 씨…. 참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일하신다는데 이번엔 참아야죠.
“어디 적어두지 마라.”
- 이미 적어놨습니다.
◈ ◈ ◈
박재곤 의원이 스래곤 사장 소정훈을 만났다. 만난 장소는 별실이 있는 요릿집이었다.
이곳은 전호 그룹 부회장 전준형을 만난 고급 음식점과는 달랐다. 그곳은 요리가 중요한 고급 음식점이었는데, 이곳은 유흥이 더 중요했다.
‘그곳은 재수가 없으니까 가지 말아야겠어. 여기가 음식은 좀 떨어지지만 재미는 이곳이 낫지.’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물었다.
“박 의원님.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근심? 있지요.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다 보면 자다가도 근심이 생깁니다.”
“어이쿠. 역시 박 의원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하하하. 국회의원인데 당연하지요.”
“그래서 말인데.”
소정훈이 박재곤의 술잔에 양주를 따르며 물었다.
“우리나라의 미래인 우주 산업 발전을 위해 하시는 일은 어떻게….”
박재곤이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인상을 썼다.
“끄응. 요즘 복잡한 일이 많은 거 아시잖습니까? 거 전호 그룹 일도 복잡한데.”
“네? 전호 그룹이요? 혹시 거기에….”
박재곤이 얼른 둘러댔다.
“아니, 내가 아니고, 우주 산업에 나랑 뜻이 맞던 사람 중에 그쪽과 인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고. 그것참 큰일입니다.”
박재곤이 손을 앞으로 내밀고 흔들었다.
“그러니까 좀 천천히 갑시다.”
“천천히라…. 그게 말입니다.”
소정훈이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서를 띄웠다. 그런 후에 박재곤의 앞에 올려놓았다.
“저도 천천히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보시다시피 프로젝트가 늦어질수록 리스크는 커지고 수익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문서에는 복잡한 도표와 숫자가 잔뜩 적혀 있었다.
박재곤이 불평했다.
“요약해서 간단히 말해야지, 이런 서류부터 내밀면 어쩌라고요.”
“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 계획에 다른 회사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겁니까?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해결한다니까요.”
“그게 아니라, 주가에 문제가 있습니다.”
“음?”
“달 기지 테마를 형성하려면, 지금 움직여야 최대 효과가 나옵니다.”
박재곤이 관심을 보였다.
“그래요?”
“예. 여기 자료를 보시면….”
“요약해서 간단히 설명하라니까.”
“예. 주가 테마라는 건 주식 시장의 분위기와 주변 환경이 맞아떨어져야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우리나라의 달 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금이 바로 최적의 시기지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요.”
“우리 테마를 띄우려면 사전 작업도 필요합니다. 제가 미리 작업해놓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약발이 떨어집니다. 만약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 테마는 산불이 아니라 모닥불만 피우다 꺼질 수 있습니다.”
“일부러 지금 시기에 맞춰서 준비한 거니까 그렇겠군요.”
“그러니까 이 자료…. 아, 죄송합니다. 서둘러야 저나 의원님이나 이익을 최고로 볼 수 있습니다.”
박재곤이 태블릿 PC를 보았다. 그는 다른 자료는 다 넘기고 숫자 중에 수익 예상 부분만 확인했다.
이 시기를 놓쳤을 때의 예상 수익금 숫자는 0이 하나 빠져 있었다.
박재곤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서둘러 봅시다.”
소정훈이 얼른 태블릿 PC를 가방에 넣고 술잔을 마주 들었다.
“그럼 저는 의원님만 믿고 일 이야기는 이쯤 하겠습니다. 이제 술 따를 애들을 부를까요? 새로 온 애도 있다더군요.”
여자와 놀다가 입고 있는 옷이 줄어들면 옷 속에 녹음기를 숨기기 어렵다. 게다가 이미 이 방도 도청방지장치로 한 번 확인했다.
그래서 박재곤은 오늘 대화할 때 단어를 가리지 않았다.
박재곤이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빨리 부릅시다.”
◈ ◈ ◈
선우현이 물었다.
“수선아. 박재곤은 지금 어디 있냐?”
- 모릅니다.
“동선 체크하는 거 아니었어?”
- 운석 하나가 선체 쪽으로 날아와서, 거기서 뭐라도 좀 얻어볼까 싶어 나포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래서 뭐 좀 얻었냐?”
김수선이 투덜댔다.
- 아니요. 이 운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추출할 수 있는 물질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꽝입니다. 이거 잡느라 에너지도 썼는데 손해가 큽니다.
“푸념은 그쯤하고, 지금이라도 박재곤을 찾아봐.”
김수선은 선우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집중해서 지상을 관찰한다. 하지만 평소에도 그러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박재곤을 자주 관찰했지만, 선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획득 가능한 물체를 발견했을 때는 그쪽에 집중했다.
그래서 김수선은 박재곤의 위치를 종종 놓쳤다.
- 박재곤이 국회와 지역구 사무실, 집에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지붕이 덮여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은 지원위성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구분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역구 사무실의 창가 자리에 사람이 늘어져서 앉아 있으면 박재곤이 없고, 뭔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면 있을 수도 있다.
지상 주차장에 박재곤의 차가 보인다면 높은 확률로 박재곤이 그곳에 있다.
잠시 후에 김수선이 보고했다.
- 확인했습니다. 국회 사무실은 불이 꺼져 있습니다. 지역구 사무실과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구나.”
- 한반도가 꽤 넓어서요. 그걸 다 조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집에 안 들어갔으면 어디 갔을까? 퇴근 중이거나, 아니면 누굴 만나겠지. 서울 시내 술집을 다 조사하면….”
- 선장님.
“왜?”
- 배 째시죠.
“그치? 그건 어렵지?”
- 서울에 술집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그 술집 대부분은 실내에 있는 사람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선우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만약 박재곤이 접대를 받는다면, 어디서 받을까?”
- 모르죠.
“수선아. 저번에 박재곤이 스래곤 사람과 만났던 그 조용한 장소. 거기 확인해봐.”
- 방금 선장님과 이야기하면서 확인했습니다만, 지상에 차가 없습니다.
선우현이 잠시 생각했다.
“박재곤이 동네 술집을 갈 인간은 아니지. 서울에 있는 고급 음식점들을 조사하자.”
- 그걸 다 찾으려고 하면 날 샙니다. 대상을 더 압축해야 합니다.
“전준형 부회장과 모의할 때는 별채가 있는 넓은 고급 음식점에서 만났잖아. 땅 넓고 별채가 있는 고급 음식점들은 서울에 많지 않겠지. 국회에서 박재곤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너무 돌아가지 않는 곳으로 찾아봐.
- 사실 그런 고급 요릿집을 좀 골라놓긴 했습니다. 선장님이 좋은 거 드실 때 저는 음식 구경이라도 하려고요.
“으응? 어…. 혹시 아냐? 오늘 거기서 박재곤이 스래곤 사람을 만날지. 스래곤이 항공우주기업인 건 알지?”
- 선장님.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응. 말해.”
- 스래곤에는 우주왕복선이 없더라고요. 자체 로켓도 없고요.
“그거야 만들면 되지!”
- 퍽이나 가능하겠…. 찾았습니다.
“응?”
- 박재곤의 차를 찾았습니다.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지상으로 뛰어 내려갔다.
“수선아. 내가 너한테 물자를 보내기 위해서 뛴다.”
- 그렇게 뛰어도 1분밖에 차이 안 납니다.
“1분이라도 줄이려는 마음이라도 알아달라고.”
“멍!”
“그래. 너도 가자. 망이라도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