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73화 (173/281)

173. 박재곤

JHC 테크 최종훈 사장이 말했다.

“선우현 씨가 전호 그룹에 관해 알아봐 달라고 할 때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료를 가져오기도 전에 전준형 부회장이 긴급체포되게 하셨네요.”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전준형이 전상미 사장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걸 그냥 구경만 할 수는 없어서.”

“아. 전준형은 전호 호텔을 빨리 잡아먹고 싶었겠지요. 그래도 자기 여동생을…. 어휴. 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상상도 안 갑니다.”

“빨리 잡아먹어요? 뭔가 알아낸 게 있습니까?”

최종훈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옥상에 엿듣는 사람은 없고 엠투는 있었다. 김수선도 위성에서 듣기는 했다.

최종훈이 설명했다.

“전호 그룹 회장이 살아있을 때는, 현금이 급할 때마다 호텔 돈을 가져가 썼습니다.”

“현금?”

“전호 호텔은 숙박 고객에게 직접 돈을 받잖습니까? 카드로 긁더라도 결국 현금으로 정산되니까, 현금 보유량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자일 때는 물론이고 흑자로 전환된 후에도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썼다더군요.”

“그게 회계처리가 되긴 합니까?”

“그거야 뭐 알아서 해결하는 노하우가 있겠지요. 중요한 건 당장 꺼내쓸 현금이 있다는 거니까요.”

“그러다 회장이 죽고 계열사가 쪼개지니까, 현금을 공급해줄 곳이 없어졌군요. 많이 아쉬웠겠습니다.”

“그렇죠.”

“그러면 전준형은 이미 호텔을 빼앗을 계획이 있었겠군요.”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그쯤이야 충분히 계획했겠죠.”

“그런데 단순히 돈 몇 푼으로 빼앗기는 어려웠을 테고.”

“전상미가 적자 호텔을 흑자로 돌려놨으니까요. 호텔 지분을 가진 곳들은 전상미를 지지했습니다.”

선우현은 생각나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호텔은 평판이 중요하니까, 수사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군요.”

“그렇죠. 전상미 사장을 구속이라도 시킬 수 있으면 호텔 평판에는 치명타니까요. 그러면 전준형에게 명분이 생길 겁니다.”

“그 정도로 도와주려면 정치인의 힘이 강해야겠군요. 초선으로는 어림도 없을 테고, 한 4선 국회의원 정도?”

“그렇…. 아! 박재곤!”

선우현이 물었다.

“박재곤에 대해 좀 알아보셨나 봅니다.”

“전에 알아보라고 하셔서 소문을 좀 수집해 봤습니다. 박재곤이 전준형과 커넥션이 있더군요.”

“전준형이 호텔을 빼앗는 일에 박재곤을 끌어들이려 했을 겁니다. 사과 상자라도 받았나?”

최종훈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박재곤이 초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4선인데요. 노하우가 다르죠.”

“그러면요?”

“이건 소문이긴 한데, 전준형 부회장 쪽 계열사의 사업에 박재곤의 주변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가 참여하곤 했답니다. 박재곤이 끼워 넣은 거죠.”

“그게 다는 아니지요?”

“거기서 끝내면 그냥 조금 먹는 건데, 박재곤의 경우는 납품가가 다릅니다. 100원짜리 물건을 120원에만 사줘도 돈이 많이 남거든요.”

“20퍼센트?”

“아니죠. 100원에 납품하면 5원 남기는 물건이었는데 120원에 사준다면, 순이익이 다섯 배가 되는 마법이 펼쳐집니다.”

“업체에는 5원 더 떼주고 박재곤은 15원만 가져가도, 그 기업의 원래 순이익의 세 배를 박재곤이 혼자 챙길 수 있겠군요.”

“업체도 박재곤이라는 빽을 등에 업고 손쉽게 돈을 버는 거죠.”

“그렇다고 그걸로 처벌하긴 애매할 테고요.”

“작정하고 수사하면 할 수는 있는데, 누가 굳이 4선 국회의원, 그것도 정치권에서 큰소리 좀 친다는 4선 의원의 그런 거래를 파겠습니까? 그냥 넘어갈 겁니다.”

“박재곤은 돈 참 쉽게 버네요.”

◈          ◈          ◈

박재곤이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전준형과의 거래는, 나만 그런 방법을 쓰는 게 아니니까 문제가 생겨도 덮을 수 있어.”

그런데 덕구파는 조폭이다. 조폭이 하는 이권에 국회의원인 박재곤이 주변 회사를 끼워 넣기는 껄끄러웠다.

덕구파의 현금을 안 받아본 건 아니지만, 작은 음료수 상자에 슬쩍 받은 정도였다.

대신에 덕구파의 접대는 많이 받아봤다.

박재곤이 툴툴댔다.

“정치인이 룸살롱 가는 게 어디 한두 번 기사로 났어? 정치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초선 국회의원이나 언론과 친하지 않은 의원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박재곤은 그쯤은 덮을 힘이 있다.

“그리고 내가 덕구파한테 받은 건….”

그는 조폭을 써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덕구파를 이용했다. 그것도 직접 지시한 게 아니라 에둘러서 간접적으로 눈치를 줬다. 그러면 덕구파 정 부장이 알아듣고 처리했다.

“그것도 덮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묻을 수 있을 테고.”

전준형이 긴급 체포되면서 덕구파의 이야기도 언론에 나왔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수사기관의 의지가 어느 정도냐이다.

박재곤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디 나 혼자 먹었나? 같이 먹은 놈 많잖아. 내가 이 일로 망하면 나랑 같이 해먹은 놈들은 다 같이 망하는 거야.”

박재곤은 4선 의원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박재곤과 같이 해먹은 사람이 정치권과 권력기관 곳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태도 예전처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걱정은 좀 들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워낙 크게 터져서, 삐끗하면 난리 날 텐데.”

그는 이권을 권력기관 사람과 같이 해먹는 방법으로 보험을 많이 들어놨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정치인은 박재곤 외에도 있다. 현재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그것만 믿고 있다가 한 방에 날아간 정치인도 있다.

“그런 벼락이 나한테 떨어지면 안심할 수가 없다고.”

박재곤이 불평했다.

“젠장. 스래곤이랑 일찍 만났어야 했는데,”

그게 아쉬웠다.

“스래곤과의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면 전준형의 돈은 없어도 되는데.”

전준형의 돈만 없어도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덕구파도 굳이 없어도 되는데 말이야. 무슨 문제든 돈을 더 많이 뿌리면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국회의원 박재곤은 후회했다.

“왜 하필 그놈들을 골라서 이렇게 찜찜해야 하는 건지. 젠장. 돈 줄 놈은 잘 고를걸.”

◈          ◈          ◈

선우현이 전상미 사장을 만나러 전호 호텔로 찾아갔다.

전상미는 토마토 세 개를 다 먹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 옥탑방 옥상으로 다시 찾아오진 못했다.

선우현이 종이 쇼핑백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활토 세 개 준 거 다 먹었을 것 같아서.”

쇼핑백 안에는 활토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전상미가 두 손을 맞잡았다.

“어머어. 고마워요. 사흘 동안 활력이 넘쳐서 일하다가 평소 상태로 돌아오니까 금단현상 생기는 것 같았는데, 이제 살았어요.”

“활토에 금단현상이 있을 리가 없는데.”

김수선도 말했다.

- 레드 포션에 금단현상이라니요. 말도 안 되죠.

“그만큼 맛있었다는 거죠.”

그녀가 얼른 활토 하나를 꺼내 깨물었다.

“음. 진짜 맛있어요. 매일 먹고 싶어요.”

“그거 귀한 거라.”

“귀한 것치고는 화분에 막 열려 있던데….”

“다른 데서 그런 화분을 본 적이 있는지?”

“없죠. 제가 이 비서 시켜서 다시 알아봤어요. 활토 재배를 시도한 곳은 국내외에 많은데, 성공한 곳은 하나도 없어요.”

“그럼 귀한 거 맞네요. 아껴먹어요.”

전상미는 혹시 VIP 스위트룸용으로 조금이라도 납품받을 수 있을까 싶어 간을 보았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기회를 노려야겠다.’

선우현이 물었다.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전준형과 전쟁을 치르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그리고 덕구파 정 부장의 자백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다행이네요.”

그녀가 방실방실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죠? 정 부장은 체포된 후에 제가 접근해오길 기다리고 있었더군요. 저를 거의 구명줄 정도로 생각하던데요.”

“정 부장은 바보가 아니니까.”

“진짜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정 부장에게 죽는 길과 사는 길이 뭔지 알려준 것뿐입니다. 정 부장은 사는 길을 선택한 거고요.”

“역시 선우현 씨가 저를 도와줬군요. 고마워요. 덕구파 정 부장이 자백한 덕분에 전준형을 이길 자신이 생겼어요.”

“그걸로 됩니까?”

“네. 돼요. 왜냐하면요.”

전상미가 설명했다.

“전호 그룹은요. 아빠의 지분만 가지고 유지된 게 아니에요. 우호지분이 중요하죠.”

“전준형 본인이 가진 지분만으로는 많이 부족하겠군요.”

“그렇죠.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경영권 싸움으로 계열사가 쪼개지면서 그 상황이 더 심해졌어요. 아. 둘째 오빠가 살아있을 때 이미 그렇게 됐어요.”

“그 우호지분 상황이 변했습니까?”

“전준형이 회사 이미지를 박살 냈잖아요. 우호지분을 가진 회사들은 결국 돈이 제일 중요해요. 당연히 이 위기에서 그 회사들을 살릴 능력자가 필요하죠.”

“그게 상미 씨군요. 전호 호텔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으니까.”

“맞아요. 제가 일 하나는 잘하거든요.”

“이 사건의 피해자니까, 바닥으로 떨어진 계열사의 평판을 되살릴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하고요.”

“그건 정말 선우현 씨 덕분이에요. 전준형이 저와 비서들을 죽이려 할 때 구해주시고, 또 증거도 찾아주셨잖아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터트린 건 전상미 씨죠.”

“그래서 제가 처박힌 그룹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적임자로 알려진 거죠.”

“그건 정말 최고의 판단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전상미가 물었다.

“그런데요. 선우현 씨는 이 모든 걸 다 짐작하고 움직이시던데,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예요?”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옛날에 많이 봐서.”

“네? 어디서요?”

“화면에서?”

지원위성의 관측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렌즈에 눈을 대는 게 아니라 모니터에 전송된 영상을 본다. 그러니까 화면으로 봤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역사는 반복되지요. 수없이 많이.

선우현이 물었다.

“이제 문제는 전준성인데, 그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준형이나 전준성이 전호 그룹의 계열사들을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에요. 각 계열사는 지분 관계와 우호 관계가 복잡해서 언제든 지배 구조가 바뀔 수 있어요.”

전상미의 각오를 다졌다.

“그러니까 각 계열사에 대세가 어느 쪽인지 알게 해야 해요. 일단 전준형 쪽에 있던 계열사들은 당분간은 팔 한쪽씩은 묶여 있어요. 이때 몰아쳐서 그 계열사들을 제 쪽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필사적으로 해야죠. 이 전쟁에서 지면 전 끝장이거든요.”

“전호 호텔의 실적이나 평판이 올라가면 그 전쟁에 도움이 되겠군요.”

“당연하죠. 하지만 방법이….”

선우현이 물었다.

“활토를 VIP 스위트룸 손님들에게 제공하면, 정말로 전호 호텔이 국내 톱을 찍을 수 있습니까?”

전상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곧바로 큰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호텔 수입이 갑자기 크게 올라가진 않을 텐데요?”

“상관없어요!”

전상미가 얼른 계획을 설명했다.

“일단 VIP 스위트룸에 활토를 공급할게요.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만 홍보하면 즉시 모든 VIP 스위트룸을 예약까지 걸어서 채울 수 있어요.”

그녀는 흥분했다.

“그 예약 결과를 우호지분을 가진 곳에 보여주면서, 전호 호텔이 앞으로 국내 1위가 될 거라고 알려야죠.”

“그러면 얻는 효과는?”

“이 난장판에서 누가 더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전호 그룹을 살릴지 알려줄 수 있어요.”

“그걸로 전준성까지 상대하기에 충분하겠습니까?”

“전준형이 복귀하면 우호지분을 가진 사람들의 돈은 처음보다 줄어들고, 전준성이 그룹을 장악하면 잘해야 돈을 지키는 정도예요.”

그녀가 흥분해서 손을 위로 들었다.

“그런데 저는 호텔을 업계 1위로 만드는 경영 능력으로 그 돈을 더 불려줄 수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논리로 투자자들을 설득하겠다는 거군요.”

“분명히 통할 거예요!”

선우현이 손뼉을 쳤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네? 그러면….”

“활토 공급. 호텔에서 따로 판매할 만큼은 안 되지만, VIP 스위트룸 이용자의 식사에 곁들일 정도의 수량은 공급하겠습니다.”

전상미가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선우현 쪽으로 뻗으며 외쳤다.

“진짜 고마워요! 선우현 씨는 진짜 제 운명의 상대예요!”

“그건 아니고.”

“아. 그건 아직 아니구나.”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그렇게 많이 받아가면서 들이대기까지 하다니. 역시 재벌의 욕심은 대단합니다.

전상미가 배시시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우리가 전준형은 물론이고 전준성보다도 유리해졌어요. 고마워요.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오래 잘 시간은 없지만요.”

선우현이 물었다.

“그런데 그 유리하다는 판단 말입니다. 박재곤도 포함해서 계산한 겁니까?”

전상미는 당황했다.

“네? 박재곤이요?”

“전준형이 박재곤을 이용해 전호 호텔을 공격하려고 했던데.”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래요? 박재곤은 계산에 없었는데…. 어떻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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