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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72화 (172/281)

172. 옥탑방 옥상

전호 호텔 전상미 사장은 활토 주스가 담긴 머그컵과 화분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혼란에 빠졌다.

“활토는 화분에서 자랄 리가 없는데….”

이 옥상 화분에서는 잘 자라고 있었다. 한두 개도 아니고 활력 토마토가 화분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다.

“활토는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재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들었어요. 키울 수는 있는데 그냥 평범한 토마토가 나온대요. 진짜 활토는 옥상에 놔둔 화분에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상미 씨는 눈으로 봐도 안 믿는 분이네.”

믿고는 싶다. 그녀가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내가 안 보는 틈에 토마토를 바꿔치기했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활토 나무를 잠깐 옮겨 심었나? 왜 그런 짓을 해? 아니, 애당초 활토 나무를 어디서 구하겠….’

그녀는 화분에서 활토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이 못 한다면 다른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녀가 선우현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선우현 씨가 활토의 주인?”

“소문 안 낼 것 같아서 주스 갈아준 건데.”

그녀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안 내죠! 당연하죠!”

그녀가 손바닥으로 얼굴에 바람을 부쳤다. 이제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았지만,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범죄 분석을 잘하고, 대단한 무술 고수에, 고대 유물과 문화 전문가인 건 알았는데, 거기다 활토의 주인….”

그녀가 옆을 보았다. 옥탑방이 보였다.

“진짜 왜 여기서 사세요?”

“여기가 전망이 좋아서라니까요.”

“혹시 활토를 키우려면 전망이 좋은 것이 필요…. 아니, 그럴 리가 없죠. 무슨 풍수지리도 아니고.”

“호텔을 경영하는 분이 활토 농사에 관심이 많군요.”

“그야 당연하죠. 호텔 VIP 스위트룸 손님들이 툭하면 묻는 게 활토를 구해줄 수 있냐거든요. 대놓고 구해오라는 사람들도 있고요.”

호텔 경영자의 관점에서 예상 효과를 분석한 적도 있다.

“아마 활토를 우리 호텔 VIP 스위트룸에라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으면요. 국내 최고급 스위트룸 수요는 우리 호텔이 다 가져와서 항상 만실에, 호텔 브랜드 가치도 국내 톱을 찍….”

그녀가 거기까지 말하다 입을 잠깐 다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앞에 바로 그 활토의 주인이 있다.

“저기, 그러니까….”

재벌가 막내딸로 자란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배시시 웃으며 제안했다.

“우리 호텔에도 태양 백화점처럼 활토 납품을 좀….”

“그런 거 이야기하러 온 거면 그만 가셔야겠네.”

그녀가 얼른 두 손을 흔들었다.

“아뇨. 아니에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녀가 화분을 아쉬운 눈으로 보았다.

‘다음에 다시 말해보자. 분위기 좋을 때.’

활토가 탐나기는 하는데 그걸 조르다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스위트룸 만실보다 선우현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이 비밀은 나만 알고 있어야지. 괜히 소문나면 경쟁자만 늘어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활토 주스를 홀짝이며 말했다.

“전호 전시관에서 잡은 남녀 도둑놈 말인데요. 전준형이 체포된 걸 알고 모든 걸 자백했어요.”

“그런 말단은 전준형이 시켰다는 걸 모를 텐데?”

“모르길래 가르쳐줬죠. 뉴스 보여주면서 적당히 어르고 변호사 지원해준다고 달랬더니 다 털어놨어요. 전준형이 따로 훔쳐오라고 한 게 있더라고요.”

“손은경 관장이 전시관에 불을 지른 후에는 찾기 힘드니까, 그 전에 빼돌리려고 했겠지요.”

“네. 아빠가 수집품 중에서 특히 아끼던 것들을, 상징적인 의미로 몇 개 챙기려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손은경 관장이 예상보다 조금 빨리 일을 진행하는 바람에, 일정이 겹쳐버렸을 테고요.”

“역시 잘 아시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전상미가 선우현을 보며 말했다.

“그중에 선우현 씨한테 드린 그 동상이 있더군요.”

선우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묘하네. 전호 그룹 회장이 알맹이가 뭔지 알았나?”

- 설마요.

“아니면 촉이 좋았나?”

- 그건 가능하죠. 강선정도 동상 속 관측 모듈에 반응했으니까요.

정보기관 내근직 요원 강선정이 그 동상에서 묘한 느낌이 든다고 했었다.

혼자 작게 중얼거리는 선우현을 보며 전상미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 그걸 돌려달라는 건 아니에요. 저는 몰랐거든요. 그리고 하나쯤은 괜찮아요.”

선우현이 옥탑방에 들어가서 그 동상을 가져왔다.

“이거 말인데.”

“네. 그거요.”

그녀가 그 동상을 전상미의 앞에 내려놓았다.

“가져가요.”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그냥 어떤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서 말해본 거예요.”

“난 이제 필요 없어요. 호기심은 해소됐으니까.”

그녀가 동상을 못 이기는 척 받았다. 그런데 동상 표면에 반으로 쪼갰다가 붙인 흔적이 있었다.

“어머? 이게 왜….”

“알맹이가 궁금해서 쪼개봤습니다.”

“네?”

“다시 찾으러 올 줄 모르고.”

“이건 유물인데요?”

“이제 쪼갰다가 붙인 유물이죠.”

그녀는 깨달았다.

‘선우현 씨는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알고 있었구나. 동상이 아니라 알맹이가 목적이었어. 역시 국제적인 고대 문명 전문가!’

그녀가 옥탑방을 다시 보았다.

‘진짜 이런 사람이 도대체 왜 옥탑방에서 사는 거지?’

이유가 궁금했지만, 사연이 있을까 싶어 캐묻지는 못했다.

그녀가 컵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의 주스를 마시고 오늘 찾아온 진짜 본론을 꺼냈다.

“막내 오빠가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은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전준형과의 전쟁은 제가 유리해요. 명분이 제 쪽에 있고, 우호 지분을 설득할 실리도 제가 유리해요.”

전준형이 지배하고 있는 계열사들이 망하면 우호 지분을 가진 쪽도 큰 손해를 본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상미가 전준형보다 나은 대안이다.

“그런데 막내 오빠, 전준성의 움직임이 수상해요.”

현재 상황에서는 전상미가 더 낫지만 전준성도 대안이 될 수는 있다.

선우현이 설명했다.

“예전에는 전준형이 힘이 더 세니까 전준성이 야심을 숨기고 굽히고 들어간 겁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전준성이 찢어진 전호 그룹을 다 먹으려고 드는 거고.”

“역시 그렇겠죠? 그래도 그쪽은 엄마까지 같은 친형제 사이인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준형만 상대하기도 쉽지 않은데, 전준성까지 본격적으로 참전하면 화력에서 밀려요. 제가 가진 회사는 전호 호텔 하나뿐이라서.”

“덕구파 정 부장이 전준형을 담당했으니까, 찾아가서 정보를 내놓으라고 해요. 싸움에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물론 그놈을 찾고 있죠. 하지만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오늘 체포됐습니다.”

“네?”

“아직 체포된 지 얼마 안 돼서 연락이 안 갔나 보네. 정 부장이 협조하기로 했으니까 정보를 뽑아내서 무기로 써요.”

전상미는 당황했다.

그녀가 여기 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녀는 전시관 남녀 도둑놈에 관한 이야기를 핑계로 선우현과 엠투를 만나고 싶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지만 그녀는 잠깐이라도 마음 편하게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선우현의 조언도 얻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일이 급격하게 진행됐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여기 찾아온 게 답이었네요. 그런데 미안해요. 가봐야겠어요. 정 부장에게 전준형이나 전준성이 손을 쓰기 전에 움직여야겠어요.”

“어? 아니, 우리 밥은….”

“멍?”

“이 비서가 가져오고 있어요! 우리 식사는 다음에 해요!”

“잠깐 기다려요.”

선우현이 활력 토마토를 세 개 따서 종이백에 담아주었다.

“전쟁터로 돌아가려면 체력 관리를 해야지요. 이거 가져가요.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마워요. 이걸 다 먹기 전에 다시 올게요.”

전상미가 서둘러 떠난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관우인 줄.”

“멍?”

“호텔 도시락이 온다니까 라면은 끓이지 말아야겠지?”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전호 호텔의 최고급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가져온 사람은 전상미 사장의 비서였다.

그런데 이 비서는 건물로 들어오지 않았다. 선우현은 건물 앞에서 이 비서를 만났다.

이 비서가 이유를 설명했다.

“사장님이 밖에서 뵙고 전해드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전상미가 왜 그렇게 지시했는지는 짐작이 갔다. 옥상에 올라가면 활토 화분이 보인다.

그녀가 잘 포장된 호텔 최고급 도시락 다섯 개를 공손히 내밀었다.

“사장님이 보내신 도시락입니다.”

“다섯 개 다 보내셨네.”

전상미는 원래 이 비서까지 셋이서 도시락을 하나씩, 엠투에게는 두 개를 주려고 했다.

공식적인 도시락 전달이 끝난 후에, 이 비서가 엠투를 꼭 껴안았다.

“우리 멍배우 흰둥아! 다시 보니까 너무 좋다. 난 빨리 사장님 도와드려야 하니까 나중에 다시 올게.”

“멍!”

그녀가 일어나 정색을 하고 선우현에게 인사했다. 그런 후에 차를 타고 떠났다.

선우현이 말했다.

“엠투. 너 의외로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다?”

엠투가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멍!”

선우현이 엠투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엠투가 뒤를 돌아보았다.

박서윤이 퇴근하고 있었다.

“아. 선우현 씨. 엠투.”

“서윤 씨. 퇴근이 늦었네요. 저녁 식사는?”

“아직 안 했어요. 오늘 좀 바빠서.”

선우현이 손에 든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호텔 도시락을 선물 받았는데, 많이 남네요. 같이 먹을래요?”

“네! 좋아요!”

선우현이 위로 올라가려다가 신나리의 방을 보았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리는 정말 먹을 복이 있네.”

◈          ◈          ◈

옥상에서 세 명과 한 마리가 호텔 도시락을 먹었다.

신나리가 신나서 말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옥상 오빠. 이 비싼 걸 어떻게 구했어요? 산 건 아니죠?”

“돈 주고 산 건 아니지.”

“훔쳤어요?”

“왜 선물 받았다는 선택지는 없지?”

“백수 오빠니까?”

“너 그만 먹어.”

“앗! 줬다 뺐으려고 한다!”

진짜로 빼앗지는 않았다.

“저번에 우리가 옥상에서 치킨 먹은 날, 누구를 좀 도와준 대가로 받은 거야.”

박서윤이 감탄한 소리를 살짝 냈다.

“아. 역시 그 사건에 선우현 씨가….”

“어떻게 압니까?”

“기사 보고 짐작했어요. 그럴 사람은 선우현 씨밖에 없으니까.”

신나리가 밥을 먹으며 물었다.

“사건? 이런 비싼 호텔 도시락을 대가로 받을 정도면, 은행이라도 털었어요?”

“너는 그만 먹으라니까.”

“빨리 먹고 남은 거 내가 먹을….”

박서윤이 어느새 도시락 하나를 다 비우고 남은 하나를 열고 있었다.

“와. 서윤 언니 빨라.”

“같이 먹을래?”

“넹!”

“멍!”

“엠투도 먹는구나. 아. 선우현 씨는….”

“그거 넷으로 나눠요. 아주 공평하게. 1그램도 치우침이 없이.”

◈          ◈          ◈

4선 국회의원 박재곤은 뉴스를 보고 인상을 썼다.

“일이 왜 이따위로 돌아가?”

전준형 부회장은 박재곤 의원과 커넥션이 있다.

그런데 전준형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전호 호텔 전상미 사장은 전준형 측과 전쟁을 선포했다.

전황은 전상미 쪽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전준형과 만나서 술 마신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되냐고.”

그는 전상미 납치 사건이 일어난 날을 확실히 기억한다.

“나랑 술 마신 날이었는데….”

심지어 시간도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중간에 술자리를 나가더니, 그게 그 일이었단 말이지.”

박재곤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나와 술 마시다가 여동생을 죽이러 갔다는 게 알려지면, 나는 괜히 같이 욕을 먹겠는데?”

정치인이 표를 얻으려면 평판 관리를 잘해야 한다. 특히 이런 대형 사건에 얽혔을 땐 더 잘 덮어야 한다.

“기사가 안 좋게 나면 몇만 표 날아가는 건 일도 아니겠어. 난 진짜 몰랐는데, 몰랐다는 걸 내가 먼저 발표하는 것도 바보짓이고.”

안 좋은 뉴스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조금 전에 본 뉴스에서 덕구파가 언급됐다.

“전준형이 덕구파와 커넥션이 있는 건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날도 전준형을 슬쩍 떠보았었다.

“덕구파는 이 부장 그 새끼 입 하나 다물게 못 하네.”

이 부장은 박재곤의 일을 처리한 적은 있어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래서 이 부장에게는 박재곤이 시켰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그런데 정 부장은 다르다. 명분대를 졸업한 정 부장은 전준형 부회장과 박재곤 의원을 담당했다.

“만약 정 부장까지 체포되면….”

정 부장이 오늘 체포됐다는 소식은 아직 박재곤에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박재곤이 한숨을 푹 내쉬며 후회했다.

“덕구파 깡패 새끼들이나 전준형의 돈은 받지 말걸. 이권을 거래할 놈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는데 왜 그중에서 하필 그놈들을 골랐을까? 젠장. 요즘 마가 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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