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정 부장 II
덕구파 이 부장이 병원에서 습격당했다. 덕구파 정 부장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사무실을 나와 대피했다.
그의 부하는 여러 명이지만 그들을 다 데려가지는 않았다. 사람이 많아지면 위치가 드러날 위험만 커진다.
그가 이곳에 데려온 조직원은 단 두 명뿐이다.
검은 양복은 박재곤 의원과의 관계를 아는 부하다. 은갈치 양복은 전준형 부회장과 만날 때 가끔 데려갔다.
덕구파 조직원인 검은 양복이 물었다.
“부장님. 여기는 안전할까요?”
정 부장이 커튼 사이로 바깥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 집은 차명으로 샀다. 평소에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 만든 안전가옥인데, 젠장. 이곳을 진짜로 쓰게 되다니.”
“그런데 부장님. 만약 우리가 조직의 뜻을 오해한 거라면, 이렇게 숨는 게 더 회장님의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
정 부장이 검은 양복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이 부장이 병원에서 당할 뻔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야.”
“하지만 이 부장님은 체포됐고, 저희는 아닌데….”
“난 이 부장보다 아는 게 많아. 내가 아는 것의 일부는 너희 둘도 알지. 게다가 일이 너무 크게 터졌어. 이제는 체포될 위험만으로도 제거될 거다.”
정 부장이 부하 두 명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내가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너희까지 살리려고 데려온 거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여기서 시간을 번 후에, 회장님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지. 시간만 있으면 방법은 찾아낼 수 있어.”
“알겠습니다. 저는 부장님만 믿…. 끄아악!”
검은 양복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등 뒤에 은갈치 양복이 피 묻은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은 은갈치가 말했다.
“회장님은 설득할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정리하라고 나를 보내셨으니까.”
정 부장이 은갈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너 이 새끼! 배신이냐!”
“배신이 아니지요. 난 원래 정 부장님이 아니라 회장님 부하 아닙니까?”
“야 이 새끼야! 이러면 너도 죽어!”
“난 회장님 부하라서 안 죽는다니까 그러시네.”
부하가 현관을 열었다. 밖에서 복면을 쓴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정 부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 이 장소를 조직에 알렸구나. 이 멍청한 새끼….”
은갈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정 부장님. 그만 가셔야지. 그동안 조직을 위해 애쓰셨으니까, 조용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정 부장은 전투력이 약하다. 이 부장은 물론이고 눈앞에 있는 부하보다도 싸움을 못 한다. 그러니 조직원 셋을 상대로 이길 수가 없다.
은갈치가 말했다.
“부장님께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하시던 일은 제가 이어서 똑같이 잘할 테니까,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십…. 으악!”
은갈치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가 뒤쪽으로 돌아서며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짧은 칼날은 뒤에 있던 조직원 두 명에게 닿지 않았다.
은갈치의 등에는 칼이 꽂혀 있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 새끼들아! 나를 왜….”
킬러가 말했다.
“세 분을 조용히 보내드리란 명령을 받았습니다.”
“나, 나까지? 아니야.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야.”
정 부장이 말했다.
“이 등신 새끼야. 이러면 우리 다 죽는다고 했잖아. 내 말을 믿었어야지.”
등에 칼을 맞은 은갈치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씨발. 이게 아닌데….”
이제 실내에는 정 부장과 킬러 두 명만 서 있었다.
킬러 하나가 단검을 위로 들었다. 다른 놈이 썼던 단검은 무릎을 꿇은 은갈치의 등에 꽂혀 있었다.
정 부장이 급히 말했다.
“난 지금 무기가 필요해! 그러니까 이해해라! 이 배신자 새끼야!”
정 부장이 무릎을 꿇고 있는 은갈치의 등에서 단검을 뽑았다. 은갈치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비명은 길지 않았다. 은갈치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정 부장이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오지 마!”
칼에 묻은 핏방울이 실내에 튀었다.
그 칼의 원래 주인인 킬러가 비웃었다.
“정 부장님. 무슨 건달이 칼을 잡는 법도 제대로 몰라? 그렇게 잡으면 찌를 때 손 다쳐. 역시 펜대나 굴리….”
현관 밖에서 손이 하나 쓱 들어왔다. 그 손이 비웃던 킬러의 목을 콱 잡더니 바깥으로 휙 끌고 나갔다.
“켁!”
선우현이 끌어낸 놈을 뒤로 던졌다. 마당 한복판까지 날아간 놈이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마당에서 대기하던 안성준 형사가 킬러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 킬러는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기절해서 저항하지 못했다.
선우현이 거실로 들어갔다.
다른 킬러가 선우현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죽어!”
선우현이 그 손을 툭 쳤다. 단검이 손에서 빠져나가 옆으로 날아가다가 벽에 꽂혔다.
“헉!”
선우현이 킬러의 팔을 덥석 잡았다. 킬러가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하지만 팔이 빠지지 않았다. 선우현이 킬러의 턱을 올려쳤다.
킬러의 고개가 위로 덜컥 젖혀졌다. 선우현이 손을 놓았다. 킬러가 뒤로 나무토막처럼 자빠졌다.
선우현이 기절한 놈을 발로 밟고 넘어가며 말했다.
“칼 내려놓지?”
정 부장이 피 묻은 칼을 앞으로 겨누며 외쳤다.
“누, 누구냐!”
“네 앞에 엎어져 있는 그놈은 네가 찌른 거냐? 등을 찌른 거 보니까, 네가 배신했나?”
정 부장이 다급히 외쳤다.
“아, 아니다! 내가 찌른 거 아니다! 배신은 이놈이 했다! 그리고 이놈도 배신당해서 거기 그놈들에게 등에 칼을 맞았다!”
“저쪽에 엎어진 놈은? 저놈도 등에 칼을 맞았는데?”
“그건 이놈이 찔렀다!”
“덕구파 놈들은 등짝만 노리냐?”
정 부장이 움찔했다.
“내, 내가 누군지 알고 왔어?”
“그럼 모르고 들어와서 이렇게 일을 벌였겠냐?”
“그, 그렇지.”
정 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머리는 팽팽 돌았다.
‘선택해야 해.’
이미 덕구파와는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덕구파가 그를 죽이려고 했는데 항복하고 다시 밑으로 들어가거나 협조할 수는 없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그건 다시 죽여달라고 목을 내미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정 부장이 선우현을 보며 물었다.
“어느 조직에서 왔지? 국내? 아니면 해외파인가? 중국? 일본?”
“네가 질문할 입장은 아닐 텐데?”
“내가 필요하니까 나를 구해줬겠지! 그럼 나를 지킬 힘이 있는지 증명해라!”
안성준이 안으로 들어와 엎어져 있는 킬러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 모습을 본 정 부장은 당황했다.
“겨, 경찰?”
“이제 물리적인 힘은 증명됐겠네.”
“하, 하지만 경찰은….”
선우현이 말했다.
“정 부장. 눈알을 아무리 굴려봤자 네가 살 길은 하나밖에 없어. 너를 죽이려는 놈들을 먼저 치는 것.”
“더, 덕구파를?”
“그거야 기본이고.”
“그럼….”
“전준형 부회장은 어때?”
정 부장이 악을 썼다.
“나 같은 놈이 재벌을 상대로 입을 놀리면 죽는단 말이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지.”
“뭐?”
“우리 쪽에는 전상미 사장이 있거든.”
정 부장이 다시 머리를 굴렸다.
‘전상미의 반격이 굉장히 강해. 전준형에게 쉽게 당할 리가 없어. 그럼 그들이 싸우는 동안 시간을 벌 수 있고, 돈도….’
그가 얼른 물었다.
“협조하면 나를 살려줄 건가? 도피자금도 넉넉히 주고?”
“살려만 줄 거다. 도피자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뭐?”
“네가 사람만 안 죽였고 잘 협조하면, 감형은 좀 받겠지. 교도소에 가도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을 거고.”
“나보고 교도소에 가라는 말이냐? 무슨 협상이 이따위야!”
“이따위 중에서 선택해라. 교도소에 가서 살아남는 쪽에 걸든가, 아니면 덕구파한테 그냥 살해당하든가.”
정 부장은 갈등했다. 선택지가 두 개인데, 하나는 곧 죽는 선택지고 다른 하나는 잘하면 살 수도 있는 선택지다.
“젠장. 젠장. 젠장!”
해외도피처럼 편안한 선택지는 없다. 그래도 선우현이 제시한 선택지 중 하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선우현이 정 부장의 손을 보며 말했다.
“아. 피 묻은 칼. 네가 이미 사람을 죽였으면 이 협상은 없던 거로 하자.”
정 부장이 얼른 단검을 옆으로 던졌다.
“내가 찌른 거 아니다! 내가 그래도 사람은 안 죽였다!”
안성준 형사가 옆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 부장은 칼 잡는 법도 제대로 모릅니다. 그리고 기획통이라 적어도 자기 손으로 사람을 직접 찌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 부장은 그냥 항복하지는 않았다.
“내가 네 조건에 동의하는 건 아니야! 결정은 내가 한다!”
“그래서 죽느냐 사느냐 중에 뭘 선택할 건데?”
“그야 당연히…. 사는 거….”
“바보는 아니네.”
선우현이 안성준 형사에게 말했다.
“정리됐으니까, 여기 있는 놈들 싹 다 체포해서 넘기시죠?”
안성준이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덕구파 정 부장을 잡았습니다. 수사에 협조하겠답니다.”
- 진짜야? 거기 어디야! 주소 보내! 당장 간다!
“정 부장은 멀쩡한데 덕구파의 다른 놈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우리 팀이 다 와야 합니다.”
- 이미 전부 소집하라고 시켰어!
“음…. 구급차도 두 대가 필요합니다. 네 대가 필요할지도 모르고요.”
- 안성준! 화끈하게 했구나!
“그게 아니라…. 아닙니다. 얼른 오십시오.”
안성준 형사가 전화를 끊은 후에 말했다.
“우리 팀이 곧 올 겁니다.”
선우현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갑니다.”
“예? 이 상황에 나만 놔두고요?”
“아. 정 부장 손에 수갑은 채워야겠네.”
“남는 수갑이 없는데….”
선우현이 턱을 맞고 기절한 놈을 가리켰다.
“저놈 당분간 못 일어납니다. 저놈한테 채운 거 빼서 옮겨 채워요.”
◈ ◈ ◈
선우현이 현장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다.
구급차와 근처 지구대 경찰차가 먼저 도착했다. 등에 칼을 맞은 두 놈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들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안성준 형사의 팀도 도착했다. 정 부장이 수갑을 찬 채로 끌려나가는 게 보였다.
안성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경하러 나온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선우현을 발견했다.
선우현이 안성준을 본 후에 그곳을 떠났다.
“이제 알아서 잘하겠지.”
- 잘해야지요. 떠먹여 줬는데.
◈ ◈ ◈
그날 저녁때 전호 호텔 전상미 사장이 선우현을 찾아왔다.
그녀는 옥상에 올라온 후에 옥탑방을 보고 당황했다.
“선우현 씨. 설마 여기에 사는 거예요?”
“좋지요?”
“왜 선우현 씨 같은 전문가가 옥탑방에….”
“여기가 전망이 좋아서요.”
“아…. 여기 전망이 좋긴 하네요.”
옥상에 굴러다니고 있던 엠투가 일어났다. 전상미가 엠투를 향해 손을 뻗으며 활짝 웃었다.
“흰둥아! 내가 너 선물 가져왔어.”
그녀가 가방에서 개껌을 꺼냈다.
“이거 먹어. 최고급 개껌이야.”
“멍?”
“이런 건 안 좋아하나? 그럼 이건 어때? 이태리에서 직수입한 사료야.”
엠투는 개 사료에도 반응이 시큰둥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엠투는 사람 먹는 거 먹습니다.”
“사람 음식은 개한테 먹이면 안 좋지 않아요?”
“엠투는 보통 개가 아니라서 먹어도 됩니다.”
그녀는 엠투가 벽을 밟고 뛰어다니며 칼을 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 흰둥이의 운동 능력은 평범한 개와는 다르죠.”
그녀가 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고기 좀 사와. 한우로. 흰둥이 줄 거야.”
- 투뿔 한우로 사겠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날고기보다는 요리된 거 좋아합니다. 사람 입맛으로.”
“우리 호텔에 연락해서 한우 출장 도시락을 가져와. 제일 좋은 거로.”
- 네? 강아지한테 그런 음식은 건강에….
“흰둥이는 먹어도 된대. 사람 입맛에 맞춰서 조리하라고 해.”
- 양파 같은 건 빼고 조리하라고 하겠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나도 입인데.”
“삼인 분, 아니다. 오인 분 준비해.”
- 네!
그녀가 밥을 주문한 후에 말했다.
“온 김에 우리 호텔 도시락으로 같이 식사라도 해요.”
“좋지요. 아. 뭐 좀 마실 거라도 드릴까? 커피? 토마토 주스?”
“토마토 주스로 할게요. 시럽 넣지 않은 거로.”
선우현이 옥상 화분에서 토마토 하나를 따서 믹서에 갈아주었다.
전상미가 머그컵을 받았다.
‘이런 건 유리컵이 좋은데.’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토마토 주스에 입을 댔다.
“음?”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상미는 이 맛이 뭔지 안다. 전에 먹어봤다.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활토 주스잖아요!”
“활토 아시는구나.”
“당연히 알죠. 우리 호텔에도 이걸 요구하는 VIP가 종종 계시….”
그녀가 멈칫했다. 옥상 한쪽에 화분 여러 개가 보였다. 선우현은 방금 그 화분에서 토마토를 따서 주스를 만들어주었다.
“활토가 왜 저 화분에서 자라요?”
“토마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