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차도살인지계
선우현이 설명했다.
“전호 전시관의 박 실장이 손은경 관장을 배신하고 죽이려고 한 건, 전준형이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전상미가 물었다.
“어떻게요?”
“손 관장을 사고로 위장해서 죽여야 경찰이 의심하지 않게 처리할 수 있고, 박 실장이 차지할 수 있는 몫도 커진다고 했겠지요. 물론 직접 박 실장을 만난 게 아니라 덕구파 간부를 시켜서요.”
“네? 왜 굳이 그렇게까지….”
“상미 씨 둘째 오빠 전준호가 왜 배에서 떠밀려 떨어졌을까요? 손은경이 바람피우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전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보는 선우현이 알려준 것이다.
“네. 저도 그렇게 확신해요. 경찰에서도 이제 그쪽으로 조사 중이에요.”
“그러면 말이지요. 전준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누가 알려줬을까요?”
전상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그리고 남편인 전준호가 그 사실을 안다는 걸, 손은경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그건 또 누가 알려줬을까?”
“설마….”
선우현이 계속 질문했다.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그 사건을 전호 그룹에서는 왜 전상미 씨만 의심하고 조사할까? 돈 많은 재벌이니까 따로 계속 조사시킬 수 있는데.”
전상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건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그쯤에서 정리하자고 한 사람은….”
전상미가 전준형을 돌아보았다.
“큰오빠예요.”
전준형은 뒤로 나자빠진 상태였다. 그는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움찔했다.
선우현이 설명했다.
“그걸 손자병법에서는 차도살인지계라고 합니다.”
이제는 전상미의 손도 덜덜 떨렸다.
“가족인데, 왜 둘째 오빠를….”
“경영권 싸움이 지저분하고 치열했지요?”
그런 정보는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인 전준호가 사망한 후에, 그룹 계열사들은 전준형과 전준성이 적당히 경쟁해서 나눠 먹었더군요. 이쯤 되면 전준성도 의심해봐야겠습니다. 그 둘만 같은 어머니의 자식이니까.”
전상미가 골프채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전준형이 있었다.
그녀가 화를 참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그래도 동생인데!”
전준호가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으아아! 살려줘!”
선우현이 그녀의 손을 잡아 골프채를 휘두르지 못하게 했다.
“지금은 살려둬야 상미 씨가 유리해집니다.”
전상미가 손을 가늘게 떨며 선우현을 보았다.
“지금까지 말한 거, 다 사실이죠?”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추측한 겁니다. 내 말이 사실인지는 상미 씨가 직접 확인해야지요.”
선우현이 금고를 가리켰다.
“그러려면 여기 있는 증거들, 그리고 재력과 인맥을 총동원해야 할 겁니다. 상대가 방해할 테니까.”
전상미의 몸에서 떨림이 사라졌다. 눈빛은 독해졌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요. 철저하게 박살 내고, 다 제자리로 돌려놓을게요.”
“그런 의미에서 자료 백업부터 합시다. 그런 후에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해요.”
“우리 호텔 IT팀과 보안팀, 법무팀, 비서실까지 다 다 부를게요.”
“정보가 미리 새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전준형이나 전준성 쪽에서 대응할 틈을 주면 안 되니까.”
그녀가 장담했다.
“사람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될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선우현이 전상미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스칠 듯이 가까워졌다.
전상미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살짝 감았다.
선우현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경찰에 증거 제출할 때, 영상에서 내가 나오는 부분은 빼고 넘겨요.”
그녀가 눈을 떴다.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아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네? 아, 네. 하지만 그래도 경찰에서 누군지 눈치챌 텐데….”
“눈치 못 챈 거로 처리되게 잘 좀 덮어봐요. 상미 씨한테 그 정도 힘은 있잖아요.”
그녀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확실히 처리할게요.”
선우현이 나자빠진 전준형을 끈으로 묶었다.
전준형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너 도대체 누구야!”
“너는 질문하지 마라.”
전준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알 수가 있지? 여기도 이놈이 찾아낸 건가? 도대체 어떻게?’
전상미는 호텔의 여러 부서에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소집했다.
선우현이 전준형을 묶어놓고 나서 전상미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는 차 번호 전부 다 불러달라고 해요.”
“네? 왜….”
“접근하는 차량이 아군인지 알아야 하니까.”
“아, 네!”
10분 후에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보고했다.
- 그쪽으로 과속으로 달려가는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쪽 차야?”
- 전호 호텔 쪽입니다. 차에 전상미가 알려준 번호판이 달려있습니다.
선우현이 전상미에게 말했다.
“그럼 나는 물러나 있겠습니다.”
“네? 저 혼자만 놔두고요?”
“상미 씨가 부른 사람들이 도착할 때가 됐습니다.”
◈ ◈ ◈
전호 호텔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전상미와 같이 납치됐다가 구출된 이 비서와 김 비서에게 가던 중이었다. 이미 그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전상미의 위치가 그들이 이동하던 장소에서 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금방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우현은 그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방금 도착한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
“귀에 통신기용 이어폰을 꽂은 덩치 좋은 사람은 보안팀일 테고, 양복에 서류가방을 든 쪽은 법무팀이겠네.”
- 체크무늬는요?
“IT팀도 부른다고 했으니까 그쪽이겠지.”
전상미는 직원들을 불러 현장을 장악한 후에 경찰에 신고했다.
선우현은 경찰이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가자. 엠투.”
“멍!”
전상미는 보안팀이 증거를 지키게 하고, 법무팀을 시켜 경찰과 증거 제출을 협의하게 했다.
IT팀에서 온 직원은 따로 불러 물었다.
“영상은?”
“사장님과 비서들이 구출될 때의 영상 원본은 복사했습니다. 말씀하신 뒷부분은 잘라내고 앞부분만 남긴 영상도 있습니다.”
그녀가 법무팀 직원을 불러 물었다.
“경찰에는 앞부분만 제출해도 되겠죠?”
“어차피 우리가 확보해 제출하는 증거입니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영상을 조작했다고 의심하면?”
“어차피 저쪽에서는 우리가 먼저 손에 넣은 모든 증거가 조작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유리합니다.”
“그럼 진행해요.”
“예.”
전준형은 몇 대 얻어맞긴 했어도 부러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프다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는 구급차에 타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전상미! 너 내가 부숴버릴 거야!”
전상미가 전준형을 노려보며 말했다.
“얼마든지 해봐. 난 확보할 수 있는 증거와 증인이 많이 있으니까 끝까지 가보자.”
“뭐? 증인? 누, 누구야!”
전상미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대놓고 말했다.
“나한테는 여기 있는 것 말고도 증거가 아주 많아!”
전준형은 창백해진 얼굴로 떠났다.
전상미가 숨을 가볍게 내쉰 후에 먼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아까는 선우현의 모습이 살짝 보였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갔구나.’
전호 전시관 사건 이후로 그녀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다 오늘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
‘형사를 통해 들은 소문을 반도 안 믿었었는데.’
선우현이 해결했다고 들은 사건들은 그냥 믿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형사의 말에 어느 정도 과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직접 경험해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과장된 게 아니었어. 전부 다 진짜였어. 아니, 내가 들은 것보다 더 대단했어. 형사는 본질을 관통하는 직관력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잖아.’
그녀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증거가 많이 생겼지만, 상대가 순순히 당해줄 리 없다.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는 않은데…. 팔짱이라도 낄 걸 그랬나.”
오늘 죽다 살아난 이 비서가 이곳으로 이동했다가 옆에서 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아무것도. 이 비서는 왜 여기 있어? 병원에 가. 많이 맞은 데다가….”
이 비서는 목에 칼날이 닿았었고 손가락도 잘릴 뻔했었다.
“사장님은요?”
전상미도 많이 맞아 멍투성이였다.
“난 이 상태로 기자회견을 하려고. 그래야 임팩트가 강하잖아.”
이 비서가 걱정했다.
“지금 그러시면 호텔 이미지에 타격이….”
전상미의 눈빛이 독해졌다.
“이미지? 이제부터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야. 우리 호텔 평판을 좀 깎아 먹더라도, 상대 이미지를 시궁창에 처박으면 남는 장사야.”
이 비서의 눈빛도 사나워졌다.
“저도 같이 갈게요. 카메라 앞에 같이 서서, 그놈들에게 더 확실히 복수하고 싶어요.”
“그러면 나야 고맙지. 김 비서는?”
운전기사 겸 경호원인 김 비서가 말했다.
“당연히 제가 사장님과 이 비서를 지키겠습니다.”
◈ ◈ ◈
선우현이 옥탑방에 돌아왔다.
옥상 문앞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치킨 있어요.]
아까 건물 입구에서 박서윤과 마주쳤다. 그때 그녀는 치킨 상자를 들고 있었다.
선우현이 박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치킨이 아직 있습니까?”
- 아. 돌아오셨어요?
“네. 지금 왔습니다.”
- 일은 다 끝나셨나요?
“끝났습니다.”
- 그럼 치킨 어때요? 맥주도 있어요.
“좋지요.”
- 치킨은 식었으니까 조금 데워서 올라갈게요.
선우현이 옥상에 올라왔다.
“엠투. 너 오늘은 밥값 했다.”
엠투가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짖었다.
“멍!”
“가서 쉬어.”
“멍?”
“왜? 너도 먹게?”
“멍!”
“개는 치킨 먹는 거 아니야. 뼈가 목에 걸리면 큰일 나.”
- 선장님. 엠투는 금속도 먹습니다.
“하여간 아니야. 치킨 한 마리를 서윤 씨와 나눠 먹어야 하는데 엠투까지 끼면 누구 코에 붙이라고.”
◈ ◈ ◈
박서윤은 치킨 두 마리를 가져왔다. 게다가 이미 식은 치킨을 프라이팬에서 손봐 도로 살려왔다. 치킨은 처음 샀을 때보다 때깔이 더 좋아졌다.
엠투가 신나서 꼬리를 흔들었다.
“멍!”
박서윤이 물었다.
“엠투가 평소보다 더 좋아하네요?”
“치킨이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두 마리라서 좋아하는 겁니다.”
신나리가 옆에서 말했다.
“서윤 언니가 엠투도 주려고 두 마리를 샀대요.”
“그런데 너는 왜 올라왔냐?”
“옥상에 둘만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들은 옥상에서 치킨 두 마리를 안주 삼아 캔맥주를 마셨다.
박서윤은 엠투에게는 치킨의 뼈를 제거하고 살만 발라주었다.
엠투가 그 고기를 조금씩 맛을 보며 먹었다.
선우현이 한마디 했다.
“저 녀석 호강하네.”
옥상에는 TV가 있다.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볼 수 있게 옥상에 설치한 TV였다.
그 TV에서 전호 호텔 전상미 사장의 긴급 기자회견 뉴스가 나왔다.
그녀는 얼굴에 피멍이 든 상태로 화면에 등장했다.
그녀의 오른쪽에 서 있는 이 비서는 너무 많이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목에는 칼날이 닿았을 때 살짝 베인 상처 자국이 있었다.
전상미가 그 상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제때 구출되지 못했다면 우리 셋 다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녀의 왼쪽에는 운전기사 겸 경호원 김 비서도 싸우다 찢어진 옷을 그대로 입고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세 명 중에 제일 많이 맞았다.
질문이 쏟아졌다. 전상미는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선택했다.
그녀가 기자회견장에서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은 전준형입니다.]
[예? 전준형은….]
[자신이 전호 그룹의 부회장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제 큰오빠죠.]
전상미가 기자회견장에서 사건의 범인으로 전준형을 지목했다. 그 발언으로 인해 생기는 법적인 문제는 모조리 무시했다. 어차피 앞으로는 살벌하게 치고받아야 한다.
전상미는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도 몇 개 공개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 쏟아졌다.
신나리가 기자회견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 진짜 저런 일이 어떻게…. 그러니까 오빠가 동생을 죽이려고 한 거잖아요. 그것도 호텔 경영권이 탐나서.”
전상미가 기자회견장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오빠 쪽이 계열사가 훨씬 더 많은데, 여동생이 가진 호텔까지 먹으려고….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선우현이 대답했다.
“저 집안이 원래 심하게 콩가루라서 그래.”
박서윤이 옆에서 물었다.
“그런데 저러면 회사 이미지가 엉망이 되지 않을까요?”
“전상미 사장은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까요. 이번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다간 전부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박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상황은 이미 승자독식 단계겠네요.”
“그렇죠.”
신나리가 손뼉을 쳤다.
“와아. 역시 길성 비서실에 근무하는 서윤 언니는 똑똑해. 옥상 오빠는 몰랐죠?”
“너는 지금 내가 서윤 씨와 대화하는 거 못 들었냐?”
“옥상 오빠가 맞장구친 거 아니에요?”
“어떻게 들으면 그렇게 들리냐? 너 대학은 어떻게 합격했냐?”
박서윤이 TV 화면 속 세 사람의 다친 모습을 보다가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안 다쳤어요?”
“내가 다칠 리가요.”
“하긴. 그렇죠.”
신나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옥상 오빠는 다칠 리가 없죠. 일을 안 하니까.”
- 신나리는 가끔 보면 날카로운 데가 있습니다.
“야. 너 치킨이랑 맥주 그만 먹어.”
“왜요? 이거 서윤 언니가 산 건데! 나는 더 마실 수 있다!”
“멍!”
“엠투. 너라도 그만 먹어!”
“멍멍!”
“하긴. 넌 오늘 일했지. 계속 먹어라.”
TV 속에서는 전상미가 전쟁을 선포했다.
여기서는 먹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신나리나 엠투는 물론이고 박서윤도 식탐이 있다. 넷이서 이렇게 먹으면 치킨 두 마리로는 부족해진다.
“피자도 시켜야겠다.”
오늘도 옥상은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