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63화 (163/281)

163. 의뢰

엠투의 자가 수리는 밤새도록 진행됐다. 선우현이 엠투의 몸에 귀를 대보았다.

“뱃속에서 뭔가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는 하나 본데?”

- 순조롭게 잘 되고 있나 봅니다.

“지구연합의 부품은 처음 먹어봤을 텐데, 이러다 엠투의 원래 기능까지 고장 나는 거 아냐? 이를테면 더 개같이 변한다든지.”

- 듣고 보니 찜찜하긴 합니다.

◈          ◈          ◈

자가 수리는 이튿날 아침에 끝났다.

선우현이 엠투를 살펴보며 물었다.

“수리 부품은 다 쓴 거냐?”

“멍!”

“고장 낸 건 없고?”

“멍!”

“자꾸 멍 소리만 하지 말고 네 몸에서 뭘 고쳤는지 말을 해.”

엠투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멍!”

“단답형 음성보고 기능은 하나도 안 고쳐졌네?”

“멍!”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그럼 통신 기능은?”

“멍?”

“그것도 안 됐어? 관측 모듈을 홀라당 먹어치우고, 금괴도 하나 더 먹고, 수리한다고 밤새도록 엎드려 있었는데.”

선우현이 툴툴댔다.

“도대체 수리된 게 뭐냐?”

엠투가 코를 킁킁대며 마당을 한 바퀴 돈 후에 돌아왔다.

“탐지 기능?”

“멍!”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어렵게 회수한 관측 모듈을 꿀꺽해서 고친 게, 냄새를 좀 더 잘 맡는 기능이라고?”

“멍멍!”

“그게 다가 아니긴. 너한테 제일 필요한 건 단답형 음성보고 기능하고 통신 기능이었어.”

“낑.”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면, 뭘 더 고친 거야?”

엠투가 갑자기 옥상을 빠르게 한 바퀴 뛰고 돌아왔다.

“너 왜 뛰냐? 반항하냐?”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엠투의 구동계도 추가로 수리됐나 봅니다.

“응? 구동계?”

- 엠투가 평소보다 더 빠르게 뛰잖습니까?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100%는 아니겠지만요.

“아하. 그럼 이제 힘도 더 세지고 점프도 더 잘하겠네?”

- 그렇죠.

“그러면 뭐하냐? 엠투에게 우유 수레를 끌게 할 것도 아닌데. 쓸모없는 것만 고쳤어.”

“낑?”

옥상 벨이 울렸다. 선우현이 모니터에 뜬 방문객을 확인했다. 배우 남미연이 찾아왔다.

문을 열어주자 그녀가 옥상으로 들어왔다.

엠투가 후다닥 달려가 꼬리를 흔들었다.

“어머. 우리 흰둥이 오늘 기분이 좋나 보다.”

엠투가 옥상을 빠르게 한 바퀴 돈 후에 다시 남미연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당장 차이점을 눈치챘다.

“어머! 왜 이렇게 잘 뛰지? 선우현 씨. 뭐죠? 흰둥이한테 각성제 같은 약 먹였어요?”

“약은 무슨. 귀한 걸 구해서 평상 위에 올려놨는데 저 녀석이 날름 먹어치웠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더 회복된 겁니다.”

“어머어! 그 귀한 게 뭐예요? 어디서 팔아요? 내가 다 사서 우리 흰둥이 줄 거야!”

“이제 못 구합니다. 진짜 귀한 거였는데.”

남미연은 선우현이 활력 토마토와 R 크림의 주인이라는 걸 안다. 그런 걸 키우거나 만들려면 귀한 재료가 필요하다고 짐작은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선우현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힘들게 구했다니까.”

남미연이 엠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앞으로도 그런 몸에 좋은 거 있으면 냉큼 먹어.”

“멍!”

선우현이 툴툴댔다.

“몸에 좋은 거 먹이면 뭐합니까? 쓸데가 없는데.”

남미연이 씩 웃었다.

“흰둥이 CF 따왔어요.”

김수선도 한마디 했다.

- 선장님보다 엠투가 열심히 일하는 듯.

“남미연 씨 또 CF 찍어요?”

전에는 남미연이 출연할 때 엠투도 등장시켰다. 지금 찍고 있는 영화에서도 남미연이 주연이고 엠투는 동물 조연이다.

“이번엔 내 CF 아니에요. 나랑 상관없는 CF인데 똑똑한 개가 필요하대요. 그래서 내가 흰둥이의 보호자로 같이 가려고요.”

“CF 찍으면 좋죠. 알았으니까 데려가요.”

남미연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의자에 앉았다.

“뭐예요. 손님이 왔는데 주스 한 잔도 안 주고 보내게요?”

“목적이 따로 있었군?”

남미연이 배시시 웃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거죠. 이건 뇌물.”

선우현이 커피를 받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남미연 씨. 전호 그룹 CF를 한 적 있습니까?”

JHC 테크 사장 최종훈에게 물어보면 전호 그룹에 관한 기업 정보는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남미연은 연예계에 있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다를 수 있다.

남미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어떻게 알았지?”

“있군요.”

“아뇨. 난 없어요.”

“그럼?”

“이번에 흰둥이한테 들어온 CF가 전호 호텔이에요.”

“응?”

“그리고 전호 그룹 CF는 안 했어도 소문은 좀 들었어요.”

선우현은 토마토를 하나 따서 활토 주스를 만들어주었다.

“주스 마시면서 말 좀 해봐요.”

“거기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룹이 쪼개졌잖아요. 둘째는 사고로 죽고, 아들 둘이랑 막내딸이 계열사를 쪼개 가졌죠. 죽은 둘째는 자식이 없어서 며느리만 뭐 조금 받고 끝났다던데….”

“잘 아네요?”

남미연이 자랑했다.

“나 남미연이에요. 기업가들이 오는 파티에 초대되면 소문도 듣게 되고, 경제 전문가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어요. 이 정도는 상식이죠. 아. 이건 비밀인데.”

그녀가 주변을 쓱 보았다. 옥상에 엿듣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죽은 둘째의 아내가 바람을 핀 것 같아요.”

“남편이 죽은 후에?”

“죽은 후면 바람이 아니죠. 죽기 전에요.”

“흥미롭군요. 근거는요?”

“내가 아는 배우가 나만 알라고 했는데, 자기가 아는 신인 배우랑 뭔가 있는 것 같았대요. 확실한 건 아니에요.”

“바람 핀 거 맞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남편도 의심하고 있었을 겁니다.”

“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선우현은 손은경이 남편을 배에서 밀어 사고로 위장해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녀가 남편을 죽여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으면서 경쟁에서 밀려버리는 바람에 계열사가 아니라 전시관의 건물만 받고 내쳐졌다.

게다가 그 건물도 머지않아 헐릴 예정이다.

김수선이 말했다.

- 불륜을 들킬 것 같으니까 남편을 사고로 위장해 죽였군요.

선우현이 남미연에게 말했다.

“나도 증거는 없지만, 그럴 여자 같아서.”

“그 여자를 알아요?”

“잠깐 본 것뿐이지만,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습니다.”

- 절도를 숨기기 위해 건물에 불을 질러 사람을 죽이려던 여자죠.

◈          ◈          ◈

선우현이 엠투의 CF 촬영장에 남미연을 따라갔다. 촬영장은 전호 호텔이었다.

김수선이 물었다.

- 왜 굳이?

“심심해서.”

- 그러면 일을 하십시오.

“오늘은 엠투가 일하잖아.”

그런데 현장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CF 촬영장에 와서 엠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선우현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선우현 씨?”

“음…. 이거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요?”

“네? 그게 무슨….”

“내가 여기 오는 걸 알았습니까?”

“당연히 몰랐죠.”

“그럼 오늘 여기는?”

“여기 우리 호텔이에요. 남미연 씨가 오늘 출연할 개를 데려온다고 해서 보러 왔어요.”

“저 개에 대해 압니까?”

“알죠. CF 관계자들이 멍배우를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꼭 만나고 싶었어요.”

“음…. 인연인가?”

“그런데 선우현 씨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혹시 남미연 씨랑….”

“엠투는 제가 키우는 개입니다.”

“네? 엠투요?”

“저 개요.”

“멍배우 흰둥이 아니었어요?”

“흰둥이는 별명이고, 엠투가 이름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진짜 신기하다. 개도 주인 닮아서 똑똑한가 보다.”

선우현이 주변을 슬쩍 둘러본 후에 물었다.

“만약 손은경이 바람을 피웠다면, 전상미 씨의 둘째 오빠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갑자기 그건 왜….”

“일단 대답부터.”

“오빠가 살아있을 때라면 당연히 이혼이죠. 둘째 오빠 성격이면 빈털터리로 쫓아냈을 거예요.”

“재벌 2세의 아내로 살다가 빈털터리라…. 그 정도면 살인의 이유가 되겠군요.”

“네?”

“손은경은 바람 핀 걸 남편에게 들켜서, 그걸 묻으려고 남편을 죽였을 수 있습니다. 그쪽으로 조사해 봐요.”

전상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알았어요.”

“내 말을 너무 쉽게 믿는데?”

“손은경이 둘째 오빠를 죽였을 가능성. 당연히 고려했죠. 하지만 둘째 오빠를 죽이면 손은경은 손해예요. 우리 집안의 재산 관계는 복잡해서 유산도 별로 없어요. 실제로 전시관 건물만 겨우 받았죠.”

“그래서 용의자가 되지 않았군요.”

“난 의심은 거둔 적이 없어요. 그런데 손은경이 오빠를 죽일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불륜. 그거면 설명이 되죠. 다 날리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챙기는 게 나았을 테니까.”

“그쪽으로 단서는 있습니까?”

“아니요. 그래도 어느 방향으로 조사해야 할지는 알았잖아요. 집중해서 캐면 뭐가 나오겠죠.”

“수고해요.”

그녀가 선우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런데요. 이번 사건의 수사 상황을 알아보다가, 선우현 씨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좀 있어요.”

“좋은 이야기를 들은 거면 좋겠는데.”

전상미가 살짝 웃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죠. 납치 피해자를 순식간에 찾아낸 거나, 혼자서 구출한 거나. 역시 그게 다 사실이었겠어요. 그러니까 좀 더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서 잘 해봐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어머. 그러면 안 되는데….”

“됩니다.”

그녀가 엄지와 검지를 살짝 붙이며 말했다.

“제가 새로 알아낸 일에 선우현 씨도 쪼끔은 관계가 있거든요.”

“음? 들어나 봅시다.”

“그날 전호 전시관에서 붙잡힌 남녀 도둑놈들 말이에요.”

“딱 봐도 도둑놈일 것 같더라니.”

“그놈들의 목적은 전시관 물건을 몇 개 훔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요. 누군가 전시관의 보안시설 정보를 그놈들에게 제공했어요.”

“나랑 관계가 있다면서요? 어디가?”

“그놈들을 빈 전시관에 가두셨잖아요.”

“정말 아주 쪼끔 관계가 있네. 그래서 그 누군가는 찾았습니까?”

“제일 의심 가는 건 큰오빠랑 막내 오빠예요. 아니면 집안사람 중에 누구일지도 모르죠.”

“집안사람?”

“우리 세 남매가 계열사를 다 물려받았으니 친척 중에 불만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아니면 오빠들의 사돈집이던지.”

“결국은 집안일이네. 집안일은 알아서 해결해요. 전상미 씨에게 돈이나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공식적으로 움직이기엔 가진 힘이 달라요. 당장 큰오빠만 해도 박재곤 의원이랑 커넥션이 있는데요. 저는 그런 권력자가 없어요.”

아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 박재곤. 발을 걸친 곳이 많네.”

“아세요?”

선우현이 둘러댔다.

“4선 국회의원이잖습니까?”

“그렇게 아시는구나.”

“그러니까 집안사람을 조사하긴 해야 하는데, 공식적으로 하면 위험하니까 내가 은밀히 움직여 달라?”

“네. 제 호텔 직원들을 안 믿는 건 아니지만, 다들 전호 그룹 소속이었으니까 저쪽 직원들과 정보 교환이 빠르거든요. 비밀이 새기도 쉽고요.”

선우현은 박재곤 의원과 항공우주기업 스래곤의 커넥션에 관심이 많다.

“박재곤이라….”

“부담되겠지만, 꼭 좀 부탁드려요. 사례는 충분히 할게요.”

“얼마를 생각하든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대가가 좀 클 거라서.”

“얼마나 크길래….”

선우현이 손가락을 옆으로 흔들었다.

“그건 지금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으셔도 되니까, 생각이라도 좀 해보실 수 없을까요?”

선우현은 박재곤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긴 하다.

“내가 맡지는 않겠지만,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습니다. 일단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내놔요. 집안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박재곤에 대한 것도.”

“네?”

“그동안 조사를 했을 거 아닙니까? 만약 아무것도 안 했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면.”

그러면 박재곤에 대한 정보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이 조사는 그냥 접는 게 좋습니다.”

“물론 조사야 했죠.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디까지….”

“집안일이라 좀 부담스러우신가?”

“집안의 비밀도 좀 있어서….”

“그럼 집안일은 줄 수 있는 데까지만.”

어차피 선우현이 원하는 건 이미 쪼개진 전호 그룹의 내부 사정이 아니다.

“외부 인물, 그러니까 박재곤 같은 외부인에 대한 자료는 수집한 거 전부 다 줘요.”

전상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 자료라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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