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먹개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알겠어요. 드려도 괜찮은 전시품을 고르면 사례로 드릴게요.”
선우현이 물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수집품이라더니?”
“아빠도 둘째 오빠 일이니까 이해하실 거예요.”
“집안이 싸움이 나서 계열사가 다 쪼개졌다고 들었는데, 수집품을 마음대로 줘도 됩니까?”
“어차피 전시관에 있는 유물은, 전시관을 허물면 제가 가져갈 거예요. 그러니까 특별히 귀한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안 되는 것도 있나 보군요.”
“네. 아빠가 특별히 아낀 유물들이 있어요.”
◈ ◈ ◈
선우현은 전상미와 함께 전호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손은경 관장과 박 실장, 덕구파 이 부장이 훔쳤던 유물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외국에서 대여해 전시했던 것들은 별도의 장소에 따로 보관됐다.
그런데 전호 전시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전상미가 설명했다.
“전시관은 당분간 문을 닫기로 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열면, 전시품이 아니라 사건 현장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재벌가는 그런 구설수를 싫어해요.”
“이제 쪼개져서 재벌은 아닐 텐데.”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시니까 아프네요.”
“여기는 헐고 빌딩 지을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큰오빠가 밀어붙이고 있어요.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고요. 반대하는 건 저 혼자예요.”
선우현은 전상미와 함께 전시관 내부로 들어갔다. 전시품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그러다 농기구로 사용된 유물을 보았다. 무기라고 적힌 안내문이 거슬렸다.
“저거 아닌데.”
그는 지나가면서 그 유물이 어떤 이유로 농기구로 사용됐는지 설명했다.
전상미가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역시 고대 문명 전문가답게 박식하시네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내 뒷조사라도 합니까?”
“아니에요. 아빠의 영향으로 저도 그쪽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 내 이름을 들었을 리는 없는데?”
“최근에 소문을 들었죠. 외국 정부에서 협조 요청이 올 정도로 대단한 고대 유물 전문가가 나타났다더라고요.”
“아. 이런.”
“그런데 그 전문가의 이름도 선우현이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했죠.”
“문체부 국장님이 소문냈군.”
“역시 그 전문가가 선우현 씨였군요. 대단하세요.”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은 왜 굳이 그 농기구의 진짜 용도를 설명해서 아는 티를 내셨을까요?
“답답해서 알려줘 봤지. 혹시 안내판의 설명문을 고칠까 싶어서.”
- 혹시 재벌집 여자를 꼬셔서 우주왕복선을 사려는 겁니까?
“설마 그러겠냐?”
- 그런 계획이라면 선장님 얼굴로는 씨도 안 먹힐 테니까 말리려고 했습니다.
“나도 알아.”
선우현은 관측 모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동상 앞에 섰다. 처음부터 이 유물을 고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일부러 다른 유물들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 동상으로 합시다.”
전상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서 큰 가치는 없는 유물인데요? 다른 좋은 것도 많아요.”
“이거면 됩니다.”
그녀는 선우현이 유물 전문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거 사실은 귀한 건가요?”
“아니요.”
“하지만 선우현 씨가 고른 건데….”
“비싼 건 안 된다면서요. 그냥 이거로 합시다.”
그녀가 전시품의 설명을 보았다. 다시 봐도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선우현이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내기 어렵다. 그리고 그녀는 선우현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알았어요. 이걸로 드릴게요.”
전상미가 직접 그 유물을 포장했다.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 자재를 충분히 두른 후에 단단한 은색 가방에 넣었다.
선우현은 그 가방을 받은 후에 전시관을 나왔다.
전시관 앞에서 전상미가 물었다.
“또 연락해도 될까요?”
“굳이?”
“부탁드릴 일이 생길 수 있잖아요. 선우현 씨는 보통 분이 아니신 데다가, 우리 집안에 복잡한 일이 많아서….”
“아. 그래서구나.”
“그럼 괜찮….”
“내가 바빠서.”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금속 가방을 열며 자랑했다.
“수선아. 봐라. 내가 이 동상을 회수할 거라고 했잖아.”
- 그냥 알아서 굴러들어온 거 아닙니까?
선우현이 포장을 뜯으며 말했다.
“알아서라니. 이건 내가 전호 전시관의 도둑놈들도 때려잡고, 전상미 사장한테 정보까지 넘긴 대가로 받은 거야.”
- 얼른 그 동상에 관측 모듈이 들어 있는지 확인부터 하시죠.
선우현이 동상을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틈이 있는지 확인했다.
“완전히 밀봉되어 있다.”
- 그러니까 아직 알맹이가 알려지지 않았겠지요.
“쪼개야겠네.”
선우현이 옥상 공구 중에서 소형 전동 그라인더를 찾았다.
- 선장님. 그걸로 쪼개시게요?
“좀 그런가?”
- 그 동상은 그래도 나름 유물인데요.
“유물이라도 쪼개긴 해야 하는데, 손상은 좀 줄여보자.”
선우현이 조각칼을 꺼냈다.
- 그걸로 자르시게요?
“더 좋은 방법이 있냐? 선체에 있는 휴대용 절단기라도 보내주게?”
- 아니요.
선우현이 힘을 줘서 칼을 꽂았다.
동상의 재질보다 그가 쓰는 조각칼에 사용된 특수강이 훨씬 더 단단했다. 칼날이 금속으로 만든 동상을 푹 파고들었다.
“이건 역시 겉만 금속이야. 내부에 공간이 있다.”
조각칼로 외부 금속판을 일단 뚫기는 했다. 그렇지만 조각칼로는 부드럽게 잘리지 않았다.
“꽤 단단한데?”
선우현은 힘이 워낙 세서 조각칼로 외부 금속판을 뚫을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했으면 흠집만 나거나 칼날이 부러질 수도 있었다.
- 힘을 더 쓰십시오. 힘은 세잖습니까?
“왜 칭찬이 아닌 것 같지?”
옆에서 엠투가 작게 짖었다.
“멍.”
“그치? 네 생각에도 칭찬은 아니지?”
선우현이 조각칼을 사용해 동상을 조금씩 잘랐다. 어느 정도 자른 후에 틈을 살짝 벌려 내부를 햇빛에 비추어보았다.
“내부 공간이 뭔가로 채워져 있다.”
- 관측 모듈인가요?
“아니. 색이 많이 달라. 이러면 완전히 잘라봐야겠는데?”
선우현이 동상을 계속 잘랐다. 전용 공구가 아니라 조각칼로 자르다 보니 힘이 많이 들었다. 칼날도 자꾸 마모돼 여러 개를 갈아 끼웠다.
선우현은 동상 전체를 빙 둘러 원형으로 잘랐다. 마지막 부분까지 자른 후에 선우현이 동상을 손으로 잡았다.
“이제 개봉한다.”
선우현이 힘을 주자 동상이 양쪽으로 쩍 갈라져 분리됐다.
내부에 있는 물체는 금으로 만든 판으로 쌓여 있었다.
“금이네. 팔 수도 없는 거.”
- 금은 엠투의 수리용 자재로 쓰잖습니까?
옆에서 엠투가 입맛을 다셨다.
“야. 넌 금괴를 그만큼 먹었으면 됐지 왜 이것까지 노려?”
“낑.”
“시끄러워.”
선우현이 금으로 만든 판을 벗겼다.
누가 봐도 그 시대에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장비가 나타났다. 그건 탐사대가 지상에서 사용하는 관측 모듈이었다.
“진짜로 탐사대용 관측 모듈이 들어 있구나.”
-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탐사대는 과거에 지상에 착륙한 적이 없다. 이건 선우현이 지상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옛날에 지원위성에서 투하한 장비다.
“수선아. 이거 상태가 굉장히 좋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 보통은 부서져서 없어지는데 말이야.”
- 완전히 밀봉 처리해서 부품이 손상되지 않은 듯합니다.
“동상의 금속과 내부 금 덕분에 사람들은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몰랐던 거야. 엑스레이 정도로는 파악이 안 됐을 테니까.”
선우현이 관측 모듈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거 아직도 작동하나? 아니네. 상태는 좋은데 동력이 바닥났나 보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천천히 궁리해 보자. 상태가 이렇게 좋으면 부품을 뽑아서 쓸 수 있겠어.”
선우현이 관측 모듈을 평상 위에 올려놓고 공구를 챙겨 옥탑방 쪽으로 이동했다.
그가 공구를 벽장에 집어넣어 정리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수선의 외침이 들렸다.
- 엠투! 멈춰!
거리가 있어서 인이어 통신기의 소리는 옥상에 있는 엠투에게 들리지 않았다.
선우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엠투가 평상 위에 올려놓은 관측 모듈을 덥석 물었다.
“어? 야!”
엠투가 관측 모듈을 꿀꺽 삼켰다.
진짜 개라면 그렇게 큰 게 목구멍을 넘어갈 리 없다.
그런데 엠투는 개처럼 생긴 독립형 장거리 정찰모듈이다. 필요하면 목구멍의 크기를 키워서라도 외부 물체를 뱃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
너무 큰 건 안 되지만, 입으로 물 수 있는 크기라면 뭐든 삼킬 수 있다.
선우현이 옥상으로 뛰어나갔다.
“야! 엠투! 너 그게 뭔지 알고!”
- 작동이 중지된 관측 모듈이지요.
“내가 그거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데!”
- 딱 하룻밤 일하셨지요.
“수선이 너는 누구 편이냐!”
-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서요.
엠투가 선우현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슬그머니 바닥에 깔았다.
“야. 뱉어!”
“끼잉.”
- 역방향 배출이 가능할 텐데, 버티네요.
“이게 반항도 하네? 엠투의 명령 처리 시스템이 얼마나 손상된 거야? 완전히 개가 다 됐어.”
- 그게 아니라, 이미 뱃속에서 분해가 시작된 게 아닐까요?
“분해?”
- 엠투의 몸속에 있는 자가 수리모듈은 필요한 부품이 들어오면 즉시 분해할 테니까요.
“엠투 이거 이제 보니까 아주 계획적이야.”
옥상 벨이 울렸다. 선우현이 방문자가 누군지 확인했다. 모니터에 박서윤과 신나리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현이 리모컨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두 사람이 들어왔다가 엠투가 엎드려 있는 걸 보았다.
박서윤이 물었다.
“엠투가 왜 그래요?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내가 어렵게 구해 온 걸 평상 위에 올려놨는데, 그걸 먹어버렸습니다.”
“어머. 몸에 안 좋은 거예요?”
“그건 아닙니다.”
“다행이다. 그런데 엠투는 똑똑해서 그런 실수 잘 안 할 텐데….”
“똑똑하니까 먹은 겁니다. 이 녀석의 몸에 좋은 거니까요.”
“아. 그래요.”
박서윤이 엠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아. 잘했다고 하면 안 되나? 앞으론 사료가 아닌 건 허락받고 먹어.”
엠투가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선우현이 투덜댔다.
“좋단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포기하시죠. 어차피 유출되면 안 되는 장비라 회수한 거지, 쓸 곳은 없었잖습니까?
“잘 찾아보면 쓸 데가 있을지도 몰랐는데.”
- 엠투의 손상된 부분이 추가로 수리되면 쓸모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긴. 이 밥만 축내는 녀석에게 일을 시키려면 상태가 더 회복될 필요는 있겠다.”
신나리도 옆에서 엠투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엠투가 뮤직비디오에도 나오고 CF에도 나오고, 아주 스타 개가 다 됐어요.”
“밥값도 못하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출연료 못 받았어요?”
“받았지.”
“그럼 밥값은 충분히 했겠네요.”
“그런가?”
신나리가 실실 웃었다.
“엠투가 옥상 오빠보다 잘 벌 듯.”
“엠투가 번 건 어차피 다 내 거야.”
“멍?”
“밥 주잖아.”
◈ ◈ ◈
엠투의 몸속에는 소형 자가 수리모듈이 들어 있다. 그 수리모듈은 마모되거나 깨진 구동계 부품을 고치고, 인조 가죽을 재생하고, 털 생성장치가 망가졌을 때도 수리한다.
하지만 모든 고장을 수리하지는 못한다. 수리모듈이 만들 수 없는 부품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밀 전자 부품이 필요한 경우는 수리가 어렵다.
엠투가 먹은 관측 장비는 완전히 밀봉되어 있었던 덕분에 부품의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그중에는 수리모듈이 만들 수 없는 부품도 있었다.
◈ ◈ ◈
엠투가 옥상에 엎드려서 자가 수리에 들어갔다.
몸속에 있는 소형 에너지 전환장치가 밥에서 수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냈다.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자가 수리모듈에 공급할 동력은 충분했다.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려면 에너지만이 아니라 자재도 더 필요했다. 제일 쓰기 좋은 대체재는 금이다.
“멍.”
“옜다.”
선우현이 금괴를 하나 던져주었다.
엠투가 날아오는 금괴를 넙죽 받아 삼켰다.
“평범하게 개 사료만 먹으면 얼마나 좋아. 저건 툭하면 금을 먹어.”
- 개 사료도 먹을 수는 있습니다만.
“저건 사람 밥을 먹잖아.”
- 지상에서 오랫동안 사람 밥을 얻어먹으면서 활동했을 테니까요.
“술도 얻어먹었겠지.”
- 그러게요. 다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우리 셋 중에서 제일 잘 먹었네요. 굶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