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61화 (161/281)

161. 사례

안성준 형사가 선우현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동네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사는 겁니다.”

“메뉴판에 소고기도 있는데.”

“어허. 공무원에게 소고기 사주면 법에 걸립니다.”

안성준이 슬쩍 웃었다.

“그냥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

선우현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말했다.

“진짜 이 기름진 맛. 옛날에는 멀리서 구경만 하고 못 먹었는데, 이제 이렇게 마음껏 먹을 수 있네요.”

- 이제 선장님만 마음껏 드시죠. 저는요?

“그러게.”

안성준이 물었다.

“건물주가 되기 전에는 삼겹살도 못 먹을 만큼 어렵게 지내셨습니까?”

선우현이 둘러댔다.

“다이어트 할 때요.”

“아. 다이어트.”

소주와 함께 삼겹살을 먹다가 안성준이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도 화려하게 하셨던데요.”

“나는 안 그러려고 했는데, 그놈들이 칼도 휘두르고 총도 쏘니까 위험해서 그랬습니다.”

“무려 열 놈이나 박살 내셨는데요?”

“박살 난 놈은 안 위험하니까요.”

안성준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선우현 씨는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이 보통 사람과 많이 다르십니다.”

“확실한 걸 좋아해서요. 그런데 그걸 확인하러 오신 겁니까?”

“예. 선우현 씨가 한 일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만약 다른 사람이 한 일이라면 그것도 문제라서요.”

“그럼요. 기왕이면 아는 사람이 하는 게 낫지요.”

“아니, 지금도 문제는 많은데….”

선우현이 고기를 뒤집으며 물었다.

“마침 잘 만났습니다. 이 부장이라는 놈이 자기가 덕구파라고 하던데, 그건 뭐 하는 놈들입니까?”

안성준이 인상을 썼다.

“덕구파. 돈이 되는 일이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놈들입니다. 위험한 놈들이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안 위험하던데요.”

“정면에서 싸우면 선우현 씨가 위험해질 리가 없지요. 다만, 뒤에서 습격이라도 당하면 위험하잖습니까?”

“안 당합니다. 나를 습격하러 오는 놈들은 표가 나니까.”

선우현이 물었다.

“덕구파 이 부장은 교도소에 들어가도 오래는 안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우리 팀이 전에 덕구파 몇 놈 잡았었는데, 금방 풀려나더군요. 일부는 집행유예를 받았고, 유일하게 징역을 산 놈도 반년 만에 나왔습니다.”

“방법은요?”

“비싼 변호사 쓰고, 빽도 쓰고?”

선우현은 이 부장이 믿는 빽이 궁금했다.

“그 빽이 누구인지 압니까? 이 부장의 태도를 보면 정치권이나 수사기관, 아니면 사법기관 고위층이 아닐까 싶던데.”

“한 명이 아니라 몇 명 있을 겁니다. 고위층은 물론이고 실무 쪽에도 있겠죠. 그게 아니면 그놈들이 자꾸 빠져나가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알아보셨을 것 같은데.”

“돌아가는 판을 보면 어떤 타입의 빽이 움직였는지 짐작이 갈 때가 있습니다. 우연히 하나 알아낸 것도 있고요.”

안성준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빽 중에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초선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래됐거든요.”

“이름도 압니까?”

“아니요. 저도 덕구파가 관계된 사건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박 의원이라는 호칭만 들었습니다. 국회의원 중에 박 씨가 한둘이 아니라서, 누군지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박 의원이라….”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나도 이름을 아는 박 의원이 하나 있습니다. 박재곤이라고.”

“아. 박재곤 의원도 초선이 아니니까 가능은 하지요.”

◈          ◈          ◈

4선 국회의원 박재곤이 인상을 썼다.

“이 부장이 왜? 그놈이 설마 내 이름을 불지는 않겠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룸살롱에서 굽실댔다.

“생각이 있으면 의원님의 이름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다만 뭐? 빼내는 데 힘을 써달라?”

“예. 여기 이건 약소하지만….”

남자가 작은 비타민 음료 상자를 내밀었다. 그 작은 상자에 5만 원짜리를 채우면 1억까지 들어간다. 지금은 반쯤 채워져 있었다.

박재곤이 상자를 힐끗 본 후에 옆에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

“너 뭐 들은 거 있어?”

비서가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하나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이 사건 같습니다.”

박재곤이 기사를 확인한 후에 인상을 구겼다.

“이 부장이 총을 쐈네? 그것도 쌍권총으로? 정 부장.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예?”

“칼이라면 몰라도 총을 쏜 놈을 어떻게 빼주나? 이렇게 기사까지 났는데.”

정 부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이 부장이 아는 게 많아서….”

박재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상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 부장은 알아서 입 다물게 해. 나한테 불똥 튀면 가만히 안 있어.”

박재곤이 룸을 나갔다. 뒤에 남은 정 부장이 머리를 긁었다.

“아이. 씨발. 이 부장 이제 큰일 났네.”

◈          ◈          ◈

박재곤이 밖으로 나가 차에 탄 후에 짜증을 냈다.

“깡패 새끼들이 겸상을 해줬더니 내가 좀 편해졌나? 감히 나한테 저따위 소리를 해? 누굴 엿 먹이려고.”

비서가 자랑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미리 기사 체크 했으니까 괜찮았지, 하마터면 괜히 엮이실 뻔했습니다.”

“너는 그걸 알았으면 이 자리를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지!”

“예? 아, 죄송합니다.”

◈          ◈          ◈

강선정이 선우현을 찾아왔다. 그녀가 우는소리를 했다.

“제 차는 폐차하기로 했어요. 엔진도 구멍이 나고 계기판 쪽도 구멍이 나고 바닥 뼈대도 뚫렸어요. 못 살린대요.”

“새로 사요.”

“새로 사려면 또 할부 넣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부금을 이중으로 내요? 이제 뚜벅이 신세예요.”

“자전거라도 사던가.”

“내 자동차가 자전거로….”

“그런데 여긴 왜 온 겁니까? 그거 하소연하러 온 건 아닐 텐데.”

“손님이 왔는데 주스라도….”

선우현이 냉수를 한 잔 주었다.

“속이나 차려요.”

“쳇.”

그녀가 냉수를 마시며 물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이 귀한 휴일에 찾아온 거예요.”

“주스가 목적인 것 같은데.”

“저기, 사실은 주스 말고, 그….”

“그 뭐요?”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배시시 웃었다.

“R 크림 개발자시잖아요? 그거 하나만 팔아주면 안 돼요? 제가 요즘 고생을 많이 했더니 피부가 까칠해져서….”

“차 할부금도 없다더니?”

“그걸 사야 하니까 할부금이 없는 거예요.”

선우현이 옥탑방에 들어가 R 크림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그래도 같이 싸운 사이니까 선물로 줄게요.”

“앗! 진짜요? 고마워요!”

“아. 공무원이니까 이건 받으면 안 되겠구나.”

“어머! 제가 언제 규정 지키는 거 보셨어요? 저 징계 받는 여자예요.”

“자랑입니다.”

선우현이 R 크림을 준 후에 물었다.

“되찾은 예술품이나 유물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외국에서 대여한 건 반납하기로 했고, 원래 전시관 소유인 건 제자리에 돌려놨죠.”

“전에 가져왔던 사진 중에 동상 있잖습니까? 물건 빼돌렸다는 걸 알아보게 한,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던 그 동상.”

“알죠.”

“그건 어디로 갔습니까?”

“그건 전호 그룹 소유니까 전시관에 돌아갔겠죠?”

“거 잘됐네.”

“네?”

“전시관에 있으니까 잘됐다고요.”

강선정이 R 크림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전호 그룹 사람 중에 선우현 씨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있던데요.”

“거기서 나를 어떻게 알고? 강선정 씨 입이 생각보다 싸네?”

“설마요. 그쪽에서 담당 형사를 통해 저한테 연락했어요. 사건을 해결한 분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감사 인사라….”

“물론 제가 단칼에 거절했어요.”

“그런데 누가 날 찾습니까?”

“전호 그룹은 회장이 사망한 후에 경영권 싸움이 일어나서 쪼개졌어요. 죽은 아들은 빼고, 다른 아들 둘과 딸 하나가 계열사를 나눠 가졌죠.”

“그중에 하나군.”

“사망한 회장의 막내딸은 호텔을 물려받았는데, 선우현 씨를 만나고 싶어 해요. 아. 그 막내딸이 이제부터 전시관도 맡기로 했어요.”

“본다고 해요.”

“네?”

“보겠다고요.”

“왜 갑자기….”

“알려줄 것도 있고, 그 대가로 받을 것도 있어서.”

◈          ◈          ◈

선우현이 전호 그룹의 전상미를 만났다.

강선정은 그 미팅에 끼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그녀는 상관없는 만남이어야 해서다.

전상미를 만난 장소는 그녀가 사장으로 있는 호텔 식당의 VIP 별실이었다.

전상미가 선우현에게 인사했다.

“도난당한 유물들을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손해가 엄청날 뻔했거든요.”

선우현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알고도 못 본 체할 수가 없어서 그냥 도와준 겁니다. 그런데 그거 다 보험처리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외국에서 대여한 건 내부자의 소행으로 밝혀지면 보험으로는 제대로 커버가 안 돼요.”

“전시관 땅이 날아갈 뻔했군요.”

“최악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었죠. 그리고 전호 전시관이 소유한 유물들은 아빠의 수집품이에요.”

그녀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늦둥이 딸이에요. 그래서 아빠가 참 귀여워해 주셨죠. 아빠가 제가 어릴 때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준 그 소장품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래서 그걸 찾아준 분께 인사하고 싶었어요.”

“밥이 맛있으니까 인사로는 충분합니다.”

식사는 아주 맛있었다. 어떻게 범인들을 잡았는지 묻기는 했지만, 깊게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상미의 대접이 더 마음에 들었다.

선우현이 곁들여 나온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말했다.

“그런데 집안에 의문사한 사람이 있습니까?”

전상미의 표정이 굳었다.

“네?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그날 밤에 손은경에게 네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더니 화들짝 놀라더군요. 불을 지르기 전에 내가 막아서 거기서는 아무도 안 죽었는데도 말이죠.”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실인가요?”

선우현이 녹음된 음성을 들려주었다. 그는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 초소형 녹음기를 사용했다.

지금은 그중에서 손은경과 대화한 것 중 한 부분만 따로 떼어서 들려주었다.

[전호 그룹에서 독하게 하긴 했네. 그래서 너는 보물들을 훔치고 여기는 불을 지르려 한 거군.]

[나도 내 몫은 챙겨야지.]

선우현이 말했다.

“이때만 해도 손은경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습니다.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나한테 붙잡혔는데 기운이 날 리가 없지요. 그런데 말이죠.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화들짝 놀라더군요.”

[사람도 죽이고.]

[무, 무슨 소리야!]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니까 다시 목소리의 톤이 낮아졌습니다.”

[불을 지를 때 빈 전시실에 갇혀 있는 두 명도 죽이려고 했잖아. 목격자니까.]

[아니야. 그건….]

선우현이 거기까지만 들려준 후에 설명했다.

“이날은 불을 지르려던 놈을 내가 잡아서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이 대화를 했을 때는 손은경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말은 다 그냥 넘어가다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반응하더군요.”

“살인은 너무 큰 범죄니까 그 말에 놀란 거라면요?”

“손은경은 이미 남녀 도둑을 불에 태워 죽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여자가 겨우 그런 말 한마디에 놀라겠습니까?”

“아. 그러네요.”

“누군가 죽이긴 죽였을 텐데, 그리고 그걸 들켰다고 생각해서 놀랐을 텐데,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집안사람인가 싶어서.”

전상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저는 둘째 오빠가 당한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사망 이유가?”

“정확히 말하면 실종이에요. 배에서 술에 취해서 바다에 떨어졌는데 못 찾았거든요.”

“바다에 떨어진 시점은 한밤중이라 목격자는 없고요?”

“네.”

“그 배에 손은경이 있었으니 의심하는 걸 테고.”

“다른 손님들도 있었지만, 그렇죠.”

“술에 약을 타서 더 많이 취하게 한 후에 CCTV가 없는 위치에서 밀었겠네. 바다에 빠져 시체를 못 찾았으면 약물 검출도 불가능할 테고. 아주 계획적이야.”

“역시 그렇겠죠?”

“의심만 하고 확신을 못 한 건, 살인 동기가 없어서였을 테고요.”

“맞아요. 둘째 오빠가 살아있는 쪽이 손은경에게 훨씬 더 이익이거든요.”

“뭐, 증거는 없지만, 그때 모습은 분명히 누군가를 죽인 사람의 반응이었습니다. 체포됐으니까 잘 조사해 봐요.”

“당연히 그래야죠.”

전상미가 선우현을 보면서 말했다.

“손은경과 그 패거리들이 전시품들을 훔치려 하는 걸 정보기관에서 우연히 눈치챘다고 들었어요.”

“그렇죠.”

“하지만 그 후에 놈들을 추격해서 찾아내고 무찌르고 되찾은 건, 선우현 씨가 해결하셨다면서요.”

“쪼개졌어도 재벌의 정보력이 남아있는 건가? 많이 알고 계시네.”

그녀가 공손히 말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손은경의 짓이라는 확신을 주신 것도 고마워요.”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전상미가 손을 내밀었다.

“그 녹음파일만 주시면 제가 반드시 밝혀낼게요. 아. 사례도 하고 싶어요.”

선우현은 처음부터 대가를 받을 생각이었다.

“사례는 전시품 중 하나로 합시다.”

“네?”

“돈은 나도 좀 있어서.”

전상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어떤 전시품으로….”

“내가 보고 골라가는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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