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도둑
덕구파 이 부장과 부하들은 전부 어디가 부러지거나 칼에 맞았다. 그래도 죽은 놈은 없다.
원래 목표였던 전호 전시관 박 실장도 잡아서 한쪽에 묶어두었다.
정보기관 내근직 요원 강선정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당연히 경찰에 연락해야지요. 이놈들을 이대로 버려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
“아! 그렇죠. 일단 위에 보고부터 하고요.”
강선정이 직속상관인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을 냈다.
- 아, 왜!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 내일 아침에 나 출근하면 보고하라고 했잖아!
과장은 아까 전호 전시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받았다. 그는 지금 전화도 그 이야기인 줄 알았다.
- 어차피 우리 일도 아닌데 잠도 못 자게 괴롭혀야겠냐?
“그게 아니라, 보고를….”
- 전시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까 말했잖아!
“그 후에 또 일이 있었습니다.”
과장은 당황했다.
- 어? 또라니? 혹시 전시관에 결국 불이 났어? 아니면 시체라도 나왔어?
“아닙니다.”
- 그럼?
“박 실장이라는 놈이 유물을 훔쳐갔습니다.”
- 난 또 뭐라고.
“그래서 그놈을 추격했는데….”
- 미쳤어? 야. 강선정! 네가 왜 추격해? 경찰에 넘겨야지!
“그게….”
강선정이 선우현을 슬쩍 보았다.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 선우현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저는 그러자고 했는데 선우현 씨가 굳이 추격하겠다고 해서….”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라고 한 건 아닌데.”
- 어? 선우현? 역시 아까 전호 전시관에서 있었던 일은 그 사람이 해결한 거구나?
“예.”
- 그런데 왜 굳이 박 실장이란 놈까지 추격했는데?
“선우현 씨가 도난당한 유물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 대단한 모범시민 나셨네.
“지금 선우현 씨가 옆에 있습니다. 들릴 수도 있습니다.”
- 모범시민 표창이라도 추천하겠다는 말이었어.
“아, 네.”
-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선우현 씨가 빅데이터 분석으로 놈들의 도주 경로를 예측했습니다.”
- 어느 회사의 서버로 분석했는데?
“그냥 암산으로요.”
잠시 말이 멈췄다가 과장이 물었다.
- 강선정. 돌았냐? 아니면 머리라도 다쳤냐?
“말이 안 되는 거 압니다만, 실제로 범인을 찾아냈습니다.”
- 빅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직관력이 좋은 거겠지. 계속해.
“박 실장이 뒤에서 사주한 놈들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에 저희가 쳐들어가서….”
- 흥미진진한데? 그래서?
“다 잡았습니다.”
- 몇 놈이나?
“열 놈입니다.”
- 어…. 너 살아있지?
“저는 백업만 했습니다. 저도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느라 힘들긴 했습니다만.”
과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부장이라는 놈이 총을 난사했습니다.”
- 우리 쪽 피해는….
“없습니다. 선우현 씨가 전부 잡았습니다.”
- 대단하네.
“네. 대단합니다.”
- 그러면 말이야. 이제 뭔가 더 저지르지는 않을 거지?
“오늘은 끝났습니다.”
- 오늘은? 환장하겠네. 아니, 우리 일도 아닌 사건 때문에 왜 내가 스트레를 받지? 원인이 뭐야? 강선정. 너 때문이구나?
“아닙니다.”
- 아니긴. 너 때문 맞아.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과장이 다급히 말했다.
- 어? 아니야. 우리 직원. 왜 이 시간에 전화하긴. 상황이 생겨서…. 여자 목소리? 그거야 여자 직원이니까…. 아니, 날 어떻게 보고!
싸우는 소리가 좀 들렸다.
강선정이 침을 꼴깍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에 과장이 말했다.
- 야. 강선정. 너 나 집에서 쫓겨나게 하는 게 목적이냐?
“쫓겨나셨습니까?”
- 화장실이다!
전화가 뚝 끊어졌다.
강선정이 통화를 마친 후에 선우현에게 말했다.
“여기 문제는 제가 잘 해결할 테니까, 저한테 맡겨요.”
“그래도 되나 모르겠네.”
“에이. 부담 가지지 마세요.”
“부담은 안 가는데 믿음이 안 가서.”
“네?”
덕구파 간부 이 부장은 옆으로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선우현이 이 부장을 가리켰다.
“저놈은 덕구파의 뒤를 봐주는 빽이 자기를 빼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강선정 씨가 그 빽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까? 정치인이나 정부기관 고위층일 텐데.”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제가…. 어….”
강선정이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제가, 산업스파이 잡는 부서 소속이라서요.”
“그래서 모른다?”
“정치인 사찰을 우리가 하면 법을 많이 넘는 건데, 저는 그 정도로 맛이 가진 않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 맡기라더니?”
“복귀하면 제가 좀 알아볼게요.”
선우현이 미심쩍은 눈으로 강선정을 보며 물었다.
“주변에 대놓고 물어보러 다니는 바보짓은 안 하겠지요?”
“네? 그게 왜 문제가…. 저 정보기관 요원인데요?”
“상대가 정치인이라면, 정보기관에는 정치인한테 줄 댄 사람이 없을까? 비밀작전도 아니고 직원이 그냥 묻고 다니면, 누가 자기 뒤 캔다는 소식이 바로 넘어갈 겁니다.”
“아….”
“조용히 흔적 안 남게 알아봐요.”
“넵.”
강선정은 정보기관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이곳 상황을 통보하게 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나는 빠져 있을 테니까, 알아서 해결해요.”
그녀는 당황했다.
“네? 저 혼자요?”
“그러라고 데려온 거니까.”
◈ ◈ ◈
잠시 후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강선정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형사도 강선정이 있다는 말은 듣고 왔다.
형사가 물었다.
“그런데 이건 우리 일인데 왜 정보기관에서 처리했습니까?”
강선정이 둘러댔다.
“다른 사건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휘말렸어요. 신고할 틈이 없어서 일단 선조치 후에 연락한 거예요.”
“대단하십니다. 이걸 다 직접 하신 겁니까?”
“어…. 저도 같이 싸웠죠.”
다른 형사들이 외쳤다.
“여기 총이 있습니다.”
“이쪽에 총알 자국도 많습니다!”
“차가 아주 벌집이 됐네. 이거 폐차해야겠는데? 이거 누구 차인지 아십니까?”
강선정이 말했다.
“제 차요.”
“관용차겠지요?”
“아니요.”
강선정이 총알구멍이 잔뜩 난 차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
◈ ◈ ◈
선우현은 강선정이 경찰을 만나는 걸 보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이곳에 올 때는 강선정의 차를 타고 왔다. 그런데 그건 이제 폐차해야 한다. 돌아갈 때 탈 차가 없었다.
선우현이 그곳을 걸어서 벗어나며 말했다.
“나 지금 사서 고생하는 거냐?”
- 물론입니다. 목표물을 회수하지 못했잖습니까?
“외국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장물을 누가 챙긴 것도 아니야. 공식적으로 위치파악이 가능할 테니까, 기회 봐서 알맹이만 챙기면 돼.”
유물이 외국으로 유출됐거나 누군가의 금고로 들어갔으면, 그 동상을 다시는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동상이 경찰에 넘어갔다가 나오면, 누구 손에 있는지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 ◈ ◈
강선정이 정보기관에 있는 그녀의 사무실로 갔다.
아직 출근 시간이 한참 남은 새벽이었다.
과장이 먼저 나와서 짜증을 냈다.
“내가 이 새벽에 출근해야겠어?”
강선정은 당당했다.
“그래도 사건이 해결했습니다.”
“그 사건에 산업스파이나 기술유출이 걸려 있냐?”
“아닙니다.”
“그럼 그게 우리 사건이냐?”
“아닙니다.”
“그럼 내가 내일 아침에 나와서 보고받아도 충분했겠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나왔을까?”
강선정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사명감이 투철하셔서….”
과장이 소리를 질렀다.
“네가 사고를 너무 크게 쳐서! 나도 내일 아침에 보고하러 가야 하니까! 지금 보고서 쓰러 온 거잖아!”
“그러십니까? 제가 열심히 보조하겠습니다.”
“그럼 안 하려고 했냐? 일단 이 밤에 있었던 모든 일을 요약해서 가져와!”
“저기, 그런데….”
과장은 움찔했다.
“왜? 또 사고 친 거 있어?”
“친 건 아니고, 당한 겁니다.”
“응? 너 어디 다쳤냐?”
“범인이 쌍권총을 난사할 때….”
“헉! 맞았냐?”
“제 차가 맞았습니다.”
“응?”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 차가 총을 많이 맞았습니다. 폐차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회사에서 보상이….”
과장이 꼴 좋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국민의 혈세를 네 차 사는 데 쓰라고?”
“그러니까 작전 중 손실로 처리….”
“우리 작전 아니라니까?”
“저 그러면 차 없이 뚜벅이로 다녀야 하는데요?”
“내근직이 차가 왜 필요해? 대중교통 이용해. 버스나 지하철 좋잖아. 그러니까 닥치고 보고서나 써!”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말했다.
“근데 관측 모듈을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찾아야 했나? 어차피 망가진 건데.”
- 하룻밤 움직이시고 왜 불평이십니까?
선우현이 옆을 보았다. 엠투가 평상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놀고먹는 놈을 보니까 내가 일을 많이 했나 싶어서.”
- 별로 안 하셨습니다. 겨우 몇 시간 돌아다니고 자잘한 전투 조금 한 것뿐입니다.
“그런가?”
- 우리 셋 중에 저만 일합니다.
“어…. 엠투한테 빨리 일을 시켜야겠다.”
◈ ◈ ◈
강선정은 보고서에 넣을 자료가 필요해서 새벽에 경찰서에 방문했다.
담당 형사가 말했다.
“거기서 아주 전쟁을 하셨던데요.”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어머. 우리가 먼저 일으킨 거 아니에요. 그놈이 쌍권총을 쏠 줄은 몰랐거든요.”
“현장에 있던 차는 폐차해야 할 겁니다.”
“내 차….”
“현장에는 칼에 맞거나 어디 부러진 놈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안 죽었죠.”
“급소는 다 피했더군요.”
형사가 물었다.
“그 기관에서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찌르는 것도 가르칩니까?”
“어…. 기밀입니다.”
“어쨌든 칼을 맞은 놈이 많아서, 그냥 덮고 넘어가긴 어렵습니다.”
강선정이 항의했다.
“아니, 그놈이 쌍권총을 쐈다니까요? 그러면 겨우 칼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 칼도 다 그놈들 건데!”
“도대체 어떤 요원을 투입한 겁니까? 놈들 말로는 한 명한테 당했다던데.”
“기밀입니다.”
형사가 강선정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요원 아니죠?”
“신분증 보여드려요?”
“아니, 요원님 말고요. 그 사람 말입니다.”
강선정은 살짝 당황했다.
“네? 아니, 그게, 기밀이라서….”
“우리 쪽에도 소문이 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팀원 중에 그 소문을 들어본 친구가 있더군요. 소문대로면 그 사람은 이런 사건을 한두 번 처리한 게 아닌데 말이죠.”
“그….”
“성이 혹시 태양과 관계가 있습니까?”
“앗!”
형사가 피식 웃었다.
“무슨 정보기관 요원이 말만 하면 표정에 다 드러납니까?”
“제가 내근직이라서 그래요!”
“예?”
강선정이 급히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 측에서는 아무것도 인정 안 할 겁니다.”
“우리도 뭐 증거는 없고, 범인이 총을 난사하기도 했고, 놈들이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인 상황인 데다가.”
형사가 손가락을 꼽았다.
“칼도 다 그놈들 거고, 부러지거나 찔린 놈은 많아도 생명이 위험한 놈은 또 없으니까, 누가 그랬는지 깊게 파진 않을 겁니다. 단서가 없으면 어쩔 수 없지요.”
“어머. 형사님. 일 잘하신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충 넘긴 게 나중에 문제가 되면, 정보기관에서 해결하시죠. 우리는 범인들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말이죠.”
“나중에 문제 안 되게 미리 잘 덮어야죠. 아무도 신경 안 쓰게.”
◈ ◈ ◈
선우현이 말했다.
“그런데 전호 전시관에 하룻밤 보내러 들어간 두 사람 말이야. 걔들 좀 수상하더라.”
- 어떤 면에서요?
“손은경과 박 실장은 물건을 빼내려고 전시관의 경보장치를 껐어. 그런데 그 전까지는 경보장치가 켜져 있었을 거란 말이야.”
- 그렇겠죠.
“그러면 그 두 사람은 낮에 들어와서 밤까지 숨어 있었다는 건데, 보통은 아무리 특별한 곳에서 자고 싶어도 그 정도까지 하진 않잖아.”
- 그래서 빈 전시실에 가둬두셨군요.
“어.”
◈ ◈ ◈
형사가 강선정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전시관에 자러 온 게 아닙니다.”
“네? 그럼요?”
“도둑질하려고 낮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던 겁니다. 자러 들어갔다는 건 붙잡히고 나서 둘러댄 것뿐이지요.”
“세상에. 내 촉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유물 전문 절도단이군요.”
“촉이요?”
“어? 유물 절도단이 아닌가?”
“유물 전문은 아닌데, 전에도 그런 시설에 침입해 돈이 되는 걸 훔쳤습니다. 보안장비를 피해 밤새 숨어 있다가 아침에 관람객 사이에 섞여서 빠져나오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자백을 금방 했네요?”
“둘이 대판 싸우다가 서로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들통났습니다. 그런데 묘한 게….”
“뭔가 더 있나요?”
“누군가 그 전시관의 경보장치를 피하는 법을 알려줬다더군요.”
“누가요?”
“그건 모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