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덕구파
덕구파 간부 이 부장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쌍권총을 뽑았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수선아. 또 나만 총이 없다. 저놈은 두 개나 있는데.”
- 그런다 보다 하시라니까요.
“그래도 쌍권총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강선정은 권총을 보고 몸이 굳었다. 그러다 옆으로 뛰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악! 총이다! 피해요!”
그녀가 옆으로 뛰다가 방향을 틀어 정문 쪽으로 달렸다. 정문 철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담장 쪽으로 젖혀진 철문 뒤에는 공간이 있었다.
강선정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린 후에 포복으로 그 공간에 들어갔다.
그녀가 철문 뒤에서 외쳤다.
“난 괜찮아요! 방탄조끼 입었어요!”
“그런 말은 미리 하던가.”
선우현은 그녀가 피할 때까지 서 있었다.
이 부장이 쌍권총으로 선우현을 겨누며 말했다.
“너 이 새끼. 내가 총을 꺼내게 해? 넌 이제 뒈졌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안 쏘냐? 아무래도 한국에서 총을 쏘는 건 부담스럽지? 뒷감당이 어려우니까.”
“진짜 뒈지고 싶냐?”
“그게 진짜 총인지 의심이 가서 말이지. 전에도 가짜 총으로 허풍을 치는 놈이 있었거든.”
선우현이 앞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이 부장이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고 동작도 커서 어깨도 움직이고 팔도 흔들렸다.
선우현은 이 부장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옆으로 뛰었다. 앞으로 한 걸음 움직인 것 자체가 적의 사격을 유도하기 위한 페인트였다.
초보자가 권총을 한 손으로 쏘면 명중률은 뚝 떨어진다. 총탄이 아래로 날아가 땅바닥에 꽂혔다.
선우현은 옆으로 이동하자마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이프를 발로 걷어찼다. 칼이 화살처럼 날아가 이 부장의 가슴에 꽂혔다.
“큭.”
선우현은 이 한 방으로 이 부장을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칼날이 박히지 않았다. 조금 뚫고 들어가긴 했는데, 몸통에 제대로 박히지 않고 툭 떨어졌다. 찢어진 옷 사이로 다른 색의 재질이 보였다.
“방검복?”
- 예상하셨어야죠!
이 부장은 방검복을 입어서 칼에 관통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칼끝이 방검복을 살짝 뚫고 피부를 조금 찌르기는 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방검복이 없었으면 한 방에 당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이 부장은 부하 아홉 명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조금 전에 봤다. 그는 겁을 덜컥 먹고 선우현을 향해 연달아 방아쇠를 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한 손으로 하나씩 잡고 쏘는 권총은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대신에 총탄이 많이 날아왔다.
선우현이 좌우로 뛰면서 후퇴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다른 칼을 걷어찼다. 칼날이 이 부장의 얼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빗나갔지만 이 부장은 더 겁에 질렸다.
“죽어어!”
총탄이 더 날아왔다. 선우현이 뒤에 세워놓은 차를 뛰어넘어 그 뒤로 피했다.
총탄이 정문에 세워놓은 강선정의 승용차에 퍽퍽 박혔다. 유리가 박살 나고 차체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승용차의 얇은 철판만으로는 총탄을 막을 수 없었다.
엔진룸 뒤처럼 내부에 부품이나 내장재가 많은 곳에 맞았을 때는 결과가 달랐다. 그런 곳으로 날아온 권총탄은 엔진에 구멍은 내도 차체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이 부장이 방아쇠를 당기는 걸 멈췄다. 6연발 리볼버 한 정당 여섯 발의 실탄이 들어 있었다. 쌍권총이라 열두 발이 있었는데, 어느새 열 발을 발사했다.
이 부장은 뒤늦게 그걸 깨닫고 사격을 멈췄지만, 이미 남은 실탄은 두 발뿐이었다.
“제, 젠장.”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굳이 거기서 그렇게 피하셔야 했습니까?
“엄폐물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미처 못 피한 총탄을 차체가 막아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적의 탄약도 소모시켜야지.”
- 그러다 총에 맞으면 죽습니다.
“레드 포션이 있으니까 머리와 심장만 피하면 안 죽어.”
선우현이 구멍이 숭숭 난 차 뒤에서 말했다.
“야. 다 쐈냐?”
“이 새끼가! 아직 총알 많이 남았어!”
“너 이미 열 발 쐈다. 두 발 남았겠네.”
“너한테 한 발. 대문 뒤로 도망친 년한테 한 발. 충분해!”
“그럼 쏴 보던가.”
이 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부장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뒤쪽에 창고가 있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아. 창고에 탄약이 더 있나 보다.”
선우현이 차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걸 본 이 부장이 소리를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럴 줄 알았다!”
총알 한 발이 선우현을 향해 날아왔다. 그런데 조준에 문제가 있었다. 총탄이 한참 빗나가 차에 박혔다.
“너 뭐 하냐?”
“제, 젠장!”
이 부장이 권총 하나를 던져버리고 몸을 돌려 창고로 뛰었다.
선우현이 땅을 박찼다.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갑자기 이 부장이 뒤로 휙 돌아섰다.
“그럴 줄 알았다고!”
이 부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거리가 워낙 가까워 총탄이 선우현이 서 있던 곳으로 정확히 날아갔다.
하지만 빗나갔다. 선우현은 이미 그 위치에 없었다. 이 부장이 몸을 돌려 쏘는 순간 옆으로 이동했다.
“나도 네가 그럴 줄 알았다.”
선우현이 이 부장에게 다가갔다. 이 부장이 빈 권총을 버리고 허리에서 칼을 뽑았다.
“난 원래 칼잡이야!”
칼이 정확히 선우현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빠르고 매서운 공격이었지만, 선우현이 당해주기엔 너무 느렸다.
선우현이 이 부장의 손목을 도로 쳐낸 후에, 팔을 붙잡고 뚝 부러뜨렸다.
“끄아악!”
이 부장이 비명을 지르며 왼손으로 새로운 칼을 뽑았다. 칼날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선우현이 몸을 슬쩍 비틀어 칼을 피했다. 그런 후에 치켜든 적의 어깨에 주먹을 내질렀다.
해머로 치는 것 같은 충격이 이 부장의 왼쪽 어깨를 때렸다. 어깨가 바깥쪽으로 휙 돌아가며 칼이 옆으로 날아갔다.
어깨뼈가 부러진 이 부장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제 이 부장의 두 팔은 무력화됐다.
선우현이 이 부장의 다리를 걷어찼다. 이 부장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컥!”
선우현이 말했다.
“이런 놈들은 왜 맨날 총을 휘둘러? 위험하게.”
- 그러게 말입니다.
강선정이 포복 자세로 철문 뒤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끝났어요?”
“끝나긴 했는데, 조금 전에 뛰던 거 뭡니까?”
“네? 왜, 왜요?”
“그렇게 어설프게 뛰면 총 맞습니다.”
“안 맞았어요.”
“내가 미끼가 돼서 서 있었으니까 괜찮았던 겁니다.”
“아….”
“그리고 철문 뒤에서 포복은 왜 합니까?”
“훈련을 이렇게 받아서.”
“훈련점수가 형편없겠네.”
“앗! 어떻게 알았어요?”
“저놈이나 잡아요.”
“앗! 네!”
강선정이 벌떡 일어나 이 부장에게 달려갔다.
이 부장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한테 손대면 죽인….”
“이야압!”
강선정이 삼단봉으로 이 부장을 후려쳤다.
“컥. 내가….”
그녀는 힘이 약해서 한 방으로는 제압되지 않았다.
“얍! 얍!”
그녀는 이 부장을 계속 팼다. 그러다 부러진 어깨도 삼단봉으로 두들겼다.
“끄아악! 그, 그만….”
선우현은 한쪽에 엎어져 있는 박 실장에게 다가갔다.
“박 실장.”
박 실장은 총에 맞을까 무서워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고 엎드려 있었다.
“일어나지?”
엎어져 있던 박 실장이 고개를 살짝 들어 상황을 살폈다. 그는 이 부장이 얻어맞는 걸 보고 상체만 겨우 일으켜 주저앉았다.
“휴우.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너 살리러 온 거 아니다. 물건 찾으러 왔다.”
“역시 전호 그룹에서 오셨군요.”
선우현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오해한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선우현이 아직도 이 부장을 때리고 있는 강선정에게 말했다.
“계속 팰 겁니까?”
“이 새끼가 내 차에 구멍을 냈다고요! 여러 개나!”
“저 차는 폐차해야겠는데?”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네? 왜, 왜요? 그냥 구멍만 몇 개 난 건데!”
“안 좋은 곳에 맞았을 겁니다. 엔진에도 구멍이 났을 거고, 제어장치나 중요 골격도 손상됐을 겁니다.”
- 선장님이 그쪽으로 피하셨으니까요.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강선정이 삼단봉을 위로 들고 이 부장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덕구파 이 부장은 이제 몸을 움찔했다. 그런데 강선정은 삼단봉을 내리치진 못했다.
“왜 그럽니까?”
“이놈을 죽이면 잘려요. 잘리면 남은 할부금도 못 내요. 차도 없는데 할부금만 내게 생겼어요.”
선우현이 그쪽으로 걸어가서 이 부장을 내려다보았다. 이 부장은 너무 맞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야. 살아있냐?”
“끄으으. 씨발. 그냥 죽여.”
“죽긴 왜 죽냐? 잘 치료받고 감옥에 가야지.”
“그래. 저년을 안 보려면 차라리 빵에 가야겠다.”
선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강선정이 물었다.
“내 욕을 해서요?”
“징역을 사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네.”
“조폭이니까 그렇겠죠.”
선우현이 강선정의 차를 가리켰다.
“이놈은 방금 사람한테 총을 난사했습니다. 증거가 저렇게 확실히 남아있습니다. 한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는데 범인이 조폭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피해자가 없더라도, 잠깐 살다 나오는 게 아니라 교도소에 오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겠네요.”
“그런데도 금방 나올 거라고 생각하네?”
선우현이 이 부장에게 물었다.
“야. 덕구파 빽이 누구냐?”
“뭐?”
“믿는 게 있으니까 네 표정이 그렇게 여유가 있는 거잖아.”
이 부장은 당황했다.
“아, 아니다. 나는 그냥,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나아서 그런 거다.”
“지랄하고 있네.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됐다. 더 물어봤자 네가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으니까.”
선우현이 이 부장의 턱을 툭 걷어찼다. 이 부장은 고개가 돌아가며 기절했다.
선우현이 창고 쪽으로 걸어가다가 휙 돌아섰다.
“야. 박 실장. 나보다 빨리 뛸 수 있으면 도망쳐 보던가. 그런데 그러다 잡히면 너도 이놈들처럼 몇 군데 부러진다.”
박 실장은 몸을 슬그머니 일으키다가 멈칫했다.
“아, 아닙니다.”
선우현이 강선정에게 물었다.
“케이블 타이 남은 건?”
“많아요. 차에 결박용 밧줄도 있어요.”
“좀 묶어요. 저런 놈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
“넵!”
강선정이 차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에도 구멍이 나 있었다.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이 부장 저 새끼가 기절하기 전에 더 팰걸.”
그녀는 트렁크에서 밧줄을 꺼냈다.
박 실장의 손과 발은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박 실장은 반항하려다가, 선우현이 빤히 쳐다보는 걸 알고 포기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어디 부러진 곳이 없으니까 다행인 줄 알아.”
“그, 그런가요?”
선우현이 한마디 했다.
“우리가 안 왔으면 죽었겠지.”
“헉!”
박 실장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는 조금 전에 이 부장의 부하들 손에 죽을 뻔했다.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다니는 경험도 했다.
강선정은 겁먹은 박 실장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선우현은 창고에 들어갔다.
창고 안에는 유물을 안전하게 포장할 수 있는 완충재들이 쌓여 있었다. 방수 처리된 통이나 수출용 상품을 담는 나무 상자들도 있었다.
“왜 이것밖에 없지?”
강선정이 물었다.
“뭘 찾는데요?”
“이놈들이 미리 훔쳐둔 게 좀 있을 텐데, 그건 다 빼돌렸나 보네.”
“오늘 훔쳐간 건 아직 승합차에 있을 거예요.”
“차를 확인합시다.”
선우현이 승합차의 문을 열었다.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유물 여러 개가 뽁뽁이에 감긴 채로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선우현이 회수하러 온 동상도 있었다.
“여기 있다.”
-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러면 곤란한데.”
김수선이 물었다.
- 왜 그러십니까?
“그 동상이 다른 것들 밑에 깔려있어. 저걸 빼내려면 승합차에서 유물을 다 빼야 해.”
그런 짓을 하면 수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다.
김수선이 제안했다.
- 강선정을 기절시킨 후에 물건만 빼내십시오.
“그게 되겠냐.”
선우현이 입맛만 다셨다.
강선정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이거 다 정리할 사람들은 참 힘들겠다 싶어서. 강선정 씨가 정리할 겁니까?”
- 그럼 그때 하나 쓱 빼돌리십시오.
“아뇨. 이대로 경찰에 넘겨야죠. 이건 원래 우리 담당이 아니라서요. 저 산업스파이 전담부서에 있어요.”
“역시….”
- 역시 강선정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저 동상의 위치를 알 수 있잖아. 관측 모듈은 원래 우리 거니까 곧 회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