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덕구
선우현이 정문을 차로 틀어막자마자 운전석에서 내렸다.
창고 앞마당에 있던 이 부장과 부하들은 당황해서 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옷 속에 숨겨둔 무기를 손으로 잡은 놈들은 있지만, 우두머리인 이 부장의 지시가 없었다.
선우현이 창고 마당에 있는 놈들을 보며 말했다.
“야. 멀리도 왔네. 서울에서 처리했으면 가깝고 좋잖아. 왜 경기도까지 왔냐?”
이 부장은 선우현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눈치챘다. 그가 승합차를 운전한 부하를 노려보았다.
“꼬리를 밟혔구나.”
“그, 그럴 리가….”
이 부장이 선우현을 노려보며 부하들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손님 대접은 해야지.”
지금 이곳에는 이 부장의 부하 아홉 명이 있다. 그들이 이 부장의 좌우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철문에 맞은 놈도 허겁지겁 일어나 다른 놈들의 옆에 섰다.
선우현이 창고를 보며 말했다.
“훔친 물건을 포장하는 곳인가? 저기서 다른 상품 속에 물건을 숨기는 거냐?”
강선정은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런데 차가 정문을 가로로 막고 있어서 선우현 쪽으로 가기 어려웠다.
그녀가 정문 밖에서 물었다.
“여기 맞아요?”
김수선이 말했다.
- 거기 맞습니다. 제가 승합차를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우현은 승합차를 보고 미행한 게 아니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이곳을 찾아냈다고 뻥도 쳤다. 그러니까 확인하는 시늉은 해야 한다.
“확인해 봅시다.”
선우현이 앞을 가리켰다. 박 실장이 엎어져 있었다.
“네가 박 실장이냐?”
박 실장은 이 부장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그는 선우현의 정체가 뭐든 이 부장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 그렇습니다! 살려주십쇼!”
“어디서 일하는 박 실장이야?”
“예?”
“한국에 박 실장이 한두 명이야? 어디야?”
“저, 전호 전시관입니다!”
“맞네.
강선정이 감탄했다.
“와. 그냥 아무 도로나 찍어서 달리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정확히 찾아왔어. 머릿속에 컴퓨터라도 들었어요?”
선우현이 손가락 하나를 이마 옆쪽에 대며 말했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도출한 거라니까.”
“대박 멋있어요.”
- 선장님. 약을 너무 파십니다.
선우현이 피식 웃으며 박 실장에게 말했다.
“손 관장을 배신하고 오더니, 너도 당했나 보다?”
“살려주십쇼!”
“내 손에 안 죽는 걸 다행으로 알아.”
“히익!”
이 부장이 선우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쳐들어오는 방식이나 하는 소리를 보면 형사는 아닌 것 같은데…. 목적이 박 실장이냐?”
“박 실장이 가져간 물건을 도로 찾아야 해서 말이야.”
- 관측 모듈이 들어 있는 동상은 꼭 찾아야 합니다.
이 부장이 인상을 썼다.
“전호 그룹에서 왔나?”
“어. 잘 아네?”
선우현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적이 알아서 속아주는데 진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이 부장이 물었다.
“전호 그룹의 누가 보낸 걸까?”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봐?”
“왜 이렇게 여유가 있지? 겨우 둘이서 뭘 하겠다고?”
이 부장의 부하는 아홉이다. 이 부장까지 세면 열 명이다.
반면에 선우현은 강선정까지 쳐도 두 명뿐이다. 뒤통수를 맞고 엎어져 있는 박 실장은 어차피 전력에 넣을 수 없다.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믿는 게 있겠지?”
정보기관 내근직 요원 강선정은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선우현 씨는 외국 정보국이 침투시킨 산업스파이 조직도 혼자 쓸어버렸어. 그런 고수가 설마 여기서 당하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머릿수 차이가 너무 나서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인터넷에서 산 삼단봉을 만지작댔다.
‘난 격투 훈련점수가 낮은데 어쩌지?’
이 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뭔가 믿는 게 있겠지. 그러면 말이야. 좋게 넘어가자.”
“왜? 사람과 물건을 다 넘겨주게?”
“박 실장은 안 되지. 아는 게 너무 많아. 전호 그룹에 줄 수는 없지.”
“그럼 물건만 주게?”
“물건도 안 돼. 우리도 고생했는데 남는 게 있어야지.”
“박 실장도 안 되고 물건도 안 된다? 어쩌자는 거냐?”
“물건 몇 개 챙겨줄게. 그거 가지고 가서 윗선에 보고해라. 이 조건을 받아들여야 살아서 여기를 나간다.”
“물건은 내가 고를 수 있냐?”
“그건 아니지. 주는 대로 받아.”
“넌 그걸 협상이라고 하냐?”
“받는 게 좋을걸?”
“나랑 생각이 많이 다르네.”
이 부장이 히죽 웃었다.
“남들은 나를 이 부장이라고 부른다. 내가 왜 부장일까?”
“어쩐지 아랫것처럼 생겼더라.”
“이 새끼가…. 전호 그룹에서 왔다고 해서 무슨 소리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 눈이 돌아가면 넌 죽는다.”
“아이고. 무서워라.”
이 부장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나는 덕구파의 이 부장이다.”
“아아. 덕구파.”
이 부장이 다시 히죽 웃었다.
“역시 이름을 아는군.”
“이름은 몇 번 들었지. 어디 보자. 칼잡이 조성철이 덕구파였지?”
조성철은 선우현이 처음 지상에 내려와 들른 식당에서 때려잡은 놈이다. 그놈이 덕구파 출신이라는 건 나중에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고 알았다.
이 부장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조성철 그 등신 새끼는 독립하려고 설치고 다니다가 박살이 났지. 칼잡이는 뉴스에 이름이 올라가면 끝인 거야.”
“청부업자들도 덕구파가 습격하는 걸 경계하더라.”
이 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영역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니까. 아니면 하청이나 하라고 했는데 반항하는 놈들도 있고.”
“사채업자도 덕구파를 경계하던데.”
선우현이 쳐들어갔을 때 덕구파의 습격은 아닌지 의심한 놈들이 있었다.
“흐흐흐. 사채 새끼들. 돈이 있으면 나눠 써야지.”
“이야아. 그러니까 덕구파는 조직 중에서는 귀족이네?”
“잔챙이 조직들은 언제든지 밟아줄 수 있는 전국구 거대 기업이지.”
“밟힌 조직들이 꿈틀거릴 텐데?”
“그러면 더 재미있지. 밟는 맛이 더 나니까.”
이 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도 알겠구나. 엎드려서 구걸해라. 그러면 목숨은 적선할 테니까.”
선우현도 제안했다.
“야. 다들 무릎 꿇고 손들어. 그러면 사지 멀쩡한 채로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 그거 대단한 특혜야. 다른 놈들은 그런 기회가 없었거든.”
“차가 문을 틀어막고 있어서 너는 도망칠 곳도 없다. 멍청한 놈.”
“한 놈도 안 놓치려고 문을 틀어막은 거야.”
“전호 그룹에서 온 놈이라 기회를 줬는데, 역시 안 되겠다.”
이 부장이 선우현을 가리키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조져. 목숨만 살려서 끌고 와라.”
이 부장의 좌우에 있던 놈들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그 숫자가 아홉이나 됐다.
강선정이 깜짝 놀라 삼단봉을 꺼내며 말했다.
“제가 백업을 맡….”
선우현이 앞으로 툭 튀어나갔다. 적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일 앞에서 다가오던 놈의 몸통에 앞차기부터 꽂아넣었다.
맞은 놈은 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꾸에엑!”
다른 놈들은 당황했다. 선우현이 움직인 속도가 그들의 예상을 한참 넘어섰다. 너무 빨리 거리를 좁혀서 대응하지 못했다.
선우현이 앞차기한 다리로 돌려차기까지 날렸다. 그 옆에 있던 놈은 턱이 돌아가며 팽이처럼 돌다가 나자빠졌다.
두 놈이 나가떨어진 후에야 나머지 일곱 놈이 대응했다. 그들은 급히 칼을 뽑았다. 잭나이프부터 서바이벌 단검, 회칼까지 다양했다.
선우현이 뻗었던 다리를 내렸다.
제일 가까이 있던 놈이 선우현을 향해 서바이벌 단검을 내질렀다.
“죽어!”
느렸다. 선우현이 그 손을 잡아 뚝 꺾었다. 손목이 부러지며 칼이 손에서 빠져나왔다.
“으아악!”
선우현이 떨어지는 칼을 잡아채 반대 방향으로 휙 던졌다. 단검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각도는 낮았다.
반대편에서 달려들던 놈이 다리에 칼을 맞고 고꾸라졌다.
“으아악!”
선우현이 손목을 꺾은 놈의 턱을 손바닥으로 올려친 후에, 달려들다 앞으로 고꾸라진 놈도 발로 걷어찼다.
“케엑!”
턱을 맞은 놈은 기절해 그 자리에 무너졌다. 고꾸라진 놈은 옆으로 넘어갔다.
순식간에 넷이 당했다.
다섯이 그 모습을 보고 주춤거렸다. 포식자를 본 피식자의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선우현이 앞으로 나아갔다.
잭나이프를 든 놈이 소리를 지르며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으아아!”
선우현의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을 상대하기엔 칼이 너무 느렸다. 선우현이 적의 팔을 잡았다. 잡자마자 반대 방향으로 콱 꺾으며 강하게 밀었다.
적의 오른팔이 부러졌다. 오른손에 쥔 잭나이프의 칼날이 왼쪽 어깨에 박혔다.
“아아악!”
선우현이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 놈의 턱을 옆에서 갈겼다. 턱과 함께 목까지 돌아갔다.
“켁!”
그가 상대를 옆으로 툭 밀며 지나갔다. 그놈은 이미 기절한 상태라 옆으로 스르륵 넘어갔다.
이제 다섯이 당하고 넷이 남았다. 이 부장까지 포함해도 적의 전력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이 부장의 턱이 벌어졌다.
“어, 어떻게….”
그의 부하 넷은 공포에 질렸다. 선우현이 조금 전진했다. 넷은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선우현이 말했다.
“뭐냐? 쫄았냐?”
정문 밖 승용차 뒤에서 강선정이 외쳤다.
“역시! 믿고 있었다고요!”
김수선이 말했다.
- 안 믿었습니다. 손이 떨리는 거 제가 봤습니다. 절반을 쓸어버리고 나니까 믿나 봅니다.
강선정이 승용차 조수석으로 들어가 운전석으로 빠져나왔다. 그녀가 그곳에 서서 삼단봉을 앞으로 들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금방 끝나는데 굳이?”
“같이 싸워야 나중에 해명하기 좋아요.”
“왜 데려왔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요. 좋은 자세입니다.”
선우현과 요원 강선정이 같이 싸웠다고 하면, 이 싸움이 좀 폭력적으로 진행돼도 정보기관에 수습을 떠넘길 수 있다.
“그럼 잡아놓은 놈들을 한 대씩 더 패던가.”
“그럴까요?”
이 부장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게졌다.
“이 새끼가 지금 내 앞에서 감히 연애질이냐!”
“넌 우리 대화의 어느 포인트가 연애로 보이냐?”
이 부장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막아!”
“하, 하지만 부장님.”
“뒈지기 싫으면 막아!”
이 부장이 그렇게 소리치고 창고로 뛰어갔다.
남은 넷이 선우현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닿지도 않는 거리였다.
선우현이 앞으로 쓱 전진했다. 순식간에 남은 놈들과의 거리가 사라졌다.
“두목 혼자 튀었는데 너희들은 왜 버티고 있냐? 같이 튀어야지.”
오른쪽 놈이 황급히 회칼을 휘둘렀다.
선우현이 칼을 쥔 손을 덥석 잡아 확 끌어당겼다.
“억!”
그는 적의 칼을 왼쪽에서 접근하는 놈의 몸에 꽂았다. 적은 아직도 칼을 쥐고 있었다. 칼에 맞은 놈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회칼을 휘두른 놈은 화들짝 놀라 칼에서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늦었다. 선우현이 도망치려는 적의 목을 잡아 콱 비틀었다.
“켁!”
선우현이 적을 뒤로 던지듯이 밀었다.
강선정이 얼른 달려와 넘어진 놈을 삼단봉으로 때렸다.
“얍!”
칼에 맞고 쓰러진 놈도 마찬가지로 두들겼다.
남은 두 놈은 서바이벌 나이프와 잭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더 커졌다.
“아, 악마?”
“다 죽었어?”
선우현이 이 부장이 도망친 창고를 향해 전진했다.
두 놈이 겁에 질려 칼을 휘둘렀다. 그들이 서 있는 위치는 선우현의 양옆이었다. 거의 동시에 칼 두 자루가 옆에서 날아왔다.
선우현이 양손으로 적의 팔을 덥석 잡았다. 잡자마자 팔을 가운데로 강하게 당겼다. 양옆에 있던 두 놈은 중심을 잃고 가운데로 확 끌려갔다.
칼은 서로의 몸에 닿지 않았다. 대신에 얼굴이 정통으로 충돌했다. 둘 다 코뼈가 부러졌다.
“켁!”
선우현이 두 놈의 턱을 동시에 갈겼다. 두 놈 다 기절하며 뒤로 넘어갔다.
강선정이 말했다.
“우와. 아홉 놈이나 되는데 순식간에 전멸시켰어. 서 있는 놈이 없어요.”
“한 놈이 도망쳤으니까 전멸은 아닙니다.”
“진짜 왜 종합격투기 안 해요? 대회만 나가면 순식간에 챔피언이 될 거 같은데.”
“링에서 손이 미끄러지면 상대를 죽일까 봐.”
강선정은 당황했다.
“지, 진짜요?”
“농담입니다.”
“농담으로 안 들려요.”
갑자기 창고로 들어갔던 이 부장이 뛰어나왔다.
“조금만 더 막고 있…. 씨발! 벌써 전멸이냐!”
선우현이 말했다.
“더 나오는 놈이 없는 걸 보면, 이제 너 하나 남았나 보다?”
“하나? 나는 하나가 아니야!”
이 부장이 갑자기 쌍권총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