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추적
전호 전시관 손은경 관장이 악을 썼다.
“내가 왜 교도소에 가? 왜 나만 가! 전호 그룹 놈들은 깨끗한 줄 알아?”
선우현이 말했다.
“일단 너는 꼭 가라.”
“왜 나만!”
“넌 유물 절도에 방화, 살인이잖아.”
손은경이 반박했다.
“아무도 안 죽었어! 불도 안 났다고!”
“내가 막았으니까 안 죽었지. 나 없었으면 2층에 두 사람은 죽었다. 너도 죽었고.”
선우현이 손은경을 다른 전시실에 가두었다. 다른 두 사람과 같이 가둬두면 누구 하나 죽을 수도 있어서였다.
문을 닫기 전에 지하 기계실에서 가져온 케이블 타이로 손과 발을 확실히 묶었다.
그래도 기절은 시키지 않았다.
“경찰이 오면 열심히 변명해 봐라. 들은 체는 할지도 모르니까.”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있어.”
선우현과 강선정은 두 사람은 그곳을 나온 후에 전시실 문을 닫았다.
이곳에 침입한 남녀를 다른 빈 전시실에 가둬둘 수 있었던 건, 문을 밖에서 잠글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선정이 활짝 웃었다.
“대박! 이 정도 성과면 징계도 안 받고 칭찬도 듣겠어요. 전에 받은 징계도 잘하면 풀리겠는데요?”
“그런데 이런 사건은 정보기관에서 처리할 일은 아니지 않나?”
“여기저기 말해봐도,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았잖아요. 분명히 수상하다고 말했는데.”
“아무도라니. 난 믿었습니다.”
“그건 그래요. 왜 내 말을 믿었어요?”
“그냥?”
“와. 무성의한 대답.”
선우현이 말을 돌렸다.
“어쨌든 문화재 절도, 살인미수, 방화미수. 이런 건 경찰이 할 일이잖습니까?”
“물론 경찰에 넘겨야 하겠죠. 그래도 넘겨줄 때 우리 쪽에서 큰소리는 칠 수 있잖아요.”
“그런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의문을 꺼냈다.
- 그런데 선장님. 절도, 살인미수, 방화미수면 강선정이 예상한 것과 비슷한 결과인데요?
“음? 언제 그런 예상을 했는데?”
- 제가 오디오 파일을 찾겠습니다. 찾았습니다. 잠시만요.
선우현의 귀에 강선정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저도 잘…. 문화재도 있으니까 도난 아닐까요? 아니면 살인사건? 방화?]
[모른다는 소리네. 그렇게만 말했으면 위에서 까이는 게 당연하지.]
“아. 옥상에서 전시관 사진 보여주면서 도와달라고 했을 때 했던 대화구나.”
- 네. 그때 강선정이 했던 말대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꽤 정확합니다.
선우현이 강선정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짜 특수능력이 있나?”
강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 촉은 특수능력 수준이니까요.”
“쓸모가 있겠네.”
그녀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머!”
“왜 그럽니까?”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현장에 쓸모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현장에는 쓸모가 없고, 분석은 잘하겠군요.”
“쳇. 분석력은 지금도 인정받고 있거든요?”
강선정이 투덜대다 말고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현장 미션을 완벽하게 성공으로 마무리 지었으니까, 현장으로 발령 내달라고 해야지.”
“마무리라니?”
“네?”
“우리 일은 아직 일이 끝난 거 아닙니다. 박 실장이란 놈이 유물을 가지고 도망쳤잖습니까?”
“그놈은 경찰에 연락하면 즉시 지명수배될 거예요.”
“그러면 늦을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아!”
강선정이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아 말했다.
“박 실장을 빨리 못 잡으면 우리 문화재나 대여해온 유물이 외국으로 유출되겠군요! 아니면 국내에서 장물을 산 후에 금고 속에 숨겨두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선우현이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가 작게 말했다.
“관측 모듈이 들어 있는 동상이 사라지면 곤란해.”
- 그 동상 속 관측 모듈은 위치추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회수해야 합니다.
선우현이 강선정에게 말했다.
“지금 박 실장 잡으러 갑시다.”
“네. 꼭 성공하시길 빌게요.”
“가자니까?”
“저도요? 아! 제 촉이 도움이 많이 되겠군요!”
“그게 아니라 책임을 대신 질 사람이 필요해서.”
“네?”
***
박 실장에 차에서 말했다.
“열심히 일할수록 내 몫이 늘어?”
아까 손은경 관장이 그렇게 말했다.
“손 관장만 없으면 그 돈까지 다 내 건데, 내가 왜 나눠야 하지?”
운전하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실장님.”
“전시관에 불이 났을 텐데, 뉴스가 떴으려나.”
박 실장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스마트폰이 없었다.
“아. 일부러 집에 두고 왔지.”
전시관에 불이 나기 직전에 그의 스마트폰이 그곳에서 기지국과 연결되면, 접속 기록이 남는다. 그러면 경찰이 박 실장을 용의자로 지목할 게 뻔하다.
그래서 그는 스마트폰을 일부러 집에 두었다. 그의 스마트폰은 지금 집에서 기지국에 접속되어 있다.
“뭐, 벌써 뉴스가 뜨진 않았겠지. 검색은 도착한 후에 하자고.”
박 실장이 창밖을 보았다. 한강 근처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가 보였다.
“집 좋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저거나 하나 사야겠어. 주변에 다른 아파트가 다 내려다보이는 높은 층으로.”
***
선우현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강선정은 차를 가져왔다. 그래서 그녀의 차에 선우현이 탔다.
운전은 선우현이 했다.
강선정이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 지금 말한 거 진짜야?
“네. 과장님.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과장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 강선정 너 이…. 미쳤어?
“안 미쳤습니다.”
- 네가 왜 현장에 들어가! 너 그러다 죽어!
“안 죽었습니다.”
- 아직 안 죽은 거야! 앞으로도 안 죽으면 잘리겠지!
“제가 해결했습니다. 저 아니었으면 문화재 도난에, 화재, 살인까지 일어났을 겁니다.”
- 그러면 뭐, 잘리진 않겠네. 하여간 이 건은 경찰에 넘기고, 넌 내일 아침에 내가 출근하자마자 나한테 와서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강선정이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운전하는 선우현에게 말했다.
“지금은 선우현 씨 이름을 일부러 뺐어요.”
“잘했습니다.”
“그런데 내일 보고할 때는 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도와준 나를 물고 들어가겠다?”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말 안 해도 알 거라서요. 제가 선우현 씨와 연락하는 건 위에서도 알거든요. 상황 보면 그림이 딱 나오잖아요.”
“뭐, 알아도 상관없습니다. 책임만 강선정 씨가 지면 되니까.”
강선정이 밝은 얼굴로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요? 그러면 지금 다시 전화해서 같이 있다고 보고를….”
“내일 아침에 해요. 박 실장을 잡을 때까지는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강선정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놈을 오늘 밤에 잡을 수 있어요?”
“그러려고 지금 가는 겁니다만?”
“그놈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면 경찰 지원도 받고, 정보 지원도 좀 받아야 하지 않아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전시관에 잡아놓은 놈들이나 경찰에 넘겨요.”
“아, 네.”
강선정이 전화로 정보기관의 당직 근무자와 통화했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알려준 후에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근데요.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박 실장이 도망쳤을 만한 길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네? 어느 길로 갔는지를 어떻게 아세요?”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박 실장의 승합차가 강변북로를 통해 서울을 벗어났습니다. 제가 계속 추적하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강선정에게 말했다.
“주변 도로 상황과 이런 일의 패턴, 예술품이 처리될만한 장소, 범인의 성향과 의도를 분석해서, 박 실장의 도주 경로를 도출해 냈습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런 건 분석팀이 달라붙어서 충분한 시간 동안 온갖 자료를 해석해도 나올까 말까 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종의 빅데이터 분석 같은 겁니다.”
“빅데이터 분석을 사람이 어떻게 해요?”
“난 하니까 되던데?”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약을 너무 많이 파시는데요?
“보지도 않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차라리 혼란스럽게라도 해야지.”
- 그건 그렇습니다. 제가 지켜보고 있다고 알려줄 수는 없으니까요.
강선정은 선우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 데나 가보는 거죠? 그러다 놓쳐요. 그냥 경찰에 잡아달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두 시간 후까지 못 찾으면 그렇게 하던가요.”
***
경기도 한적한 곳에 창고가 있었다. 담장도 있고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어서 밤중에 뭔가 숨기기 좋았다.
박 실장이 승합차 조수석에서 내렸다.
창고 앞마당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부하들도 많았다.
남자가 오른손을 들며 물었다.
“여어. 박 실장. 일은 깔끔히 마무리했나?”
“당연하지. 거기는 지금쯤이면 통째로 불타고 있을 거야. 모든 증거가 불에 타서 사라지는 중이지.”
양복이 인상을 썼다.
“그런데 말이야. 전호 전시관에 불이 났다는 기사가 안 떠.”
“한밤중이라 그런가? 내일 뜨겠지.”
“거기 마무리하러 간 우리 애들도 연락이 안 돼.”
“음? 대포폰을 안 가져갔나?”
“가져갔지. 지금쯤이면 오는 중일 테고, 그러면 대포폰 켜고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 새끼들이 안 해.”
저쪽에서 휴대폰을 켜지 않으면 이쪽에서 먼저 연락할 방법은 없다.
“이 부장. 당신 부하들이 보고를 안 하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하긴. 내 부하들이지.”
이 부장이 박 실장과 같이 온 부하에게 말했다.
“일은 잘 마무리됐어?”
“예. 다른 건 다 예정대로 했습니다만.”
“만?”
“젊은 남녀가 그 전시관에서 하룻밤 자려고 침입해서, 붙잡았습니다.”
“그것들은 어떻게 했는데?”
“박 실장님 지시로 빈 전시관에 가둬놨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불이 나면 죽겠네? 아니, 지금쯤이면 다 죽었겠네?”
“예.”
“손은경 관장은?”
“같이 가뒀습니다.”
“셋이서 싸우다 불타서 죽었겠네?”
“예.”
이 부장이 손뼉을 짝 소리가 나게 쳤다.
“잘했네. 그러면 경찰은 그것들이 누구인지 조사하고 손은경과의 관계나 화재와의 연관성을 분석하겠지. 수사가 산으로 가겠어.”
박 실장이 자랑했다.
“그러면 우리는 완벽하게 빠지는 거지.”
“그래. 이제 손 관장은 없으니까, 마지막 남은 박 실장만 사라지면 아무도 우리를 의심하지 못하겠지.”
박 실장이 실실 웃었다.
“맞아. 새 신분으로 완벽하게 갈아타야지.”
이 부장이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아. 그거 말이야. 새 신분.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좀 어려워.”
박 실장이 인상을 썼다.
“뭐?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지?”
“실종된 노숙자의 신분증을 이용하면 새 신분이 가능은 한데, 박 실장이 사고라도 쳐서 지문을 조회당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거든.”
“그럼 나보고 외국으로 나가라는 건가? 젠장. 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살려고 했는데.”
이 부장이 씩 웃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박 실장도 반색했다.
“그렇지? 역시 전문가는 다르군. 어떻게 하면 되지?”
“박 실장은 가만히 있어도 돼.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 부장이 승합차를 운전한 부하에게 말했다.
“뭐해? 안 하고?”
박 실장이 물었다.
“뭘 한다는 거….”
부하가 갑자기 박 실장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컥!”
박 실장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끄으으….”
그가 엎어진 채로 고개를 겨우 들어 앞을 보았다. 이 부장의 구두가 보였다.
“왜, 왜….”
이 부장이 박 실장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손 관장이 없어지면 박 실장은 그 여자와 돈을 나눌 필요가 없지? 그럼 생각해봐. 박 실장도 없으면 나도 돈을 나눌 필요가 없잖아.”
“배, 배신을….”
“배신이라니.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어. 박 실장이 그 여자한테 한 것처럼. 그러니까 이건 배신이 아니지.”
박 실장은 이 부장의 목적을 깨닫고 공포에 질렸다.
“사, 살려….”
“박 실장이 살면 우리가 곤란해져. 그냥 사라져 줘야 내가 마음이 편해서 말이야.”
이 부장이 일어났다.
“흔적 안 남게 잘 처리해.”
부하가 허리를 숙였다.
“예!”
이 부장이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박 실장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사정했다.
“살려줘! 나 그냥 죽은 듯이 살게! 나 아는 것도 많아. 내가 아는 거 다 알려줄 테니까….”
“박 실장은 아는 게 많으니까 죽어야지. 살아있으면 개운하지가 않아서….”
갑자기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급가속하는 소리였다.
이 부장이 뒤로 휙 돌아섰다.
선우현이 강선정의 차를 몰고 그곳으로 돌진했다.
이 부장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막아!”
그 창고의 앞에는 담장과 철문이 있다. 그런데 그 철문은 조금 전에 승합차가 들어올 때 열어놓은 상태였다.
문 근처에 있던 놈이 황급히 철문을 밀었다. 하지만 차가 더 빨랐다.
선우현이 모는 차가 철문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타이어가 미끄러지고 차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뒤쪽 범퍼가 철문을 툭 쳤다.
범퍼가 부서지고 철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닫던 놈은 뒤로 나자빠졌다.
“켁!”
날카로운 비명도 들렸다.
강선정의 비명이었다.
“아악! 내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