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파이어
강선정이 박수를 치려고 두 손을 들었다.
“와. 멋있….”
선우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한테 감탄한 건 좋은데, 그렇다고 박수를 치면 소리는 어쩌려고?”
“앗. 그렇죠.”
두 사람은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있다. 박수는 소리가 너무 큰 데다가 이질적이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제 이놈들이 뭘 어떻게 훔치려는지 확인하러 갑시다.”
“고고.”
“조용히 말하라니까.”
“앗. 네.”
***
관장 손은경이 짜증을 냈다.
“밤새도록 작업할 거야? 새벽이 오기 전에, 다들 자는 시간에 떠나야 한단 말이야.”
박 실장이 말했다.
“관장님께서도 좀 도와주시면 작업 시간이 단축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놈들은 누가 감시하는데?”
전시관에 침입한 두 명은 빈 전시실에 갇혀 있었다. 강화유리문이 설치되어 내부가 훤히 보이는 전시실이었다.
건물 전체의 조명 전원을 차단한 상태라 실내는 어두웠다. 비상구 안내 표시등만 흐릿한 빛을 뿌렸다.
박 실장과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손전등을 사용해 작업했다.
박 실장이 말했다.
“저거 강화유리입니다. 사람 힘으로는 못 깹니다.”
“혹시 도구를 숨겨두거나 찾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난 힘이 약해서 방해만 될 거야.”
“저것들은 그냥 묶어놓으면 편할 텐데….”
손은경이 손전등의 방향을 유리문 안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묶여 있지 않았다. 그저 겁먹은 얼굴로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빛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도 보였다.
손은경이 말했다.
“묶었다가 몸에 묶은 자국이 남으면 어쩌려고?”
“설마 그런 게 남겠습니까?”
“혹시 모르잖아. 그리고 박 실장. 이럴 시간에 더 옮겨. 하나라도 더 옮겨야 박 실장 몫도 늘어나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까 참 힘이 납니다.”
***
선우현은 전시관을 걸어서 이동했다. 내부에는 전등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웠다. 그나마 켜져 있는 건 비상구 표시등뿐이었다.
그래도 야시경을 쓰고 있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강선정이 물었다.
“그런데 야시경은 어디서 났어요?”
“나도 인터넷으로 샀습니다.”
“보통은 그런 건 안 사지 않아요?”
“강선정 씨는 샀던데?”
“저는 지금처럼 현장에 출동할 때를 대비해서 샀죠.”
강선정이 입고 있는 침투복이나 쓰고 있는 야시경은 정보기관 보급품이 아니다. 그녀도 인터넷으로 샀다.
선우현이 말했다.
“난 야간 산행에 취미가 있어서.”
그는 최근에 한밤중에 북한산에 올라 강하 캡슐을 찾았다. 그날 산에서 사람까지 업고 내려온 후에,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야시경부터 주문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일단 사놓으니까 다 쓸모가 있잖습니까?
“다음에는 강하 캡슐을 낮에 정확한 위치에 도착하게 투하해라. 최소한 밤에 떨어뜨리지는 말아야지.”
- 그때는 자재가 부족해 강하 캡슐의 성능에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한반도에 떨어진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강선정이 말했다.
“산에 야시경을 쓰고 가다니…. 특이하시네요.”
“내근직 요원이 인터넷으로 전술 장비를 산 것도 특이한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저는 보급품이 안 나오니까요.”
“미승인 작전을 혼자 할 생각이 잔뜩 있었군.”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작전을 뛰니까 좋잖아요.”
“안 좋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강선정 씨는 현장이 안 맞아요.”
강선정이 말을 돌렸다.
“근데 왜 이쪽으로 가세요?”
“사진 속 그 동상을 다시 확인하러 갑니다.”
“아. 그거 보면 제가 왜 묘한 느낌이 들었는지 제대로 말해줄게요. 저번에는 일행이 있어서 설명하지 못했어요.”
“지금 말해요.”
“이게 그냥 설명하긴 어렵거든요. 그래도 직접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목적지인 1층 전시실에 도착했다.
“여기네.”
선우현이 지난번에 동상을 확인한 위치로 갔다.
동상이 보였다.
“이제 설명해 봐요.”
“웅….”
“왜 그럽니까?”
강선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느낌이 이게 아닌데….”
“그놈의 촉은 오다가다 하나…. 음?”
선우현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야시경을 벗었다. 그런 후에 강선정에게 말했다.
“겉옷 벗어요.”
“네? 여기서 옷을요? 아니, 이런 장소에서는 좀….”
선우현도 점퍼를 벗은 후에 동상이 전시된 곳 앞을 가렸다.
“불빛 안 나가게 가려요.”
“아. 그거구나. 네.”
선우현이 손전등을 약하게 켜서 동상에 빛을 비추었다.
“이걸 봐도 느낌이 안 온다고 했지요?”
“네. 저번에는 묘한 느낌이 왔는데, 그게 안 와요. 촉이 무뎌졌나?”
“촉 그거 진짜네. 이거 가짜입니다.”
강선정은 깜짝 놀랐다.
“네? 가짜를 전시했다고요? 혹시 도난을 방지하려고 모조품을 전시한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지난번에는 진짜가 있었으니까.”
“그럼….”
“그냥 훔쳐가는 게 아니라, 모조품으로 교체한 겁니다.”
선우현이 주변을 보았다.
“바꿔친 게 이거 하나가 아니겠네.”
“헉. 이미 늦은 거예요?”
“오늘 밤에 안 왔으면 늦을뻔했지요.”
“어쩐지 빨리 조사해야 할 것 같은 촉이 오더라니!”
김수선이 말했다.
- 수상한 차량이 들어온 걸 제가 확인하고 연락한 겁니다. 제 덕분입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그러라고 시킨 건 나잖아.”
강선정이 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렸어요.”
선우현이 말했다.
“오늘 당장 이 전시관에서 만나자고 한 건 나라고요.”
“아. 그쵸. 선우현 씨도 촉이 좋네요.”
***
박 실장이 보고했다.
“짐은 모두 차에 실었습니다.”
손은경이 아쉬워했다.
“좋은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아쉽다. 저것도. 저것도.”
그녀가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가자.”
“가기 전에 저것들은 해결해야죠.”
박 실장이 유리문 안쪽을 가리켰다. 그 텅 빈 전시관에는 남녀 두 명이 갇혀 있었다.
“저대로 두고 가는 거 아니었어?”
“그러다 도망치면요?”
“하긴.”
박 실장이 문을 열었다.
오늘 박 실장의 지시를 받아 유물을 옮긴 사람들이 있다. 그중 두 명이 박 실장의 뒤에 서 있었다.
손은경이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너희들 말이야. 자고 싶으면 호텔을 가야지 왜 여기 온 거야?”
여자가 다급히 말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누가 죽인대?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러면 살려줄게.”
박 실장은 아직 밖에 있었다. 손은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박 실장. 거기서 뭐 해? 내 뒤에 서서….”
갇혀 있던 남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손은경을 붙잡았다.
“이년! 잡았다!”
“뭐, 뭐야! 놔!”
남자가 손은경의 뒤에서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잡았어!”
여자도 소리를 질렀다.
“당장 우리를 보내줘! 안 그러면 이 여자 목을 부러뜨려서 죽여버릴 거야!”
손은경이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박 실장! 어떻게 좀 해봐!”
박 실장이 밖에서 버튼을 눌렀다. 강화유리문이 닫혔다.
손은경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빈 전시실의 문이 닫혔다. 그녀는 이 전시관에 침입한 남녀와 그곳에 갇혔다.
“박 실장?”
남자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문 열어 이 새끼야! 아니면 이 여자는 죽어!
“박 실장! 문 열어!”
박 실장이 밖에서 실실 웃으며 말했다.
“관장님. 내가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관장님까지 없으면 의심을 받겠더라고.”
“뭐,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전호 그룹이 자꾸 괴롭히니까, 관장님이 화가 나서 뭔가 저지르려고 저 둘을 끌어들였는데, 그러다 사고나 실수로 다 죽었다? 그림이 좋잖아? 전호 그룹에서는 그냥 이 땅에 빌딩이나 지을걸?”
손은경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너 이 새끼! 날 배신한 거냐!”
“처음부터 이러려던 거니까 배신이 아니지. 관장님이 속은 거지.”
“박 실장!”
“혹시 알아? 죽은 남편 따라 자살했다고 열녀비라도 세워줄지.”
손은경이 몸을 비틀었다.
“이거 놔! 봤잖아! 저 새끼가 배신했다고!”
남자는 당황했지만 손은경의 목을 놓지는 않았다.
“우, 우리를 속이려고 연극하는 거지? 그렇지?”
“야 이 새끼야! 놔! 내가 저 새끼 죽여버릴 거야!”
박 실장이 유리문 밖에서 그가 데려온 두 명에게 말했다.
“마무리는?”
그들이 대답했다.
“마무리만 하면 됩니다.”
“저희가 이런 일에 전문가입니다. 맡겨두고 가십시오. 실장님.”
“확실히 처리하고 와. 나는 운송팀과 함께 먼저 출발할 테니까.”
남자 둘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인사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실장님.”
박 실장이 손은경을 보고 씩 웃어준 후에 그곳을 떠났다.
***
손은경은 기운이 빠져서 주저앉았다. 붙잡고 있던 남자의 팔도 풀렸다.
남자가 화를 냈다.
“이거 무슨 소리야? 자살이라니?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손은경이 유리문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놈들이 우리를 죽일 거야.”
남자가 주먹을 들고 강화유리문 밖을 노려보았다.
“들어오면 나도 그냥은 안 당해! 아까는 저놈들이 너무 많았는데, 두 놈 정도는 우리 셋이서 싸우면 되잖아!”
밖에 있던 남자들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유리문 안쪽을 힐끗 본 후에 자리를 떠났다.
여자가 얼른 말했다.
“유리문 깨고 도망치자.”
“여긴 도구가 아무것도 없어. 딱딱한 건 다 빼앗겼다고.”
“뭐라도 해봐!”
남자가 발로 유리문을 걷어찼다. 소용없었다.
손은경이 말했다.
“여기는 원래 비싼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야. 모든 문은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사람 힘으로는 안 부서져.”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놈들 어디 간 거야? 뭐하러 간 거야!”
***
선우현이 강선정과 함께 움직이다가 소리를 들었다.
“2층에서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데?”
강선정이 말했다.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맞습니다. 놈들의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면 저런 소리는 나지 말아야 하니까.”
선우현이 뛰었다. 강선정은 깜짝 놀라 따라갔다.
“갑자기 어디 가요!”
선우현이 2층 빈 전시관 앞에 도착했다. 강화유리문 안쪽 공간에 세 사람이 있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손은경 관장?”
같이 갇혀 있던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꺄악! 놈들이 돌아왔어!”
남자도 화들짝 놀랐다.
“으악!”
선우현이 야시경을 벗고 손전등을 켰다.
“이 상황은 뭐지?”
손은경이 물었다.
“누구….”
“지나가던 사람.”
강선정도 옆에서 말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 투.”
손은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번 일을 꾸민 패거리 중에 여자는 손은정밖에 없다. 박 실장이 데려온 사람들이 온 거라면 여자 목소리가 날 리 없다.
손은경이 다급히 외쳤다.
“나 좀 구해줘요! 빨리!”
“거기 있는 다른 두 사람은 놔두고?”
같이 갇혀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짜 질리는 여자다. 이 상황에서 혼자 구해달라니.”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억울하게 붙잡혔어요. 저 여자가 나쁜 여자예요.”
손은경이 화를 냈다.
“너희들이 내 전시관에 몰래 침입했잖아!”
선우현이 유리문을 손으로 톡톡 두드려보았다.
“이거 꽤 두꺼운 강화유리네?”
손은경이 얼른 말했다.
“밖에 잘 찾아보면 깰 수 있는 도구가 있을 거예요. 서둘러야 해요. 빨리요.”
“왜 서둘러야 합니까?”
“그건….”
선우현이 강화유리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유를 말 안 하면 나도 도와줄 수 없는데. 나한테 말하기 싫으면, 거기 밤새 갇혀 있다가 아침에 경찰이 오면 이야기하든가.”
“그러면 늦어!”
“왜 늦지?”
손은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놈들이 전시관에 불을 지를 거야.”
“뭐?”
“전기 누전으로 불이 나게 할 거라고. 이 전시관은 다 타버릴 거야.”
“방화 장비는?”
“스프링클러의 물을 잠가놨어. 불이 나도 저절로 꺼지지는 않아. 그러니까 빨리 열어줘!”
같이 갇혀 있는 남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으아아! 문 좀 열어줘!”
“살려줘요!”
선우현이 혀를 찼다.
“느낌이 안 좋더라니. 불을 지를 위치가 어디지?”
갇혀 있던 여자가 무슨 소리인지 깨닫고 얼른 말했다.
“방금 두 놈이 뭔가 마무리한다면서 갔어요! 그놈들이 불을 지를 거예요!”
“정확한 위치를 말해.”
남자가 손은경의 멱살을 잡았다.
“말해! 우리까지 다 죽이지 마! 혼자 죽어!”
손은경이 손을 뻗었다.
“저쪽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지하에 기계실이 있어. 거기서….”
선우현이 강선정에게 말했다.
“여기 있다가 불이 나면 밖으로 도망쳐요.”
“같이 가요! 백업을 맡을게요!”
선우현이 계단 방향으로 뛰었다.
“알아서 따라오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