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53화 (153/281)

153. 전시관 II

선우현이 말했다.

“그 전시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 모르면.”

그런데도 정보기관 내근직 요원 강선정이 선우현을 찾아왔다.

“왜 굳이 나한테 온 겁니까? 내가 도움이 될지 어떻게 알고? 내가 뭐든 다 해결해주는 만물상 같은 사람은 아닌데.”

강선정이 대답했다.

“그야 선우현 씨는 고대 악기나 음악, 예술품의 최고 전문가니까요.”

김수선이 발표한 각 지역 고대 민요들은 선우현을 통해 제작됐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다. 독일의 뮐러 교수도 알 정도라서 딱히 비밀은 아니다.

“그리스 정부에서 선우현 씨한테 협조를 요청할 정도잖아요.”

“그건 원래는 나한테 요청한 건 아닌데.”

해결한 건 선우현이다.

“나 말고도 고고학이나 고대 예술품 전문가는 많습니다만?”

“물론 있기는 있죠. 대학교의 교수님이나, 저명한 학자 같은 분. 근데요. 이게 비공식 작전이라 지원팀이 없거든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선우현 씨는 무술 고수니까, 조사하다 위험한 일이 생겨도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잖아요. 다른 전문가들은 그게 안 돼요.”

“진짜 양심 없네.”

“선우현 씨는 위험을 즐기시는 분이니까….”

“안 즐깁니다. 나는 안전하고 편안한 거 좋아합니다.”

선우현이 옥상에 놓아둔 물건들을 가리켰다.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도 있고, 파라솔도 있었다. 평상에는 베개 대신 쓰는 쿠션이 굴러다녔다.

심지어 TV도 옥상에 빼놓았다. 그래야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같이 볼 수 있다.

“난 옥상에 누워서 뒹굴면서 TV 보는 거 좋아합니다.”

강선정이 옥상을 둘러보며 말했다.

“진짜 부럽게 사신…. 앗. 이게 아니지. 이번엔 진짜 촉이 확실히 왔거든요? 진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돼요?”

“음….”

선우현이 동상이 찍혀 있는 사진을 보았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관측 모듈이 맞는지 확인은 하셔야 합니다.

관측 모듈도 확인해야 하지만 박재곤 의원이나 스래곤에 관한 정보도 얻어야 한다.

“이걸 도와주면 내가 원하는 일 하나 하는 겁니다. 비밀리에.”

“당연하죠! 살짝 법을 위반하는 일이라도 할게요!”

선우현이 사진을 흔들며 말했다.

“일단 전시관에 잠입해서 조사합시다. 강선정 씨가 청소부로 들어가면 되겠네. 외주 업체 쓸 거 같은데 거길 통해서.”

“저는 출근해야 해서 위장 근무는 좀….”

“난 뭐 노나?”

- 선장님은 노십니다.

강선정이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선우현 씨가 밤에 몰래 잠입해서 책상도 뒤지고 컴퓨터도 뒤지고….”

“공무원이 불법을 저지르라 하네?”

“웅…. 그럼 어쩌죠?”

선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손님으로 들어갑시다. 손님은 의심 안 받을 테니까. 같이 갈 겁니까?”

“그럼요. 데이트로 위장하고 들어가 보죠.”

“혼자 가야겠다.”

***

선우현은 강선정과 전호 전시관을 찾았다. 전시관은 서울에 있었다.

“건물이 생각보다 크네.”

전호 전시관은 2층 건물이었다. 높이는 낮은데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었다.

“땅도 넓고.”

넓은 잔디밭도 딸려 있었다.

“여기 되게 있어 보이죠?”

“경영권 싸움을 하다가 그룹이 쪼개졌는데도 이 좋은 걸 며느리에게 줬다? 그렇게 통 큰 곳인 줄 몰랐는데.”

두 사람은 전시관에 들어갔다. 입장료는 유료였다.

“뭐합니까? 입장권 사야지.”

“제가요? 건물주가 계신데요?”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사요. 아니면 건물 외부만 구경하다 가든가.”

“아, 네. 제가 사야죠.”

두 사람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선우현이 전시된 유물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재미있는 게 많네.”

“역시 고대 문화 전문가시라 재미가 있으신가 보다.”

그는 그렇게 돌아다니다 전시관 한쪽에서 박서윤과 마주쳤다.

“선우현 씨?”

“서윤 씨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요. 지금 근무시간일 텐데.”

“외근 나왔어요. 그런데….”

그녀가 강선정을 보며 선우현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요즘 옥상에 자주 오신다는 분?”

“누가 그러던가요?”

“나리가요.”

“하긴. 첩자질 할 사람은 신나리밖에 없죠.”

박서윤이 강선정을 바로 알아본 이유는 짐작이 갔다.

“외모도 설명했나 보네. 얼마나 많은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나리가 아주 상상의 나래를 폈겠지.”

“저는 안 믿었는데요. 혹시 진짜로….”

“옥상에 딱 두 번 왔습니다. 그것도 일 때문에. 철저한 업무 관계입니다.”

박서윤이 방긋 웃었다.

“아. 그러시구나.”

이번에는 강선정이 물었다.

“누구신지….”

‘미모가 일반인 수준이 아닌데? 선우현 씨는 작곡가도 하니까, 혹시 가수나 연예인?’

선우현이 대답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분입니다.”

강선정도 신나리를 본 적이 있다. 그녀가 커피 심부름을 했을 때였다.

“아아. 그때 그 학생이 이르겠다고 했던 그….”

선우현이 말을 끊었다.

“그 이야기는 됐고, 서윤 씨는 여기 왜 왔습니까? 비서실에서 외근을 나온 걸 보면…. 여기에 박 회장님이 찾는 거라도 있습니까?”

“우리 길성에도 전시관이 있잖아요.”

“알죠.”

얼마 전에 거기서 고 감독과 남미연이 영화를 찍었다.

“회장님께서 다른 전시관에 좋은 것이 있는지 비교해 보라고 지시하셨어요.”

“그걸 굳이 비서실에?”

“회장님 지시니까 제가 움직인 거예요. 길성 전시관 직원과 같이 왔어요.”

“직원은 어디 갔습니까?”

“이곳 담당자를 만나러 갔어요. 저는 선우현 씨가 계시길래 남은 거예요.”

“그렇군요. 여기 재미있는 게 많으니까 볼만 할 겁니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다른 유실 장비의 흔적도 있습니까?

“그건 아닌데, 예전에 위성에서 본 거랑 비슷한 것들이 좀 있다.”

박서윤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떤 게 재미있는데요?”

선우현이 한쪽에 있는 지팡이를 가리켰다.

“천오백 년쯤 전에 아프리카에서 족장이 전쟁 때 이런 지팡이를 썼습니다. 비슷한 게 여기 있네요.”

“어머. 옛날 아프리카를 아세요?”

“조금 압니다.”

전시물 앞에는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제사장이 썼다고 적혀 있는데요?”

“잘못 알려진 거죠. 이건 족장용입니다.”

“그럼 저건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기다란 막대 앞에 달아 쓰는 철제 도구였다. 형태는 칼처럼 보이기도 하고 곡괭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도에서 2천 년쯤 전에 쓰던 겁니다.”

박서윤이 그 옆에 적혀 있는 설명문을 보았다.

“전쟁 무기였다고 쓰여 있네요.”

“밭 가는 데 썼습니다.”

“네? 여기 설명이랑 다른데요?”

“그 설명이 틀렸습니다.”

전시관 관장 손은경이 길성 전시관 직원과 다가오다가 그 대화를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요. 그걸 밭을 가는 데 썼다고요?”

“그렇죠.”

“틀렸어요. 당시에 그 지역에 이런 좋은 철은 귀했어요. 당연히 무기로 써야 했죠. 밭은 다른 싼 도구로 갈아도 되니까요.”

“그런데도 밭을 가는 데 썼지요. 이 농기구의 주인은 재력을 자랑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관종 기질이 심했습니다.”

- 누구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그 인간은 좀 또라이기는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안 믿으면 할 수 없고요.”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요. 지금 그 이론의 근거는 뭐죠? 증거가 있나요?”

- 내가 직접 봤는데.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됩니다. 진실은 나만 알아야겠네.”

- 저도 압니다.

박서윤이 옆에서 말했다.

“저는 믿어요.”

손은경 관장이 박서윤을 힐끗 본 후에, 다시 선우현을 보며 생각했다.

‘예쁜 여자 앞이라고 허풍을 좀 떨었나 본데, 누군지 알아야 창피를 줄지 그냥 넘어갈지 결정할 텐데. 옷을 보면 대충 대해도 될 것 같은데….’

길성 전시관의 직원은 영화 촬영 때 선우현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선우현이 박길성 회장의 손님이란 말을 들었다.

그녀가 선우현에게 인사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 기억하시는지요?”

“네. 저번 촬영 때 만났지요.”

직원의 그 공손한 태도를 보고 손은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분은 누구신지….”

직원도 잘 모른다.

“아. 그게요.”

그녀가 박서윤을 보았다.

박서윤은 다시 선우현을 보았다.

‘놀러 오신 건가? 아니면 혹시 이번에도….’

만약 선우현이 단순히 전시관에 놀러 온 거라면, 지금 강선정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아니야. 철저한 업무 관계라고 했잖아.’

선우현은 박서윤을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 채연서도 선우현이 구해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선우현은 누가 위험해졌는지, 또 어디 갇혀 있는지 정말 빠르게 알아내서 구출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내는지는 모른다. 그녀 나름대로 추측한 적은 있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한 거겠지.’

그녀가 결론을 내렸다.

‘데이트는 아니야. 정보를 수집하러 온 거야. 그럼 내가 숨겨줘야 해.’

그녀가 선우현의 눈을 보았다.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서윤이 손은경 관장에게 말했다.

“저희 길성의 거래처 분이십니다. 길성 전시관 일정에 협조가 필요해서, 비서실에서 따로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럼 저 두 분이 같은 곳에서 오신 건가요?”

“네.”

강선정은 내근직이지만 그래도 정보기관 요원이다. 그녀는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손은경 관장은 가볍게 생각했다.

‘유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길성 비서실의 예쁜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떠들었겠지. 신경 안 써도 되는 사람들이구나.’

그녀가 말했다.

“그럼 제가 안내하죠. 이쪽으로. 아. 두 분도 같이 가시겠어요?”

선우현이 대답했다.

“그러려고 온 거라서요.”

강선정은 그냥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손은경 관장이 앞장섰다. 길성 전시관 직원이 따라갔다. 박서윤도 같이 움직였다.

선우현은 마치 일행인 것처럼 뒤에서 걸었다.

“이제 진짜를 볼 수 있겠네.”

강선정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저 예쁜 여자분이 왜 갑자기 그렇게 둘러댄 거죠?”

“유능하거든요.”

“네?”

“우리가 왜 왔는지 눈치챈 겁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저분도 촉이 좋은 특수능력이 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김수선이 말했다.

- 박서윤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군요.

“그러게. 나랑 잘 통하네.”

손은경은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전시물 몇 개를 소개했다.

“이건 조선 시대에 누군가가 쓴 춘향전 필사본이에요. 그냥 필사만 한 게 아니라 옮겨쓰면서 야한 이야기를 추가했는데, 적나라한 묘사가 많아요.”

손은경은 다른 전시물은 설명을 생략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선우현이 동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찾았다.”

- 실제로 보니까 어떠십니까?

“진짜로 이 동상 안에 관측 모듈 부품이 들어 있나 본데? 모양이 그냥 본 따 만든 것치고는 크기와 비율까지 너무 딱 맞아.”

- 당장 훔치십시오.

“원래 우리 건데 훔치는 건 아니지. 잃어버린 걸 되찾는 거지.”

-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걸 빼내면 난리 난다. 여기는 CCTV가 많아.”

- 기회를 노리셔야겠군요.

손은경 관장이 물었다.

“그 동상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재미있게 생겼군요.”

“폐허가 된 신전에서 발견된 유물이에요. 마녀의 주술이나 신화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돼요.”

“주술이나 신화라…. 그렇긴 하죠.”

- 주술사가 주워가서 쓸 때도 있었지요.

“이게 작동하고 있을 때는 보기에 그럴듯했잖아.

- 소리가 좀 나고, 가끔 움직이기도 했고, 빛도 비추었으니까요. 사용법을 좀 안다면 물을 찾을 때도 도움이 되고, 유독가스 경고도 가능했습니다.

“천 년 전에 그 정도면 주술적인 느낌이 팍팍 나지.”

- 그러게요.

“그럼 이걸 어떻게 빼내냐가 문제인데.”

손은경이 물었다.

“그 동상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흔히 보기 어려운 형태라 구경했습니다. 딱히 관심은 없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동상 앞을 떠났다.

손은경은 전시관의 중요 유물 몇 개를 빠르게 보여준 후에 말했다.

“어떠신가요?”

길성 전시관 직원이 감탄했다.

“좋은 예술품이 많네요. 유물도 멋진 게 여럿 있고요.”

“대부분 대여해서 전시하는 거랍니다.”

“우리 길성 전시관에서도 대여하고 싶어요.”

그 직원에게 그걸 지금 결정할 권한은 없다. 대신에 위에 보고해 추진할 수는 있다.

손은경이 거절했다.

“저희도 대여한 거라서 그럴 수는 없어요.”

길성 전시관 직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여해준 곳에 저희가 연락해서 재대여를 추진할게요. 대신에 저희가 전시 중인 작품들을 이곳에 빌려드리면 서로 좋잖아요.”

손은경이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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