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50화 (150/281)

150. 소문

선우현이 태양 백화점의 유소율 이사를 만났다.

유소율은 대놓고 반가워했다.

“어머어. 선우현 씨. 우리 백화점에 자주 좀 오세요.”

“오늘따라 더 반가워하는 기분인데요?”

“어머. 아니에요. 항상 반가워하고 있어요.”

“소문이라도 들으셨나?”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R 크림 공장이 어제 하루 외부인 출입을 차단했다는 소문을 들었고요. 패키지 디자인이 업그레이드돼서 포장 자재 천 세트분을 새로 준비했다는 소문도 들었죠.”

“귀가 밝군요.”

“저는 괜찮다고 하는데도, 아는 분들이 자꾸 그런 소식을 전해주면서 R 크림이 다시 입고되냐고 물어보셔서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뒷조사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야 뭐.”

“그쵸? 이건 그냥 소문이 들린 거거든요.”

선우현이 물었다.

“그러면 다른 소문도 자주 듣습니까?”

“워낙 다양한 분야의 고객을 만나니까 듣는 소문이 많아요. 혹시 뭐 궁금한 거라도?”

“스래곤은…. 에이. 아니다. 항공 우주 분야 회사에서 백화점에 들어갈 물건을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녀가 손뼉을 쳤다.

“어머! 스래곤이 궁금하셨구나!”

“압니까?”

“거기 사장님의 사모님과 따님이 이번에 저희 VIP 고객이 됐거든요. R 크림은 VIP 고객에게 배정된 물량이 있으니까 그거 바라고 온 분 많아요.”

“뭐 들은 거 있습니까?”

“R 크림은 한 사람당 하나만 판다고 했더니, 스래곤 사장님의 따님이 그랬다더라고요. 더 팔라고요. 안 그러면 이 백화점 확 사버리는 수가 있다고.”

“스래곤이 큰 회사긴 하지만 태양 백화점을 집어삼킬 정도는 아닐 텐데?”

태양 백화점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 다른 거 다 제쳐놓고 땅값만 생각해도 스래곤의 사장이 열 좀 받는다고 살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를 구멍가게로 아나.”

“아니면 앞으로 집에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올 거라고 기대하거나.”

“얼마를 가져오든 우리 백화점은 안 팔아요.”

“재미있군요.”

“어머. 제가 유머가 있다는 말은 좀 들었어요.”

“설마….”

“네?”

“아닙니다. 그럼 혹시…. 아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왜요? 뭐든 물어만 보세요. 제가 VIP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많이 알아요.”

“정치인과 관련된 건데, 부담 안 되겠습니까?”

유소율이 방실방실 웃었다.

“우리끼리만 알면 되잖아요. 선우현 씨가 활토와 R 크림의 주인이라는 거, 제가 비밀 딱 지키고 있듯이요.”

“음…. 박재곤에 관한 소문이 궁금한데.”

웃고 있던 유소율이 대놓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 박재곤 의원.”

“뭐 있습니까?”

“안 좋은 소문이 많죠.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성격 나쁘고.”

“그런데도 네 번이나 당선됐던데.”

“돈으로 언론에 기름칠도 잘하고, 뇌물을 받을 때 다른 정치인을 끼워주는 것도 잘하거든요. 박재곤이 날아가면 같이 해먹은 정치인들도 위험해지는데, 당선되면 계속 같이 해먹을 수 있으니까 잘 밀어준대요.”

“소문으로 들은 거면 증거는 없을 테고요.”

“당연히 없죠. 그리고 증거가 있어도 소용없어요. 어지간한 건 공개해도 금방 묻힐 걸요? 박재곤이 여기저기에 기름칠을 얼마나 했는데요.”

“태양 백화점도 뭘 좀 줬습니까?”

유소율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뇨. 제가 대학생일 때 파티에서 박재곤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제 엉…. 아니, 제 몸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데, 진짜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습을 우리 할머니가 봤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선을 딱 그었죠.”

“다행이네요.”

“네? 그 상황이요?”

“선 딱 그은 게요.”

“그거야 당연하죠. 그런데….”

유소율이 걱정했다.

“선우현 씨가 무술 고수인 건 알아요. 하지만 상대는 4선 국회의원이에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몇 대 때려준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그러면 큰일 나요.”

“당연히 안 그럴 겁니다. 내가 그렇게 대책 없이 저지를 리가.”

“그쵸? 휴우. 다행이다.”

“그냥 소문만 좀 들려줘 봐요. 박재곤이 어떤 인간인지부터.”

“쌍놈이요.”

“어우. 욕 잘하네.”

“어머. 저 원래 사람한테는 욕 안 해요.”

유소율이 박재곤에 관한 소문을 생각나는 대로 알려주었다.

좋은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

엠투는 태양 백화점 광고를 촬영했다.

출연배우는 남미연과 엠투 둘뿐이다. 감독은 최지석이 맡았다.

선우현이 최지석에게 물었다.

“벌써 이렇게 일해도 되겠습니까?”

최지석이 활짝 웃었다.

“괜찮습니다. 납치될 때는 무서웠는데, 그놈들이 박살 나는 꼴을 워낙 통쾌하게 봤더니 다 괜찮아졌습니다.”

“하긴, 최 감독님은 권총을 든 두목의 팔을 잡아 비튼 분이니까.”

“하하하. 제가 간 크기 하나는 어디 가서 안 꿇립니다.”

최지석이 주변을 슬쩍 둘러본 후에 말했다.

“그때 선우현 씨가 저를 구해줬다는 거, 경찰서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지 모른다고 그냥 딱 잡아뗐습니다.”

“믿던가요?”

“그럼요. 저도 연기를 좀 하거든요. 얼굴이 조금 부족해서 배우를 못한 것뿐입니다.”

“얼굴이 잘생기지 않아도 배우 하는 분들도 있던데요.”

“그분들은 연기가 쩌는데, 제가 그 정도는 아니라서…. 하, 하하.”

너튜브용 백화점 광고 영상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영상은 물론이고 같이 찍는 포스터에도 남미연이 R 크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갔다.

유소율 이사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R 크림은 2차 판매 때 백화점 홈페이지가 터질 정도로 신청이 폭주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대놓고 소문을 내려고요.”

“좋은 생각이군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려면 다음에도 R 크림을 우리 백화점에….”

“우린 비밀을 서로 잘 지켜주는 사이인데, 다음에도 태양에 맡겨야죠.”

유소율이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남미연과 엠투는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NG가 아예 없었다. 감독인 최지석의 능력도 출중했다.

덕분에 너튜브용 광고 촬영은 그날 중으로 끝났다.

촬영이 끝난 후에 선우현이 남미연과 최지석을 옥탑방 옥상으로 초대했다.

“같이 저녁이나 먹읍시다.”

남미연이 물었다.

“요리는 선우현 씨가 직접 만들어요?”

“내 요리는 안 먹는 게 좋을 겁니다. 평이 워낙 나빠서.”

“그럼 출장 요리?”

“치킨 배달 시키려고요.”

“아. 치킨.”

“안 좋아합니까?”

“치킨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

그들은 옥탑방 건물 입구에서 박서윤과 마주쳤다. 박서윤은 퇴근하던 중이었다.

엠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박서윤이 손을 내밀었다.

“엠투 안녕?”

남미연이 선우현에게 물었다.

“저 아가씨가 왜 여기 있어요?”

“이 건물 입주민이니까요.”

“아. 그래서 아는 사이였구나.”

남미연이 엠투를 쓰다듬는 박서윤에게 말했다.

“진짜 얼굴이 딱 배우 하기 좋은 상이네. 연기를 조금만 배우면 내가 배역은 꽂아줄 수 있는데.”

“관심이 없어서요.”

“아쉽다.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나한테 연락해요.”

“네. 고맙습니다.”

남미연이 박서윤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언제 본 적 있죠?”

“전에 길성 전시관에서요.”

“아니, 그 전에요. 얼굴이 묘하게 익숙하단 말이야.”

“아니요. 없어요.”

***

옥상에서 저녁을 겸해 치킨을 먹으며 선우현이 말했다.

“최 감독님에게 투자금을 맡겨 돈을 세탁하려던 놈은 박재곤입니다.”

최지석이 치킨 다리를 뜯으며 물었다.

“박재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4선 국회의원입니다.”

“케켁!”

최지석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 돈이 정치인의 비자금이었습니까? 누님. 이거 정말 놀랍…. 왜 안 놀라세요?”

남미연이 말했다.

“난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투자금 돌려주라고 했던 거야.”

“와…. 나만 몰랐어.”

선우현이 계속 설명했다.

“처음 받은 투자금 십억. 그건 박재곤의 돈인데, 나중에 받기로 한 사십억은 스래곤이라는 회사에서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뇌물이죠.”

“와…. 나 진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를 팔아먹을 뻔했네요.”

남미연이 물었다.

“스래곤은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그건 어떻게 알아냈어요?”

“최 감독님이 구출된 후에 박재곤이 누굴 제일 먼저 만나는지 보려고 미행했죠.”

“아니, 위험하게 왜…. 최 감독도 납치한 놈들인데, 그러다 들키면 선우현 씨도 끌려갈 수 있잖아요.”

최지석이 말했다.

“누님. 선우현 씨는 무술 고수니까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저를 구해줄 때도 얼마나 대단했는데요.”

“응? 최 감독을 구해주다니? 경찰이 구해준 거 아니었어?”

“선우현 씨가 구해줬다고 전화로 말했는데요?”

“그거야 경찰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말인 줄 알았지. 아니, 잠깐만.”

그녀가 손가락을 접으며 계산해보았다.

“이건 말이 안 돼. 그때 나랑 있었는데 어떻게 경기도에 있는 널 구해주고 다시 나랑 또 만나? 그리고 박재곤 의원은 또 언제 미행하고?”

선우현이 설명했다.

“오토바이 타고 열심히 달리면 하룻밤 안에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그걸 다….”

“두 사람은 관계자니까 말해준 겁니다. 혹시 아는 거 있으면 말해주고, 평소에도 조심해요.”

최지석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정치인과 스래곤은 근처에도 안 가겠습니다.”

***

태양 백화점의 광고 영상이 공개됐다. 그 영상은 TV로는 나가지 않고 너튜브와 인터넷에만 풀렸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 톱스타 남미연을 써서 겨우 너튜브 광고만 찍은 거 실화냐?

- 대기업도 하기 힘든 일을 태양 백화점이 하네요.

- 저 백화점에 돈이 많은가? 난 왜 못 들어봤지?

- 서울에 본점 하나만 있는 단독 백화점입니다. 본점 건물이 꽤 크긴 한데, 전체 규모는 전국에 지점이 있는 백화점 그룹이 더 크겠죠.

- 그런 곳에서 어떻게 남미연을 써서 TV도 아니고 너튜브 광고만 찍냐고요.

- 그런 곳에서 심지어 R 크림 독점 판매까지 합니다.

- R 크림이 뭔데요?

- 너튜브 광고 중간에 나온 화장품이요. 태양 백화점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 그것도 처음 보는데 듣보잡 브랜드인가?

- 연예인들도 없어서 못 구하는 초명품 화장품입니다만?

태양 백화점의 너튜브 광고는 남미연이 출연한 덕분에 금방 유명해졌다. 엠투에 대한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 저 개는 뮤직비디오에도 남미연하고 나오던데 또 나오네요.

- 뮤비에서는 우연인가 했는데, 광고까지 보니까 확실합니다. 저 개는 연기를 할 줄 알아요.

- 개가 얼마나 똑똑해야 저런 연기가 되지?

- 남미연의 개인가요?

- 남미연이 저 개랑 같이 다니는 사진이 찍힌 거 있어요. 아마 그렇겠죠.

- 엄청 귀한 품종이겠다.

- 귀한 품종은 무슨. 누가 봐도 시골 똥개처럼 생겼는데.

- 개를 모르는 분이군요. 저 개는 똥개가 아닙니다. 저 품종은 유럽 귀족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 미술작품에 저렇게 생긴 개가 종종 나옵니다.

- 다시 보니까 개가 귀티가 흐르네요.

***

태양 백화점에서 R 크림 3차 신청을 온라인으로 받았다.

이미 너튜브 광고가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러면서 R 크림에 관해 모르던 사람들도 알게 됐다.

온라인 신청 기간은 사흘로 넉넉히 잡았다. 구매 대상자는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 방식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유소율이 회의 시간에 보고했다.

“그런데도 첫날 응모 페이지를 열었을 때는, 신청하는 사람이 몰려 홈페이지가 느려졌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번 이벤트도 대성공이군요.”

“대단합니다.”

태양 백화점 사장인 그녀의 할머니가 물었다.

“VIP 쪽은?”

R 크림은 일부 물량을 백화점 VIP 고객에게 판매한다.

“그쪽으로 할당한 물량보다 VIP 고객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VVIP을 우선으로 하고, VIP는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판매할 예정입니다.”

“VIP 고객이 늘어난 건 좋지만, 그러면 반발이 있을 텐데?”

“다른 혜택을 제공해서 반발을 줄이겠습니다. 순번제로 운영하면 고객 이탈률은 낮으리라 예상됩니다.”

“유소율 이사가 책임지고 잘 진행해.”

“예. 사장님.”

보고는 계속됐다. 태양 백화점의 인지도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회원가입을 하는 고객의 수는 얼마나 늘었는지가 도표로 표시됐다. 회의 분위기는 좋았다.

그 회의가 끝난 후에 유소율이 사장실에서 할머니를 따로 만났다.

할머니가 걱정했다.

“R 크림 이벤트가 3차에서 끝나면, 이 좋은 효과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어.”

“제가 선우현 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다음번에도 R 크림을 우리에게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 사람에게 잘해라. 우리 백화점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까.”

유소율이 입을 삐죽였다.

“잘하고 싶은데, 잘할 기회를 안 줘요.”

***

태양 백화점의 인지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서울에 본점 하나만 있는 백화점이라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름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이제는 그 사람들에게 태양 백화점의 이름이 꽤 알려졌다.

남미연의 너튜브 광고에 다른 상품과 함께 R 크림이 나왔다. 그 크림은 연예인도 못 구해서 안달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걸 태양 백화점에서 독점 공급했다. 연예인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소문과 여러 효과가 모여서 시너지가 발생했다. 태양 백화점에 명품 백화점 이미지가 생겼다.

맞은편에 있는 청명 백화점은 이제 태양 백화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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