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스래곤
김수선이 말했다.
- 위성궤도를 날아다니는 우주 쓰레기를 수집하다가, 스래곤의 로고가 찍혀 있는 부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나 위성 관련 부품을 이것저것 만드는 곳이니까.”
김수선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다.
- 쓰읍. 선장님. 기회입니다. 저 회사를 빼앗으십시오. 그러면 여기로 하다못해 로켓이라도 쏠 수 있을 겁니다.
“멀쩡한 회사를 어떻게 빼앗는데?”
- 방법은 선장님이 찾아내셔야죠.
“나 놀리는구나.”
- 아쉬워서 그럽니다.
선우현이 건물을 보며 말했다.
“스래곤이 항공 우주 관련 기업이긴 한데, 그렇다고 우주왕복선을 가진 건 아니야. 로켓발사대도 없어. 저 회사를 빼앗아도 우주왕복선은 못 보낸다.”
- 그래도 뭐라도 할 수는 있겠죠.
“지금은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조금 전에 국회의원 박재곤과 만난 사람이 스래곤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스래곤에서 박재곤한테 뭘 청탁한 걸까? 백억짜리 뇌물까지 줘 가면서.”
- 선장님. 제가 다시 계산해봤는데, 저 회사에서 주는 뇌물은 사십억입니다. 십억은 박재곤 쪽 돈이고, 배급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박재곤입니다.
“어쨌든 뇌물 사십억을 써서 백억짜리를 만드는 건 맞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스래곤은 그 돈을 주고 뭘 원하는 걸까?”
선우현이 검색이라도 해보려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최종훈이 저녁때 보낸 톡이 보였다.
오늘은 저녁때부터 최지석 감독을 구하러 다녀서 톡을 따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최 사장님이 공장에 R 크림 생산 일정 잡아놨단다.”
- 레드 포션과 급속성장촉진제도 준비됐습니다. 지금 보낼 겁니다. 그런데 선장님. 자원이 정말 빠듯합니다.
선우현이 스래곤 회사 빌딩을 보았다.
“자원 문제는 당장은 방법이 없다.”
이미 자정이 넘었다. 그가 최종훈에게 톡을 남겼다.
- 내일 잠깐 보시죠.
***
이튿날 선우현이 JHC 테크 연구소를 들렀다. 연구소에는 그에게 배당된 사무실이 있다.
최종훈이 그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선우현의 책상 위에 놓인 버드형 드론을 보며 말했다.
“이거 진짜 잘 만들었는데 그냥 이대로 두실 겁니까?”
“비행 소프트웨어를 아직 안 만들어서요.”
최종훈은 선우현이 만든 건 뭐든 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소프트웨어는 우리 회사 연구소에 맡겨볼까요?”
“봐서요.”
최종훈이 자리에 앉았다.
“공장은 내일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그가 주변을 슬쩍 본 후에 말했다.
“레드 포션으로 만드는 핵심 첨가제는….”
“내일까지는 준비될 겁니다.”
최종훈은 레드 포션을 하나 사고 싶다. 그것만 있으면 사고가 또 나도 안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R 크림에 쓸 것도 이렇게 띄엄띄엄 나오는데, 나 혼자 쓰게 하나 팔아달라고 하기가 참 어렵다.’
최종훈이 입맛만 쩝쩝 다시며 말했다.
“레드 포션이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레드 포션은 지원위성에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다. 지금은 모두 변질된 상태지만 에너지와 자원만 충분하면 복원할 수 있다.
그런데 지원위성은 에너지와 자원이 항상 부족하다.
선우현이 본론을 꺼냈다.
“스래곤이라고 아십니까?”
“알지요. 항공 우주 산업에서 꽤 알려진 기업이잖습니까?”
“만약 그 회사에서 정치권에 뇌물을 쓴다면, 뭘 원하는 거겠습니까?”
최종훈이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번에도 사건인가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아! 혹시 어젯밤 신인 영화감독 납치사건? 그건 역시 선우현 씨가 해결한 거군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습니까?”
“동생이 아침에 기사 링크를 보내줬습니다.”
“민영 씨는 시간이 많나 보네요.”
“활력 토마토를 매일 먹고 푹 자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더군요.”
“기사가 작게 났을 텐데.”
“오늘은 또 무슨 사건을 해결하셨나 궁금해서 매일 찾아본다더군요.”
“그거 다 어쩌다 생긴 일인데 말이죠.”
“하, 하하. 그런가요?”
선우현이 설명했다.
“최지석 감독이 어젯밤에 납치된 사건에 스래곤 사람이 개입했습니다.”
최종훈도 진지해졌다.
“스래곤에서 누가….”
“그건 모릅니다. 승용차가 스래곤 건물로 들어가는 것만 확인했으니까요.”
“정치권은 그럼 누가….”
“박재곤.”
최종훈이 입을 벌렸다.
“허….”
“아십니까?”
“정치권에 영향력이 상당해서, 박재곤의 빽을 쓰면 약발이 잘 듣는단 말을 들었습니다.”
“스래곤에서 박재곤에게 뇌물을 써서 해결할만한 일이 뭔지 혹시 아십니까?”
“뇌물은 얼마나….”
“스래곤에서 주는 돈은 사십억. 박재곤에게 떨어지는 건 최대 백억쯤.”
“헉!”
선우현이 남미연에게 들은 돈세탁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최종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위험한 냄새가 나는군요.”
“최 사장님은 그냥 아는 것만 말해주시고 빠지시죠.”
최종훈이 손을 흔들었다.
“선우현 씨의 일인데 그럴 수야 있나요. 물론 상대가 정치인이라 회사 차원에서 움직이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와드려야죠.”
“그럼 짐작 가는 게 있습니까?”
최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나는 게 몇 개 있습니다. 정부의 인공위성 사업 입찰은 기본일 거고, 위성 로켓 발사 프로젝트도 필요할 겁니다. 항공기 부품 사업도 있군요.”
“목적이 뭐든 사십억을 뇌물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 돈을 쓰고도 많이 남을 만큼 큰 걸 노렸을 겁니다.”
“제가 좀 알아보겠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조사하면 정보가 샐 수 있으니까, 김 비서와 알아보겠습니다.”
“찬혁 씨가 고생할 거면, 활토를 좀 챙겨줘야겠군요.”
“그걸 먹으면 김 비서는 활력이 넘칠 테니가 밤새도록 알아보라고 하겠습니다.”
***
선우현은 그날 밤에 북한산에 올라갔다.
“수선아. 레드 포션은 원래 경기도의 인적이 드문 산에 떨어뜨리는 거 아니었냐?”
- 자원이 부족해 강하 캡슐을 부실하게 만들었더니 오차가 커졌습니다. 그래도 한반도에 떨어진 게 어디입니까?
“그렇다고 북한산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냐?”
- 길이 없는 숲에 떨어졌으니까 아무도 못 봤을 겁니다.
“대신에 내가 한밤중에 산을 타야 하잖아.”
- 등산객이 많은 산입니다. 낮이 되면 누가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어서 오르시죠.
선우현은 어두운 산을 손전등 하나로 헤치고 올라갔다. 강하 캡슐을 회수하려면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음에는 강하 캡슐을 좀 제대로 만들어. 그래야 내가 이 고생을 안 하지.”
- 자원이 부족하다니까요.
“우주 쓰레기 수집한 거 없어?”
- 최근에 작은 거 하나 챙겼는데 선체 유지보수에 썼습니다. 선체가 쪼개지는 건 막아야죠.
선우현이 길도 없는 산속을 좀 더 헤매다가 드디어 강하 캡슐을 발견했다.
“찾았다.”
강하 캡슐을 열어보았다. 내부에 레드 포션과 식물 급속성장촉진제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잘 도착했네.”
강하 캡슐은 가방에 넣었다.
“이것도 재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 지상은 자원이 넘쳐나는데 굳이?
“소재가 좋잖아.”
선우현이 손전등을 켜고 산에서 내려왔다. 어두운 숲에는 길이 없었다.
“여기는 뭐, 사람 하나 실종되면 찾지도 못하겠다.”
“살….”
“응? 뭐라고?”
-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작은 소리가 들렸다. 선우현이 귀를 기울였다.
“살려….”
“저쪽에 누가 있나 보다.”
- 귀신 아닐까요?
“그럴 리가 있냐?”
선우현이 숲을 헤치고 옆으로 이동했다.
숲 속에 젊은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저 좀… 살려….”
“살려주겠지, 설마 버리고 갈까요.”
“물….”
“산이라 물 구할 데가 없었겠네.”
선우현이 생수병을 꺼냈다.
“내가 마시던 건데.”
그녀는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입에 물맛이 느껴지자마자 두 손으로 물병을 잡고 꿀꺽꿀꺽 마셨다.
“춥겠다.”
선우현이 점퍼도 벗어주었다.
“이름이 뭡니까?”
“성소연….”
“소연 씨. 이제 내가 업고 내려갈 겁니다. 밑에 가면 구급차 불러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성소연은 선우현의 등에 업혔다. 등에서 가슴으로 온기가 전해졌다.
선우현이 산에서 내려가며 말을 걸었다.
“왜 거기에 있었습니까?”
성소연은 짧은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괜찮아졌다. 큰 목소리는 못 내지만 업혀 있는 상태라 작은 소리로 말해도 잘 들렸다.
“산에서 길을 잃었어요.”
“실종 신고는요?”
“오늘은 휴가라서 아무도 몰라요.”
“무슨 일 해요?”
- 선장님. 호구조사는 왜 하시는지?
“기절하면 안 좋아. 말이라도 시켜야지.”
그녀가 대답했다.
“전호에 다녀요.”
“전호? 거기가 어디죠?”
“대기업…이었죠. 지금은 계열사들이 분리됐지만.”
선우현이 그녀에게 이것저것 말을 시키며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산에서 조난객을 구했는데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는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이미 119구급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현이 성소연을 구급대원들에게 넘긴 후에 말했다.
“병원에 가면 금방 회복할 겁니다. 잘 가요.”
성소연이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저기.”
“사례는 무슨. 됐습니다.”
“그게 아니라 명함 드리려고….”
“아니구나.”
선우현이 명함을 받았다. 구급차의 문이 닫히기 전에 성소연이 말했다.
“꼭 전화 주세요.”
“가서 치료 잘 받아요. 건강해져야 출근하지요.”
구급차가 떠난 후에 김수선이 물었다.
- 연락하실 건가요?
“뭘 굳이.”
- 선장님의 점퍼를 그냥 입고 갔습니다.
“아차.”
***
이튿날 낮에는 R 크림 생산 공장을 방문했다. 그곳은 고객이 주문한 대로 로션을 만들어준다.
요즘은 그 공장에서 R 크림을 만든다는 게 알려져서 주문이 늘어났다.
사장이 선우현을 만나 활짝 웃었다.
“덕분에 요즘 일감이 끊기지 않습니다. 하하하.”
“급하게 부탁드린 건 아닐까 싶군요.”
“다른 일정 다 미뤄서라도 R 크림 일정은 맞춰드려야죠. 기계도 싹 다 청소해 놨습니다.”
사장이 한 마디 더 보탰다.
“저번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가 없게 작업이 끝나면 기계는 바로 청소하겠습니다.”
“뭘 굳이.”
- 그러게요. 산업스파이가 또 침입하면 또 잡으면 되는데요.
사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당연히 철저히 해야지요.”
선우현이 레드 포션을 재료에 섞었다. 공장 기계가 다시 돌아갔다.
완제품이 나오기 전에 최종훈이 비서인 김찬혁과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
최종훈이 말했다.
“태양 백화점에서 좋아하겠군요.”
선우현이 물었다.
“스래곤에 대해서 뭔가 나왔습니까?”
비서 김찬혁이 퀭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선우현이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피곤해 보이는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일해요.”
“활토군요!”
김찬혁이 가방을 열었다. 활토 네 개와 R 크림가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헉! R 크림까지! 그것도 두 개나! 이걸 다시 팔면 월급이….”
“R 크림은 여자친구 주라고 준 건데.”
“당연히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사 결과는요?”
설명은 최종훈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달 탐사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달 주변에 인공위성을 띄워 탐사하는 거죠.”
“뉴스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치권에 아예 착륙선과 지상 무인 탐사장비를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오나 봅니다.”
“어려울 텐데요.”
“예산을 쏟아부으면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착륙선과 탐사장비를 개발하고 달까지 보내는데 조 단위로 돈이 들어갈 테지만요.”
“그 돈 나 주면 좋을 텐데.”
- 에너지와 자원만 충분히 공급해주면, 이 지원위성을 달로 이동시켜서 다 탐사해줄 수 있는데 말이죠.
최종훈이 말했다.
“심지어 달 영구 기지 건설까지 추진하자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달 기지요? 그게 됩니까?”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죠.”
선우현이 잠깐 생각해 보았다.
“만약 달 착륙선이나 달 기지 프로젝트가 실제로 추진되고, 스래곤이 중요 파트를 맡게 되면….”
“조 단위로 예산을 쏟아붓는 사업에서 뇌물 사십억쯤은 푼돈이 되겠죠.”
최종훈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설마 그렇게 되겠습니까? 달 지상 영구 기지는 미국도 못 만듭니다.”
“스래곤 입장에서는 달 기지를 진짜로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달 착륙선 개발 사업에 좋은 조건으로 참여하면, 정부 돈으로 기술도 개발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최종훈이 말했다.
“저도 그걸 노리고 스래곤이 박재곤 의원에게 뇌물을 준 게 아닐까 합니다. 박재곤이라면 정부 예산이 얼마나 사용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기한테 떨어지는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할 테니까요.”
“정보가 더 필요합니다.”
“김 비서가 계속 조사할 겁니다.”
“네? 제가요?”
“그 활토랑 R 크림이 공짜인 줄 알았어?”
“하지만 이건 사장님이 아니라 선우현 씨가 준 건데….”
“이번 일은 우리만 알아야 하는데, 그럼 조사는 누가 해야겠냐? 나냐?”
“제가 해야죠. 하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