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48화 (148/281)

148. 투자자 II

선우현이 남미연을 카페에서 데리고 나왔다. 두 사람은 그녀의 차를 타고 조금 이동했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놓은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거기서 몸값 같은 이야기를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걱정되니까 그랬죠. 참. 어떻게 된 거예요? 최 감독을 구해줬다면서요?”

“운이 좋았죠.”

“아까도 나랑 같이 있었고, 지금도 나랑 같이 있잖아요. 최 감독은 지금 경기도에 있다는데, 도대체 언제 어떻게요?”

그들은 지금 최지석 감독이 사는 동네에 있다.

“내가 사람 찾는 걸 잘합니다.”

- 제가 잘하는 거죠.

“이 근처를 조사하다가 단서를 찾았습니다.”

- 제가 찾았습니다.

남미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그녀는 선우현은 도움만 줬고 최지석은 경찰이 구출했다고 착각했다.

“그럼 최 감독은 왜 납치된 거예요?”

“예전 영화에 투자한 투자금을 돌려주라고 조언한 사람이 있습니다. 놈들은 그 조언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남미연이 손가락으로 입을 살짝 막았다.

“어머. 그래요? 최 감독이 말했어요?”

“아니요. 놈들이 죽인다고 협박하는데도 끝까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역시 최 감독. 사람이 참 진국이라니까요.”

“오늘 보니까 그렇더군요.”

남미연이 자랑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좋은 사람 소개해준 거 알죠?”

“최 감독의 영화에 예전에 투자된 그 돈, 무슨 돈입니까?”

남미연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당황했다.

“네? 그걸 왜 나한테….”

“남미연 씨가 최 감독에게 그 조언을 한 사람이니까요.”

남미연은 당황했다.

“최 감독이 선우현 씨한테 그래요?”

“최 감독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니까요.”

“그런데 왜 나한테….”

“아까 전화를 걸었다가 들었던 ‘살려’ 한 마디.”

처음에는 정보가 그것밖에 없었다.

“장난전화인지, 다른 일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니면 잘못 들은 건지조차 알 수 없지요. 그런데 남미연 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창백해지더군요.”

남미연은 경찰에 신고할 때도 목소리를 떨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남미연이 뭔가 알고 있다는 건 눈치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미연 씨처럼 대가 센 사람이 그러는 건 좀 이상했습니다.”

그는 최 감독을 찾은 후에 그가 보호하려는 사람이 남미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남미연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투자자가 누구입니까?”

남미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이야기는 괜히 알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모르는 게 나아요.”

“그러기엔 내가 이미 충분히 개입해서.”

***

최지석 감독이 현장에 출동한 형사에게 말했다.

“얼굴을 가린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구해주고 갔다니까요? 누군지 모릅니다.”

형사가 물었다.

“선생님. 그곳은 공사가 중단된 지 몇 년은 된 곳입니다. 거기는 원래 밤에는 아무도 안 지나간단 말입니다.”

“나는 거기가 그런 곳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놈들에게 그냥 끌려간 거니까요.”

“하. 이거 답답하네.”

“아니, 형사님. 피해자는 난데 왜 나한테 그럽니까?”

“예? 아니, 그게…. 그냥 상황을 파악하려는 겁니다.”

최지석은 영화판에서 오래 활동했다. 촬영 현장에서 엑스트라나 단역이 빵꾸가 나면 땜빵으로 들어가 연기할 때도 종종 있었다.

최지석이 그렇게 생긴 연기력으로 딱 잡아뗐다.

“갑자기 납치된 처지에 뭘 알겠습니까?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사님이 알게 되면 나한테도 좀 알려주십시오.”

***

남미연이 말했다.

“하긴. 무슨 일인지 알아야 조심할 수 있겠네요.”

그녀가 선우현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맞아요. 내가 최 감독에게 그 투자금을 돌려주라고 충고했어요.”

“이유는요?”

“국회의원 중에 박재곤 의원이라고 있어요. 혹시 아세요?”

“모릅니다.”

“4선 의원인데, 마당발이라서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에요. 박재곤 의원이 빽을 써주면 해결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도 들었어요.”

“남미연 씨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후원회나 파티 같은 곳에서 여러 번 마주쳤어요. 소개도 받고요.”

그녀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물론 명함만 받는 소개예요. 개인적으로는 몰라요. 그래도 박재곤 의원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그런 곳에서 볼 기회가 좀 있었죠.”

“그러면 박재곤이 투자자입니까?”

“그게 좀 복잡해요. 어느 날 최 감독이 투자금 모았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그것도 한 방에 다 받았다고 했어요.”

“영화를 찍으려면 예산이 꽤 많이 필요할 텐데.”

“당연하죠. 최 감독의 첫 영화라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십억은 있어야 했어요.”

그녀가 인상을 살짝 썼다.

“첫 영화를 찍는 신인 감독이 오십억을 한 방에 구했대요. 그것도 누가 먼저 찾아와서 준다고 했대요. 사짜 냄새가 나잖아요.”

“나는 뭐 영화판은 잘 몰라서.”

“그래서 최 감독이 투자자를 만날 때 따라가 봤죠. 물론 같이 만난 건 아니고, 저는 지나가는 사람인 척하면서 슬쩍 봤어요.”

“거기에 박재곤이 왔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그곳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어요. 박재곤 의원을 소개받을 때 옆에서 명함을 준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박재곤이 투자자가 아닙니까?”

“투자자 이름에 박재곤은 없으니까요.”

“차명이군요.”

“그렇겠죠. 그래서 최 감독이 투자금을 어떻게 받았는지 따져봤어요. 근거를 제대로 남겨서 받은 건 십억도 안 돼요. 영화 촬영 도중에 추가로 받기로 한 사십억은 자료가 부실해요.”

“최 감독은 경험이 없으니까 투자금을 그냥 주는 대로 받았나 보군요.”

“맞아요.

“투자금은 십억인데 실제 제작비는 오십억이라….”

“나머지 사십억이 세탁하려는 돈이죠. 영화가 성공하면 수익금을 받는 식으로 세탁하면 되니까요.”

“최 감독은 실력이 있으니까, 돈을 준 쪽에서는 원금 회수가 쉬울 거라고 판단했겠군요.”

“조금쯤은 잃어도 상관없었을걸요? 돈세탁은 원래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영화가 오십억 이상 수익을 내면, 겉으로는 십억만 보이니까 다섯 배의 이익을 낸 성공적인 투자자가 되겠군요.”

“그렇죠. 비용처리는 십억 원만 하고 세금을 많이 내겠다고 하면, 국세청에서 굳이 조사할 이유는 없잖아요.”

“박재곤은 권력도 있고 인맥도 있으니까, 배급사에도 적당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러다 영화가 뜨면 수익금은 오십억이 아니라 백억이 넘을 수도 있어요.”

“백억짜리 돈세탁까지 된 뇌물이라…. 그런 금액이 오갈 정도면 큰 게 걸려있겠군요.”

“당연히 그렇겠죠? 사소한 청탁에 그 정도 돈을 쓰진 않으니까요.”

***

박재곤 의원이 인상을 썼다.

“문제가 생겼다니?”

비서가 보고했다.

“영화 투자금을 처리했던 브로커 말입니다.”

“그건 결국 헛발질만 했었잖아. 다른 적당한 감독은 아직도 못 찾았고.”

“예. 그런데 그 브로커가 최지석이 뭘 아는지 알아보러 갔는데….”

“실패했군. 무능력한 새끼.”

“체포됐습니다.”

“뭐?”

박재곤이 화를 벌컥 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체포돼? 몇 놈이나!”

“조직이 거의 다 붙잡힌 것 같습니다.”

“젠장! 넌 그건 어떻게 알았어?”

“한 놈만 겨우 도망쳐서 연락했습니다.”

“너한테 직접? 부하가 네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로 한 건 아닙니다. 비상연락용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놨는데, 거기 암호문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경찰 쪽으로 좀 알아봤더니….”

“뒤탈 안 나게 알아봤지?”

“물론입니다. 안전한 경로로 빙 돌아서 알아봤습니다.”

“결과는?”

“최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브로커는 어디까지 알지?”

“부하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두목만 의원님의 이름을 압니다. 하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할 겁니다. 그놈이 살려면 의원님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박재곤이 얼굴을 구겼다.

“내가 직접 손을 써야 한다고?”

“그게 제일 확실합니다만….”

박재곤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가 말했다.

“아니야. 이 건은 내가 후원금을 받기 전에 일이 나가리가 됐잖아. 그런데 내가 왜 나서?”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뒀다가 그놈이 경찰에서 입을 열면….”

“내버려둔다는 게 아니야. 이 문제는 그 브로커를 통해 돈을 주려던 곳에서 해결하는 게 맞아.”

박재곤이 지시했다.

“권 사장을 만나야겠어. 조용한 곳에서 보자고 연락해.”

***

선우현이 차에서 내렸다.

“잠깐 바람 좀 쐬겠습니다.”

그가 밖에서 작게 말했다.

“수선아. 박재곤의 사무실이 국회의사당 어디인지, 지역구 사무실과 집 주소는 어디인지 알려줄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라.”

- 알겠습니다.

선우현이 스마트폰으로 국회의원 박재곤을 검색해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정치인이라 인터넷에 기본적인 정보는 나와 있었다.

그는 그 화면을 김수선에게 보여준 후에 차에 다시 타서 질문했다.

“영화계에 이런 식으로 돈세탁하는 곳이 있습니까?”

남미연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본적은 없고 소문으로만 들었어요. 카더라 수준으로요. 그걸 내가 볼 줄은 몰랐죠.”

“그래서 남미연 씨는 최 감독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라고 한 겁니까?”

“누군가 최대 백억짜리 뇌물을 박재곤 의원에게 주려고 하는데, 최 감독이 거기 이용당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렸죠.”

“그 이야기를 최 감독에게도 했습니까?”

“박재곤 의원 이야기는 일부러 안 했어요. 그냥 그 돈이 범죄자금으로 보인다고만 했어요. 제대로 된 설명은 지금 선우현 씨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최 감독은 투자금을 돌려줬군요.”

“최 감독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나 봐요.”

“그럼 뇌물을 받으려고 한 박재곤은 찾았으니까, 뇌물을 주려고 한 놈이 누구인지만 알아내면 되겠군요.”

“그렇…. 네?”

남미연이 말렸다.

“그놈을 왜 찾아요? 하지 마요. 위험해요.”

“최 감독을 노린 놈이 박재곤인지, 아니면 돈을 주려고 한 놈 짓인지 아직 모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확실히 정리해야지요.”

남미연이 두 손을 맞잡았다.

“최 감독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최 감독이 멀쩡한 상태로 엠투의 CF 찍어야 하니까.”

“네?”

“아니면 내가 왜 이렇게 나서겠습니까?”

남미연이 선우현을 흘겨보았다.

“잠깐 감동할 뻔한 거 알아요?”

“모릅니다.”

***

선우현이 남미연을 집으로 보낸 후에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가며 물었다.

“수선아. 박재곤은 찾았냐?”

- 방금 지역구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계속 확인해. 오늘 사건이 터졌으니까, 뇌물을 주려던 놈하고 오늘 만날 수 있다.”

- 알겠습니다. 그런데 박재곤이 실내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여기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럴 때는 내가 건물에 들어가서 조사해야지.”

***

박재곤이 차에서 투덜댔다.

“젠장. 요즘 마가 끼었나? 후원금에 왜 자꾸 말썽이 생겨? 몇 달 전에는 건설사에서 들어오기로 한 돈을 날치기당했는데 말이야.”

비서가 운전하며 말했다.

“그때 중간에서 금괴를 슈킹한 놈들은 콩밥을 먹고 있습니다.”

“내가 그 새끼들을 중형에 처하라고 전화라도 하고 싶어도 말이야. 괜히 나랑 엮인 거 알려질까 봐 말을 안 했어.”

비서가 아부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박재곤이 불평했다.

“그러면 사장이 후원금을 다시 보내야 할 거 아냐.”

“의원님. 그 사건은 여자 아이돌이 같이 납치되는 바람에 뉴스에까지 나와서, 그 회사는 손절을 치셨습니다.”

박재곤이 운전석 등받이를 발로 퍽퍽 찼다.

“알아! 그런데 내가 그 전에 해결해준 일은 계산이 안 됐잖아! 떼였잖아!”

“그렇지요. 나중에 조용해지면 이상만 사장을 혼쭐을 내주십시오.”

“그때 일도 짜증이 났는데, 이번에는 또 왜 이래? 후원금을 받은 것도 아닌데 뒤처리를 하게 생겼네? 요즘 마가 끼었나?”

“의원님. 그러면 굿이라도 한 번 하시는 게 어떠신지….”

“남들 다 보는 데서 굿을 하라고? 너 지금 나 멕이려고 수 쓰냐?”

“아닙니다!”

“굿은 됐고, 용한 곳에서 부적이라도 좀 받아와.”

“알겠습니다.”

***

선우현이 박재곤의 차량을 시야 밖에서 미행했다.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보고 있으니 바로 뒤에서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박재곤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조용한 곳입니다.

“다른 사람은?”

- 목적지에 차량이 한 대 더 있습니다.

“오늘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 밤에 조용한 곳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뻔하지.”

- 사람이 없는 곳이라 접근해서 엿듣기는 어렵습니다. 지붕이 있는 곳이라 대화 모습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무슨 말이 오갈지는 어차피 뻔해. 중요한 건 누구를 만났는지야.”

***

김수선이 보고했다.

- 박재곤이 나왔습니다.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는 박재곤을 만난 사람의 차를 추적해.”

- 알겠습니다.

선우현은 그 차량도 시야 밖에서 미행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추적 대상 차량이 건물에 들어갔습니다.

선우현이 건물을 확인했다. 건물 외벽에 회사 로고가 보였다.

“스래곤 본사에 들어갔네?”

- 회사 로고가 익숙합니다.

“그러겠지. 항공 우주 관련 기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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