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별 II
김수선의 뮤직비디오는 태양 백화점에서 촬영했다.
구하니 때와는 감독도 다르고 촬영하는 위치도 달랐다.
김수선의 취향을 반영하려면 야외 촬영이 많아야 한다. 실내에서 촬영하면 김수선이 직접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하니 때는 실내촬영 위주였는데, 이번에는 옥상 정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유소율 이사가 말했다.
“옥상은 물론이고 우리 회사 물류창고도 쓰세요. 필요한 곳이 있으면 말만 해요. 다 제공할게요. 우리 집은 어때요?”
선우현이 물었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삽니까?”
“아파트에 살죠.”
“됐습니다.”
“할머니 집은 정원이 넓어요.”
그녀의 할머니는 태양 백화점 사장이다.
“거기 가면 뭐라도 주고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더 됐습니다.”
최지석 감독은 태양 백화점 옥상과 주변에 있는 야외 부대 시설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남미연이 김수선의 ‘별 기다림’에서 주연을 맡았다. 조연은 은하소녀 네 명을 썼다.
남미연은 원래 연기를 잘한다. 그런데 엠투도 연기를 잘했다.
“흰둥아. 내 옆에서 저쪽 하늘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봐.”
“멍!”
“최 감독. 이렇게 하면 되지?”
“아니, 이게 왜 되지? 그 녀석 개 아닙니까?”
김수선도 촬영에 조금 개입했다.
- 엠투. 좀 더 애틋한 눈빛으로 하늘을 봐.
선우현의 인이어 통신기에서 나온 목소리를 엠투가 듣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머엉?”
- 내가 있는 쪽을 왜 노려보는데? 애틋하게 보라고!
촬영은 백화점 휴무일 낮에 시작해 밤까지 연속으로 진행됐다.
이틀 예정의 촬영은 남미연의 연기력이 워낙 좋아 하루 만에 끝났다.
한밤중에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나서 남미연이 자랑했다.
“내가 했으니까 금방 끝난 거야.”
최지석 감독이 감탄했다.
“누님 연기력이야 당연히 알고 있는데….”
그가 감탄한 건 엠투였다.
“이 개는 뭡니까?”
“연기 잘하지?”
“개는 원래 시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하기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이 개는 왜 진짜로 연기를 해요?”
“앞으로 멍배우라고 불러.”
“누님 개예요?”
남미연은 멈칫했다.
“음? 어. 비슷해.”
“네? 비슷?”
“따지지 마라.”
최지석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제 영화에 멍배우도 나오게 해주세요.”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내가 출연하는 영화인데 우리 흰둥이도 당연히 나와야지. 나만 믿어. 나만.”
“멍?”
“웅…. 선우현 씨도 반대 안 할 거야. 나중에 너 CF도 찍어야 하니까 영화에 많이 나오면 좋잖아. 물론 나랑 같이.”
“멍!”
***
이 뮤직비디오에는 김수선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선우현이 김수선의 말을 전하면 최지석 감독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선우현이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나서 말했다.
“최 감독님 실력 좋네?”
- 그러게요.
남미연이 옆으로 다가와 자랑했다.
“내가 괜히 최 감독을 데려온 거 아니에요. 실력 하나는 확실해요.”
“저런 사람이 왜 아직 영화를 못 찍었습니까?”
“사건 사고가 좀 있어서 딜레이 됐어요.”
“사건 사고요?”
“지금은 다 해결됐어요. 조만간 영화 찍을 거예요.”
김수선이 말했다.
- 제 뮤비를 만들어야 하는 감독이 사고를 당하게 할 수는 없죠. 집 주소라도 물어봐 주시죠. 가끔 체크라도 하게요.
***
뮤직비디오의 나머지 작업은 배우가 필요 없다. 이제부터는 최지석이 알아서 작업한 후에 김수선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번에는 구하니 때처럼 음악방송을 이용한 홍보는 할 수 없어.”
- 저는 왜 할 수 없는 거죠?
“신인이 방송국에 얼굴 한 번 안 보여주고 노래만 내보내겠다고 하면, 담당 PD가 받아줄 리 없잖아.”
- 저 신인 아닙니다만?
“얼굴 없는 가수면 신인 취급이지.”
- 유럽에서는 이름이 좀 알려졌습니다만?
“유럽이라….”
선우현이 대안을 하나 찾았다.
“‘별 기다림’ 말이야. 영어로도 부르자. 너튜브에 뮤비를 올릴 때 영어 버전도 올리면, 유럽 쪽에서 조회수를 올려주겠지.”
- 영어만 불러서 되겠습니까? 저 할 줄 아는 언어가 아주 많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팔찌형 통신기의 상태가 음성 신호 전달에 제약이 있잖아. 뮤비 작업 끝나기 전에는 영어로 한 번 정도 녹음하는 게 한계야.”
- 상태가 괜찮아질 때마다 언어 버전 하나씩 추가해야겠군요. 영어 다음에는 독일어에 거친 억양 팍팍 넣어서 갈까요?
“그건 맘대로 해라. 찍어놓은 뮤비에 목소리만 바꾸면 되는 거니까. 영어 다음에는 고대 민요에 쓰던 5개국어를 하나씩 하면 되겠네.”
- 어차피 곡 데이터를 복원해 새 노래를 찾는 건 힘드니까, 당분간은 그러면 되겠네요.
“어….”
- 선장님? 불안하게 왜 그러시는지?
“이렇게 도와줬는데, 은하소녀한테도 곡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 주세요.
“정말?”
- 선장님이 직접 작곡하면 되겠네요.
“나중에 남는 노래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야겠다. 은하소녀가 당장 망하진 않겠지.”
***
일주일 뒤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김수선은 ‘별 기다림’을 한국어로도 부르고 영어로도 불렀다. 같은 영상에 오디오만 다른 두 가지 버전의 뮤직비디오가 동시에 공개됐다.
남미연은 고 감독과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에 공개 소식을 전달받았다.
영화 야간 촬영 중간 휴식시간에 그녀가 노트북을 빔프로젝터에 연결했다. 빔프로젝터는 영화 제작진이 회의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내가 좋은 거 보여줄게.”
고 감독이 물었다.
“혹시 야구 동영상….”
“고 감독. 뒈지고 싶지?”
“아니요. 농담이었습니다.”
남미연이 ‘별 기다림’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그녀가 사람들을 불러보았다.
“내가 이번에 출연한 노래의 뮤직비디오랍니다.”
스크린에 영상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음악이 부드럽게 깔렸다.
남미연은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으로 뮤직비디오에 나왔다.
스태프 중 한 명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와아. 진짜 20대로 보여.”
남미연은 그런 평가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씩 웃으며 자랑했다.
“CG는 1도 안 썼답니다.”
영상과 함께 김수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감탄했다.
“목소리 좋다.”
누구 목소리인지 알아듣는 사람도 있었다.
“이 깊고 특색 있는 목소리는 김수선 목소리인데?”
“노래 실력 쩐다.”
잡담이 사라졌다. 다들 노래에 빠져들어 조용히 감상했다.
김수선은 노래를 잘했다. 남미연도 연기를 잘했다. 영상과 노래가 잘 어울렸다.
4분 남짓 노래가 흘러나온 후에 뮤직비디오가 끝났다.
몇 사람이 박수를 쳤다.
“역시 김수선.”
“난 고대 민요 시리즈도 다 들었다.”
남미연이 물었다.
“나는?”
그녀의 상대역 남자 배우가 얼른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선배님 연기는 당연히 최고죠! 너무 당연해서 말하는 걸 까먹었습니다.”
“내 연기가 최고인 건 당연하잖아. 그게 다야?”
“점점 더 젊어지시네요. 이제 스물다섯으로 보입니다.”
“훗. 그런 칭찬 아주 좋아. 그런데 그게 다냐고.”
“또 무슨….”
“흰둥이는?”
엠투는 이 영화에도 출연한다.
“흰둥이는 역시 대단한 멍배우입니다!”
“그래. 그런 거. 듣기 좋으니까 더 해.”
고 감독은 음악에 꽂혔다.
“우리 영화음악에 쓰면 딱 좋겠다.”
“고 감독. 음악은 이미 맡긴 곳 있잖아.”
“결과가 기대만큼 안 나와서요.”
고 감독이 입맛을 다셨다.
“저 작곡가에게 저 느낌으로 음악을 새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저 가수가 부르게 하면 우리 영화에 딱 맞겠는데요?”
“그렇긴 해. 노래가 참 좋잖아?”
“작곡가 연락처 좀 주시면 제가 협의를….”
“하지 마. 안될 테니까.”
고 감독이 불평했다.
“제안도 해보기 전에 그걸 어떻게 압니까?”
“작곡가가 선우현 씨야.”
“네?”
“고 감독이 시비 걸었던 그 선우현 씨라고. 구하니의 하늘에 핀 꽃 작곡가 선우현.”
고 감독이 투덜댔다.
“아니,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고….”
“그 정도면 시비 맞아.”
“그러면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남미연 씨가 대신 말 좀….”
“고 감독이 시비 걸었던 것 때문에 흰둥이도 겨우 빌려왔는데 그게 되겠어?”
“어렵겠죠?”
고 감독이 뒤늦게 후회했다.
“친하게 지낼걸.”
“처음부터 싸움이나 걸었으면서 친하게는 무슨.”
***
김수선의 뮤직비디오는 너튜브는 물론이고 기획사 폴라시의 홈페이지에도 공개됐다. 그런데 폴라시는 은하소녀가 대표 연예인일 정도로 규모가 작다. 그 회사 홈페이지를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신에 가수 구하니가 SNS로 홍보를 해주었다.
[‘하늘에 핀 꽃’ 작곡가 선우현 님의 신곡 ‘별 기다림’이 나왔어요. 노래 좋아요. 저도 편곡에 참여했어요.]
그녀는 SNS에 태그도 붙였다.
[#다음엔내곡을내놓아라.]
커뮤니티 게시판에 반응이 빠르게 올라왔다.
- 노래 장난 아니다.
- 가수 누구야?
- 김수선. 특색 있고 깊이 있는 목소리라서 들으면 바로 아는 신인.
- 고대 민요 앨범을 들어봐요. 다섯 곡 다 죽여요.
- 외국어 버전까지 하면 열 곡인데, 외국어 잘함.
- 노래 가사 정도는 외국어 못해도 연습만 하면 할 수 있잖아요.
- 연습으로 그런 감정전달에 깊이까지 표현하기는 어렵죠. 그 언어를 실제로 할 수 있을 겁니다.
배우 남미연도 SNS로 홍보를 도와주었다.
[저 뮤비에 나와요. ‘별 기다림’]
구하니가 톱가수라면 남미연은 톱배우다. 팬이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새로운 팬도 많았다.
그 사람들이 공개된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남미연의 팬들도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썼다.
- 남미연 왜 자꾸 젊어지냐?
- 저게 어떻게 40살의 외모입니까?
- 모르고 보면 스물다섯 살인 줄 알겠네.
- 뱀파이어인가?
- CG겠죠?
- 아니요. 요즘 남미연 방송 나올 때 보면 진짜 20대로 보여요.
- 그게 왜 가능하죠?
- 화장품을 좋은 걸 써서라던데요.
- R 크림 말이죠? 들어는 봤는데 살 수가 없어요.
- 백만 원이나 하니까 살 수 있더라도 망설여지죠.
- 두 배를 주더라도 도로 사겠다는 사람 널려 있어요. 살 기회가 생기면 사서 되팔아도 돼요. 살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 누가 그렇게 비싸게 사는 건데요?
- 연예인들이요. 연예인이나 기획사 같은 곳에서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채간다더라고요.
- 그거 태양 백화점에서 팔지 않나요?
-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요. 태양 백화점 광고를 하고 싶어 하는 연예인이 꽤 있대요. 대신에 R 크림 구매권을 달라고 한다더라고요.
남미연이 차에서 그 게시판의 글을 보면서 말했다.
“얼굴은 R 크림으로 해결하고, 건강은 활력 토마토로 해결하면….”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진짜 계속 20대처럼 살 수 있겠다.”
매니저는 남미연과 두 살 차이인 38살이다.
“언니. 저도 그러고 싶어요.”
“둘 다 충분히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R 크림도 겨우 구하고 있잖아.”
“그걸 언니처럼 많이 구해서 풍족하게 쓰는 연예인이 또 있겠어요?”
“구하니도 아낌없이 쓴다던데?”
“그럼 딱 두 명이네요. 부럽다.”
“너한테도 하나 줬잖아.”
남미연은 선우현을 통해 산 R 크림 하나를 매니저에게 주었다. 그때는 너무 아까워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꾸 줄어들어요.”
“아껴 써.”
“효과가 너무 좋아서 아껴 쓰려고 해도 잘 안 돼요.”
“3차 판매 시작할 때를 기다려보자. 이렇게 뮤비도 나가고 SNS로도 밀어줬는데, 설마 3차 때 한두 개 주고 때우겠어?”
“언니. 그런 걸 바라면 선우현 씨 만날 때라도 성질 좀 죽여요.”
남미연이 게시판의 글을 마저 읽으며 말했다.
“이미 성질 많이 죽이고 있어. 아. 흰둥이 이야기다.”
게시판에는 뮤직비디오에서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력 이야기도 나왔다.
- 역시 남미연은 연기로는 깔 수가 없다.
- 최고지.
- 조연으로 나온 여자들은 남미연 옆에 서기만 해도 연기력 차이가 느껴집니다.
- 걸그룹 은하소녀. 얘들은 연기까지 안 되면 진짜 어떻게 하냐? 큰일 났네.
- 남미연 님의 연기가 워낙 대단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은하소녀도 연기가 나쁘진 않아요.
- 님 혹시 은하소녀?
- 앗! 아니에요!
- 연기가 나쁘지 않기는. 남미연은 물론이고 같이 출연한 개한테도 연기력에서 밀리던데.
- 연기가 개만도 못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 그건 아니죠. 그 개가 진짜 연기를 잘하는 거예요.
- 그건 맞음. 개가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거 보고 놀랐습니다. 그게 개가 할 수 있는 연기인가?
- 수십 번을 반복해서 찍어서 그 눈빛이 나오는 장면을 건진 거겠죠.
- 개가 같은 동작을 수십 번이나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대단한 겁니다.
남미연이 그 글을 매니저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거 봤어? 우리 흰둥이가 연기 잘한대. 사람보다 낫대.”
“수십 번을 반복해서 찍어서 건졌을 거라는데요?”
“아니야. 딱 두 번 만에 이 장면이 나왔어. 역시 날 닮아서 연기도 잘한다니까.”
“아, 네.”
“뭐니? 그 눈빛은? R 크림 남아도나 봐? 3차 때는 나 혼자 다 가질까?”
“흰둥이는 세계 최고의 개배우죠!”
“잘해라.”
“흰둥이한테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