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44화 (144/281)

144. 별

선우현이 적당히 둘러댔다.

“그냥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조언만 하는 겁니다.”

뮐러 교수가 탄식했다.

“대학원생들이 나를 보고 느낀다는 그 감정을 내가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뭘 그렇게까지.”

선우현이 적당히 둘러댄 건, 이론을 정리해달라고 하면 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알려주는 건 단계별로 필요한 약간의 정보다. 그가 정보를 제공할 때마다 뮐러의 연구가 진전됐다.

공동 연구가 성공하면 결과도 공동 소유가 된다. 그 기술의 라이센스 판매는 JHC 테크가 맡기로 했다.

이 영상 회의에는 JHC 테크의 사장 최종훈도 참석했다.

최종훈이 말했다.

“두 분이 개발하신 기술은 우리 JHC 테크에서 전 세계에 잘 팔겠습니다. 연구만 성공해 주십시오.”

뮐러가 말했다.

“선우현 씨는 이미 우리 연구의 결과를 아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연구는 분명히 성공할 겁니다.”

“역시 선우현 씨라면 그럴 줄 알았습니다.”

뮐러가 물었다.

“예상하셨습니까?”

“뮐러 교수님도 이제 선우현 씨가 어떤 사람인지 눈치채셨을 텐데요?”

“천재죠.”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우주왕복선을 위해서는 부끄러워도 참아야지.”

- 선장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데요?

“너한테 도움이 되는 게 좋아서 웃는 거야.”

- 어디서 약을 파십니까?

뮐러가 말했다.

“그런데 선우현 씨는 독일 지역 고대 문화에도 관심이 있습니까?”

선우현의 입꼬리가 도로 내려갔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습니까?”

“제 친구가 고고학자입니다. 그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선우현이 작게 투덜댔다.

“그리스 대사도 소문을 내고 다니나 보다.”

- 문체부 국장은 한국에 소문을 내고, 그리스 대사는 유럽에 소문을 내나 봅니다.

최종훈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 물었다.

“고대 문화라니요?”

뮐러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설명했다. 김수선의 고대 민요 이야기도 했지만, 그리스 신화와 관계된 조각상 이야기를 특히 자세히 말했다.

“진짜 조각상의 정확한 모습을 선우현 씨가 알고 있어서, 사기꾼을 체포할 수 있었다더군요.”

최종훈이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현 씨. 제가 도자기랑 그림을 몇 개 가지고 갈 테니까, 진품이 맞는지 확인 좀….”

“그거 가짜니까 버려요.”

“아니, 보지도 않고….”

“어디에 버렸는지 꼭 좀 알려주고요.”

***

며칠 뒤에 김수선이 흩어진 데이터에서 곡 하나를 복원하는 작업을 마쳤다.

- 복원율은 49%입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수선아. 복원율이 하니 씨한테 준 곡보다 9%나 높다?”

- 운이 좋았습니다.

“네가 직접 부르는 노래라서 더 열심히 한 거 아니고?”

- 오해이십니다.

“솔직히 말해도 돼.”

- 복원 작업에 사용한 시간이 이전의 두 배쯤 됩니다.

“역시 김수선. 자기 건 확실히 챙기지.”

- 빵꾸 난 부분이나 메워주시죠.

“기다려봐. 그게 내가 아는 노래이기는 한데, 하도 오랜만이라 생각을 좀 해봐야 해.”

선우현은 대충 생각나는 멜로디를 빠진 부분에 채워 넣었다.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워낙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라 생각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 이러면 49%나 복원한 의미가 없는데요.

“생각 안 나는 부분도 내가 잘 채워 넣었어.”

그 작업은 저번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구하니에게 준 ‘하늘에 핀 꽃’ 때보다 대충 하신 느낌이 듭니다.

“오해야. 느낌이 팍팍 와서 빨리 완성된 거야.”

- 솔직히 말해도 됩니다.

“얼른 하니 씨한테 맡겨서 마무리하고 뮤비도 찍자.”

- 말 돌리지 마시고요.

***

김수선의 목소리를 녹음하려면 팔찌형 통신기의 음성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자주 쓸 수 없는 기능이다. 한 번만 사용해도 최소한 며칠은 팔찌 통신기의 안정화 단계를 거처야 한다.

그런 작업을 외부의 전문 녹음실에서 하면 의심받는다. 그래서 김수선의 목소리는 구하니의 작업실에서만 녹음했다.

구하니가 김수선의 노래를 듣고 감탄했다.

“정말 김수선 씨의 목소리는 아름다워요. 천상의 목소리 같아요.”

- 여기가 천상이긴 하죠.

선우현이 말했다.

“천상이 아니라 위성궤도잖아.”

- 그거나 그거나죠.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말했다.

“하니 씨 목소리도 아름답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선우현 씨 덕분이죠.”

“내가요?”

“앗! 아니에요.”

***

악기 연주는 은하소녀의 소속사 사장 박대석이 전문 녹음실을 섭외하고 악기를 연주할 세션도 모집해서 진행했다.

고대 민요를 녹음할 때 참여했던 윤하연도 세션에 참여했다.

“하연 씨는 좀 특이한 악기를 맡아줬으면 합니다.”

윤하연이 탱글탱글해진 얼굴로 말했다.

“맡겨만 주세요! 연주하는 방법만 가르쳐주시면 돼요.”

박대석이 물었다.

“하연 씨 피부가 저번보다 좋아졌네요? 요즘 좋은 일 있습니까?”

“R 크림을 발랐거든요.”

“어? 그거 구하기 어려운데 어디서 샀습니까?”

“선우현 씨한테 선물 받았죠. 저번 작업 마무리 기념으로요.”

박대석이 선우현을 휙 돌아보았다.

“선우현 씨! 남는 거 있으면 우리 애들한테도 하나만!”

“비쌉니다.”

“제가 라면만 먹더라도 애들한테는 사줘야죠!”

“은하소녀는 넷 다 스무 살 근처라 발라봐야 효과도 없어요. 그거 최소한 20대 중반은 넘어가야 효과가 눈에 보입니다.”

“그래도 지금부터 관리하면 더 좋을 텐데….”

***

세션의 연주를 녹음하는 작업도 빠르게 진행됐다.

엔지니어가 따로 녹음한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하나로 모아 편집했다.

박대석이 결과물을 듣고 감탄했다.

“캬아. 역시 목소리는 김수선이 최고죠.”

구하니가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최고가 꼭 한 명일 필요는 없잖습니까? 구하니 씨도 최고죠. 하, 하하.”

고대 민요 때는 곡만 녹음해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뮤직비디오도 찍기로 했다.

그런데 김수선은 카메라 앞에 설 수가 없다. 그래서 배우를 섭외해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한다.

김수선이 원하는 배우가 있었다.

- 남미연이면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남미연 씨는 요즘 영화 촬영 중이라 바쁘잖아. 다른 사람은?”

- 그 급의 배우 중에 아는 사람이 또 있으신지?

“말이나 해볼게.”

***

선우현이 남미연을 만났다.

“요즘 바쁘시지요?”

“영화 찍으니까 조금 바쁘긴 해요. 그래서 선우현 씨를 만날 시간은 있어요.”

“뮤비에 출연할 수 있나 물어나 보려고 했는데, 그건 어렵겠군요.”

“어머. 나 원래 뮤비 안 찍어요. 구하니 씨는 특별 케이스였어요.”

김수선이 불평했다.

- 남미연한테 그동안 준 R 크림이 몇 개인데! 괜히 줬습니다.

“역시 그렇지요?”

“근데 누구 노래인데요? 이번에도 구하니 씨 노래예요?”

“아닙니다.”

“작곡가는 선우현 씨고요?”

“그렇죠?”

“그러면 스케줄은 빼면 돼요. 어차피 영화에서 나만 찍는 건 아니니까요.”

“뮤비는 안 찍는다면서요?”

“선우현 씨 부탁이니까 찍을 수도 있죠. 물론 노래가 내 마음에 들어야 하지만.”

선우현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남미연에게 내밀었다.

“들어봐요.”

그녀가 이어폰을 받으며 물었다.

“이거 혹시 누가 쓰던 거?”

“내가 쓰던 건데, 지금 이것밖에 없는데….”

“뭐, 그냥 써야지 어쩌겠어요?”

남미연이 이어폰 두 개를 귀에 꽂았다.

선우현이 스마트폰에 넣어 온 김수선의 노래를 재생했다.

그녀가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처음에는 눈을 뜨고 듣더니 나중에는 눈까지 감고 집중했다. 그녀는 4분 남짓의 시간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노래 끝난 후에 그녀가 눈을 떴다.

선우현이 물었다.

“어때요?”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별 기다림.”

“노래 진짜 좋다.”

“그래서 결론이?”

“해야죠. 음. 뮤비 찍으면 R 크림 좀 더 팔아주나요?”

“3차 판매 때 몇 개 챙겨주겠습니다.”

나른하던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머. 이제 3차분 만들어요?”

“아뇨. 아직 재료가 부족해서.”

- 제가 레드 포션을 복원 처리하는 중입니다.

“아…. 그렇구나. 팍팍 쓰고 싶었는데. 아!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출연료?”

“출연료는 R 크림으로 챙겨주면 돼요. 흰둥이도 출연시켜줘요.”

“뭐, 그럽시다.”

“아싸아!”

***

뮤직비디오 감독은 남미연이 찾아서 데려왔다.

“최 감독은 예전에 내가 영화 할 때 조감독 했던 친구예요. 가끔 뮤비도 찍어요.”

최 감독이 말했다.

“누님. 뮤비는 원래 제 전문이 아닌데요.”

김수선이 불평했다.

- 제 노래를 부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건 좀….

남미연이 피식 웃었다.

“엄살은. 가수들이 최 감독을 얼마나 원하는데. 얘가 시간 나면 영화 준비하러 다니느라 뮤비는 진짜 먹고 살 만큼만 찍어요. 인기 가수도 섭외하기 어려운 친구예요.”

- 부업인지 본업인지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실력만 있으면 되죠.

선우현이 물었다.

“그런 분이 어쩌다가 신인 뮤비를 맡았습니까?”

- 제가 그냥 신인인가요? 고대 민요 시리즈가 요즘 유럽 라디오에서 얼마나 자주 나오는데요.

남미연이 말했다.

“최 감독이 지금 준비하는 첫 영화 찍을 때 내가 출연해준다고 했어요.”

“남미연 씨가 큰 거 거셨네.”

남미연이 자랑했다.

“내가 이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거 알아주면 좋겠어요.”

최 감독이 한마디 했다.

“누님이 이거 안 맡으면 내 영화에 출연 안 한다고 협박하셨….”

“샷업.”

“넵.”

“내가 나오는 뮤비인데 아무한테나 맡길 순 없잖아. 최 감독을 믿으니까 맡기는 거야.”

선우현이 말했다.

“신경을 좀 거칠게 쓰셨네.”

“어쨌든 결과는 좋잖아요.”

‘별 기다림’은 김수선이 원해서 녹음하고 발표하는 노래다. 그래서 뮤직비디오도 김수선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선우현이 그걸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최 감독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김수선 씨가 직접 오시는 건가요?”

“왜 기대하시는 느낌이지요?”

“제가 김수선 씨의 고대 민요 시리즈를 참 좋아하거든요. 그 음악을 나중에 제 영화에 쓰고 싶을 정도로요.”

- 최고의 뮤비 감독을 섭외했군요. 역시 남미연은 보는 눈이 있습니다.

“수선이는 사정이 있어서 현장에는 못 옵니다. 제가 대신 진행할 겁니다.”

“아쉽네요.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뮤직비디오에는 엠투도 출연한다.

남미연이 엠투를 옆에 두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최 감독. 처음부터 끝까지 흰둥이랑 같이 있는 거로 찍어줘.”

“누님. 개가 계속 나와야 하면 스토리도 제한되고 시간 안에 영상도 제대로 못 뽑아요.”

“왜? 이렇게 예쁘고 귀엽고 잘생겼는데.”

“아니, 누가 봐도 생긴 건 막….”

“뭐라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생겼다고요. 비중은 높여 볼게요. 흰둥이 단독 샷도 넣고요.”

“단독 샷? 그것도 좋네. 딜.”

“그러려면 개가 연기 비슷한 거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남미연이 자랑했다.

“몰랐어? 우리 흰둥이는 멍배우야.”

남미연은 영화 중간에 짬을 냈고 최 감독도 바쁘다. 그래서 뮤비 촬영은 이틀 안에 끝내야 한다.

엑스트라도 몇 명 필요했다. 그건 아이돌 은하소녀 네 명이 맡았다. 공짜는 아니다. 출연료는 선우현이 주기로 했다.

“한 사람당 R 크림 하나씩 줄게.”

“꺄아!”

“되팔지는 마라.”

“당연하죠! 우리가 다 쓸 거예요!”

은하소녀는 촬영 현장에서 남미연과 함께 있는 엠투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민하가 두 팔을 쭉 뻗었다.

“엠투! 이리와!”

남미연이 한마디 했다.

“흰둥이라니까.”

“흰둥아! 이리와!”

“잠깐 갔다 와도 돼.”

엠투가 은하소녀 네 명에게 걸어갔다. 젊은 아가씨 네 명이 모여앉아서 엠투를 쓰다듬으며 웃고 떠들었다.

최 감독은 이미 촬영을 시작했다.

남미연이 물었다.

“뭐야? 저 장면을 뮤비에 쓰게?”

“노래가 뜨면 나중에 홍보 영상으로 쓸 수 있게 미리 찍어두는 거죠.”

“그거 좋네. 나는?”

“누님의 도도한 자태나 흰둥이를 보내주는 모습은 이미 찍었죠.”

최 감독은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찍을지 구상을 끝냈다. 새로 이것저것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의상은 각자 가진 걸 활용했다.

장소 협찬은 태양 백화점의 도움을 받았다.

유소율 이사가 촬영 현장에 찾아와서 말했다.

“그냥 우리 백화점이 전부 다 세트장이다 생각하고 마음껏 쓰세요.”

선우현이 말했다.

“매번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제가 하고 싶어요. 이건 R 크림이나 활토 때문에 도와드리는 게 아니에요. 저의 마음이에요.”

“그럼 R 크림은 앞으로는 다른 곳에 넘….”

“살려주세요.”

“농담입니다.”

“무슨 그런 무서운 농담을 하세요? 간 떨어질 뻔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