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42화 (142/281)

142. 악기

김수선의 목소리 녹음파일 원본은 구하니의 작업실에도 있다. 구하니가 그 파일을 박대석에게 보냈다.

음악은 악기를 직접 연주해 녹음하기로 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너튜브에 공개한 건 비슷한 현대 악기의 합성음으로 대체한 건데, 이번엔 그 시대 악기로 연주해야지.”

그러면 기계음을 썼을 때보다 그 당시 음악을 더 잘 재현할 수 있다.

고대 악기를 현대에 재현한 것은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다. 전문 연주자도 있었다.

그리스의 전통악기 연주자가 테스트 삼아 녹음한 연주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 소리를 듣고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이게 아닌데요.

“그래. 내가 듣기도 좀 다르다. 수선아. 당시 자료 가지고 있지?”

- 물론이죠. 당시 악기 연주 영상은 물론이고 제작 영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그 연주자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그리스어로 설명했다.

“악기가 그 시대에 쓰던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 연주자는 외국인이 전통악기에 대해 뭐라 하는 게 기분이 나빴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연락을 받기는 했는데, 말이 곱게 나가진 않았다.

- 당시 자료를 충분히 조사해 만든 악기입니다. 외국인이 뭘 안다고 차이가 있다는 겁니까?

“나무가 달라요. 나무가.”

“나무도 기록에 있는 그대로 썼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 이름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이름만 같지 조금 다른 나무입니다. 원래 써야 하는 나무는….”

- 그 시대와 같은 나무가 자라는 숲을 압니다. 그 지역 목재상에서 취급할 겁니다.

“내가 나무를 골라주고 악기 도면도 수정해줄 테니까, 한국에 올 때는 새로 만들어서 오시죠.”

- 아니, 내가 왜….

“필요한 비용은 다 지급할 테니까 일단 만들어서 지금 것하고 비교해 보시죠.”

그리스의 악기는 그나마 나았다. 다른 지역에서 실물 없이 기록만 보고 재현한 악기 중에는 형태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도 있었다.

선우현은 그런 것들을 일일이 알려주고 수정하게 했다.

***

그리스의 연주자가 새 악기를 들고 한국으로 왔다. 여행 비용은 선우현이 댔다.

그 연주자가 선우현을 보자마자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만들었더니 기록에 묘사되어 있던 소리가 나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옛날 일이라면 잘 압니다.”

“고대 문화에 조예가 깊으신 거군요!”

“뭐, 그렇죠.”

연주자가 망설이다 물었다.

“그런데 혹시 이 악기를 더 만들면….”

이게 많이 팔릴 물건이라면 라이센스 계약이라도 체결할 텐데, 현대 악기도 아니고 특정 지역의 고대 악기가 많이 팔릴 리가 없다.

“더 만들어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연주자 중에는 한국에 들어올 여건이 안 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그 나라에서 필요한 부분을 녹음하게 한 후에 파일을 받았다.

국내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윤하연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선우현이 요령을 가르쳐주면 고대 악기로 한 곡 정도는 어렵지 않게 연주했다.

그녀는 새 악기를 받을 때마다 감탄했다.

“어머. 이건 소리가 또 이렇게 다르네요. 이런 걸 어떻게 다 아시지? 대단하신데요?”

“윤하연 씨가 모든 악기를 쉽게 다루는 게 더 대단한 겁니다.”

- 그러게요. 우리는 눈으로 봤고 영상 자료로도 남겨놨으니까 아는 건데, 처음 보는 악기도 잘 다루네요.

윤하연이 웃으며 말했다.

“악기는 달라도 연주의 기본 원리 몇 가지만 알면 응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대단한 건데.”

“그리고 정확한 연주 방법은 선우현 씨가 가르쳐주셨잖아요.”

각국의 전통악기 연주자가 녹음할 때도 선우현이 조언을 많이 했다.

연주 방법이 원래 쓰던 것과 차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선우현은 그런 부분은 일일이 지적해서 고치게 했다.

“대충 넘어가고 싶어도 수선이가 잔소리하니까 그럴 수가 없네.”

- 그 소리가 진짜가 아닌 걸 아는데 어떻게 넘어가나요?

윤하연은 선우현이 조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번 감탄했다.

“진짜 어떻게 그걸 다 아세요? 혹시 대학교수님이세요?”

“백수입니다.”

“네? 어머. 농담도 참.”

외국에서 초빙한 연주자들은 필요한 녹음을 마치고 헤어졌다. 일부는 국내 여행을 갔고, 일부는 귀국했다.

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말했다.

“유럽에 오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술이라도 사겠습니다.”

외국 연주자들을 다 돌려보낸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그 다섯 곡을 녹음하는 데 수억 들어간 거 아냐?”

- 압니다.

“R 크림 2차 판매 대금을 받았는데 남는 게 없다.”

- 남기는 하잖습니까?

“그거로 세금 내면 남는 거 없어.”

김수선의 고대 민요는 한 곡당 두 가지 언어로 총 열 곡을 녹음했다.

녹음 작업이 끝난 후에 선우현이 윤하연에게 말했다.

“하연 씨가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어서 시간을 많이 절약했습니다. 그걸 다 외국 연주자를 섭외해서 녹음하려고 했으면 답이 없었을 겁니다.”

“에이. 저도 돈 받고 한 건데요. 그리고 참 많은 걸 배워서 좋았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불러주세요.”

“당연히 제일 먼저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선우현이 작은 종이백을 내밀었다.

“별건 아닌데, 고생 많이 하셔서 선물로 챙겨왔습니다.”

“뭘 이런 걸 다 주세요? 안 주셔도 괜찮…. 어머! 이거 설마 R 크림이에요?”

“압니까?”

“당연히 알죠. 저는 가수들하고 자주 일하니까요.”

그래서 R 크림을 본 적은 있다. 그걸 자랑하는 가수는 몇 명 있었지만 바르게 해준 사람은 없었다.

“이건 인기 가수들도 구하기 어려운 거라던데, 이걸 주셨다는 건….”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저한테 관심이….”

“도로 빼앗을까 보다.”

“농담이에요. 하도 귀한 걸 주시니까 농담해본 거예요.”

그녀가 R 크림을 손에 들고 방긋 웃었다.

“이제 가수가 R 크림을 꺼내서 자랑하면 나도 같이 꺼내서 선물 받았다고 자랑해야지.”

***

기획사 사장 박대석은 김수선이 부른 고대 민요로 정식 디지털 앨범을 만들었다.

그 앨범은 한국에서만 공개한 게 아니다. 외국 음악 플랫폼에도 공개했다. 특히 그 민요의 고향인 다섯 나라에는 앨범 사진에 그 나라 문자를 썼다.

박대석이 말했다.

“인세가 들어오면 선우현 씨에게 보내겠습니다. 김수선 씨에게는 알아서 잘 전달해 주십시오.”

“그럼요. 그 돈은 수선이를 위해서 쓸 겁니다.”

- 우주왕복선이 아니라요?

“왕복선에 물자 담아서 보내면 그게 널 위한 거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박대석이 걱정했다.

“그런데 제작비를 워낙 많이 쓰셔서, 남는 게 있을지….”

“그러게 말입니다.”

- 안 들립니다.

***

미국 언어학자 크리스토퍼 알렌은 정식으로 발매된 김수선의 고대 민요 앨범을 들으며 감탄했다.

“너튜브로 들을 때보다 더 좋다.”

그는 음악을 감상하며 혼잣말을 했다.

“이 앨범을 출시한 회사를 찾아가면 김수선을 만날 수 있을까?”

김수선의 음성 녹음을 구하니의 작업실에서 했다. 구하니가 고대 민요 앨범을 그녀의 SNS에 언급해 주었다.

외국에 있는 케이팝 팬 중에는 구하니의 팬도 있다. 그 사람들이 SNS를 보고 그 노래를 찾아들었다.

구하니는 예전에도 김수선의 고대 민요를 추천했다. 그때는 딱 한 곡이었고, 그 노래는 한국어와 고대 언어만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1절을 해당 지역 현대 언어로 부른 게 들어 있었다. 그런 노래가 다섯 곡이었다.

노래 자체도 워낙 좋고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그 지역 고대 민요라는 정보도 앨범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반응이 좋았다.

각 지역 라디오에서도 그 노래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고대 민요를 듣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노래에 담긴 가치를 아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전에도 크리스토퍼 알렌 같은 언어학자 몇 명은 김수선의 고대 민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고대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이게 우리 옛날 언어로 부른 노래라고?”

“1절을 듣고 2절을 들으니까 느낌 확 온다.”

“고대 언어는 발음이 좀 신기하다.”

각 지역 사람들은 김수선이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해 두 가지 언어로 노래했다고 생각했다.

외국 사람이 자기네 나라의 현대 언어로만 노래해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고대 언어까지 사용해 노래했다는 걸 알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게다가 그 나라의 고대 민요라서 곡 자체가 익숙하고 좋았다.

결정적으로 김수선이 노래를 잘했다. 굉장히 잘했다.

다섯 나라에서 다섯 곡이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김수선의 이름도 유럽에 점점 더 알려졌다.

그리스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문가를 두 명 초빙해 그 노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명은 그리스의 언어학자였다.

언어학자가 장담했다.

“김수선 씨는 고대 언어의 최고 전문가입니다. 언어 복원 수준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다른 한 명은 고고학자였다. 그는 고대 언어는 읽을 줄만 아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초빙된 건 언어 외에도 특별한 게 있어서였다.

“이 앨범은, 그 당시 악기를 완벽하게 재현해 녹음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정확히 적용했다는 겁니까?”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것까지 수정해 적용했습니다. 그동안 그 악기에서 설명하기 어렵던 몇 가지 문제의 정답을 보여줬습니다.”

“그럼 언어학자일 뿐만이 아니라….”

“이 사람은 고대 문화에 해박한 학자입니다. 언어에도 조예가 깊은 걸 보면, 그 지식은 악기에만 국한된 게 아닐 겁니다. 그리스의 고대 문화 전체에 조예가 굉장히 깊을 겁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당연히 최고 수준이겠죠.”

“그런데 그런 곡이 다섯 개입니다. 각각 다른 나라의 민요이고, 다른 네 곡도 악기를 수정해서 재현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김수선 씨의 넓고 깊은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김수선 씨가 한 게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이 곡의 녹음에 우리 그리스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물어봤습니다. 한국에서 제작자가 김수선 씨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수정 방향을 받아 알려줬다고 하더군요.”

선우현은 연주자 앞에서 김수선과 수정 방향을 의논할 때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통화하는 척하곤 했다. 혼자서 너무 오래 중얼거리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가끔 그렇게 했다.

고고학자가 말했다.

“그래서 김수선 씨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

기획사 사장 박대석이 선우현을 만났다. 박대석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말을 드려도 될지….”

“디지털 음반이 안 팔립니까? 그럴 수도 있죠.”

- 잘 팔릴 줄 알았는데!

박대석이 손을 흔들었다.

“안 팔리기는요? 불티나게 팔립니다. 특히 다섯 나라에서는 라디오 방송에도 자주 나갑니다.”

“그래요?”

“자기네 나라 고대 언어로 부른 고대 민요인 데다가, 노래 자체도 그 사람들한테는 익숙하고 좋잖습니까? 김수선 씨가 워낙 잘 부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나라에서는 김수선 씨의 인기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김수선이 웃었다.

- 훗. 그냥 심심풀이로 불렀을 뿐인데, 실력이 감춰지지 않네요.

“안 감췄잖아. 나한테 잔소리 엄청 하고 돈을 쏟아부어서 원곡 그대로 녹음했잖아.”

-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선우현이 박대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박 사장님은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박대석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정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우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떤 건으로요?”

“예? 어떤 건이라니요?”

“짐작 가는 게 하도 많아서요.”

“아, 그게. 협조 요청입니다. 그리스 정부에서 유물 관련해서 협조가 필요하다고, 우리 정부를 통해서 연락했습니다.”

선우현의 표정이 펴졌다.

“아아. 유물. 난 또.”

- 한국 정부에서 우리 선체를 눈치챈 건 아닐 줄 알았습니다. 카모플라쥬 시스템은 제가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거든요.

“난 촉진제나 포션을 보낼 때 쓴 강하 캡슐이 방공 레이더에 포착됐나 했지.”

박대석이 물었다.

“도대체 뭘 생각하셨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요?”

“그리스 대사가 김수선 씨와 만나고 싶다고….”

- 저를 보고 싶으면 위성궤도로 올라오라고 하세요.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불가능합니다.”

“역시 안 되겠죠? 그런데 저희가 정부, 그것도 문체부 요청을 딱 잘라 거절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음…. 제가 만나보면 되겠습니까?”

박대석의 표정이 확 펴졌다.

“그럼요! 선우현 씨가 직접 거절해주시면 그쪽에서도 납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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