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임파서블 미션
선우현의 옥탑방 건물 근처에 승합차가 나타났다. 그 차에는 네 명이 타고 있었다.
팀장이 물었다.
“건물 주변 상황은?”
근처 다른 건물에서 망원경을 든 팀원이 무전으로 보고했다.
- 타깃 건물 외부에는 경계할 만한 움직임이 없습니다.
“옥상의 상황은?”
- 건물이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주변에 관측 가능한 지점이 없습니다.
“특이 사항은?”
- 4층은 창문 외부가 가려져 있어 내부를 관측할 수 없습니다.
4층 창문에는 태양광 수집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는 내부 스마트 농장의 관측이 불가능하다.
- 3층 이하는 집이 비어있거나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계속 관찰하고 경계해라.”
- 알겠습니다.
팀장이 뒤쪽 짐칸에 앉아 있는 팀원에게 물었다.
“드론 준비 상태는?”
“저소음 버전으로 세팅했습니다.”
아무리 저소음 드론이라고 해도 한밤중에 날리면 소리가 안 들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대낮에 이곳에 접근했다.
팀장이 말했다.
“조용히 접근해서 옥상을 확인해.”
승합차의 뒷문이 스르륵 열렸다.
뒤에 타고 있던 팀원이 밖으로 한 걸음 나와 드론을 공중으로 휙 던졌다.
드론이 공중에서 프로펠러를 조용히 회전시켰다. 사람이 던졌기 때문에 이륙할 때의 소음은 없었다. 공중에서 날 때도 소음이 작았다.
“드론이 안정적으로 비행 중입니다.”
승합차 내부에는 VR 고글을 얼굴에 쓴 팀원이 앉아 있었다.
드론 조종을 맡은 팀원이 손으로 무선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조용히 고도를 높이겠습니다.”
***
선우현은 엠투에게 옥상과 4층 활력 토마토 관리를 맡겼다.
4층 스마트 농장은 자동화가 되어 있어서 전달받은 수치를 입력만 하면 유지된다. 엠투가 앞발과 발톱을 쓰면 키보드로 숫자 정도는 입력할 수 있다.
선우현은 처음에는 김수선이 불러주는 데이터를 종이에 적어 엠투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곧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엠투는 선우현의 귓속 통신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청력이 좋다. 선우현의 옆에 앉아 있으면 김수선이 불러주는 숫자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옥상에는 4층 같은 스마트 농장 설비가 없다. 그곳에서는 화분에 활력 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그동안 옥상 관리는 선우현이 손으로 직접 했다.
이제는 그 일을 엠투가 한다.
엠투가 앞발 두 개로 옥상 수도꼭지를 돌려 물뿌리개에 물을 담았다. 그런 후에 입으로 물뿌리개 손잡이를 물고 걸어가 활토 화분에 물을 주었다.
옥상에는 엠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엠투의 귀가 쫑긋했다. 드론 소리가 들렸다.
엠투가 입에 물고 있던 물뿌리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후에 드론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
드론 조종사가 보고했다.
“고도를 조용히 높이고 있습니다. 곧 옥상에 진입합니다. 옥상 난간 바로 앞에 뭔가 있습니다.”
팀장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사람인가?”
“아닙니다. 개…. 헉!”
엠투가 드론을 향해 점프했다.
조종사가 황급히 드론의 방향을 틀었다.
***
엠투의 점프 공격은 빗나갔다.
내부 구동계는 움직일 정도로는 수리됐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고쳐진 건 아니다.
현재 점프 능력으로는 빠르게 움직이며 고도를 높일 수 있는 드론을 잡기 어려웠다.
“피했….”
그런데 옥상에는 엠투만 있는 게 아니다.
옥탑방 지붕에 설치된 안티 버그 포탑이 비행체를 인식하고 레이저를 발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가 먼저 드론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를 날려버렸다.
“어? 시야가….”
당황한 조종사의 손가락이 흔들리면서 드론이 공중에서 크게 움직였다. 하지만 레이저보다는 느렸다.
안티 버그 포탑이 드론의 프로펠러를 레이저로 하나씩 저격해 파괴했다.
여섯 개의 프로펠러 중에 두 개가 날아갔다. 드론이 균형을 잃고 옥상 바닥으로 추락했다.
엠투가 달려들어 추락하는 드론을 콱 깨물었다.
경량 소재로 만든 드론의 몸통이 단번에 두 동강이 났다.
엠투가 반으로 쪼개진 드론을 와드득 씹어먹었다.
***
VR 고글을 끼고 드론을 조종하던 팀원이 비명을 지르며 고글을 벗었다.
“으악!”
“보고해!”
“드론이 추락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옥상에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그 개가 드론을 향해 점프해서….”
“그 정도는 피했어야지!”
“피한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피하는 데 성공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론 카메라가 나가더니 신호가 아예 끊겼습니다.”
“못 피했군.”
“앞발이나 다른 어딘가에 부딪혀 추락했나 봅니다.”
팀장이 인상을 썼다.
“젠장. 일이 어려워졌군. 그런데 비명은 왜 지른 거냐?”
“드론의 신호가 끊기기 직전에 괴물의 입에 씹히는 것 같은 와드득 소리가 나서….”
“개의 공격조차 피하지 못한 놈이 그걸 말이라고 해?”
“죄송합니다.”
다른 팀원이 물었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옥상에 드론이 떨어져 있을 거야. 개가 드론을 씹었을 수는 있지만 삼키지는 못했을 테니까.”
“회수해야 합니다.”
“대낮에 침투해서 드론을 회수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추락한 드론에 단서가 남아 있나?”
드론 조종사가 말했다.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흔한 드론을 사용했습니다. 저소음 처리 외에는 특별한 기능은 없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차이를 모를 겁니다.”
“그럼 일단 후퇴한다.”
“포기하는 겁니까?”
“옥상에 있는 개는 훈련받은 경비견이다. 그러니까 바로 반응했지.”
팀장이 위쪽을 보았다.
“게다가 저 옥상은 주변에서 관측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저 옥상에 있다.”
“그러면….”
“낮에는 안돼. 목격되기 쉬워. 밤에 다시 온다. 밤에는 드론이 아니라, 건물에 직접 침투한다.”
“알겠습니다.”
승합차가 그곳을 빠져나갔다.
***
선우현은 저녁때 옥탑방 옥상에 돌아왔다.
“엠투. 토마토는 잘 키웠냐? 물도 잘 줬고, 급속성장촉진제도 시킨 대로 잘 썼지?”
“멍!”
“그래. 네가 먹는 밥값이랑 금값은 해야….”
선우현의 발에 플라스틱 조각이 밟혔다. 그가 바닥을 보았다.
“이건 뭐지?”
그가 그 조각을 들어보았다.
“플라스틱?”
그런데 그 조각에 이빨 자국이 있었다.
그가 바닥을 보았다. 조각이 여러 개 흩어져 있었다.
“야. 엠투. 이게 뭐냐?”
“멍.”
“너 혹시 사고 치고 나서 모르는 척하는 거냐?”
“멍멍!”
“뭐가 아닌데? 단답형 보고기능 진짜 아쉽네. 수선아. 아는 거 있냐?”
- 옥탑방 옥상에는 엠투가 있으니까, 저는 오늘은 선체 유지보수에 집중했습니다.
“드라마 본 거 아니고?”
- 저도 쉬는 시간은 있어야지요.
“본 거 맞네.”
옥상 상황을 확인할 방법은 또 있다.
“CCTV 돌려봐야겠네.”
개인용 CCTV는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선우현은 그걸 사서 옥상에 설치해뒀다.
그는 옥탑방에 들어가 온종일 켜놓은 노트북을 가지고 나왔다. 그 노트북에 오늘 낮의 옥상 CCTV 영상이 저장되어 있다.
그는 옥상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 재생 속도는 64배속으로 조정했다.
고속 영상 속에서 엠투가 한가하게 어슬렁거리다가, 엎드려 있다가, 화분에 물을 주는 장면이 나왔다. 가끔은 4층에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선우현이 갑자기 키보드를 눌러 64배속 영상을 정지시켰다.
“어?”
그가 영상을 조금 앞으로 돌린 후에 0.2배속으로 느리게 재생했다.
“누가 옥상 쪽으로 드론을 띄웠네?”
- 선장님의 거점을 정찰하려는 놈이 있군요.
“엠투가 드론을 노리고 점프했…. 어떻게 이걸 놓쳤냐? 야. 엠투.”
“끼잉.”
“독립형 장거리 정찰견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냐? 똑바로 해라.”
“멍!”
“말은 잘해요.”
영상은 계속 재생됐다. 드론의 동체에서 불꽃이 몇 번 튀었다.
- 안티 버그 레이저 방어 포탑이 드론을 격추했습니다.
선우현이 자랑했다.
“수선아. 봐라. 내가 벌레만 잡으려고 포탑을 설치한 거 아니야. 침입자도 잘 잡잖아.”
- 아, 예.
“침입자가 또 올 수도 있으니까 레이저는 출력이 더 높은 제품으로 교체해야겠다.”
- 그러면 벌레를 잡을 때 레이저의 위력이 너무 강할 텐데요?
“출력 조절되는 레이저로 바꿔 달면 돼. 벌레는 약하게, 드론은 강하게. 그러면 딱 좋네. 컨트롤러에 그 정도 기능은 있잖아.”
- 선체 방어용 포탑의 컨트롤러인데 당연하지요.
영상은 추락한 드론을 엠투가 씹어먹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플라스틱 조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 알겠네. 야. 엠투. 너 이거 먹었냐? 너 진짜 개가 다 됐구나?”
“멍!”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 엠투는 자가 수리에 필요한 자재를 획득하려고 했나 봅니다.
“이거 먹어서 자재 문제가 해결될 거였으면 내가 전자제품을 잔뜩 사다 먹였지.”
이제 누가 드론을 날렸는지 알아봐야 한다.
“수선아. 이 드론을 멀리서 날리진 않았을 거야. 오늘 이 근처 확인은 했지.”
- 몇 번 보긴 했습니다.
“저장된 영상 비교해서 있다가 없어진 차가 있는지 확인해.”
잠시 후에 김수선이 보고했다.
-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차량 번호판은?”
- 머리 위에서 촬영하는 바람에 확인이 어렵습니다.
“그 차가 다시 오길 기다려야겠네.”
- 다시 올까요?
“그냥 옥상 구경이나 하려고 드론을 날렸겠어?”
- 당분간 옥탑방 주변 지역을 자주 확인하겠습니다.
***
옥탑방 건물 앞에서 철수한 팀이 회사로 돌아갔다.
그 회사는 멀쩡한 건물을 사용하고 간판도 걸려 있다. 영업 활동도 조금 한다.
그런데 그건 다 진짜 정체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다.
그 회사의 정체는 외국 정보국에서 한국의 기술을 빼내기 위해 심어놓은 산업스파이 조직의 거점이다.
위장회사의 사장이 인상을 썼다. 그는 외국 정보국의 간부다.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고?”
팀장도 정보국 소속 현직 스파이다.
“대낮에 침투하면 목격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드론을 쓸 거라며?”
“개조한 침투용 드론은 돌발상황으로 추락했습니다.”
“씁. 이번 미션은 본국의 기업이 윗선을 통해서 의뢰한 거다. 여기 걸린 게 꽤 크다.”
사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R 크림의 비밀은 반드시 알아내야 해.”
“오늘 밤에 침투하겠습니다.”
사장이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1팀 혼자 힘들면 2팀을 붙여주지.”
2팀이 작전 초반에 합류하면 성공했을 때 성과를 나누어야 한다.
“지금은 단서를 찾으러 가는 것뿐이니 지원은 필요 없습니다. 나중에 연구소 위치를 알아내면 그때 2팀을 데려가서 외곽 지원이라도 맡기겠습니다.”
“하긴. 민간인 관계자가 사는 집에 침투하는 것 정도야 뭐. 마음대로 해.”
***
그날 밤에 1팀이 탄 차량이 옥탑방 건물로 조용히 접근했다.
그들은 이미 비슷한 임무를 여러 번 성공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다들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팀장이 조용히 물었다.
“상황은?”
외부에 배치한 팀원이 보고했다.
- 건물 주변에 특이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접근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옥상은?”
- 옥탑방은 불이 꺼져 있습니다.
“주변 상황을 계속 감시해.”
팀장이 차에 타고 있는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부하는 세 명이었다.
“옥상에 진입하면 옥탑방 내부를 확인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한다.”
“연구소 위치에 관한 정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옥탑방에 대기하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조용히 제압해 위치를 알아내야지.”
“그런 건 제가 전문이죠.”
“아무리 밤이라 해도 외벽 침입은 노출될 위험이 있다. 정문으로 소리 없이 들어간다.”
“예.”
승합차 문이 조용히 열렸다. 네 명 다 얼굴에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1층 현관으로 접근했다.
1층 현관에는 비밀번호나 카드키로 출입하는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팀원은 미리 알아낸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팀원이 무광 처리된 작은 거울로 현관 안쪽을 확인한 후에 보고했다.
“CCTV 발견.”
“제거해.”
팀원이 오른손만 현관 안으로 집어넣고 CCTV를 향해 공처럼 둥근 물체를 던졌다. 물체는 공중에서 그물처럼 넓게 펴지며 날아가 CCTV에 달라붙었다.
“무력화했습니다.”
“진입해.”
네 명이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2층 계단도 무광 처리된 거울로 확인했다.
“계단에 CCTV 발견.”
“CCTV가 많은 걸 보면 역시 평범한 건물은 아니군. 제거해.”
두 번째 CCTV도 같은 방법으로 무력화됐다.
네 사람이 계단을 올라갔다.
선두에 선 남자가 계단 모퉁이를 돌아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2층 복도에서 선우현이 계단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얼굴에 시꺼먼 걸 뒤집어쓴 걸 보면, 도둑놈이로구나.”
선두의 팀원이 즉시 보고했다.
“건물 주민과 마주쳤습니다!”
팀장이 재빨리 지시했다.
“조용히 제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