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32화 (132/281)

132. 멍배우 III

영화에서 전시장이 나오는 장면은 오늘 중으로 다 찍어야 한다. 전시장 내부는 오늘 딱 하루만 촬영팀에게 개방됐기 때문이다.

영화 스태프들이 전시장 내부에 장비를 세팅했다.

원래라면 이 전시장 안쪽으로는 개를 데려올 수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날은 일부 공간에는 개를 데려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정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남미연이 엠투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토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 엠투도 보였다.

“흰둥아. 저 안에 너 있다.”

“멍!”

고 감독이 다가와 물었다.

“이 개는 품종이 뭡니까?”

남미연이 대답했다.

“시고르자브종.”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고 감독이 아는체했다. 그가 앞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이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도 같은 품종의 개가 나오는군요.”

남미연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오늘 전시된 그림 중에는 우리 흰둥이랑 똑같이 생긴 개가 몇 마리 더 있어.”

“화가들이 사랑한 유명한 품종이군요. 시고르자브종이면 프랑스 개입니까?”

“시골잡종.”

“응?”

“시고르자브종이 시골잡종이라는 말이라고. 시골에 가면 흰둥이처럼 생긴 개 많이 보였을 텐데?”

“아….”

“고 감독. 개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이 개는 똥개….”

“크르르.”

“어머! 지금 우리 흰둥이 무시해? 흰둥아. 듣지 마. 너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개야.”

***

촬영이 시작됐다. 남미연과 남자 주인공이 마주치는 장면이 진행됐다.

남자 주인공은 조금 전 카페에서 남미연이 커피를 뿌리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로 그런 건지 궁금해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몇 번 더 이어지며 관계가 진전된다.

엠투는 대본에 적힌 대로 두 사람 사이에서 움직였다.

박서윤이 선우현의 옆에서 말했다.

“엠투가 연기를 잘하네요.”

“똑똑하거든요. 일도 잘합니다.”

“그런데 왜 남미연 씨를 저렇게 잘 따르죠? 저한테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남미연 씨가 어릴 때 키우던 개하고 비슷하게 생겨서, 정을 많이 줘서 그런가 봅니다.”

- 비슷한 게 아니라 그 개라니까요.

“어머. 그렇구나. 나도 더 친해져야겠다. 개껌 같은 거 사다 주면 돼요?”

“엠투는 술을 좋아하는데.”

- 좋은 에너지원인 에틸알코올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요.

“네?”

“아닙니다.”

“술 말고 다른 건….”

“황금?”

- 금은 내부 부품 자가 수리에 사용되는 소재이지요.

박서윤이 살짝 웃었다.

“술 이야기는 농담이셨구나.”

***

박서윤은 먼저 회사로 돌아갔다.

고 감독이 선우현에게 다가왔다.

“선우현 씨. 흰둥이를 내일 촬영 때도 데려와 주십시오. 아니, 영화 끝날 때까지 쭉….”

“내일부터는 다른 개 알아보시죠.”

“예? 아니, 이미 촬영을 했는데 어떻게….”

“흔하게 생겼으니까 다른 개를 대역으로 써도 관객은 눈치 못 챌 겁니다.”

“저렇게 연기 잘하는 개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다른 개를 씁니까? 안됩니다. 배 째십시오.”

“아. 그걸 원하셨구나. 그렇다면야….”

남미연이 얼른 끼어들었다.

“잠깐! 선우현 씨! 진짜로 남의 배를 째면 안 돼요! 나 이 영화 꼭 찍어야 하니까 고 감독이 살아있어야 해요!”

“난 엠투를 데리고 다닐 시간이 없는데.”

- 시간 많으시던데요.

남미연이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앗! 그럼 내가 데리고 다닐게요! 흰둥이가 촬영하는 날은 내가 데리러 가서 같이 다니다 도로 데려다줄게요.”

“뭐, 그렇다면야.”

“그러다 가끔은 우리 집에도 데려가고….”

“없던 이야기로 합시다.”

“아뇨! 꼭 도로 데려다줄게요. 약속.”

“CF를 찍게 되면?”

“내가 또 CF의 여왕이잖아요. 흰둥이가 CF를 찍으면 내가 데려가야죠!”

“그럽시다.”

“꺄아. 고마워요!”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이 오천 년 동안 저를 부려먹으셔서 알고 있긴 했습니다만, 본인은 놀고 남 부려먹는 기술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자기가 하고 싶다잖아.”

***

선우현은 이튿날 R 크림 제조 공장을 방문했다.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공장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저번하고 같은 첨가제를 가져오셨지요?”

“그렇죠.”

“여기다 넣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직원이 말만 하고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지난번과는 행동이 달랐다.

선우현이 직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직원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구경 좀….”

레드 포션용 주입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안 됩니다만? 가시죠?”

“아, 네.”

직원이 뻘쭘한 얼굴로 돌아갔다.

선우현이 주변을 보았다. 공장 CCTV는 기계에 가려져 있어서 그가 뭘 넣는지는 찍히지 않는다.

“R 크림 제조법이 궁금한가?”

- 최종훈 사장이 알아본 바로는, R 크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화장품 회사들이 연구하는 중이랍니다.

“그런다고 이 지구의 기술로 레드 포션을 합성할 수는 없는데 말이야.”

- 그러게 말입니다.

선우현이 크림 재료에 레드 포션을 섞었다. 그런 후에 제조 공정을 마저 진행하게 했다.

포션은 순식간에 다른 재료와 섞여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오늘 이 공장 사람들이 퇴근하고 나면 여기 한 번씩 확인해라. 도둑놈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 R 크림은 제작이 끝나서 선장님이 가져간 후일 텐데요?

“혹시 모르잖아.”

- 알겠습니다.

***

그날 밤에 세 사람이 공장에 침입했다. 그들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백팩을 하나씩 매고 있었다.

공장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조용히 열어주었다.

침입자 중에 팀장이 물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습니다. 나만 일이 있다고 하고 남았으니까 안심해도 됩니다.”

“CCTV도 껐습니까?”

“물론이죠.

침입자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그들을 R 크림을 만든 기계 앞으로 데려갔다.

팀장이 물었다.

“첨가물로 뭘 넣는지는 봤습니까?”

“보려고 했는데, 경계하면서 쫓아내서 그만….”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뭘 넣는지 보지 못하면 약속한 돈이 줄어든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래도 첨가물의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건 알아냈습니다. 통 같은 걸 가져오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면 역시 고농축 첨가물인가?”

“아마 그렇겠죠.”

팀장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기계에 묻어 있는 거 모두 긁어서 가져와.”

***

김수선이 보고했다.

- 공장에 침입한 놈들이 빠져나왔습니다.

“기계에 묻어 있는 거라도 긁어가려고 왔겠지. 그걸 검사하면 뭔가 더 나올까 싶어서.”

- 그런 식으로 뭔가 알아낼 수 있으면 지구연합에서 벌써 옛날에 레드 포션을 합성했겠지요.

“그놈들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감시해. 분명히 회사나 연구소로 갈 테니까.”

- 이미 추적 중입니다.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현재 공장 상황을 설명했다.

최종훈은 흥분했다.

- 감히 R 크림을 노리다니! 제가 그 공장 사장님에게 직접 연락해서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하겠습니다. 직원이건 침입자건 전부 콩밥을 먹여야죠.

“그 공장 사장님이 그러려고 할까요?”

- 그 공장은 원래 경영난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R 크림을 만든 곳이라는 소문이 나서 일감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공장 가동률도 높고 사장님도 한숨 돌렸습니다.

그 사장은 오늘은 다른 일감은 안 받고 기계를 깨끗이 청소해 두었다. 다른 회사의 로션과 R 크림이 조금이라도 섞이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작업은 선우현이나 최종훈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사장이 알아서 진행했다.

최종훈이 설명했다.

- 이 일 때문에 앞으로 R 크림을 거기서 안 만든다고 하면, 그 공장은 겨우 살아났다가 다시 망하는 거지요. 아마 당장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

선우현이 태양 백화점 이사 유소율을 만났다.

유소율이 반가워했다.

“어머어. 선우현 씨. 우리 자주 좀 만나요. 시간 맞추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요즘 일이 좀 있어서요.”

“혹시 작곡 새로 해요? 나 요즘 하늘에 핀 꽃 매일 듣는데 노래가 진짜 좋아요.”

“그건 그냥 한 번 만들어본 건데.”

- 지구연합의 히트곡을 날로 드셨죠.

“이 지구에서도 좋아할 만한 노래를 내가 찾아내고, 빠진 부분도 내가 채워 넣었잖아.”

선우현이 유소율에게 말했다.

“물론 신곡도 준비 중입니다.”

- 그것도 제가 데이터를 복원하는 중이죠.

“어머. 기대된다. 이번에도 구하니 씨가 부르나요?”

“아니요. 다른 가수가 부를 겁니다.”

- 그게 바로 접니다.

유소율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와아. 다른 가수라니. 잘됐다.”

“뭐가 잘됐습니까?”

“네? 아니에요.”

유소율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우리 백화점에….”

“R 크림 2차분이 다 만들어져서요.”

유소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녀가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었다.

“놀란 게 아니라 환호하는 거예요! 당장 고객에게 연락을 돌려야….”

유소율은 멈칫했다. 중요한 걸 아직 듣지 못했다.

“혹시 우리 백화점에 판매를 맡기시는 물량이….”

“800개?”

선우현은 1차 때는 그가 100개, 최종훈이 200개를 가지고 태양 백화점에는 700개를 넘겼다.

그런데 물량이 바뀌었다.

“백 개나 늘었어! 고마워요!”

유소율이 선우현을 껴안을 듯이 두 팔을 뻗었다.

선우현이 옆으로 쓱 비켰다.

유소율이 뻗었던 팔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이건 고마워서 그런 거예요. 진짜예요.”

“네. 압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저를 위해서 100개를 더 주는 거예요?”

“내가 1차에서 따로 빼놓은 100개가 아직 많이 남아서.”

“네?”

선우현이 지원위성에서 내려와 알게 된 사람은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 R 크림을 나눠줄 만한 사람은 더 적었다.

“더 챙겨봐야 남을 것 같아서 그냥 100개 더 판매를 맡기는 겁니다.”

“아. 네….”

***

태양 백화점은 R 크림이 백화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존 VIP 고객에게 연락했다.

이번에는 모든 물량을 VIP에게 쓰지는 않았다. 일부 물량은 추첨 방식으로 할당하기로 했다.

이튿날 유소율이 선우현을 다시 만나 자랑했다.

“우리 백화점 IT 팀에서 R 크림 추첨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지금 신청받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훗. 매진됐다는 전화일 거예요.”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네. 네? 홈페이지가 터져요? 빨리 조치해요! 이벤트 하다가 욕먹을 일 있어요? 예산 신경 쓰지 말고 당장 어떻게든 해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하아. 이러면 곤란한데.”

선우현이 물었다.

“홈페이지 서버가 터졌나 보군요.”

“이벤트 신청자가 갑자기 몰려서요. 백화점 홈페이지에 이벤트 팝업 하나 띄운 거 외에는 광고를 전혀 안 해서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몰랐어요.”

“그러면 2차분도 다 팔리긴 하겠네요.”

“파는 게 문제인가요? 난리가 났는데.”

유소율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무슨 소리를 하려고요?”

“R 크림 3차 생산을 좀 당겨 주면 안 될까요? 아니면 더 많은 양을 생산하시거나.”

“원료가 언제 손에 들어올지 알 수 없습니다.”

레드 포션은 지원위성의 에너지에 여유가 생겨야 새로 준비할 수 있다.

“그러면요. 우리 백화점에서 그 원료 구하는 거 도와주면 안 될까요?”

김수선이 말했다.

- 보급품으로 채운 위성 로켓 한 대만 여기로 쏴주면 되겠군요. 우리 선체의 비행 궤도에 딱 맞춰 쏴야 하고, 인공위성이 아니라 보급품을 보내는 이유를 로켓 회사에 설명해야 하고, 위성이 궤도 상에서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게 정보 조작도 해야 하겠죠.

“백화점의 능력으로는 못 구합니다.”

“아…. 백 년 묵은 산삼이라도 필요한가 보네요.

“그리고 R 크림 생산에 사용하는 영양물질이 활력 토마토 생산에도 쓰는 거라서, 크림 생산량을 늘리면 토마토 생산량이 줄어듭니다만?”

“어머. 그건 안 되죠. 그럼 활력 토마토 이벤트라도 좀….”

김수선이 말했다.

- 엠투가 4층 스마트 농장을 관리하면서 활력 토마토 생산량이 좀 늘었습니다. 이벤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럼 활토는 오십 개 정도?”

“앗! 오십 개나! 선우현 씨. 제가 반해도 돼요?”

“다섯 개로 줄일까 보다.”

“어머. 농담이에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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