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28화 (128/281)

128. 다빈치 개

최종훈의 동생 최민영이 르네상스 미술전이 열린 예술의 전당 로비에서 박서윤과 마주쳤다.

“어머. 박서윤 씨.”

“최민영 씨?”

두 사람은 태양 백화점 활력 토마토 행사 때 만났다.

최민영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을 좋아해서 이곳을 방문했다. 박서윤은 박길성 회장이 비서실에 입장권을 공짜로 뿌린 덕분에 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여기서 마주친 건 순전히 우연이다.

그들은 기왕 만난 김에 같이 르네상스 미술을 관람했다.

두 사람이 중세 귀족을 그린 그림 앞에 섰다. 귀족의 옆에는 하얀 개가 서 있었다.

박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개 저쪽 그림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그녀가 방금 보고 지나온 그림을 가리켰다.

“저기 저 개 말이에요.”

화가인 최민영이 설명했다.

“이 개는 여기와 저기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얘가 나오는 그림은 더 있어요.”

“같은 개가요?”

“당연히 비슷하게 생긴 개겠죠. 이 그림하고 저 그림만 해도 그려진 시기가 오십 년은 차이가 나는데요.”

“옛날 귀족들은 이런 하얀 개를 좋아했나요?”

“얘는 귀족 그림에만 나오는 거 아니에요. 다리 그림이나 이삭 줍는 그림에도 나와요.”

“그렇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키웠대요. 직접 그린 그림이 있거든요.”

“나도 이런 개 한 마리 키웠으면 좋겠다.”

“비슷하게 생긴 개는 많을 걸요?”

박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딱 봐도 시고르자브종이니까요.”

“네? 시고르자브요?”

“시골잡종이요.”

***

선우현이 시골잡종처럼 생긴 엠투를 옥탑방 옥상으로 데려갔다.

엠투의 현재 구동계 상태로는 계단을 오르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그가 들고 올라가야 했다.

그는 옥상 바닥에 엠투를 내려놓은 후에 말해다.

“이거 배를 갈라서 수리할 수 있으면 좋은데.”

“키이잉.”

- 선장님. 배를 가르면 수리할 방법은 있고요?

“없지. 그래서 아쉽다고.”

- 자가 수리장치가 작동하는지부터 확인하시죠.

그 장치의 작동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는 지원위성에 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직접 물어보면 된다.

“엠투. 너 자가 수리가 가능한 상태냐?”

“낑!”

“되나 보다. 그럼 단답형 음성보고 기능도 수리가 가능하냐?”

엠투의 목에는 정찰 결과를 단어 몇 개로 보고하는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

“키잉.”

“적. 위험. 매복. 그 정도만 할 수 있어도 되는데.”

“키잉.”

“넌 되는 게 없구나.”

- 선장님. 엠투에 장착된 자가 수리장치는 기본 동력계와 구동계의 물리적 손상, 그리고 위장용 부품, 가죽과 털 등을 회복시키는 기능만 있습니다. 음성보고나 통신 기능처럼 컴퓨터 칩이 필요한 장비는 수리가 안 됩니다.

“열심히 수리해도 몸만 튼튼해지고 끝이네. 그러면 그냥 개랑 다른 게 뭐야?”

- 그러게 말입니다.

“멍!”

“너는 당분간 멍 금지라니까. 수선아. 예비 부품은 전혀 없냐? 교체용 통신 부품 같은 거 없어?”

- 엠투를 다시 찾게 될 줄 몰라서, 예비 부품은 전부 선체 수리에 사용했습니다.

선우현이 엠투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자가 수리밖에 없는데…. 뭘 먹여야 하지?”

- 자가 수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가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마모되거나 파손된 기계 부품을 수리하려면 금속을 충분히 먹여야 합니다.

“엠투. 너를 수리하려면 당장 뭐가 필요하냐? 고기? 쇠? 알루미늄?”

- 대체 부품 제작에 좋은 금속은 역시 황금이죠.

“금을 쓰면 원래 성능이 안 나잖아.”

- 대신에 자가 수리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엠투. 너 황금 좀 먹을 줄 아냐?”

“낑!”

“이거 입맛이 비싼 녀석이네.”

선우현은 범죄조직들을 쓸어버릴 때 금괴를 꽤 챙겼다.

선우현이 창고 대신 쓰는 공간에서 손가락만 한 골드바를 하나 가져와 내밀었다.

“자.”

엠투가 골드바를 덥석 물었다. 그런 후에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그걸 재료로 최소한 걸어 다닐 수는 있을 정도로는 구동계를 수리해 봐라.”

옥상 출입문 벨 소리가 났다. 선우현이 리모컨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박서윤이 옥상으로 올라오며 말했다.

“밑에 선우현 씨 차가 있어서 와봤…. 어머. 강아지다!”

박서윤이 엠투에게 다가갔다.

“얘는 짖지 않네요?”

“목에 문제가 좀 있어서 당분간은 못 짖습니다.”

“아프구나.”

“조만간 나을 겁니다. 그런데 박서윤 씨는 개를 좋아합니까?”

“그럼요. 키울 여건이 안 돼서 못 키웠지만요. 아! 이 건물은 동물 키워도 되는 거였어요?”

“나는 됩니다. 이 건물은 내 거니까.”

“아. 그렇죠.”

그녀가 엠투를 보며 말했다.

“그림에서 본 개하고 똑같이 생겼네. 신기해라.”

잠시 후에 신나리도 옥상에 올라왔다.

“앗! 강아지다!”

신나리가 엠투에게 달려와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와. 개 착해.”

“너도 개 좋아하냐?”

“좋아하죠. 여기서는 동물을 못 키우지만 본가에는 강아지가…. 잉? 여기 동물 못 키우는데 어쩌려고요? 들키면 옥상 오빠 쫓겨날지도 몰라요.”

“건물주 바뀌었잖아. 옥상에서는 키워도 돼.”

“와. 좋겠다.”

박서윤과 신나리는 엠투를 쓰다듬다가 내려갔다.

선우현이 물었다.

“야. 엠투. 좋냐?”

“낑?”

“너 꼬리 흔들더라? 이거 진짜 완전히 개가 다 됐어. 네가 독립형 장거리 정찰모듈이라는 건 기억하고 있냐?”

“킹!”

“그래. 잘 기억하고 빨리 구동계부터 수리해라. 앞으로 4층 스마트 농장 관리는 너한테 맡길 거니까?”

“키잉?”

“쉬운 일이야. 내가 지원위성에서 무전으로 받은 일정을 종이에 적어주면 넌 그걸 기억했다가 그대로 입력만 하면 돼. 너 발톱으로 키보드 정도는 누를 수 있잖아?”

“끼잉?”

“지구연합이 너 만들 때 쏟아부은 예산이 얼마인데, 그런 단순 작업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이게 어디서 놀고먹으려고. 앞으로 4층 농장은 네가 관리해라. 아니다. 옥상 토마토도 네가 다 관리해라.”

- 선장님. 이제는 그런 일조차 안 하시게요?

“어.”

- 혹시 그러려고 엠투를 그렇게 열심히 찾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 역시 선장님이십니다.

“수선아. 4층 만들 때 말이야. 엠투가 있으면 4층 일을 맡길 수 있다고 말한 건 원래 너였다.”

- 제가 왜 그랬을까요? 아니다. 결국 제 말을 듣고 엠투를 찾으러 가신 거네요? 이거 다 제 덕분입니다.

“역시 김수선.”

- 선장님한테 배웠습니다.

***

구하니는 원래 톱가수다. ‘하늘에 핀 꽃’은 그녀가 일 년 반 만에 발표한 신곡이다.

그 노래는 KMTV의 음악방송에서 뮤직비디오로 공개됐다. 그녀가 그 방송에 나와 직접 노래도 했다.

그 정도면 신곡 홍보는 어느 정도는 됐다.

거기다 노래가 워낙 듣기 좋았다.

구하니의 신곡은 음원 차트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갔다.

차트 1위를 차지한 날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했다.

- 하늘에 핀 꽃이 1등 한 거 보셨죠?

“아뇨.”

- 네? 아니, 왜요?

선우현이 옥상에서 엠투를 보며 말했다.

“개가 말썽을 부려서 이 녀석 좀 케어해 주느라고 바빠서요.”

- 네? 개 키워요? 새끼 강아지예요?

“옛날에 키우던 녀석인데 이번에 데려왔습니다.”

- 아. 그렇구나. 그럼, 저기…. 강아지 구경하러 가도 돼요?

“이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들러요.”

- 지나갈 일이 곧 생길 거예요.

선우현이 전화를 끊은 후에 말했다.

“지구연합의 노래가 이 지구에서도 통하는구나.”

-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니까요.

“내 선곡이 죽였던 거지.”

- 그 곡은 원본의 40%만 찾아냈습니다. 나머지는 선장님의 기억에 의존해 일부를 복원했고, 그마저도 기억나지 않아 적당히 채워 넣었잖습니까?

“나한테도 작곡 능력이 있는 거겠지.”

- 그건 아니고요.

“어쨌든 통했으면 됐지. 곡 인세 모아서 우주왕복선 사자.”

- 그 돈으로는 택도 없는 거 아시죠?

“대박 나면 날개 하나 값이라도 나올지 모르잖아.”

- 더 많은 노래로 열심히 모으면 꼬리날개는 가능하겠네요. 에너지를 아껴서 곡 하나 더 복원해야겠습니다.

“하니 씨한테 곡을 또 주게? 네가 어쩐 일로 알아서….”

- 제가 부르려고요.

“응?”

- 저도 계속 고대 민요만 부를 수는 없잖습니까?

“돈을 벌려면 그럴 시간에 R 크림을 더 만드는 게 나을 텐데?”

- 선장님. 제 노래 실력 못 믿으십니까?

“네 실력은 믿는데, 가수가 방송출연을 하지 않으면 노래가 좋아도 인기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어. 하니 씨의 1등도 TV에 뮤비 띄우고 노래하고 다 해서 나온 성과잖아.”

- 일단 저질러보려고요. 안 뜨면 말고요.

“그렇게 막 저지르는 건 어디서 배웠냐?”

- 당연히 선장님한테 배웠죠.

“R 크림부터 만들고 나서 해라.”

- 훗. 조금 전에 R 크림용 레드 포션의 복원이 끝났습니다.

“어? 생각보다 빠른데?”

- 지난번에 포획한 우주 쓰레기에서 에너지를 뽑아냈거든요.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네가 부를 곡은 내가 골라줄게. 포션도 빨리 보내라. R 크림 바로 생산하게.”

***

구하니가 1위를 한 기념으로 음악 공개방송에 나갔다. 그 공개방송에는 다른 가수들도 출연했다.

선우현도 입장권을 받아 행사장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추첨이 아니라 작곡가용으로 나온 표를 사용했다.

김수선의 노래를 정식으로 발표하려면 기획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가 오늘 여기 온 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오늘 음악방송에는 아이돌 그룹 은하소녀가 출연한다.

선우현은 대기실 복도에서 은하소녀의 소속사 폴라시의 사장 박대석과 마주쳤다.

“찾았다.”

“어? 선우현 씨?”

박대석이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여기서 다시 뵙네요. 하하하.”

“생각보다 더 반가워하시니까 좋네요.”

“전에 제가 연락처를 못 받아서. 일단 제 명함부터 다시 좀….”

“아. 예. 제가 명함이 없어서. 번호 찍어드릴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박대석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박대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그, 김수선 씨 말입니다. 너튜브에 고대 민요를 다섯 곡이나 발표하셨던데요. 참 활발하게 활동하시네요.”

“시간 쪼개서 굳이 그걸 하더라고요.”

“참 부지런하십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전에 제가 김수선 씨의 노래를 디지털 싱글로 만들어드릴 수 있다고 한 거 말입니다. 다섯 곡이나 되면 이제 미니 앨범으로 가도 되겠는데요?”

“오호….”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이 말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주네요?

“수선아. 곡 복원 얼마나 했냐?”

- 틈날 때마다 흩어진 메모리를 조사해서 지구연합의 히트곡을 벌써 20%나 복구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많아 보이잖아. 딱 한 곡의 20%면서.”

- 계속 작업해서 50%는 넘겨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박대석을 잘 꼬드겨 보십시오.

“다른 기획사는 네 정체를 묻지 않고 음반을 내줄 리 없으니까, 여기밖에 없지.”

선우현이 물었다.

“박 사장님. 김수선의 고대 민요 시리즈. 그거 내고 싶으시다는 거지요?”

박대석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죠. 너튜브에만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노래들입니다.”

“수선이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데도요?”

박대석의 기획사 폴리시는 그런 걸 따질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여쭤보지 않겠습니다.”

“그럼 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대석이 얼른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우현이 본론을 꺼냈다.

“거기다 신곡도 하나 추가하고 싶은데.”

“고대 민요 말입니까?”

“아니요. 그냥 신곡.”

박대석의 표정이 환해졌다. 선우현은 ‘하늘에 핀 꽃’의 작곡가로 등록되어 있다.

“선우현 씨의 신곡이군요! 그건 따로, 디지털 싱글로 확실하게 발매하겠습니다!”

“어떤 곡인지 들어보지도 않고요?”

“두 분 실력이야 확실하니까 믿어야지요!”

“좋을지 나쁠지는 곡이 나와봐야 아는데….”

김수선이 의욕을 보였다.

- 지구연합에서는 히트한 곡이니까 통할 겁니다.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거지. 1920년대 히트곡을 지금 낸다고 해서 통한다는 보장은 없는데, 그 노래는 아예 히트한 세계가 다르잖아.”

- 어차피 양쪽 다 지구입니다.

“지구인 건 맞는데 역사도 다르고 시대도 달라.지구가 처한 상황은 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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