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27화 (127/281)

127. 흰둥이

선우현이 엠투를 들고 캠핑장으로 갔다.

엠투는 겉모습은 개와 똑같다. 그런데 지금은 흙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서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홍은성이 말했다.

“앗! 형님. 짐승을 사냥하신 겁니까?”

“이거 개다.”

“네?”

꼬맹이는 잔뜩 혼난 후에 시무룩한 얼굴로 걸어왔다. 그러다 엠투를 보자마자 곧장 표정이 밝아졌다.

“와! 강아지다!”

꼬맹이 엄마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수현아! 들개일지도 모르니까 만지지 마!”

남미연이 물었다.

“살아있는 거죠?”

“일단은요.”

“그럼 샤워장에서 씻겨요. 온수 나와요. 지금 그 상태로는 어디 다쳤어도 알아볼 수도 없겠네요.”

그 캠핑장에는 제대로 만든 샤워장이 있다. 선우현이 엠투를 데리고 샤워장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샤워호스를 사용해 엠투의 몸에 묻은 흙을 씻어냈다. 수압이 강한 물을 뿌리자 흙이 빠르게 씻겨나갔다.

“오염 방지 기능이 제법 남아 있나 보다. 잘 씻긴다.

- 손상된 부분이 있습니까?

“구멍 나서 부품이 외부로 노출된 곳은 없어.”

- 미처 발견하지 못한 구멍을 통해 내부로 물이 들어가면 곤란할 텐데요?

“괜찮아 보여서 물로 씻기는 거야. 진짜야.”

- 아. 네.

“비누도 쓸까?”

- 엠투의 외부 소재는 어지간한 화학물질과 접촉해도 견딜 수 있습니다. 방어 시스템이 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면 말이죠.

“그것도 확인할 겸 비누도 좀 쓰자. 흙은 씻겼는데 묵은 때가 잘 안 사라진다.”

선우현이 비누까지 칠해가며 엠투를 씻겼다. 흙과 오염물질이 씻겨나가자 하얀 털이 보였다.

“털이 하나도 안 빠졌어.”

- 엠투는 지구연합이 탐사대 지원을 위해 예산을 대규모로 투입해 만든 독립형 장거리 정찰모듈입니다. 위장용 털이 손상되면 내부에서 생성해 교체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가동할 에너지도 없는데 털 재생에 쓸 자원과 에너지가 어디 있냐? 그냥 30년 동안 안 빠지고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된 거야.”

- 털의 품질이 생각보다 좋군요.

“엠투를 만들 때는 비리로 예산을 빼먹은 놈이 없나 보다.”

선우현이 엠투를 다 씻은 후에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았다. 그런 후에 샤워장 밖으로 들고 나갔다.

꼬맹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환성을 질렀다.

“와! 강아지가 하얗게 변했다!”

“깨끗하게 빨았거든.”

남미연이 말했다.

“개를 설마 비누로 씻긴 건 아니….”

그녀의 눈이 커졌다. 입도 크게 벌렸다.

그녀가 후다닥 달려와 엠투의 모습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확인했다. 그녀가 갑자기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흰둥아!”

엠투가 남미연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끼잉.”

남미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흰둥이를 드디어 찾았어!”

선우현이 그 감동에 초를 쳤다.

“삼십 년 전에 잃어버렸다면서요. 개는 삼십 년이나 살지 못합니다.”

“아니, 그렇지만….”

“남미연 씨가 어릴 때 키운 그 개가 아닙니다.”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그 개 맞는데요?

엠투는 개처럼 생겼지만 진짜 개는 아니다. 탐사대 지원을 위해 만든 독립형 장거리 정찰모듈이다. 삼십 년이 아니라 삼백 년이 넘는 기간도 버틸 수 있다.

선우현이 말했다.

“엠투를 넘겨줄 순 없잖아. 왜 삼십 년이나 이 상태 그대로인지 설명할 수도 없고.”

남미연이 눈가를 소매로 닦았다.

“그러네요. 우리 흰둥이일 수가 없네요. 너무 똑같이 생겨서 착각했어요.”

“흔하게 생겼으니까요.”

- 사악하십니다.

“네가 여기 있었으면 나보다 더했을 거야.”

남미연이 엠투를 보며 걱정했다.

“얘가 어디 아픈 거예요?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배가 고파서 그런 겁니다.”

“고기 많아요!”

남미연이 고기를 가지러 뛰어갔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엠투의 기능 중에 고장 난 게 많은데, 에너지 추출장치는 제대로 작동할까?”

엠투가 탐사대와 같이 있을 때는 에너지를 직접 공급하면 된다.

그런데 엠투가 단독 장거리 정찰을 하는 동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럴 때는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정찰 현장에서 직접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엠투의 내부에는 에너지 추출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그 장치는 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방이나 탄수화물 등을 분해해 에너지를 뽑아낸다.

에너지 추출을 위한 원료는 진짜 개처럼 입을 통해 투입해야 한다.

- 엠투와는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에너지 추출장치의 상태는 확인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남미연이 고기를 가져왔다.

“이거 먹여요. 흰둥이는 고구마 좋아했는데, 고구마 없어요?”

홍은성이 얼른 말했다.

“제가 지금부터 굽겠습니다!”

선우현이 구운 고기를 한 조각 집었다. 고기는 이미 식어 있었다.

“시험해보자.”

선우현이 식은 고기를 엠투의 입에 넣었다. 입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남미연이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먹는다! 먹고 있어!”

엠투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 추출장치가 가동했다. 그 장치는 획득한 고기에서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수리를 위한 물질을 조금씩 추출했다.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엠투의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선우현이 말했다.

“효과가 있는데?”

- 내부 에너지 추출장치는 가동하는군요. 그것까지 망가졌으면 복구가 어려웠을 텐데요.

“삼십 년을 완전 슬립 모드도 아니고 주변에 반응하는 상태로 버텼잖아. 입 주변을 지나가는 벌레라도 먹으면서 에너지를 확보했겠지. 그래서 난 가능할 줄 알았어.”

- 지금 되는 거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신지?

“눈치챘냐?”

선우현이 엠투를 보며 말했다.

“술도 좀 먹이면 좋은데.”

- 에틸알코올은 좋은 에너지원이죠.

남미연이 발끈했다.

“미쳤어요? 개한테 술을 먹이게?”

“술 좋아하는데.”

“안 돼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반죽음 상태로 보이는 개한테 술을 먹이면 인성을 의심받는다.

선우현이 할 수 없이 고기만 좀 더 먹였다.

엠투가 이제 입을 제대로 움직이며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남미연이 옆에 앉았다.

“나도 먹일래요!”

“아무나 주는 고기를 먹지는 않….”

엠투는 남미연이 주는 고기도 잘만 받아먹었다.

“끼잉.”

남미연이 엠투를 쓰다듬었다.

“진짜 우리 흰둥이가 돌아온 거 같아. 어떻게 이렇게 목소리까지 똑같아? 우리 흰둥이 낑낑댈 때 소리는 좀 특별하거든요.”

남미연이 고기를 몇 조각 더 먹였다. 덕분에 엠투는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확보했다.

엎드려 있던 엠투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어! 내가 준 고기 먹고 힘이 나나 봐!”

일어나기는 했는데 내부에 손상된 부품이 많아 제대로 걷지는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남미연이 선언했다.

“내가 데려갈게요.”

선우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지구연합의 독립형 장거리 정찰모듈 엠투를 남의 손에 넘길 수는 없다. 동물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 개 내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방금 주웠잖아요.”

“사실입니다. 그 녀석을 잃어버려서 찾으려고 여기 온 겁니다.”

“거짓말!”

“증거를 보여드리지.”

선우현이 말했다.

“엠투. 오른쪽 앞발 앞으로 들어.”

엠투가 앞발을 앞으로 들었다.

“봤습니까? 내 개니까 말을 잘 듣는 겁니다. 다른 사람 말은 전혀 듣지 않….”

남미연도 말했다.

“흰둥아. 앞발 도로 내려.”

엠투가 얼른 앞발을 내렸다.

“봤죠? 내 말을 더 잘 듣는 거. 우리 흰둥이 맞아요.”

“어….”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엠투가 내 말을 무시하고 남의 말을 듣는다.”

- 명령 수행 시스템도 고장 났나 봅니다.

꼬맹이가 다가왔다.

“엠투! 앞발 들어!”

반응이 없었다.

“흰둥아! 앞발 들어!”

역시 반응하지 않았다. 엠투는 그냥 꼬맹이를 한 번 돌아보고 명령은 무시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아무나 말해도 듣는 건 아닌가 본데, 남미연 씨 말은 듣네?”

남미연이 말했다.

“흰둥아. 하나 더하기 하나는?”

“낑낑.”

“잘했어! 둘 맞아!”

남미연이 당당해졌다.

“봐요! 이거 우리 흰둥이가 잘하는 거예요! 더하기 빼기를 할 줄 알아요!”

홍은성이 고구마를 불에 넣고 돌아왔다가 그 말을 듣고 조그맣게 말했다.

“낑낑 정도면 우연 아닌가? 칠 곱하기 팔 정도는 물어봐야 낑끼리낑낑….”

남미연이 홍은성을 째려보았다. 홍은성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남미연이 주장하는 건 또 있었다.

“흰둥이는 모르는 사람 말은 안 들어요. 내 말은 듣는데 꼬맹이 말은 안 듣는 거 봤잖아요.”

“내 말은 듣는데.”

“아. 그건….”

선우현이 남미연이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했다.

“개는 삼십 년을 못 산다니까요. 엠투는 남미연 씨의 옛날 그 개가 아닙니다.”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남미연의 사진 속 그 개 맞습니다만?

남미연ᅟᅳᆫ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알았다! 흰둥이의 새끼구나!”

“응?”

“그거네! 그래서 흰둥이랑 똑같이 생긴 거네!”

선우현이 지시했다.

“엠투. 내 옆으로.”

엠투가 비틀거리면서 선우현 쪽으로 이동했다. 남미연이 얼른 말했다.

“흰둥아. 나한테 와!”

엠투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놔두면 남미연에게 갈 기세였다.

선우현이 다시 지시했다.

“엠투. 명령이다. 내 옆으로 와라.”

“흰둥아. 저런 말 무시해!”

엠투가 고개를 번갈아 돌렸다. 하지만 ‘명령’은 그냥 지시하는 것보다 강제력이 높다.

엠투가 선우현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섰다.

선우현이 선언했다.

“엠투는 내가 잃어버린 개입니다.”

- 그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지상에 보냈다가 위성 통신 기능이 망가지고 추적도 불가능해져서 잃어버렸으니까요.

남미연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아요. 나도 흰둥이 아닌 거 아는데요.”

“끼이잉.”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선우현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가끔 보러 와도 됩니다.”

“진짜요?”

“어쨌든 엠투는 지금 치료가 필요하니까, 내가 데려갈 겁니다.”

그녀가 밝아진 얼굴로 제안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동물병원에 데려갈게요!”

“원래 관리하던 동물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럼 거기 같이 가요!”

“거절합니다.”

“아, 왜!”

김수선이 그 이유를 말했다.

-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

선우현의 오토바이는 지난번에 채연서와 최민영을 구출할 때 부서졌다. 창문 높이에서 공업사 안으로 던져넣어 혼자 날뛰게 했으니 오토바이의 각종 부품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차를 타고 다닌다. 그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갔다.

김수선이 말했다.

- 그래도 엠투를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그 계곡을 수색하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요.

“내가 남미연 씨의 어릴 때 사진을 딱 봤을 때부터 그 개가 엠투라는 느낌이 왔다니까. 넌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 저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었습니다.

선우현이 차를 가지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남미연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엠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엠투는 남미연에게 몸을 기대고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수선아. 이상하다. 엠투가 꼬리를 친다.”

- 옛날부터 친화력이 좋기는 했습니다.

“개의 모습으로 만든 장거리 정찰모듈이, 진짜 개 같아졌네.”

- 그러게 말입니다.

남미연이 엠투의 몸에 귀를 대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상하다. 어디서 무슨 시계 소리 같은 게 나는 느낌인데? 너 설마 시계 삼킨 건 아니지?”

선우현이 얼른 다가갔다.

“이제 데려가야겠습니다.”

남미연이 발끈했다.

“왜 벌써 데려가요! 흰둥이를 얼마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삼십 년만인데!”

“남미연 씨가 어릴 때 키우던 흰둥이 아니라니까요?”

- 그 흰둥이 맞는데요.

“물론 흰둥이일 수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전부 다 똑같은데!”

“빨리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하니까, 넘겨요.”

남미연이 심통이 난 표정으로 선우현을 보다가 말했다.

“내가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선우현이 엠투를 차에 태웠다.

남미연이 말했다.

“흰둥이가 괜찮아지면 연락해요. 안 괜찮아도 연락해요.”

“그러지요.”

“역시 연락 안 할 거 같아. 번호 찍어주고 가요.”

선우현이 휴대폰 번호를 찍어주었다. 남미연은 다시 전화를 걸어서 맞는 번호인지 확인했다.

선우현이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엠투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야. 엠투.”

“끼잉?”

“그동안 고생했다.”

“멍!”

“너 고기 먹더니 자가 수리가 좀 된 거냐? 이제 짖는 소리를 낼…. 아이고.”

- 왜 그러십니까?

“방금 이 녀석 입에서 스파크 튀었다. 엠투. 넌 당분간 멍 소리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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