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엠투 III
선우현은 아이가 캠핑장에서 숲으로 진입할 만한 곳을 하나씩 점검했다. 그러다 작은 발자국을 찾았다.
“여기서 숲으로 들어갔으려나….”
확실한 건 아니다. 꼬맹이가 그쪽으로 들어갔다 해도 이미 다른 쪽으로 나왔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근처는 울창한 숲이 너무 많았다.
“오늘 찍힌 발자국이긴 한데….”
원래 꼬맹이들의 활동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잘한다. 그 발자국은 조금 전이 아니라 한두 시간 전에 찍혔을 수도 있다.
아이 엄마가 꼬맹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다급해졌다.
“확인은 해야겠다.
선우현이 숲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수선아. 이 주변이 얼마나 보이냐?”
- 그 숲은 나무와 잎이 너무 무성합니다. 지면을 확인하려면 관측 범위를 좁혀 식별력을 높여야 합니다.
관측 범위를 좁히면 그 넓은 숲을 다 볼 수가 없다.
“지면은 내가 확인할 테니까 너는 우주 쓰레기를 계속 추적해. 선체에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잖아. 지상은 틈틈이 들여다보고.”
- 알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가능하시겠습니까?
선우현이 숲을 수색하며 말했다.
“오염지역에 침투할 때는 말이야. 작은 흔적만 보고도 적의 위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해. 내가 예전에 이런 흔적 찾는 거 진짜 잘했다.”
- 그런 분이 지금은 좀 느리십니다?
“너무 오랜만에 수색해서 그래. 그래도 이렇게 찾다 보면 예전 감각이 곧 돌아오겠지.”
- 역시 지구연합의 에이스 출신이시군요.
선우현이 숲을 10분간 더 조사했다. 문제가 생겼다.
“음…. 감각이 안 돌아온다?”
- 사실 선장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안 믿을 줄 알았어.”
그렇다고 숲을 그냥 나갈 수도 없었다.
이 숲에서 아이가 돌아다니면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몇 개 나왔다. 추적 가능한 연속 흔적은 아니지만, 뭔가 나왔다는 게 중요했다.
선우현이 계속 숲을 수색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췄다.
“절벽이다.”
- 앞쪽 지형이 급격해 낮아지긴 합니다.
“그건 말을 해줬어야지.”
- 우주 쓰레기 추적에 집중하는 중인 데다가, 오염지역 수색 많이 해보셨다길래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때 감각이 안 돌아온다니까.”
선우현의 앞에 있는 건 절벽과 급경사의 중간쯤 되는 지형이다. 수직 절벽까지는 아니지만, 경사가 워낙 급해서 사람이 내려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꼬맹이가 설마 여기 떨어지진 않았겠…. 음?”
- 왜 그러십니까?
절벽 아래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 아래에 뭔가 있다.”
선우현이 위에 서서 아래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느낌이 묘하네.”
- 다람쥐 아닐까요?
“그런 가벼운 느낌은 아니야.”
- 뱀?
“그렇게 위험한 느낌도 아니고.”
- 꼬맹이일까요?
“그러면 보여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선우현이 꼬맹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수현아!”
아래쪽에서 곧바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저 여기 있어요.”
그런데 그 소리는 선우현이 보고 있는 아래쪽이 아니라 좀 더 옆쪽에서 들렸다.
선우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쪽보다는 경사가 낮지만 그래도 급경사인 지역이 보였다.
그 급경사 중간에 높이가 낮고 잎이 무성한 나무와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었다.
“꼬맹이가 저 사이에 있어서 안 보였구나.”
선우현이 방금 꼬맹이를 부른 소리를 듣고 멀리서 아이 엄마가 외쳤다.
“우리 수현이 혹시 거기 있어요?”
“예! 찾았습니다!”
선우현이 대답한 후에 옆으로 이동했다.
“이쪽은 못 내려갈 정도는 아니네.”
보통 사람이라면 내려가기 위험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지만, 선우현은 보통이 아니다. 그가 경사지대를 저벅저벅 걸어서 내려갔다.
구덩이 바로 위에는 작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그래서 바로 위에서는 구덩이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선우현이 나무를 옆으로 젖혔다. 꼬맹이가 구덩이에서 위를 보고 있었다.
“미연 이모 친구인 삼촌?”
선우현이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하냐?”
꼬맹이가 손을 뻗어 위쪽을 가리켰다.
“저 위에서 미끄러졌는데요. 못 올라가겠어요.”
선우현이 아예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안 다치게 잘 미끄러졌구나.”
“저 미끄럼 잘 타요.”
“너 설마 재미있으려고 일부러 미끄러진 건 아니지? 그러다 못 올라가게 된 건 아니지?”
꼬맹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위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아이 엄마가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수현아!”
“너 이제 큰일 났다.”
“여기서 안 나가면 안 될까요?”
“응. 안돼.”
선우현이 꼬맹이를 왼팔로 안고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경사지대의 바닥에 발을 박으며 위로 걸어 올라갔다. 경사가 급했지만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위태롭게 보였다.
“밧줄! 밧줄 가져와!”
꼬맹이의 아버지가 외쳤다.
“차에 있어! 내가 갔다 올게!”
선우현이 꼬맹이를 왼팔로 안고 급경사를 계속 올라갔다. 몸의 각도를 조정해야 할 때는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나 풀을 슬쩍 잡았다.
선우현이 급경사를 걸어 올라간 후에 꼬맹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꼬맹이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와아! 재미있….”
아이의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야! 김수현! 너 미쳤니?”
꼬맹이가 얼른 남미연 뒤로 숨었다.
“이모. 엄마가 화내.”
남미연이 꼬맹이의 뒷덜미를 잡고 앞으로 끌어냈다.
“넌 오늘 혼 나는 게 맞아.”
꼬맹이가 엄마의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갔다.
선우현이 손과 옷을 가볍게 털었다.
남미연이 걱정했다.
“밧줄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어야죠. 사람이 위험하게 왜 그래요?”
홍은성이 옆에서 편을 들었다.
“에이. 형님한테 이 정도는 껌이죠.”
“선우현 씨가 등산을 잘하나?”
“아니요. 싸울 때는 날아다니는 분이니까, 겨우 이런 언덕 정도야 껌이라는 거죠.”
“선우현 씨, 싸움 같은 거 하는 사람이었어?”
“모르셨구나. 형님이 섬에서 저 구해주셨는데.”
“섬? 혹시 마약조직이 촬영팀을 습격했을 때 홍은성 씨가 삽 들고 싸운 그 섬?”
홍은성은 그때 싸우려던 모습이 방송에 좋게 나온 덕분에 그 이후에도 출연 기회를 자주 얻었다. 덕분에 에이투원도 방송 기회를 좀 더 잡았다.
만약 그때 선우현이 나서지 않았으면 홍은성도 다치고 촬영팀과 연예인들도 다치고 방송도 없어질 뻔했다.
홍은성이 자기 일처럼 자랑했다.
“네. 거기서 마약조직을 파바박 때려잡은 분이 형님이거든요.”
남미연이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작곡가 아니었어요?”
“작곡은 어쩌다 한 번 해본 거라니까요.”
“아니, 무슨 어쩌다 만든 곡의 수준이….”
남미연이 손으로 이마를 짚은 후에 말했다.
“알았어요. 캠핑장에 가서 술 마시면서 이야기해요.”
“먼저 가요. 난 확인할 게 있어서 그것만 보고 갈 테니까.”
선우현은 사람들을 내려보내고 나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꼬맹이가 있던 곳이 아니라 처음에 선우현이 발견한 절벽이다.
- 왜 그러십니까?
“저기 뭔가 있었어.”
- 다람쥐일 거라니까요.
“흙을 들썩이는 느낌이었는데.”
- 두더지겠지요.
“내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 같았거든.”
- 먹이를 노리는 삵인가?
“내가 먹이는 아니지.”
- 그건 그렇네요.
“평소라면 나도 무시하고 넘어갔을 텐데, 우리가 오늘 여기 온 이유가 있잖아.”
남미연이 어릴 때 잃어버린 개가 엠투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그걸 확인하려고 계곡을 수색했다.
- 지금 계신 곳은 수색 지역인 계곡에서 좀 떨어져 있습니다만?
“그건 아는데,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잖아.”
그곳의 지형이 절벽에 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직 절벽은 아니었다. 경사가 워낙 급해 사람이 장비 없이 내려가긴 어렵지만, 풀과 작은 나무들은 자라고 있었다.
선우현이 튼튼해 보이는 막대기 두 개를 주운 후에 절벽을 내려갔다. 그러다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막대기를 흙에 푹 박아 몸을 고정했다.
그렇게 15m쯤 내려간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여기인데….”
- 뭐가 있습니까?
“어. 뭐가 묻혀있다.”
선우현이 한쪽 막대기를 벽에 박고 다른 막대기로 흙을 살살 파보았다.
“어….”
- 왜 그러십니까?
“흙투성이로 된 뭔가가 보이는데, 그게 내 위치를 따라 살짝 움직인다.”
- 더 파보십시오.
선우현이 막대기로 흙을 조금 쓸어냈다.
“이거 개의 머리처럼 생겼는데? 내 쪽으로 움직인 게 이거네.”
- 흙 속에 개가 있다고요?
“어.”
- 개는 두더지가 아닙니다. 흙 속에서 살아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엠투네.”
- 독립형 장거리 정찰모듈 M2네요.
선우현이 자랑했다.
“내가 느낌이 왔다고 했잖아.”
- 살살 파십시오. 상태가 안 좋을 겁니다.
선우현이 막대기는 치우고 손으로 흙을 팠다. 어느 정도 흙을 파내자 개의 머리가 완전히 드러났다.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진짜 엠투다.”
- 선장님. 엠투와 통신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위성 통신 기능은 망가졌잖아.”
- 팔찌형 중계기를 이용한 근거리 통신도 연결이 안 됩니다.
“통신 기능은 완전히 나갔나 보다.”
선우현이 흙을 좀 더 치웠다.
엠투는 급경사에 얕게 묻혀있었다.
“위에서 굴러떨어지다가 여기서 멈췄나 보다.”
왜 이 장소에서 탈출하지 못했는지는 짐작이 갔다.
“구동계의 상태가 안 좋은데 에너지까지 떨어져서 이 경사를 올라갈 수는 없었을 거야. 그래서 그냥 이 상태로 동작이 정지한 거야. 시간이 지나면서 위에 흙이나 낙엽이 계속 쌓였겠지.”
- 엠투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구동계 자체가 망가졌습니까?
선우현이 엠투의 코를 건드렸다. 코 주변이 반응했다.
“지금은 에너지 보존을 위한 슬립 모드 상태야. 반응이 약하지만 있긴 있어. 구동계는 위로 올려서 확인해봐야겠다.”
- 엠투를 재가동시켜서 같이 올라갈 수는 없겠군요.
“그럴 동력이 있으면 여기 이렇게 묻혀있지 않았겠지.”
엠투는 중형견 크기라서 한 손으로 드는 건 무리였다. 내부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어서 뒷덜미만 잡고 끌고 올라갈 수도 없었다.
선우현이 엠투를 절벽에서 파내 왼팔 옆구리에 끼었다. 그런 후에 급경사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바닥을 팍팍 찍고 절벽에 막대를 박으며 마치 뛰듯이 벽을 타고 올라갔다.
선우현이 순식간에 언덕 위로 올라가 땅바닥에 엠투를 내려놓았다.
“통신은 다 나갔는데, 내부도 파손됐을까?”
- 손상이 심하긴 할 겁니다. 만약 복구 불가능한 상태이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분해해서 버드형 정찰드론의 제어장치로 쓸까?”
엠투의 몸이 움찔 흔들렸다. 주둥이에서는 작은 소리가 났다.
“끼이잉.”
“어? 이놈 완전 슬립 모드는 아닌데? 살아있는데?”
- 분해한다니까 반응한 겁니까?
“그러네. 이거 지상에 오래 있더니 개가 다 됐구나. 눈치를 볼 줄 알아.”
- 엠투에는 단답형 음성 보고기능이 있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엠투. 상황 보고해.”
“끼잉.”
“안 된다. 기계가 억지로 움직이는 소리만 들린다.”
- 그건 기계 소리가 아니라 위장용 개소리 발생 기능일 겁니다.
“그 장치는 안 부서졌나 보다.”
- 통신 기능만 망가진 게 아니라 단답형 음성 보고기능도 나간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간단한 단어 몇 개 정도는 소리로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수선아. 엠투를 수리할 부품이 남은 게 있냐?”
- 엠투의 예비 부품은 이미 모두 선체 수리에 사용했습니다. 남는 부품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지상에서는 엠투의 배를 갈라….”
“끼잉!”
“배를 갈라도 부품을 교체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부품이 있어도 수리는 못 하겠다.”
- 그래도 위장용 개소리라도 작동하잖습니까?
“딱 그것만 작동해.”
-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옥탑방에 데려가야지. 임무를 수행하다 이렇게 됐는데 버릴 수는 없잖아.”
- 통신이 끊기고 임무도 중단한 지 200년이 지났습니다만?
“수선이가 차가운 구석이 있다니까. 여기 묻힌 건 겨우 30년 전이야.”
- 조금 전에 배를 갈라서 부품만 뽑겠다고 하신 분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거야 완전히 망가진 줄 알고 그렇게라도 살리려고 한 거지. 두뇌 시스템이 살아있는데 그럴 수야 있나.”
선우현이 중형견 크기의 엠투를 옆구리에 다시 끼었다.
“일단 가서 좀 씻겨야겠다.”
선우현이 언덕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에 김수선이 말했다.
- 엠투는 30년쯤 전에 계곡에 떨어졌다더니 왜 그곳에서 발견된 걸까요?
“여기는 남미연 씨가 어릴 때 가족들과 자주 놀러 오던 곳이야. 계곡에서 벗어나서 이곳으로 돌아왔나 보다.”
- 남미연은 왜 그때 엠투를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엠투가 자가 수리기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겠지. 가동이 겨우 가능해진 후에는 여기까지 오는데 남은 에너지를 다 소모했을 테고.”
- 그래서 슬립 모드에 들어갔군요.
“완전 슬립 상태는 아니었어. 경계 모드는 켜져 있다가 꼬맹이가 근처에 떨어지니까 깨어난 거야. 남미연 씨가 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이가 딱 저 꼬맹이 정도였잖아.”
- 그 상태에서 선장님이 오시니까 엠투가 반응했군요. 선장님은 절벽 위에서 그걸 보신 거고요.
“근거리 통신망도 나갔지만, 근처에 있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나 봐.”
선우현이 활동이 거의 정지된 엠투를 보며 말했다.
“아마 그렇게 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