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엠투 II
접이식 의자가 하나뿐이라 선우현은 서 있었다. 그래서 남미연도 의자에 다시 앉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선우현 씨는 여기 진짜 무슨 일이에요?”
“저쪽에 가면 좋은 캠핑장이 있다고 해서요.”
“뭐예요. 그거 방금 내가 해준 말이잖아요.”
“그러게요.”
남미연은 선우현을 보면서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외모는 분명히 연하인데 어쩐지 연상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란 말이야.’
그녀가 남들 앞에서는 체면 때문에 하지 못했던 웃음을 보여주며 물었다.
“훗.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요?”
“농담이 심하시네.”
“어머. 정색하기는. 나 얼굴도 건강도, 그리고 마음도 아직 이십 대인데.”
“양심 없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네요.”
- 그래도 선장님보다 오천 살이나 어린데, 양심은 선장님이 더 없는 거 아닐까요?
“내가 활동한 시간만 놓고 보면 나보다 백오십 살쯤 어린 거야. 오천 살 아니라고.”
- 그거나 그거나죠.
남미연은 당당했다.
“나 새 영화에 28살로 나오는 거 알잖아요. 그게 그냥 가능하겠어요? 얼굴이 28살로 보이니까 가능하죠.”
“동안이라 좋겠습니다.”
그녀가 동안이기는 하지만 평소에도 28살로 보이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게 하려면 메이크업과 R 로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
그래도 그녀는 당당했다.
“당연하죠. 좋아요.”
“나도 동안이라 좋습니다.”
- 선장님은 생명유지장치의 미처 몰랐던 추가 효과 덕분에 동안이 되셨죠.
남미연이 물었다.
“그러면 캠핑장으로 갈 거예요?”
선우현이 계곡을 돌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 와서 엠투를 찾아봤는데 성과가 없었다.
“밥이라도 먹고 나서 좀 더 돌아다녀야겠네요. 먹을 건 넉넉하게 있습니까? 난 고기가 좋은데.”
“뭘 좀 아시네. 캠핑은 역시 고기죠. 많이 가져왔으니까 실컷 먹어도 돼요.”
선우현이 접이식 테이블을 접어서 들었다.
남미연은 접이식 의자를 챙겼다.
두 사람은 캠핑장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남미연이 제안했다.
“캠핑 좋아하면 가끔 와도 돼요. 선우현 씨도 캠핑장 손님으로 받아줄게요.”
“봐서요.”
캠핑장은 가까웠다. 선우현이 그곳을 보고 감탄했다.
“대충 만든 줄 알았는데 상당히 좋네요.”
남미연이 자랑했다.
“당연하죠. 난 좋은 것만 쓰니까요.”
캠핑장은 그리 넓지 않았다. 대신에 필요한 시설은 다 있었다. 샤워시설은 아예 건물을 지어놨다.
남미연이 설명했다.
“샤워시설은 저 안에 있어요. 여기는 연예인이 자주 오니까 노출된 샤워장은 곤란해서 따로 지었어요.”
“진짜 돈 많이 들었겠네.”
“나 남미연이라니까요?”
캠핑장에는 남미연 외에도 세 팀이 더 있었다.
한 팀은 남미연의 친구 가족이었다.
그 집 꼬맹이가 선우현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씩씩하네.”
그 가족이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이 많았다.
“고기가 많다더니, 저 고기였구나.”
남미연은 이번에도 당당했다.
“쟤한테 캠핑비 대신에 밥을 책임지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자 배우 두 명이 온 팀도 있었다. 남미연이 선우현을 소개했다.
“구하니 씨의 이번 신곡 있잖아. 하늘에 핀 꽃. 그 곡 작곡가님이셔.”
“아! 저 그 노래 정말 좋아합니다!”
“저희도 고기 구울 건데 여기서도 좀 드세요!”
마지막 팀은 이제 막 도착해서 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 팀에서 남자 한 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하늘에 핀 꽃이면, 선우현 작곡가님?”
“작곡가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고요.”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SNY 실장 최혁권입니다.”
SNY는 구하니의 친구인 가수 천호성의 소속사다.
“아. 예.”
“저기, 저도 명함을 좀….”
“명함이 원래 없어서요.”
“아. 하긴 처음 데뷔하셨으니까….”
남미연이 끼어들었다.
“최 실장. 여기서 영업하기 있기 없기?”
“명함만 드린 겁니다. 명함만.”
“그것도 하지 마. 다들 쉬러 온 사람들이잖아.”
“저는 저 친구들을 데려다주러 들른 거라서 곧 갈 겁니다. 쉬러 온 거 아니니까 명함 정도는….”
“하지 마.”
“넵.”
최혁권이 순순히 물러났다.
선우현이 말했다.
“단호하시네.”
“여기가 프라이빗 캠핑장이라서 연예인이 온다고 했잖아요. 여기서 영업하는 거 허용하면 불편해서 못 오는 사람 많아져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명함 금지. 연락처 교환도 금지예요.”
“그거 마음에 듭니다.”
“그러면 선우현 씨도 종종 이용해요.”
“공짜?”
그녀가 선우현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용료는 R 크림으로 내는 건 어때요? 그럼 내가 팍팍 쏠게요.”
“여기서 영업금지라는 말을 캠핑장 주인이 어기네요.”
“이거 다 내 거니까 난 그래도 돼요. 훗.”
꼬맹이가 옆쪽에서 외쳤다.
“엄마! 미연 이모 연애한다!”
“고개 돌려. 못 본 척해. 쟤도 결혼해야지.”
남미연이 반박했다.
“야! 그런 거 아니야!”
선우현은 남미연의 친구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다.
“고기 그렇게 굽는 거 아닌데.”
남미연이 말했다.
“그럼 직접 굽던가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선우현이 집게를 넘겨받고 고기를 정성을 다해 구웠다.
그는 손이 빠르고 눈도 좋은 데다가 열에너지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태우는 게 하나도 없었다. 화력은 눈대중으로 가늠해도 온도계로 본 것처럼 정확했다.
선우현이 새로 정성을 다해 구운 고기를 맛본 꼬맹이가 환성을 질렀다.
“우와아! 진짜 맛있다!”
꼬맹이의 감탄한 목소리가 다른 팀도 불러들였다. 배우 팀 두 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저희도 좀 같이….”
“고기랑 숯 가져오면 끼워줍니다.”
“여기 있습니다!”
술도 나왔다. 꼬맹이만 빼고 모두 술을 곁들였다.
SNY 소속 가수 팀도 슬그머니 다가와 합류했다.
가수가 말했다.
“저희는 조공으로 꽃등심을 가져왔습니다.”
“이분들 예의가 있네!”
“그렇죠? 하하하!”
다들 술과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꼬맹이만 술이 없었다.
꼬맹이는 불만이 생겼다.
“엄마. 나도 그거 마실래.”
“이건 어른들만 마시는 거야.”
“나도 빨리 어른 됐으면 좋겠다.”
선우현이 가방에서 진공 텀블러를 꺼냈다. 차갑게 식힌 토마토 주스가 들어있었다.
“넌 이거 마셔라. 토마토 주스다.”
“에이. 난 오렌지 주스가 더 좋은데.”
아이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가 토마토 주스는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럼 뭐 할 수 없….”
꼬맹이가 컵을 가져왔다.
“미연 이모 친구니까 맛은 봐줄게요.”
“아이고. 참 고맙다.”
선우현이 컵에 주스를 조금 따라주었다.
꼬맹이가 활력 토마토 주스 맛을 살짝 보더니 환성을 질렀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어요!”
“맛은 다 봤는가?”
꼬맹이가 얼른 두 손으로 컵을 내밀었다.
“더 주세요!”
선우현이 아예 텀블러를 넘겼다.
“이거 너 다 마셔라.”
“와아! 삼촌 최고!”
꼬맹이가 텀블러를 받아갔다.
아이 엄마는 당황했다.
“우리 애가 토마토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건 왜….”
“맛있어지는 마법을 걸었거든요.”
“진짜 배우고 싶네요. 그 마법.”
남미연이 종이컵을 꼬맹이에게 내밀었다.
“이모도 조금만 줘. 맛이나 보게.”
“음…. 알았어요.”
꼬맹이가 토마토 주스를 따라주었다. 그런데 진짜 조금만 줘서 주스가 종이컵 바닥에 살짝 깔렸다.
“이러면 진짜 맛만 봐야겠다.”
그녀가 종이컵을 입에 대고 맛을 살짝 보았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그녀는 이 맛을 안다. 그녀가 선우현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저거, 활력 토마토로 만든 주스예요?”
“네.”
“아니. 그 귀한 걸 애한테 막….”
“남미연 씨는 돈 많다고 자랑하더니 뭘 그 정도로 그럽니까?”
“활토는 돈만 가지고는 구할 수 없잖아요.”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꼬맹이가 홀짝이는 텀블러를 보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애들 거는 빼앗아 먹는 거 아닙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요. 그냥 본 거예요.”
기획사 SNY의 실장 최권혁은 원래 오늘 캠핑 멤버가 아니다. 소속 가수를 데려다주려고 잠깐 들렀을 뿐이다.
그는 고기만 얻어먹고 남미연과 선우현에게 인사한 후에 떠났다.
남미연이 물었다.
“최 실장이 차를 몰고 갔는데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돌아가지?”
SNY 소속 가수가 말했다.
“친구가 오기로 했습니다.”
고기를 더 먹고 술도 마시는데, 차가 한 대 캠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아이돌 에이투원의 멤버 홍은성이 내렸다.
“나님 등장! 촬영이 늦게 끝나서 좀 늦었다. 앗! 내가 없는데 벌써 고기를 굽….”
홍은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 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어?”
남미연이 웃었다.
“훗. 이놈의 인기란. 난 정말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연예인이라니까.”
홍은성이 달려와 선우현을 향해 폴더 인사를 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야. 그러다 머리카락이 고기에 닿을라.”
“형님이 왜 고기를 굽습니까? 제가 굽겠습니다!”
“너 고기 잘 굽냐?”
“잘 먹….”
“젓가락 들고 앉아.”
“네!”
남미연이 머쓱하게 웃었다.
“가수라서 작곡가한테 인사한 거였네.”
홍은성은 당황했다.
“네? 형님 작곡도 하세요?”
남미연은 먼저 온 가수 팀은 개인적으로 안다. 그래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홍은성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다.
“뭐예요? 몰라요? 그럼 왜 선우현 씨한테 인사한 거예요?”
“그거야 제가 평소에 참 존경하는 형님이라….”
“존경한다면서 선우현 씨가 구하니 씨 신곡 작곡가인 건 왜 몰라요?”
“헉! 형님! 하늘에 핀 꽃을 진짜 형님이 쓰셨습니까?”
“그냥 어쩌다 써본 거야.”
“우리 에이투원도 곡 하나만 주세요!”
“고기도 못 먹고 싶냐?”
“아뇨.”
김수선이 투덜댔다.
- 그 맨땅에 헤딩하는 작업을 또 하라고요? 저 바쁩니다.
선우현도 같은 생각이다.
“곡 그거 한 번 써봤는데 힘들더라고.”
김수선이 흩어지고 손실된 메모리 조각들 사이에서 곡 데이터 40%를 찾아내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선우현도 나머지 60%를 채우느라 머리에 쥐가 날 뻔했다.
“작곡은 함부로 할 게 아니더라. 역시 작곡가가 돈을 버는 건 다 그럴 만해서였어.”
남미연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잠깐만요. 하늘에 핀 꽃이 처음 만들어본 노래였어요?”
“곡 발표한 게 그거 하나인 거 보면 당연히 알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 누가 그렇게 생각해요? 수없이 만들어보다가 그중에 제일 좋은 걸 발표한 줄 알지.”
“난 아닌데.”
홍은성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저희한테도 어쩌다 쓰는 곡 하나만 주세요!”
“힘들었다니까.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어.”
“창작의 고통이란 게 원래 그렇죠. 그러니까 곡 하나만. 저희가 곡이 나빠서 못 뜨고 있거든요?”
“은하소녀보다는 너희 곡이 낫던데.”
홍은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곡이랑 비교하시면 좀….”
SNY 소속 가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저도 형님으로 모셔도 될까요?”
“곡 안 줄 건데?”
“그럼 형으로.”
“은성아. 네 친구 쫓아내라. 슬슬 고기가 아까워지고 있다.”
“꽃등심은 저희가 가져왔는데….”
“그게 제일 맛있어서 벌써 다 먹어버렸으니까, 이제 아쉬울 게 없네?”
남미연이 선우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선우현 씨는 재미있는 분이에요.”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그건 아닌 듯. 남미연 미친 듯.
꼬맹이의 엄마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리 애가 어디 갔지?”
SNY 소속 가수가 말했다.
“아까 저기서 돌아다니면서 놀던데요.”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꼬맹이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뒤늦게 당황했다. 꼬맹이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수현아!”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고기나 구워 먹을 때가 아니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니며 꼬맹이를 찾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꼬맹이 어디 있는지 아냐?”
- 지금 선체의 비행 궤도에 획득 가능성이 있는 우주 쓰레기가 접근하고 있어서, 저는 그걸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지상은 지금 확인했습니다만, 그 꼬맹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관측 카메라 영상은?”
- 카메라도 조금 전까지 우주 쓰레기 추적에 사용했습니다. 지상은 녹화된 게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꼬맹이를 찾아봐. 거기서 관측 안 되는 곳이 어디야?
- 선장님 앞쪽에 있는 숲은 울창해서 지면이 보이지 않는 지점이 많습니다.
“그러면 내가 숲에 들어가서 수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