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엠투
M2는 지구연합이 탐사대의 현장 지원을 위해 만든 지상형 정찰 장비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통신이 끊기고 위치 추적도 불가능해졌다.
“이 사진에 찍힌 개가 엠투일 수 있을까?”
- 아니요. 엠투와 겉모습만 비슷한 개일 겁니다.
김수선이 괜히 그렇게 판단한 게 아니다.
- 엠투의 연결이 끊긴 곳은 유럽입니다. 그때 이미 통신 모듈이 완전히 망가지고 구동계는 원래 성능을 절반도 내지 못하던 상태였습니다.
“엠투는 에너지와 자원 획득을 통한 자가 수리기능이 있잖아.”
M2는 단독 임무 수행이 가능한 지상형 장거리 정찰 장비다. 목적지와 정찰 목표를 지정해주면 대상 지역을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다.
초기에 내장된 에너지만으로는 그렇게 오래 활동할 수 없다. 임무 수행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은 현장에서 획득해야 한다.
M2에는 그 기능을 하는 장비가 내장되어 있다. 소형 장비라 에너지 전환 효율은 형편없이 낮지만, 그래도 그 장비 덕분에 단독 장거리 정찰이 가능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엠투가 자가 수리기능을 이용해 고장 난 부분을 스스로 고친 거 아닐까?”
- 자가 수리기능이 만능은 아닙니다. 지상에서 수집한 자원을 사용해 일부 부품만 수리 가능합니다. 예전에도 통신 모듈은 수리하지 못했습니다.
선우현이 사진을 보았다.
“엠투랑 많이 닮았는데.”
- 그렇게 생긴 개는 시골에 가면 흔합니다. 지구연합에서 엠투를 만들 때 일부러 이질감이 없는 외형을 선택했으니까요. 당연히 아닐 겁니다.
***
남미연은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답게 촬영에 필요한 테스트를 순식간에 마쳤다. 본 촬영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녀가 선우현의 옆에 앉았다.
“내가 연기하는 거 봤어요?”
옥상에 올라가서 김수선과 이야기하고 오느라 못 봤다.
“잘하더군요.”
“내 청춘 로맨스 영화를 위해 팍팍 밀어주고 싶죠?”
“알아서 잘하겠죠.”
“쳇.”
이번에는 선우현이 물었다.
“개 좋아합니까?”
“당연히 좋아하죠.”
“지금 키우는 개는?”
김수선이 말했다.
- 설마 엠투겠습니까?
남미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데 키우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는 키웠나 보던데.”
선우현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촬영하는 동안 남미연 씨가 어떤 분인지 검색하다 보니 이 사진이 나와서요.”
“아. 흰둥이다. 이거 진짜 옛날 사진인데.”
“압니다. 남미연 씨가 꼬맹이일 때의 사진이니까.”
“흰둥이 때문에 안 키우는 거예요. 강아지를 잃는 걸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요.”
김수선이 말했다.
- 그거 보십시오. 사진 속 개는 진짜 개입니다.
“아. 그렇구나.”
“이 사진을 찍은 날이 그날이에요. 흰둥이가 나를 살려주고 죽은 날.”
“네?”
남미연이 옛날 일을 설명했다.
“이날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계곡에 놀러 갔거든요. 그러다 제가 계곡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질 뻔했어요. 그때 우리 흰둥이가 날 구하러 달려왔어요.”
“어…. 그래서요?”
“내 옷을 물고 계곡 위로 끌고 올라갔죠. 그런데 날 계곡 위로 올려놓더니, 힘이 빠져서 자기가 계곡에 떨어졌어요.”
남미연이 옷소매로 눈가를 찍었다.
“아. 화장 다 지워지겠다.”
“그래서 찾았습니까?”
“찾아봤죠. 진짜 그 계곡을 열심히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어요.”
남미연이 말했다.
“흰둥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이제 개는 못 키워요.”
“음…. 흰둥이는 강아지 때부터 키운 개인가요?”
“아뇨. 주인 없는 개였어요. 그냥 따라오길래, 집에 데려왔다가 키우게 됐죠.”
“혹시 예방주사는?”
“그때는 그런 거 없이도 그냥 키우던 시절이니까요.”
“흥미롭군요.”
“네? 어느 부분이요?”
“아닙니다. 이 개가 밥은 잘 먹던가요?”
“네. 뭐든 안 가리고 다 잘 먹었어요. 그리고 진짜 똑똑했어요.”
남미연은 어렸을 때 키우던 개 자랑을 십 분쯤 늘어놓았다. 그러다 본 촬영이 준비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R 크림 이야기 더 해야 하는데, 흰둥이 이야기만 했네요. 내가 정신을 좀 놓았나 봐요.”
남미연이 본 촬영을 하러 갔다.
선우현이 사진 속에서 개의 모습만 확대해 보며 말했다.
“수선아. 개가 아이를 물고 계곡을 오를 수 있나?”
- 개가 중형견이고 남미연은 초등학생이니까 가능은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요.
“이제 이 사진 속 개가 엠투일 확률이 제로는 아니라고 봐야지?”
- 많이 쳐줘도 1% 정도 아닐까요? 엠투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와 시간대는 이백 년 전 유럽이었습니다.
***
남미연은 구하니의 뮤직비디오에 그녀가 등장해야 하는 모든 장면의 촬영을 그날 밤에 다 끝냈다.
신인 배우 우아름은 전날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그날 밤이 마지막 촬영이었다.
촬영이 끝난 비디오는 곧바로 편집 작업을 거쳤다. 구하니가 편집에 직접 참여했다.
그렇게 완성된 뮤직비디오는 구하니의 마음에 쏙 들었다.
구하니가 말했다.
“미나가 신곡을 발표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발표할 거야. 내가 먼저 점찍은 곡을 걔가 빼앗아갔지만, 여전히 내 뒤만 쫓아오게.”
구하니는 체계적인 홍보 활동은 직접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는 최근에 KMTV에서 방송한 공연에 참여했다. 섬 예능 촬영 사건도 KMTV가 책임져야 했다.
KMTV에는 구하니에게 신세를 졌거나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방송국의 음악방송에는 예전 소속사의 방해가 먹히지 않았다.
음악방송 PD가 활짝 웃었다.
“구하니 씨가 일 년 반 만에 발표하는 신곡을 우리 방송에서 하시겠다고요?”
구하니가 물었다.
“가능할까요?”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겠습니다!”
“뮤비로 발표하고 싶은데요.”
“어…. 그러면 일단 그 뮤비를 제가 좀 봐도 될까요?”
구하니가 어제 완성된 따끈따끈한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여주었다.
피디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노래도 좋고, 뮤비도 좋은데, 남미연 씨는 어떻게 섭외하셨어요?”
선우현이 R 크림을 이용해 꼬셨다.
“노래가 좋아서 하시겠대요.”
피디가 즉시 결정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냥 한 번으로 끝내긴 아깝네요. 뮤비 한 번, 노래 한 번. 그렇게 두 번으로 가시죠?”
“연속으로요?”
“확실히 밀어드리겠습니다. 노래가 진짜 좋으니까 반응도 좋을 겁니다.”
그 음악방송은 생방송이지만, 중간에 뮤직비디오를 넣어 방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띄우는 영상을 동시에 TV로도 송출하는 방식을 쓰면 된다.
***
며칠 뒤에 KMTV 음악 생방송에서 구하니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시청자 게시판에 방송을 본 사람들의 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 구하니 신곡 장난 아니다.
- 역시 구하니 안 죽었어.
- 안 죽은 정도가 아니라 더 날아가네요.
- 이번 노래는 역대급입니다.
- 뮤비에 남미연 나온 거 실화냐? 잠깐 나왔는데 뮤비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하네.
- 남미연은 왜 저렇게 젊어졌지?
- 우리나라 CG 기술의 승리겠죠. 영상에 CG 처리 많이 했나 보다.
음악방송이 끝나자마자 음원도 공개됐다.
구하니의 신곡인 데다가 TV에서 뮤직비디오가 방송된 덕분에 실시간 순위가 빠르게 올라갔다.
***
선우현이 계곡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계곡일 텐데.”
이 계곡의 위치는 남미연에게 물어서 알아냈다.
“여기가 개를 잃어버렸다던 위치가 맞을 텐데 말이야.”
- 30년 전 기억이라 위치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사태 등으로 지형이 변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기본 형태는 그대로일 거야.”
- 선장님은 왜 굳이 거기 가신 걸까요?
“엠투를 찾아보려고.”
- 설마 엠투가 거기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거 엠투 아니라니까요. 그냥 개라니까요.
“혹시 모르잖아.”
선우현이 계곡 아래로 내려가 물길을 따라가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래도 나오는 건 없었다.
“하긴. 기능이 정지된 엠투가 여기 있다 해도, 30년이나 지났으면 흙으로 덮여있을 테니까 못 찾겠네.”
- 빠른 포기! 역시 선장님답습니다.
선우현이 계곡을 따라 걸어가며 스마트폰을 꺼내 음원 판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실시간 순위 오르는 거 봐라. 하니 씨 신곡이 반응이 좋네.”
- 곡 인세로 우주왕복선 부품값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요.
***
사람들은 구하니의 신곡을 음악과 뮤직비디오로 즐겼다. 그중에는 곡의 정보를 읽어보는 사람이 조금은 있었다.
구하니의 팬카페 게시판에 작곡가 이야기가 올라왔다.
- 선우현이 누구죠?
- 선우 씨 중에 작곡가가 있나요?
- 신인이겠죠.
- 곡 정말 잘 뽑았더라고요. 다음에도 우리 프린세스 하니한테 곡 줬으면 좋겠다.
팬들은 선우현이 신인 작곡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동안 구하니의 곡을 작곡한 사람은 많았다. 그래서 선우현을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가수나 기획사들은 작곡가의 이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양미나가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이 곡을 받았어야 했어!”
매니저가 말했다.
“너도 좋은 곡 받았잖아.”
“이 곡이 더 좋아 보이니까 그러지!”
“어쩌겠냐? 이미 구하니가 발표한걸.”
“어쩌긴? 이 작곡가의 다음 곡은 내가 받아야지.”
양미나가 매니저에게 말했다.
“이 작곡가가 어떤 사람인지 빨리 알아봐. 다음 곡은 꼭 내가 받을 거야. 이 작곡가한테 설마 곡이 하나뿐이진 않을 거 아냐!”
“이미 구하니에게 곡을 줬는데 너한테 과연….”
“R 크림을 하나 더 구해봐! 그걸 선물로 주면서 꼬셔봐야지.”
***
걸그룹 은하소녀의 소속사 사장 박대석은 구하니의 신곡에 적힌 작곡가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노래를 선우현 씨가 작곡했다고?”
그는 구하니와 선우현이 아는 사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동명이인이라고 착각할 리가 없다.
“와…. 무술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는 선우현이 김수선과도 아는 사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러면 선우현 씨가 곡을 쓰고 김수선이 노래하면….”
욕심이 났다.
“우리 회사에서 음원 내고 싶다.”
그런데 그는 김수선은 물론이고 선우현의 연락처도 제대로 모른다. 게다가 김수선은 신분이 비밀이라 개인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들었다.
“보물이 어디 있는지 아는데, 손이 닿지 않아. 아. 배 아파.”
***
선우현이 계곡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었다.
“사람이 있다.”
날씬한 여자가 보였다.
- 남미연입니다.
남미연은 접이식 캠핑 의자를 갖다놓고 거기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면서 텀블러를 담긴 커피를 마셨다.
바로 옆에 놓인 접이식 테이블에는 선글라스와 챙이 넓은 모자, 꽃 한 송이가 올려져 있었다.
선우현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났다.
남미연이 그 소리를 듣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썼다. 목에 걸어둔 마스크도 손가락으로 잡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사람이 올 때마다 그러면 피곤하겠습니다.”
남미연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선우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녀가 선글라스와 모자를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선우현 씨구나. 근데 진짜로 여기를 찾아왔네요?”
선우현은 뮤직비디오 촬영 때 남미연에게 이 계곡의 위치를 물어봤다.
“궁금해서요.”
“혹시 내 팬이에요?”
“아닙니다.”
“단호하네요.”
선우현이 물었다.
“남미연 씨는 왜 여기 있습니까?”
남미연이 뒤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캠핑장이 있어요. 자주 오는 곳이에요.”
“연예인이 와도 괜찮은 곳인가 보네요.”
“손님으로 다른 연예인이나 내 지인들만 받는 프라이빗 캠핑장이거든요. 그러려고 샀어요. 내 거예요.”
“그렇게 운영하면 캠핑장 유지비도 안 나올 것 같은데.”
“어머. 나 남미연이에요. 나 돈 많아요.”
그녀가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며 말했다.
“캠핑장은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샀어요. 그때는 저기가 정식 캠핑장은 아니고 그냥 공터였는데, 우리 가족이 자주 와서 고기를 구워 먹고 놀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오면 옛날 생각나고 좋아요.”
그녀가 테이블 위에 얹어놓은 꽃 한 송이를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가 꽃을 흐르는 물에 던졌다.
“난 어릴 때 이곳을 참 좋아했어요. 흰둥이도 여기를 좋아했고요.”
선우현이 조용히 말했다.
“저 꽃은 꽃집에서 일부러 산 건가?”
- 근처에 많이 자라는 들꽃입니다. 그 주변에 많습니다.
“그냥 꺾어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