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23화 (123/281)

123. 뮤비

배우 남미연은 이번에 청춘 로맨스 영화에서 28살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마흔 살이라 한 번 까였던 그녀가 그 배역을 잡을 수 있었던 건, 평소의 꾸준한 관리, 타고난 얼굴, 어려 보이는 메이크업, 그리고 R 크림의 힘이 합쳐진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R 크림이 결정적이었다. 원래 관리를 잘하던 배우가 R 크림까지 사용하자 얼굴이 사기에 가깝게 젊어졌다.

그런데 R 크림은 의약품이 아니라 화장품이다. 매일 바르면 효과가 탁월하지만 바르는 걸 중단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당연히 영화 촬영 기간 내내 R 크림을 사용해야 28살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R 크림은 한정판이다. 태양 백화점에서는 이미 품절 됐다.

남미연이 남은 R 크림의 양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사전판매대상 50인 중 한 명이라 본 판매 때 R 크림을 하나 더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두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워낙 효과가 좋아서 자주 바르다 보니 벌써 하나를 다 쓰고 두 번째 크림의 뚜껑을 땄다.

‘지금 내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리고 평소에 꾸준히 사용해야 피부에 더 좋을 테니까 안 쓸 수가 없잖아.’

남미연이 툴툴댔다.

“R 크림은 왜 한 번 팔고 땡인 거야? 2차 판매는 언제 하는데? 이거 다 떨어지면 나보고 영화를 어떻게 찍으라고.”

“그러니까 언니는 지금 R 크림이 더 필요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몇 개나 준대?”

매니저는 구하니의 뮤직비디오에 남미연이 출연하면 R 크림을 선물로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왔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선물이라니까 한 개겠죠.”

남미연이 도로 시트에 등을 기댔다.

“나 남미연이야. 나를 진짜 오랜만에 뮤비에 출연시키는데 겨우 화장품 하나로 퉁 치겠다는 거야?”

“출연료는 당연히 별도죠. 그리고 뮤비 전체가 아니라 잠깐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 잠깐 촬영하면 되는 거라면….”

남미연이 생각을 정리했다.

“R 로션은 따로 구하기가 어렵고, 설사 구할 수 있어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당연하죠. 언니한테 남아돌면 저도 하나 주고요.”

“네가 남아돌 만큼 구해서 가져오고 너도 하나 가져.”

“안 주려나 보다.”

“좀 더 챙겨서 2차 판매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지. 미팅 잡아. 협상하게.”

***

구하니는 1인 기획사 체제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연예인만 혼자인 게 아니라 매니저도 없다. 매니저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아직 구하지 못했다. 직원도 따로 없다.

요즘은 활동을 별로 안 하고 섭외가 들어오는 경우에만 가끔 움직인다. 그래서 매니저 업무는 안유정이 가끔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대신에 뮤직비디오 가수 섭외처럼 안유정이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은 직접 처리해야 한다.

남미연의 매니저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구하니는 시간이 남아돌고 남미연은 R 로션이 급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날 저녁에 바로 만났다.

남미연이 반갑게 인사했다.

“구하니 씨. 반가워요. 나 하니 씨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데.”

구하니도 인사했다.

“남미연 씨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세요. 그래서 뮤비에 출연을 부탁드렸어요.”

그들은 상대의 노래를 좋아하고 연기를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에 예의상 꽃가루를 조금 뿌려준 후에 본론을 꺼냈다.

남미연이 말했다.

“아무리 구하니 씨 노래라고 해도 내 마음에 들어야 출연할 수 있어요.”

“당연하죠. 먼저 들어보세요.”

구하니가 가방에서 무선 헤드폰을 꺼냈다. 그걸 남미연의 귀에 걸어준 후에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재생했다.

남미연은 처음에는 등을 의자에 편하게 기대고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눈빛이 점점 또렷해졌다. 허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노래가 끝난 후에 남미연이 감탄했다.

“어머. 이번 노래 진짜 좋다. 역시 구하니!”

구하니가 헤드폰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곡이 좋아서 그래요.”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하늘에 핀 꽃’이에요.”

구하니가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설명했다.

남미연은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뭐가 문제인지 바로 이해했다.

“내가 주연을 잡아먹으면 안 되겠네요?”

“네. 신인을 쓸 예정인데 남미연 씨가 너무 힘을 주면 주연이 죽을 거예요.”

“힘 빼는 게 쉽지 않겠네요. 왜냐하면 내가 요즘.”

그녀가 손끝으로 얼굴을 살짝 만지면서 자랑했다.

“젊어져서요.”

“잠깐 등장하셔서 주인공의 이미지를 확실히 살려주셔야 하는데, 그건 아무나 못 하죠. 그래서 부탁드렸어요.”

“나 원래 주연만 하는 거 알죠?”

“네. 다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까메오 출연을 가끔 하시는 거로 알아요.”

“뭐, R 크림을 선물한다고 해서 이야기나 들어보려고 왔는데, 노래가 너무 좋으니까 잠깐 해볼까 싶네요.”

구하니가 당황했다.

“네? R 크림이라니요?”

“왜 모르는 척해요?”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남미연은 방금 젊어졌다고 말했을 때 왜 구하니가 반응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어머. 구하니 씨. 나 남미연이에요. 이러기 있기에요? 나 지금 미끼 물고 퍼덕거리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네요?”

“저는 R 크림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남미연이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연락받았지?”

매니저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작곡가라는 분이 분명히 R 크림을 선물하겠다고 했어요.”

구하니가 손뼉을 쳤다.

“아! 그럼 맞을 거예요.”

남미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맞아요?”

“네. 그분이라면 가능하니까요.”

남미연이 슬쩍 떠보았다.

“몇 개?”

“그거야 그분이 정해서 연락 주셨을…. 아닌가요?”

남미연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R 크림은 구하니가 아니라 작곡가가 주는 거였어. 작곡가가 몇 개인지 정할 수 있다고 하는 거 보면….’

확신이 들었다.

‘작곡가한테 많이 있나 보다.’

남미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웃었다.

“R 크림을 작곡가님이 주시는 거였구나. 구하니 씨가 모른다고 하니까 놀랐잖아요.”

“그분이 저한테 그 이야기를 안 하셔서요. 그럼 뮤비 출연은….”

“노래가 진짜 좋아서 잠깐 나와도 되겠네. 나 예쁘고 멋있게 나와야 해요.”

“그거야 당연하죠. 짧은 등장만으로 뮤비의 주연 배우의 모든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역할인데요.”

“그런데….”

남미연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작곡가님도 뮤비 촬영할 때 오세요?”

“그건 안 여쭤봤는데…. 왜요?”

“인사나 하고 싶어서?”

***

구하니가 남미연과 헤어진 후에 선우현을 찾아가 말했다.

“남미연 씨가 본인 출연 장소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꿔달라는 조건을 걸었어요. 일반 쇼핑몰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촬영하고 싶대요.”

“아는 백화점이 있습니까?”

“이제부터 되는 곳이 있는지 제안해봐야죠.”

“기다려 봐요.”

선우현이 태양 백화점 유소율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소 협찬 제의를 받은 유소율이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대답했다.

- 실내 촬영은 영업 끝난 후에 불 켜놓고 찍으면 돼요. 언제든지 말하세요.

“고맙습니다.”

- 고마우면 활토와 R 크림 동시 행사 한 번 어때요?

“다시 만들면요.”

- 아유. 그러면 이제 제가 더 고맙죠.

“언제 만들지는 나도 모르지만요.”

- 네? 아니, 저기….

선우현이 통화를 마치고 구하니에게 말했다.

“백화점 구했습니다.”

“장소 협찬을 어떻게 전화 한 통으로….”

“해보니까 되네요.”

***

백화점 촬영은 곧바로 진행됐다.

남미연은 영화를 준비 중이지만 아직 촬영을 시작한 건 아니라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다.

백화점 영업시간에 촬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업이 종료된 후인 깊은 밤에 촬영이 잡혔다.

선우현이 한밤중에 태양 백화점에 찾아갔다.

구하니가 설명했다.

“사무실 촬영 장면도 잠깐 나오는데 그것도 태양 백화점에서 협찬해주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배우 우아름이 찾아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우아름입니다!”

“나한테 그렇게 정식으로 인사할 필요는 없어요.”

“곡이 정말 좋아요! 제 최애곡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해도 나오는 거 없어요.”

“작곡가님 진짜 재미있으세요!”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도대체 어디가….

우아름이 대화를 더 하려는데 감독이 불렀다. 그녀가 즉시 그쪽으로 뛰어갔다.

“네!”

선우현이 말했다.

“청순한 배우를 쓰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구하니가 말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엄청 청순해요. 단역 몇 번을 제외하면 우리 뮤비가 정식 데뷔작이나 마찬가지라서 신선한 마스크이기도 하고요.”

남미연은 선우현보다 조금 늦게 이곳에 도착했다.

“내가 나온다고 하자마자 순식간에 백화점을 섭외했네. 역시 구하니.”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우아름이 선우현에게 신나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남미연이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부러워했다.

“나도 쟤 나이 때는 저렇게 막 들이댔는데. 그러면 안 넘어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보통은 10초도 안 걸렸는데.”

그녀가 선우현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갔다. 이제는 옛날처럼 들이댈 수는 없다. 그녀가 그동안 연예계에서 쌓아온 평판과 체면이 우아름처럼 들이댈 수 없게 행동을 억제했다.

남미연은 연기력으로 알아주는 배우라서 우아름과 똑같은 모습을 연기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면 상대가 당황한다.

그래서 그녀는 선우현을 보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작곡가님? 만나고 싶었어요. 반가워요.”

“아, 네.”

“내가 연상인 것 같은데 말 놔도 되죠?”

“안 됩니다만?”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보다 오천 살이나 어린 것이 어디서 감히.

“생명유지장치에서 자면서 보낸 사천팔백오십 년은 빼야지.”

- 대신에 지구연합에서 생활하신 시간을 지원위성에서 활동한 시간에 더하면, 여전히 남미연이 백오십 살쯤 어린데요?

남미연은 살짝 당황했다가 얼른 미소를 지었다.

“어머. 내가 또래처럼 보이긴 하죠?”

“연하로 보입니다.”

남미연은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연기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잘 구분하는 편이다.

그녀는 선우연이 연하처럼 보인다고 한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가, 연기력으로 만들어낸 미소가 진짜로 변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어머어. 작곡가님은 말을 참 재미있게 잘하신다.”

“진짜인데.”

남미연이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름이처럼 행동해도 받아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그럴 수는 없다.

남미연이 웃으며 뒤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매니저가 얼른 커피를 가져왔다. 종이로 만든 테이크아웃용 커피 캐리어에 아메리카노 두 잔이 들어있었다.

“촬영 준비하려면 시간 좀 더 있어야 하나 본데, 커피?”

“좋죠.”

촬영장소에는 백화점에서 가져다 놓은 테이블이 몇 개 있었다.

남미연이 선우현의 옆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일단은 곡이 좋다는 칭찬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본론을 슬그머니 꺼냈다.

“R 크림. 몇 개나 줄 생각이에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 개?”

“더 있는 거 알아요. 나 이번 영화에서 R 크림이 꼭 필요해요. 좀 더 써봐요.”

“두 개?”

“그걸로 R 크림 다음 판매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이미 한 개 다 쓰고 두 번째 것을 쓰고 있는데요.”

“충분할 겁니다.”

“다음 판매 때 딱 한 개만 살 수 있으면 나 이번 영화 망해요.”

“태양 백화점에 미리 잘 이야기해봐요.”

남미연의 눈이 반짝였다.

“어머. R 크림을 다음번에도 태양에서 파나 보다.”

“네.”

“그런데 그런 정보는 어떻게 다 알아요? 태양 백화점이랑 친하신가?”

감독이 남미연을 불렀다. 이제 남미연이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찍히는지 테스트해야 한다.

남미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가볍게 테스트하고 올 테니까 좀 있다 마저 이야기해요.”

남미연이 그곳을 벗어나 카메라 쪽으로 가자마자 선우현이 말했다.

“그냥 집에 갈까?”

- 뮤비 촬영을 현장에서 구경하고 싶으시다더니?

“나한테 자꾸 뭘 캐묻잖아.”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불리해지지 않는다던데, 남미연을 좀 아시는지?

“TV에 나오는 것만 봤으니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

- 불리해지겠네요.

“지금이라도 정보를 찾아보자.”

선우현이 스마트폰으로 남미연을 검색했다. 출연한 작품이나 방송, 행사 참여 등등 연예계 기사와 글이 대량으로 검색됐다.

“평소 모습은 나온 게 없나?”

그쪽으로 검색해봤지만 나오는 게 별로 없었다.

“사생활은 노출 안 하는 타입이구나.”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사생활은 어릴 때 사진 정도였다.

“어릴 때 귀여웠네. 어?”

- 왜 놀라시죠? 남미연의 정체가 알고 보니 악의 조직 간부 같은 건가요?

“그게 아니라 어렸을 때 사진 중에…. 이건 너도 봐야겠다.”

선우현이 태블릿PC를 들고 백화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사진을 불러온 후에 화면을 하늘로 향했다.

“이거 남미연의 초등학교 때 사진인데, 옆에 있는 하얀 개 말이야. 엠투랑 닮았지?”

- 그러네요?

“많이 닮았지?”

M2는 단독 임무 수행이 가능한 지상형 장거리 정찰모듈이다. 탐사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겉모습은 개처럼 생겼다.

- 엠투와 너무 많이 닮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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