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22화 (122/281)

122. 조각 모음

선우현은 옥탑방 옥상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고기도 맛있고 술도 좋고 다 좋다.”

- 곡 약속 이야기만 아니면 말이죠. 어떻게 하시려고요?

“수선아. 하니 씨는 인기 가수야.”

- 알죠. 한국에서는 톱가수죠.

“내가 준 곡을 하니 씨가 불러서 히트하면, 곡 인세가 꽤 될걸? 우주왕복선의 부품 몇 개는 살 수 있을 거야.”

- 제가 각 지역의 옛날 노래를 잘 찾아보겠습니다. 뭐라도 하나 걸리겠죠.

“옛날 민요는 안 된다잖아.”

- 설마 선장님이 작곡하시려는 건 아니죠? 작곡이 장난도 아닌데, 설마 아니죠?

“나 말고. 지구연합의 음악은 어때?”

- 일단 지구연합에서 유행한 음악이 지금 시대에 통할지 알 수 없고요.

“요즘 스타일과 비슷한 느낌으로 가면 되겠지. 어차피 양쪽 다 사람이니까 잘만 고르면 통할 거야.”

- 지구연합의 음악이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 서버는 이미 오래전에 터진 거 아시죠?

이 지구에서 새로 기록한 과거 음악은 지원위성의 메모리에 남아 있다. 그런데 지구연합에서 가져온 음악은 데이터 서버가 손상됐을 때 날아갔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일부는 복구할 수 있잖아.”

-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진 데이터 중에 일부는 복구할 수 있겠죠. 그걸 모아봤자 원곡 그대로 복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요. 여기저기 몇 조각씩 띄엄띄엄 나오겠네요.

선우현이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로 기억하는 게 있잖아. 빠진 부분은 기억하는 거로 채우면 어떻게든 되겠지.”

- 선장님을 믿어도 될지….

“야. 요즘 스타일과 비슷한 느낌의 노래가 방금 생각났다. 그거 찾아서 복원해보자.”

- 그 작업은 누가 하나요?

“수선아. 내가 너 믿는 거 알지?”

- 바쁩니다.

김수선은 툴툴대면서도 조각 나서 파편이 된 메모리들을 조사했다.

- 뭔가 찾아내려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나는 게 있습니까?

“있지.”

선우현이 그가 기억하는 노래 몇 마디를 불렀다.

- 선장님은 가수는 하지 마시죠.

“이 정도면 꽤 하는 건데 왜 꼽을 주고 그러냐?”

- 저한테 쓰레기장에서 깨진 파편을 찾아 모아서 멀쩡한 도자기를 만드는 수준의 일을 시키셔서?

“나는 가수 하면 안 돼. 가수는 네가 해야지.”

기준이 되는 멜로디 몇 조각이 있으면 데이터를 찾을 수는 있다. 파편을 찾는 작업이 손으로 직접 쓰레기를 헤집는 건 아니라서, 처리 속도도 빨랐다.

그렇다고 결과가 금방 나오지는 않았다.

김수선은 선체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고 비행 궤도를 조정하는 데에도 시간을 써야 했다.

이튿날 김수선이 보고했다.

- 우주 쓰레기 파편이 선체를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잘됐네. 그거 잡으면 에너지랑 자원이 더 생기겠다.”

- 정면에서 고속으로 날아옵니다. 저러면 잡으라고 날아오는 게 아닙니다. 질량 병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잘 피하고 있지?”

-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어? 자동 회피장치는?”

- 상태가 나빠져서 회피 기능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수리 중입니다.

“왜 아직도 수리가 안 끝났는데?”

- 쓰레기장에서 깨진 파편을 찾아 도자기를 만드느라 바빠서?

“어…. 데이터 파편 검색은 천천히 해. 천천히. 피하는 건 빨리하고.”

- 선체의 위성 궤도 비행 코스를 수정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역시 김수선!”

- 저니까 피한 겁니다.

“그래. 내가 알지. 이제 일하자.”

- 선장님?

“농담이야.”

김수선은 사흘이 더 지난 후에야 선우현이 말한 노래의 데이터 조각을 거의 다 모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 그 곡의 복구 가능한 데이터는 40% 정도입니다.

“더 찾는 건 어렵나?”

- 선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메모리를 다 뒤져서 계속 작업하면 손상된 데이터를 조금 더 복구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투입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완전히 소실된 부분도 많을 게 뻔해서 전체를 다 복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선우현이 일단 복원된 노래를 들어보았다.

복원된 파트는 곡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도 멜로디가 연속되는 게 아니라 여기서 한 음, 저기서 한 음절씩 띄엄띄엄 나왔다.

“이건 마치 도자기의 파편을 모아서 도로 붙였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상황이네.”

- 이 정도면 복구율이 높은 겁니다. 제 예상으로는, 지구연합의 음악 중에는 데이터가 한 조각만 남아 있거나 아예 없는 것도 많을 겁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기억으로 채워야 하는데….”

선우현이 위성 궤도에서 보낸 시간은 오천 년이다. 그중에서 생명유지장치 밖에서 활동한 시간은 약 백오십 년이다.

“내가 지구연합에 있을 때도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았어. 거기다 너무 옛날에 들어본 노래잖아. 히트곡이라 노래가 조금씩은 기억나는데, 다 기억 나지가 않아.”

- 지구연합에서는 노래를 안 듣고 뭐 하셨습니까?

“전쟁터에서 지구 지키느라 바빴다.”

- 아. 그건 인정합니다.

“너도 이 노래 모르잖아.”

- 저는 이 지구의 노래만 들어서요.

“그럼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되지.”

데이터 서버가 터졌을 때 음악 데이터가 날아갔다. 다른 데이터도 많이 날렸다.

손상된 메모리 장치들을 복구한 후에는 현지 협력자를 통해 이 지구의 음악을 수집해 새로 저장했다.

김수선이 요즘 너튜브에 발표하는 건 그런 식으로 수집한 과거의 노래였다.

“일단 기억을 되살려서 복구해보자.”

선우현이 복구된 40%에 그가 기억하는 멜로디를 조금씩 채워보았다.

“이거였나?”

- 아닐 걸요.

“너는 모르는 노래라면서 어떻게 알아?”

- 그따위 곡이 지구연합에서 히트할 리 없잖습니까?

“너 지금 내 음악 감각을 무시하냐?”

- 네.

“안 해!”

선우현과 김수선은 투덜거리고 투덕대면서 음악을 복원했다.

그래도 40%의 음은 확실히 존재해서, 선우현이 기억하는 걸 나머지 60%에 대충 채워 넣을 수는 있었다.

“됐다!”

지구연합에서 히트했던 곡을 복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다.

- 선장님. 이게 원곡 그대로 복구된 걸까요?

“모르지. 다른 곡의 기억이 짜깁기됐을 수도 있고, 그냥 내 의식의 흐름대로 다른 멜로디가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까.”

- 일단 노래는 좋은데요.

“이 지구의 기존 음악과 겹치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그건 전문가한테 물어보자.”

***

선우현이 구하니의 개인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곡 구하는 건 해결됐습니까?”

구하니가 한숨을 쉬었다.

“아니요.”

구하니가 노래하겠다고 하면 곡을 줄 사람은 많았다.

문제는 그 곡이 구하니의 마음에 드느냐이다. 지금 잡은 콘셉트에도 맞고 마음에도 드는 곡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걸 양미나가 가로챘다.

“몇 번 새로 제안받았는데, 부르고 싶은 곡이 없어요.”

선우현이 USB 메모리를 내밀었다.

“심심하면 이거 들어봐요.”

“이게 뭐예요?”

“일단 듣고 이야기합시다.”

구하니가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녹음 파일이 하나 들어있었다.

그녀가 그 파일을 재생했다. 스피커에서 멜로디만 들어있는 곡이 나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거 가사도 있습니다.”

가사도 일부만 기억났다. 그래서 나머지는 직접 채워 넣었다.

선우현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노래를 가볍게 불렀다. 본격적으로 한 건 아니고 음에 맞춰 힘을 빼고 노래했다.

4분 남짓한 노래가 끝났다.

“어때요?”

“대박!”

구하니가 눈을 빤짝였다.

“이 노래 진짜 좋아요!”

“내가 잘 부르긴 했죠?”

“네?”

- 선장님. 양심 어디?

“물론 내가 부르려고 만든 건 아니고요. 이거 원래 여자 노래라서.”

“저도 들으면서 그런 느낌이었어요.”

선우현이 물었다.

“혹시 이거 어디서 들어본 적 있어요? 기존의 다른 노래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든지….”

“저는 처음 들어요. 확실한 건 조사해봐야 알겠지만요. 그런데….”

구하니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선우현 씨가 부르려고 만든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럼 혹시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나쁘지 않죠?”

“작곡도 할 줄 아세요?”

“그냥 끄적여본 겁니다.”

“곡 수준이 끄적인 수준이 아닌데요?”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수선아. 봐라. 내가 만든 곡이 통한다.”

- 진짜 양심 어디?

“멜로디 일부랑 가사 일부는 내가 만든 거 맞잖아.”

-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멜로디만 그러셨죠. 가사는 대충 갖다 붙이셨고요.

“곡 인세 받으려면 뻔뻔해져야 해. 이게 다 왕복선 만들 부품 사려고 그러는 거야.”

- 오천 년 전 노래를 되살렸으니까 그건 선장님 겁니다. 더 뻔뻔해지십시오.

선우현이 물었다.

“이 노래가 하니 씨 마음에는 들어요?”

“당연하죠. 제가 찾던 노래가 바로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구하니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다른 사람 줄 거 아니죠?”

“하니 씨 주려고 가져왔습니다.”

“꺄악! 고마워요!”

“다만, 난 아마추어니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 노래와 겹친 부분은 없는지 확인은 꼭 해봐요.”

“당연하죠.”

“편곡은 하니 씨가 직접 하면 되겠네.”

“그래도 될까요?”

“수선이 노래 편곡해주는 거 보면 실력은 충분히 있는 데다가, 내가 다른 사람하고 작업하는 건 안 내켜서.”

“고마워요!”

구하니가 자기도 모르게 선우현 쪽으로 두 팔을 뻗었다. 그 직후에 얼른 팔을 내렸다.

“고, 고마워요. 진짜예요.”

***

곡을 발표하려면 준비할 게 많았다. 편곡은 기본이고 노래 연습도 해야 한다.

그녀는 그 작업을 의욕적으로 했다.

선우현이 활력 토마토를 챙겨주었다.

“이거 먹고 하면 더 많이 일할 수 있습니다.”

“맞아요. 활토를 먹으면 일을 많이 해도 몸이 안 피곤해요. 참 신기하죠?”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그렇습니다.”

선우현은 구하니가 작업하는 동안 하루에 한 개씩 먹을 수 있게 활토를 챙겨주었다. 구하니는 그걸 먹고 더 열심히 일했다.

포스터도 새 노래에 맞게 새로 찍었다.

며칠 뒤에는 곡을 녹음했다. 악기 연주는 전문 연주자들을 섭외해 진행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악보를 제공해 연습했기 때문에 녹음은 순조로웠다.

구하니가 외부 전문 녹음실에서 노래한 후에 선우현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김수선이 말했다.

- 지적질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군요. 본격적으로 말해볼까요?

선우현이 말했다.

“딱 좋네요.”

- 선장님?

“넌 지금 고나리질이 하고 싶은 거잖아.”

- 걸리는 부분이 한두 곳 있긴 있거든요?

“그 약간 다른 부분도 하니 씨 노래의 특징이니까 그냥 넘어가.”

구하니가 웃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선우현이 엄지를 세웠다.

“곡이 좋으니까 하니 씨 목소리와 잘 어울리네요.”

“어머나. 고마워요.”

다른 건 거의 준비됐다.

남은 건 뮤직비디오였다.

구하니가 말했다.

“이건 정말 오랜만의 신곡 발표예요. 일 년 반만이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이번 노래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뮤비 시나리오도 다 준비되어 있어요. 문제는 출연 배우죠.”

그 뮤직비디오는 여주인공이 중요했다.

“신인에 참신한 뉴페이스를 쓰고 싶어요.”

쓰고 싶은 사람은 이미 있었다.

“태양 백화점 행사 때 본 그분이 나와주면 좋겠는데.”

“그분 누구요?”

“이름이 서윤 씨였어요.”

“박서윤 씨가 예쁘긴 하죠. 방송에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는 뉴페이스기도 하고.”

“네. 그분 이미지가 진짜 이번 뮤비 주연으로 딱 맞거든요.”

선우현이 손가락을 옆으로 흔들었다.

“포기해요. 서윤 씨는 연예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안은 해볼 수 있잖아요.”

“이미 기획사 명함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전부 버렸답니다.”

“그렇구나. 다른 사람 찾아봐야겠네요.”

구하니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뮤비에 여자 배우가 한 명 더 필요한데, 여주인공이 힘이 빠지면 그 배우가 채워줘야 하겠네요. 출연을 요청하다가 까인 분이 있는데 아쉬워요.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을 텐데.”

“누구인데요?”

“남미연 씨요.”

남미연을 원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톱스타라서 예전 소속사가 방해하려고 해도 통할 리가 없거든요.”

***

배우 남미연은 요즘 기분이 좋았다.

찍고 싶었던 청춘 로맨스를 나이 때문에 못 찍게 됐을 때는 짜증이 많이 났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돼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내가 가수 뮤비를 찍을 레벨이야? 넌 뭐 그런 걸 받아 오니? 네 선에서 커트해야지.”

매니저가 설명했다.

“언니. 이건 구하니 씨가 일 년 반 만에 발표하는 신곡 뮤비인 데다가요.”

“마이클 오빠도 아니고 구하니 뮤비에 내가 나가야겠니? 안 한다고 잘 설명해.”

“저번에 구하니 씨가 연락했을 때는 뮤비는 안 찍는다고 잘 설명했죠. 그런데 이번에 다른 사람이 다시 연락하더니 그 뮤비에 출연해주면 R 크림을 선물하겠대요.”

남미연이 차 시트에서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R 크림? 진짜야?”

“네. 그래서 제가 언니한테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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