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위성 궤도 명가수
박대석이 김수선의 너튜브 영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구하니의 SNS 덕분이다. 지난번에 공연장에서 만났을 때 구하니가 선우현이 아는 사람의 곡을 너튜브에 올리라고 제안했다. SNS로 홍보도 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 회사에서 디지털 싱글을 내게 했어야 했는데….”
“네?”
“다른 기획사 중에 이 가수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더라.”
크리스토퍼 엘런만 김수선을 찾는 게 아니다. 가수 계약을 원하는 기획사도 연락하려고 시도했다.
구하니는 자기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하니는 김수선과 아는 사이가 아니다.
그런데 박대석도 그날 너튜브 이야기를 할 때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누가 김수선의 연락처를 아는지 안다.
‘선우현 씨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정작 선우현 씨의 연락처조차 모르네.’
그는 이 정보를 다른 기획사에 알려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다.
‘혹시 우리 회사를 통해서 음반을 낼지도 모르니까, 나만 알고 있어야지.’
***
김수선이 자랑했다.
- 선장님. 제 노래의 조회수가 백만이 넘었습니다.
“첫 곡만 그렇지. 네 곡 평균을 내면 백만은 아니야.”
- 어제 올린 곡이 평균을 깎아 먹으니까 그런 거죠.
“위성 궤도에서 순회공연 중인 명가수 김수선. 소감이 어떠신지?”
- 아름다운 밤이에요.
“지금 여기는 낮이다.”
***
선우현은 가끔 JHC 테크 연구소에 간다.
선우현은 JHC와 연구협력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연구소의 장비를 이용할 수 있다. 사장인 최종훈이 남들 앞에서 선우현에게 연구소를 소개한 덕분에, 일반 장비는 신청만 하면 쉽게 쓸 수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 방도 배정되어 있다.
연구소 직원들은 딱히 불만이 없었다. 선우현은 소형 금속 부품 제작기술로 실력을 보여준 데다가, 연구소에 잘 안 오기 때문에 불편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모처럼 연구소에 온 선우현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버드형 드론을 보았다. 새처럼 생긴 드론이 날개를 편 상태로 있었다.
“수선아. 이걸 제어할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지상의 부품으로 만든 장비를 제어하려면 당연히 지상의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선체에 남는 컨트롤러를 쓰면 되긴 하는데….”
- 양산 가능한 제품이 필요하신 거 아니었는지요? 컨트롤러를 가져가서 드론을 한 대만 만들면 그걸로 뭘 하시게요?
“하긴. 그러네. 의미가 없네.”
- 선장님. 기왕 연구소에 간 김에 우주왕복선을 살 수 있을 만큼 잘 팔리는 기술을 개발하셔야죠.
“이제부터 하려고 했어. 진짜야.”
- 아. 네.
사무실을 같이 쓰는 대학원생 박선희가 들어오다가 선우현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이시다.”
“가끔 왔는데.”
“진짜 오랜만인 거 맞는데요? 제가 책상에 먼지 쌓인 것도 닦아드렸는데.”
“아. 어쩐지 깨끗하더라.”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일 좀 하라는 잔소리꾼이 있어서.”
“어머. 유부남이셨어요?”
“아니요.”
“그럼 누가….”
선우현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있어요.”
***
활력 토마토를 아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났다. 4층에 스마트 농장을 만든 후로는 생산량도 늘어나서 맛을 본 사람도 많아졌다.
활토를 직접 키우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식물 종자 기업에서 활력 토마토를 입수해 씨를 분리했다. 그 씨를 식물 전문가가 흙에 심고 토마토에 최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싹은 잘 난다.”
그런 실험을 하는 곳은 한 군데가 아니었다. 초반부터 활토 재배를 시도한 곳은 이제 성과가 상당히 나왔다.
“자라는 것도 쑥쑥 잘 자라.”
“씨앗에 특별한 처리를 하지는 않았나 보군.”
“이대로만 자라주면 조만간 열매를 수확할 수 있겠는데?”
종자 회사만 그런 시도를 하는 게 아니다.
화장품 회사는 R 크림의 놀라운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분명히 R 크림과 활력 토마토는 관계가 있어.”
“대량의 활토를 손에 넣어야,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단 말이야.”
“지금처럼 어쩌다 하나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연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시도해봐. 비료든 영양제든 성장 환경이든 다 시도해.”
“열매만 분석하려 하지 마. 잎, 줄기, 뿌리. 전부 다 분석해!”
뭔가를 연구하려면 연구자금이 들어간다.
“사장님. R 크림 프로젝트에 자원을 너무 많이 투입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녹아내립니다.”
“R 크림의 비밀만 밝혀내면 그깟 비용은 푼돈이 될 거다.”
화장품 회사 사장이 말했다.
“비용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해!”
한국의 화장품 회사만 그러는 게 아니다. 외국 화장품 회사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다.
그런데 외국에는 활토가 거의 공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험 재배 시기가 늦었다.
“지금부터 키워서 언제 토마토를 수확하겠어? 이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국 종자 회사에서 사들여.”
“팔려고 할지….”
“안 팔면 종자 회사에서 훔쳐서라도 가져와!”
***
선우현이 모처럼 출근한 연구소에서 퇴근했다.
“오늘은 참 열심히 일했다.”
- 열심히 안 하셨습니다만? 그리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잖습니까?
“수선아. 왜 탐사대 지원기술은 현지화가 이렇게 어렵지?”
- 기반기술이 없으니까요. 휴대용 레이저 용접기를 꼭 써야 하는 부품을 가스 용접기로 만들면 결과가 산으로 가듯이요.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구하니와 약속이 있다.
- 구하니가 동네에 들른 것도 아닌데 굳이 만나야 할 이유는요?
“맛있는 거 사준대.”
***
구하니는 선우현을 독특한 분위기의 식당으로 데려갔다.
“여기는 바비큐 전문 코스 요리를 파는 곳이에요. 식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갈 때 다음 예약을 하고 가는 곳이라서, 새로운 손님은 오기 힘들어요.”
“하니 씨는?”
“저는 고기를 좋아해서 옛날부터 여기 손님이에요. 지금 이 식사는 한 달 전에 예약한 거예요.”
선우현이 고기를 먹으며 감탄했다.
“이야아. 역시 세상에는 맛있는 게 많네요. 이게 또 이렇게 맛있네.”
김수선이 불평했다.
- 저도 먹을 줄 압니다.
“내가 잘못 봤다. 이 고기는 많이 먹으면 맛이 없다.”
- 뻥 치지 마시죠.
“사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식사하면서 선우현이 활력 토마토 하나를 구하니에게 주었다.
“집에 가서 먹어요.”
“어머. 고마워요.”
이 식당은 대표 쉐프가 손님들 앞에서 직접 바비큐 고기를 썰어 나눠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쉐프가 토마토 개별 포장용 상자를 알아보았다.
“어? 활토군요.”
“아세요?”
“그럼요. 한 번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요리에 써보고 싶은데, 워낙 구하기 어려워서 포기했죠.”
선우현이 가방에서 활토를 하나 더 꺼냈다.
그건 원래는 연구소에서 후식으로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대학원생 박선희와 점심을 먹는 바람에 활토가 남았다.
그래서 이건 전용 상자가 아니라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오늘 고기가 정말 맛있습니다. 저도 뭔가 대접하고 싶은데 토마토밖에 없네요.”
“이 구하기 어려운 걸 그렇게 가방에 막…. 고맙습니다.”
이 바비큐 전문점은 음식 가격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신규 예약이 워낙 어려워서 기존 손님이 아니면 돈이 있어도 맛보기 어려웠다.
활력 토마토도 마찬가지다. 가격은 고정인데 매물이 귀하다.
쉐프가 제안했다.
“다음에 예약 잡아드릴까요?”
구하니가 물었다.
“어머. 쉐프님. 신규 예약은 빈자리가 없는 거 아니었어요?”
“제가 좀 더 바쁘게 움직이면, 특별 서비스 한 번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선우현이 활짝 웃었다.
“제가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시고.”
“저도 활토 좋아합니다. 하하하.”
손님은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쉐프가 다른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하려고 옆으로 이동했다.
구하니가 말했다.
“활토의 위력이 참 대단하네요. 연예인이 부탁해도 안 되는 일이 이렇게 간단히 되다니.”
“그냥 활토와 여기 식사권처럼 서로 구하기 어려운 것을 물물교환한 겁니다.”
구하니가 상자를 살짝 열었다.
“이 토마토 말인데요. 씨앗만 받아서 키우면 어떻게 돼요? 이렇게 귀한 거니까 그러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잘 자라기는 할 겁니다.”
추가 효과를 얻으려면 레드 포션을 사용한 급속성장촉진제를 써야 한다.
“잘 자라서 평범한 토마토가 열릴 겁니다.”
“그렇구나.”
두 사람은 식사하며 일상을 이야기했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니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살짝 취한 구하니가 술 한 잔을 단번에 쭉 마신 후에 말했다.
“제가 일 년 반 만에 신곡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구하니는 사고로 목을 다친 후로는 곡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때의 목 상태로 발표하면 명성만 깎아 먹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목이 완벽한 상태로 회복됐다. 그래서 신곡을 준비 중이다.
“정말 좋은 곡이 있어서, 작곡가랑 이야기 중이었는데요.”
그녀가 포크로 고기를 콱 찍었다.
“미나가 가로챘어요.”
“양미나요?”
“네. 곡 좋은 건 알아가지고. 그래도 그렇지. 내가 먼저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양미나와 작곡가가 너무했네요.”
“아. 좋은 식사 자리에서 괜히 안 좋은 이야기를 했네요.”
그녀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김수선 씨 말이에요.”
- 잉? 내 이름이 왜 나올까요?
“외국 언어학자들한테서 저한테 연락이 와요.”
“수선이가 아니라 하니 씨한테?”
“김수선 씨의 첫 번째 너튜브 영상을 제가 SNS로 홍보했잖아요. 그래서 혹시 제가 연락처를 아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음…. 언어학자들이 왜 수선이를 찾을까요?”
“같이 연구하고 싶대요. 물론 모른다고 했죠. 실제로 모르니까요.”
구하니는 김수선이 누군지 궁금했다. 선우현과 무슨 관계인지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물어볼 수가 없었다.
‘신분이 비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물어봐. 첩보원이나 비밀 특수요원일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직접 묻지는 못하고 조금 돌려 물었다.
“김수선 씨가 부르는 노래는 곡이 다 참 좋아요.”
“각 지역 민요니까요. 민요 중에는 좋은 노래가 많아요.”
- 수많은 민요 중에 제가 좋은 걸 고른 거죠.
“크리스토퍼 엘런 박사가 한글로 댓글을 달아서 알게 됐는데요. 전부 아주 옛날 민요라면서요?”
너무 옛날 민요라 악기를 그때 사용한 것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악기는 요즘 것으로 대체했다.
“하니 씨가 도와준 덕분이죠.”
그 곡을 녹음하려면 악기 구성을 요즘 사용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편곡 작업도 조금 필요했다.
악기는 선우현이나 김수선이 고르고, 편곡은 구하니와 같이 작업했다. 구하니는 작곡을 공부하고 실제로 곡을 발표한 적도 있다. 그래서 기본적인 곡 작업은 다 할 줄 알았다.
이야기가 다시 곡을 빼앗긴 상황으로 돌아갔다.
“미나가 어떻게 곡을 빼앗아갔는지 알아요? R 크림을 선물로 썼대요.”
선우현이 혀를 찼다.
“쯧. 내가 만든 크림이 그렇게도 쓰이네요.”
구하나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물론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곡이 넘어간 건 아니죠. R 크림을 줄 정도면 다른 건 또 얼마나 챙겨줬겠어요? 그래서일 거예요.”
“그럼 신곡 발표는 어떻게 하게요?”
“음…. 김수선 씨가 부르는 민요 남는 거 있으면 제가 하나 받아서 부를까요?”
-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인기 가수가 내 밥줄까지 노릴 줄이야.
“음….”
“어머. 그냥 술 마셔서 해본 소리예요. 진짜로 부를 건 아니에요. 이미 그 장르의 절대 강자 김수선이 있는데, 왜 남의 앞마당에서 싸우겠어요?”
- 역시 인기 가수는 그냥 되는 게 아닌가 봅니다. 평가가 무척 정확합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민요가 아니라, 다른 좋은 곡이 있으면 생각은 있고요?”
“좋은 곡이면 당연하죠.”
- 선장님? 어쩌시게요?
“방법을 찾아보려고.”
***
선우현은 구하니와 저녁을 잘 먹었다.
구하니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바로 다음 식사 예약을 잡았다.
“이러지 않으면 제 예약 순번은 날아가요. 그러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예약하겠죠. 그럼 저는 앞으로 여기 바비큐는 못 먹는 거예요.”
선우현도 별도로 예약을 잡았다. 선우현의 예약은 특별 서비스라 1회만 적용됐다. 다음에 또 예약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 선장님이 다음에도 활토를 가져와서 또 특별 예약을 잡는다는 데에 에너지를 걸겠습니다.
“응. 난 안 걸어. 다음에도 활토를 가져올 거니까. 그땐 두 개 가져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