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20화 (120/281)

120. 꿈꾸는 소녀

선우현은 기본적인 조사만 받고 경찰서를 나왔다.

사건의 성격은 의심할 여지 없는 납치다. 게다가 선우현의 신분도 확실하다.

그래서 오래 붙잡혀 있을 필요는 없었다.

경찰서 주차장에서 채연서와 최민영, 최종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채연서가 편의점에서 산 두부를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전에도 그거 먹었는데 효과 없습니다.”

최민영이 채연서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부침용 말고 찌개용으로 사자고 했잖아요.”

“두부가 효과가 없다고요.”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말했다.

“조사가 더 필요하면 또 부르겠다더군요.”

최종훈이 큰소리쳤다.

“제가 활토로 쌓은 인맥을 동원해 상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선우현 씨가 증인으로 나갈 수는 있어도, 유치장에 갈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역시 현지 협력자 하나는 잘 골랐습니다.

“넌 처음에는 반대했다.”

- 제가요? 왜 그랬을까요?

최민영이 머리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음….”

선우현이 최민영을 빤히 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그렇게 보시니까 부끄….”

“그런 꿈은 언제부터 반복해서 꿨습니까?”

“네? 그걸 어떻게….”

최종훈이 말했다.

“내가 이미 네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아….”

그녀가 말했다.

“정확히 몇 살 때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그랬어요.”

“요즘도 계속 그런 꿈을 꿉니까?”

“가끔 꾸기는 했는데, 활토를 먹으면 안 꿔요.”

“그래요? 그럼 빼먹지 말고 매일 먹어야겠네요. 혹시 활토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말해요. 와서 따가도 되고.”

최민영이 활짝 웃었다.

“앗! 고맙습니다! 저 그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옆에서 채연서가 끼어들었다.

“나는요?”

“음?”

“나도 막 악몽 같은 거 꾸고 그러거든요? 나도 활토가 더 필요해요!”

“그런 꿈이 아닙니다.”

“아니, 문제가 되는 꿈이면 다 악몽이지 그런 게 어디 있고 아닌 게 어디 있어요? 나도 매일 활토!”

“연서 씨는 괜히 구해줬나….”

“매일은 아니라도, 일주일에 두 개…. 여하튼 한 개는 너무 적소!”

“충분할 것 같은데.”

“언니는 내가 먹을 때마다 맛있냐고 물어보고, 엄마 아빠한테는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소리도 듣고, 저 진짜 힘들거든요? 네?”

“음…. 몇 개 챙겨줄 테니까 가져가요. 그리고 앞으로는 일주일에 두 개로 합시다.”

채연서가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앗! 선우현 씨! 알라뷰!”

“디자이너 할인가가 적용되는 건 일주일에 한 개뿐이니까, 추가분은 돈 제대로 내요.”

“네?”

“그럼 그걸 그냥 날름 먹으려고 했습니까?”

“알라뷰는 또 취소.”

***

며칠 뒤에 선우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

잠시 후에 문자가 들어왔다. 문자에 보낸 사람의 신분이 광수대 형사 안성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 제가 조사하는 사건이 있는데,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라서요.

선우현이 시계를 보았다.

“저녁 먹으러 갈 건데, 여기로 오시던가요.”

- 지금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동네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선우현은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여기 고기가 맛있습니다.”

안성준이 선우현의 손을 보며 감탄했다.

“고기를 이렇게 정성을 다해 굽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한 조각의 식량이라도 아끼는 게 습관이 돼서요.”

탐사위성의 에너지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 드물지만 있기는 있었다.

그런 때는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로 칼로리바가 아니라 음식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옛날에 고기 152그램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해 소고기 맛이 나는 합성고기를 만든 적이 있다.

안성준이 물었다.

“수치가 왜 그렇게 구체적입니까? 152그램이라니요?”

“무게를 재봤거든요. 그런데 그걸 굽다가 그만 태워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레이저 용접기를 고기 굽는 데 쓰니까 그렇지요.

“네가 용접 프로그래밍을 잘못한 거잖아.”

- 제 세팅은 완벽했는데 용접기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에너지를 합성고기가 아니라 장비 수리에 썼어야 하는데, 자초하신 겁니다.

선우현이 안성준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 고기가 홀라당 타버렸습니다. 얼마나 아깝던지.”

- 그때 타버린 건 12그램이었습니다만? 나머지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만?

“타다 남은 걸 먹으면서.”

- 진짜 맛있다고 잘 드셨습니다만?

“타버린 12그램이 어찌나 아쉬웠는지.”

- 탄 것도 먹었습니다만? 그중 절반인 6그램은 제가 먹었습니다만?

안성준은 선우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152그램 중에 12그램을 태우고 140그램을 드셨다?”

정확히 말하면 선우현이 먹은 건 그중 절반인 70그램이다.

“그렇죠.”

안성준이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여기 삼겹살 2인분 더 주세요.”

선우현이 활짝 웃었다.

“안 형사님은 좋은 경찰이군요.”

“고기 사준 정도로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건 나쁜 놈들을 잡고 들어야죠. 그래서 말인데.”

안성준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다들 먹고 마시는 데 바빠서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예전에 충청도 산속 식당을 덕구파 출신 칼잡이 조성철이 부하들과 습격했다가 크게 다친 일이 있습니다. 그놈들은 팔다리가 다 부러졌지요.”

“뉴스에서 봤습니다.”

“구리시 외곽에서 청부업자 몇 놈이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잡힌 사건도 있습니다.”

“그것도 뉴스에서 본 거군요.”

“저 지금 체포하러 온 거 아닙니다.”

선우현이 씩 웃었다.

“다행이네요.”

안성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거 다 선우현 씨가 한 거지요?”

“왜 그렇게 생각한 겁니까?”

“선우현 씨가 최근에 범죄자를 그런 식으로 때려잡았으니까요. 며칠 전에 잡힌 놈들도 몸이 구겨져 있던데요.”

안성준은 채연서와 최민영 납치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 듣고 선우현을 찾아왔다.

선우현이 잡아뗐다.

“며칠 전에는 하도 무서워서 그런 겁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무서워한다는 겁니까?”

“예전에 뉴스에서 본 그 사건들 말입니다. 내가 했다는 증거는 없을 겁니다. 그럼 내가 한 거 아닙니다.”

안성준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녹음 같은 거 안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왔고요. 내가 알고 싶은 건.”

안성준이 진지하게 물었다.

“조성철 때는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구리시 외곽 창고의 그놈들이 사람을 납치했다는 건 어떻게 알고 구한 겁니까? 그리고 왜 구한 겁니까? 납치된 그 사람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정말 이러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아니라고 해도 믿을 리 없는데, 다른 방법을 쓰시죠.

“잘 구슬리려고 삼겹살 먹이고 있잖아.”

- 선장님이 사는 거 아닌데요?

“아. 그렇지.”

선우현이 안성준에게 말했다.

“내가 했다는 게 아니라, 이건 나도 추측해서 하는 말인데.”

“말씀하시죠.”

“조성철 때는 아마 우연히 거기 들렀을 겁니다. 기념품이나 좀 사려고요.”

“기념품을 파는 식당이 아닙니다만. 그럼 구리시는요?”

“구리시 창고는, 그날 뚝섬 한강공원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구하니 씨가 거기서 초대 가수로 노래한다고 하더군요. 인터넷 보고 알았죠.”

“어느 행사인지 압니다.”

“구하니 씨한테 들었는데, 거기 주차장에서 구하니 씨의 차에 손을 대던 놈들이 있었다더라고요.”

“JHC 테크 최종훈 사장도 그 주차장에 있었지요. 현장 CCTV 영상을 봤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요.”

“많이 알아보셨네. 그 두 놈이 잡히니까 주차장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차가 있었습니다. CCTV에서 그건 못 보셨나?”

“그건….”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차를 쫓아가 봤더니, 그놈들이 구리시 외곽에서 사람을 납치해서 패고 있네요?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죽이려고 드네요?”

“그놈들이 죽을 뻔했던데요?”

“아주 관대하게 팔다리만 분질렀습니다.”

“갈비뼈도 나가도 다들 상태가 말이 아니던데요?”

“어떻게 팔다리만 똑 분지릅니까? 일하다 보면 물건에 기스도 좀 나고 그러는 거지.”

“그놈들이 물건은 아니잖습니까?”

“아. 고기 맛있네.”

안성준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누군가 구하니 씨를 노렸고, 그걸 청부받은 놈들은 다시 하청을 썼다?”

“그렇죠. 거기까지는 모르셨나?”

“제 담당 사건이 아니라서요. 저는 인맥을 통해 이야기만 좀 듣는 중입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물론 이건 다, 나도 뉴스에서 본 걸 모아서 추측한 겁니다. 아시죠?”

안성준이 선우현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증거도 없고 인정도 안 하시니까, 사실 체포할 수는 없습니다. 체포하려고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요. 선우현 씨 덕분에 여러 사람이 목숨을 구했으니까요.”

“그 사람 누군지 고생했겠네요.”

“그냥 어떤 분인지 얼굴이 보고 싶었습니다.”

“나 아니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아니시겠죠.”

선우현이 말했다.

“근무시간 아니면 소주도 한 잔?”

“좋지요.”

***

술을 곁들여 삼겹살을 먹은 후에 안성준 형사와 헤어졌다.

안성준이 떠나기 전에 말했다.

“파국이 오기 전에 멈추시죠. 사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누가 눈앞에서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안성준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가 간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나한테 사건 사고가 많이 생기기는 해.”

- 그중 상당수는 선장님이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했죠.

“적이 나를 공격했을 때는 뒤에 있는 놈들까지 전멸시켜야 나중에 탈이 안 나.”

- 지극히 전술적인 행동을 하신 거군요.

“당연하지.”

선우현이 집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수선아. 안성준 형사의 위치를 가끔 체크 해.”

- 근무처는 명함에 있으니까, 집이 어디인지 확인해 두겠습니다. 자주는 못 봅니다. 저 바빠요.

“자주 볼 필요는 없어. 나를 감시하는지만 알아보면 돼.”

***

걸그룹 은하소녀의 소속사 사장인 박대석이 너튜브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아. 목소리 진짜 좋다.”

그의 조카이자 은하소녀의 멤버인 오민하가 물었다.

“누구예요?”

“김수선.”

“처음 듣는데….”

“너튜브에 네 번째 곡이 나왔는데도 너는 처음 듣냐?”

“노래 잘하긴 한다. 곡도 특이한데 듣기 좋고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심플한데, 묘하게 듣기 좋….”

오민하가 눈을 반짝였다.

“앗! 우리 신곡을 이 노래 작곡가에게 의뢰하려는 거예요?”

“응?”

“이번에는 외삼촌이 아니라 외부 작곡가 쓰는 거죠?”

박대석이 손을 흔들었다.

“야. 아니야. 너희 노래는 내가 챙겨야지.”

“에이….”

“나 상처받는다.”

“농담이에요. 그냥 이 노래가 듣기 좋아서 그랬어요. 어? 2절은 외국어다. 어느 나라 말이지?”

박대석이 너튜브에 올라온 댓글을 보며 말했다.

“이거 누가 작곡한 거 아니야. 그래서 작곡가를 섭외하는 건 불가능해.”

“네?”

“세계 여러 나라의 아주 오래된 민요라더라.”

“아하. 이미 잘 알려진 노래구나.”

“너무 옛날 민요라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더라. 요즘 민요에 멜로디 일부가 전해진 경우는 있다던데.”

“그럼 이 가사도 그 나라 말이에요?”

“그렇다더라. 그것도 아주 옛날에 쓰던 말이라서 요즘은 안 쓴대.”

“신기하네.”

“지금까지 너튜브에 네 곡이 올라왔는데, 넷 다 2절은 각각 다른 언어로 불렀어. 그러니까 김수선은 옛날 언어 4개국어로 노래한 거지.”

“가수나 편곡자가 언어학자인가?”

“나도 잘 몰라. 댓글에서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 댓글을 단 사람은 미국의 언어학자 크리스토퍼 엘런이다. 그는 김수선을 찾고 싶어서 댓글로 그런 정보를 공개했다.

오민하가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김수선이면 우리나라 사람이잖아요. 계약한 곳이 있는지는 물어봤어요?”

“계약?”

“왜요? 가수가 마음에 안 들어요?”

“안 들 리가 있나. 가수 실력이 이렇게 쩌는데. 당연히 계약하고 싶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김수선이 노래를 잘해. 너무 잘해. 다른 기획사와 경쟁이 붙으면 이길 수가 없어.”

“하긴. 우리 회사는 돈이 없지.”

“저번에 참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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