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18화 (118/281)

118. 실종 II

스파이 조직 보스가 채연서의 목에 칼을 댔다. 그녀가 얼른 말했다.

“친구랑 같이 있어요. 여자 사람 친구예요.”

선우현이 차분히 설명했다.

- R 크림 개발자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채연서는 선우현이 상황을 눈치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마음을 조금 놓으며 말했다.

“알죠. 그래도 워낙 좋은 걸 만들어주셨으니까, 혹시 만날 수 있나 해서요.”

- 지금 어디 있습니까?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여기가요. 잠시만요.”

채연서가 보스를 쳐다보았다.

보스가 씩 웃으며 손짓했다. 그의 부하가 스마트폰에 주소를 적어서 보여주었다.

위치는 서울 외곽이었다. 그녀가 그 주소를 불러준 후에 말했다.

“제가 지금 일하느라 여기에 와 있거든요.”

- 가깝군요. 곧 가겠습니다. 기다려요.

전화가 끊어졌다.

보스가 의심했다.

“브로커가 왜 네가 오란다고 바로 오지?”

채연서가 얼른 둘러댔다.

“이 남자가 저를 좋아해요.”

“응? 남자친구인가?”

“아, 아니요. 저는 관심이 하나도 없는데 이 남자가 저한테 푹 빠져 있어요. 그래서 오는 거예요.”

보스가 실실 웃었다.

“흐흐. 여자에게 빠져 있는 놈은 다루기 쉽지. 네 목숨으로 거래하면 R 크림 개발자의 정보를 털어놓겠군.”

***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사장님 동생이 채연서 씨하고 아는 사이입니까?”

최종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 아! 최근에 몇 번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둘이 같이 있나 봅니다.”

- 휴우. 다행….

“같이 납치된 것 같습니다.”

- 헉!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내가 브로커인 척하고 곧 만나기로 했습니다. 인질의 위치는 아직 확실한 게 아닙니다. 내가 가서 확인하는 게 더 빠릅니다.”

최종훈은 선우현이 인질구출의 세계 최고 전문가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그런 결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 그거야 당연하죠! 가주실 겁니까? 고맙습니다!

“주소 보내줄 테니까 그쪽으로 오시죠. 신고는 현장 상황이 안 좋으면 그때 해도 되니까.”

“당장 가겠습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수선아. 어떤 놈들이 R 크림 제조법을 노리나 보다.”

R 크림의 핵심 원료는 레드 포션이다.

- 레드 포션은 지구연합에서도 인공적으로는 합성하지 못했습니다. 헛된 꿈을 꾸는 놈들이군요.

***

선우현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조금 한적한 동네였다.

“주소는 저 카페야. 수선아.”

- 외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선우현이 작은 카페로 걸어갔다. 블라인드가 쳐져서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에 두 사람이 있으면 일이 간단한데.”

선우현이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쪽에서 한 명이 커피를 마셨다. 안쪽에는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없구나.”

그곳은 테이블이 몇 개뿐인 동네 작은 카페였다. 가게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채연서와 최민영도 없었다.

선우현이 빈자리에 앉으며 일부러 말했다.

“아직 안 왔나?”

입구 쪽에 있던 사람이 물었다.

“채연서 씨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아십니까?”

남자가 문을 잠갔다.

“알지요. 곧 만날 수 있습니다.”

선우현은 입구 쪽을 보고 있었다.

뒤쪽에 있던 두 놈 중 하나가 조용히 일어나며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검은색 천으로 만든 봉투였다.

선우현이 뒤는 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런데 여기 사장님은 어디 갔습니까?”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죽인 건 아니어야 할 텐데.”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눈치챘나?”

“우리 숙녀분들은 잘 계시냐?”

남자가 선우현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말했다.

“그 여자들의 목숨은 너 하기에 달렸지.”

“그 숙녀분들이 죽으면 너희도 다 죽어.”

“이 새끼가….”

선우현의 뒤로 접근한 놈이 검은색 봉투를 들었다. 머리에 덮어씌워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선우현이 뒤로 휙 돌아서며 그놈의 목을 콱 잡았다.

“켁!”

“움직일 때 소리가 나잖아.”

선우현이 적의 몸을 위로 번쩍 들었다가 탁자에 처박았다. 탁자가 박살 나고 적이 비명을 토했다.

“케에엑!”

뒤에서 접근한 놈은 둘이다.

한 놈이 나가떨어지자마자 다른 놈이 급히 칼을 뽑았다. 잭나이프가 아니라 손잡이와 칼날이 제대로 달린 실전용 나이프였다.

적이 그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선우현이 적의 손을 붙잡아 벽에 처박았다.

“악!”

손에서 칼이 튕겨 나왔다. 선우현이 그 칼을 공중에서 잡아 휙 돌린 후에 적의 손바닥에 콱 찍었다.

칼날이 손바닥을 뚫고 카페 벽에 깊게 박혔다.

“으아악!”

문앞에 서 있던 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어떻게….”

“그래서, 우리 숙녀분들 지금 어디 있냐?”

그놈이 황급히 문 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방금 위쪽의 잠금장치를 잠가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놈이 뒤로 돌아서서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 누구야!”

“브로커.”

“브로커가 어떻게 이렇게….”

“저승 브로커. 너 같은 놈이랑 저승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 잘 보내줄게.”

그놈이 동료들을 보았다. 한 명은 의자를 부수고 바닥에 처박혀 정신을 잃었다. 팔과 어깨가 뒤틀려 있었다.

다른 놈은 벽에 생물 표본처럼 꽂혀 있었다. 오른손을 뚫고 들어간 칼날이 시멘트벽에 너무 깊게 박혔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는 빼지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

출입구 쪽에 있던 놈은 이미 겁을 집어먹었다.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방법도 없다. 싸워서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선우현이 물었다.

“우리 숙녀분들 어디 있냐?”

“그, 그게….”

“대답할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아직 두 놈이나 더 살아있으니까.”

그놈이 동료들을 힐끗거렸다. 둘 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선우현이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빼낼 수는 있다.

그놈이 눈알을 굴렸다.

‘이놈은 경찰이 아니야. 뒷일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놈이야. 수틀리면 나를 죽일 수도 있어.’

그놈이 이 일을 하는 건 돈을 뿌려가며 흥청망청 신나게 살기 위해서다. 그는 죽기 싫었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놈은 채연서와 최민영을 억류해둔 곳이 어디인지 털어놓았다. 그들은 여기서 선우현을 납치해 그곳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가깝네.”

“예. 너무 멀면 이동하기 불편하니까….”

“이 가게 주인은 죽였냐?”

“아, 아닙니다. 기절만 시켰습니다.”

선우현이 그놈을 끌고 카페 주방으로 가서 확인했다. 혼자 카페를 운영하던 남자가 기절해 있었다.

“거기 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너희는 다 죽는다.”

“거기 다 있습…. 켁!”

선우현이 그놈을 후려쳐 기절시켰다.

손에 칼을 맞은 놈도 목을 눌러 정신을 잃게 했다. 그런 후에 칼을 뽑아 기절한 놈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선우현이 출입구의 잠금장치를 푼 후에 카페를 나왔다. 그는 밖에서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종훈의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지금 가고 있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최민영 씨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 역시 선우현 씨! 제가 당장 신고하겠습니다!

“여기서 가깝습니다. 내가 더 빠릅니다.”

- 그럼 제 동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최 사장님.”

선우현이 카페를 돌아보았다.

“정보를 빠르고 확실하게 빼내기 위해서, 피를 좀 봤습니다.”

- 헉! 다 죽였습니까?

“안 죽였습니다. 손에 칼에 맞은 놈은 있지만요. 그러니까 이미 일어난 일과 이제 곧 일어날 일을, 최 사장님이 해결해주셔야겠습니다.”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싸우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로 처리해야겠군요.

“놈들이 저를 납치하려 했습니다.”

- 그럼 더 좋습니다. 납치되지 않으려고 싸웠고, 근처에 아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알고 구하러 가시는 겁니다.

“가게 주인은 놈들에게 맞아서 기절해 있더군요. 구급차가 필요합니다. 이 상황을 문제 안 생기게 해결하실 수 있겠습니까?”

- 저만 믿으십시오. 그동안 활토를 정가에 팔면서 쌓은 인맥을 이럴 때 써먹어야지요.

활력 토마토는 인맥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태양 백화점에서 행사 상품으로 판 적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최종훈과 인맥을 쌓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모르게 처리하기 어렵다. 아무도 모르게 하려면 범인들을 모두 묻어야 한다.

그렇게 일을 키우느니 범인들을 경찰에 넘기는 게 낫다.

최종훈이 맡은 건 선우현이 처벌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 사람만 안 죽었으면 인맥을 총동원해서 참고인 조사 한 번으로 끝나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민영이를 꼭 좀 구해주십시오.

“연서 씨도 같이 있습니다.”

- 아! 물론 채연서 씨도 구하셔야죠!

선우현이 전화를 끊고 움직였다. 목적지는 걷기엔 조금 멀지만 오토바이로 가면 곧 도착하는 거리에 있었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 나를 잡으려고 함정을 팠어.”

- 술집의 CCTV를 지운 솜씨를 보면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넌 지상의 CCTV 기술은 모를 텐데 그건 어떻게 아냐?”

- TV에서 봤습니다.

“수선아. 너 믿어도 되냐?”

- 현실에서는 냉전 시대나 그 이후에 지상에서 벌어진 첩보 작전을 여러 번 구경했습니다. 제가 보는 눈 하나는 전문가입니다.

실내 작전은 지원위성에서 볼 수 없다. 대신에 실외에서 일어나는 일은 위성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 그러니까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목적지에는 금방 도착했다. 문을 닫아놓은 공업사가 보였다.

“여기는 폐업한 곳이라 올 사람은 없다고 했단 말이야.”

그 정보는 방금 카페에서 제압한 놈에게 들었다.

- 우편물이 왔다고 속일 수는 없겠군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만약 최 사장님 동생에게 마가 낀 거라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어. 서둘러야 해.”

- 진짜로 마가 끼었을 리는 없겠지만, 찜찜하긴 하군요. 그럼 강행돌파입니까?

“그게 최선이다.”

- 어떻게요?

공업사의 앞은 가늘고 긴 철판을 이어붙여 만든 셔터로 막혀 있었다. 낮에는 셔터를 위로 올려서 차를 수리하다가, 밤에는 내려서 문 대신에 앞부분을 모두 막는 방식이었다.

선우현이 셔터 앞으로 가서 철판 사이의 틈새를 이용해 안쪽을 확인했다. 작은 구멍으로 내부가 살짝 보였다.

- 뭐가 좀 보이십니까?

“두 사람의 위치를 확인했다.”

채연서와 최민영은 안쪽 벽 근처에 있었다.

“이러면 방법이 있지.”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업사의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꽤 큰 창문이 있었다. 창문에는 신문지를 붙여둬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창문 앞에는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 선장님. 아니죠? 그거 하실 거 아니죠?

“응. 할 거야.”

선우현이 가속핸들을 확 당겼다. 오토바이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는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들어 승용차를 타고 올라갔다. 그 승용차를 점프대처럼 써서 오토바이를 공중에 띄웠다.

“가즈아!”

- 그러다 진짜 간다고!

거의 수직으로 세운 오토바이의 앞부분이 창문 위쪽 벽에 닿았다. 뒷바퀴는 창문 유리에 닿았다.

창문 유리는 맹렬히 회전하는 뒷바퀴에 닿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의 핸들에서 손을 놓으며 안장을 두 발로 박찼다.

오토바이가 창문을 뚫고 실내로 날아갔다.

선우현은 공중에서 승용차 지붕 위에 착지했다. 오토바이는 이미 공업사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졌다.

바로 앞에 유리가 완전히 사라진 창문이 보였다.

선우현이 차 지붕을 박차며 창문 안으로 점프했다.

안에 있던 산업스파이 조직원 다섯 명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유리 파편에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렸다.

파편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혼자 발광하는 오토바이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럴 때 선우현이 창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했다.

채연서와 최민영은 벽 쪽에 있어서 파편이 닿지 않았다. 오토바이도 반대쪽으로 던졌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았다.

반면에 산업스파이 조직원들은 유리에 긁힌 상처가 여럿 생겼다. 오토바이에 치여서 나가떨어졌다가 겨우 일어나는 놈도 하나 있었다.

“이놈들은 미끼에 정신이 팔려서 인질 쪽은 신경 못 쓴다.”

- 납치된 사람들은 안 다쳤습니까?

“스치지도 않았어.”

- 유리가 옆으로 튀어서 인질을 다치게 하면 어쩌려고 그러신 겁니까?

“레드 포션이 있잖아.”

- 납치된 사람은 둘인데 선장님은 하나만 가지고 계신데요?

“작은 상처일 테니까 반씩 나눠 쓰면 되지.”

- 현지 협력자도 아닌데 맨정신인 사람한테 레드 포션의 효과를 보여주시게요?

“아차.”

- 선장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