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11화 (111/281)

111. R 크림 II

채연서가 질문했다.

“혹시 그 크림을 가지고 TV 광고 같은 거 하실 거예요?”

“겨우 천 개 만들어 파는데 TV 광고는 무리죠. 다 팔아도 남는 것도 없겠네.”

“이거 진짜 좋은 건데, 백만 원 받아도 되는데, 소비자가 그만큼 좋다는 걸 알아야 돈을 내죠.”

그녀가 걱정했다.

“제 디자인이 좋긴 해요. 하지만 광고 없이 매장에 진열해놓으면 누가 처음 보는 화장품을 백만 원이나 주고 사겠어요? 다른 화장품들도 광고에서는 다들 최고로 좋다고 하는데요.”

“활력 토마토는 사던데.”

“그건 최종훈 사장님 인맥으로 입소문이 난 거잖아요. 이건 화장품이라 잘 모르겠네요.”

“음…. 그러면 그건 이쪽 전문가를 만나봐야겠군요.”

“홍보 전문가요?”

“아니요. 판매 전문가. 일단 물건부터 만듭시다. 이 패키지 전체를 천 개씩 만들어줘요.”

“네에!”

***

크림을 담을 용기와 포장 패키지 천 개는 빠르게 완성됐다. 빨리 만드는 대신에 단가가 올라갔다.

채연서가 말했다.

“이번에는 첫 생산이라서 제작비가 많이 들었지만, 다음부터는 이번에 쓴 금형을 또 쓸 수 있으니까 단가가 확 내려갈 거예요.”

선우현은 화장품 제조 공장을 찾아갔다. 이제 크림을 만들고 전용 화장품 용기에 담아야 한다.

선우현이 저번에 이 공장에서 지게차를 멈춰준 덕분에 사고가 나지 않았다. 그때는 하마터면 사장이 지게차에 치이거나 공장 기계가 망가질 뻔했다.

그래서 공장 사람들은 선우현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공장 직원 한 명이 아예 옆에 붙어서 설명했다.

“크림 베이스에 우리 회사의 기본적인 기능성 첨가물은 다 넣고 작업할 겁니다. 이게 기능성 첨가물의 성분표입니다. 여기에 직접 추가할 게 있으시다면서요?”

“예.”

“그건 이쪽으로 오셔서 여기 넣으시죠. 그런 후에 저를 부르시면, 기계를 돌려서 작업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직원은 일단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는 선우현이 뭘 넣는지 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

50g짜리 천 개면 50kg이다. 그걸 다 모아도 드럼통 절반도 못 채운다. 하나로 모아놓으면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기본 크림의 양은 딱 그 정도였다.

선우현이 레드 포션을 꺼냈다. 포션은 전용 주입기에 들어 있는 상태였다.

“수선아. 이 작은 캡슐이 창대한….”

- 빨리 넣으시죠.

“그치? 창대한 건 아니지? 누가 보기 전에 넣어야겠지?”

선우현이 전용 주입기의 세팅을 100%로 조정했다. 이미 0.1%씩 두 번 사용한 상태라 잔량이 99.8%로 자동 수정됐다.

선우현이 작동 버튼을 눌렀다.

수십 개의 미세 바늘이 주입기에서 나왔다. 모든 바늘에서 붉은색 액체가 흘러나와 베이스 크림과 섞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배출시키자 포션 주입기의 제어판에 완료되었다는 표시가 떴다.

“후우. 힘들었다.”

- 도대체 어느 부분이 힘들 수 있나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 봤어.”

직원이 돌아오고 화장품 제작 작업이 계속 진행됐다. 다른 기능성 재료들도 골고루 섞이고 별다른 문제 없이 크림이 완성됐다.

완성된 크림을 용기에 하나씩 담는 작업도 곧바로 시작됐다. 소량 주문생산 시스템이라 일부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그 작업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아. 패키지 디자인이 되게 고급스럽네요.”

“아는 디자이너가 도와줬습니다.”

“대박 나십쇼.”

작업은 그날 저녁때 모두 끝났다.

***

이튿날 선우현이 태양 백화점 유소율 이사를 만났다.

유소율이 굉장히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선우현 씨. 자주 뵈면 좋을 텐데, 너무 오랜만이네요.”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듯한데요. 백화점 행사 때 봤잖습니까?”

“아. 그런가요?”

“그날 추첨용 상자도 만들어서 직접 줬는데.”

“어머어. 너무 반가워서 오랜만처럼 느껴지나 보다.”

유소율은 선우현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은 약속을 잡기 어려웠다. 유소율이 시간을 내서 만남을 제안하면, 선우현은 그때마다 다른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우현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다. 유소율은 즉시 기존 스케줄을 취소해 시간을 비웠다.

유소율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혹시 활토를 더 주시려고요? 그러면 제가 멋진 행사를 진행….”

“크림을 만들어봤습니다.”

“네?”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요. 많이는 아니고, 딱 천 개만 만들었습니다.”

유소율은 조금 실망했다.

“아. 페이스 크림이요. 토마토가 아니군요. 네.”

“이 크림을 좀 팔았으면 하는데, 가격을 백만 원쯤 받으려고 합니다.”

유소율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백만 원이요? 크림 하나에요?”

“유 이사님이 그쪽으로는 전문가니까 의견을 물어볼까 싶어 왔습니다.”

유소율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백만 원짜리 크림이 없는 건 아니야.’

태양 백화점에는 없지만 다른 백화점에는 있다.

‘하지만 그건 브랜드 가치가 굉장히 높고, 거기에 다양한 홍보에 온갖 기능성 성분으로 도배해서 겨우 가능한 건데….’

단순히 홍보를 많이 하고 기능성 성분을 많이 넣었다고 해서 소모품인 크림이 그렇게 비싸지는 건 아니다.

백만 원이 넘는 가격은 거기에 특별한 가치가 더해졌을 때나 겨우 가능하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샘플이 있나요?”

“있죠. 양산품을 어제 만들었으니까.”

선우현이 테이블 위에 새 크림을 하나 올려놓았다.

“어머. 디자인이 참 좋네요?”

“채연서 씨가 디자인했거든요.”

“역시 채연서 디자이너. 그래서 활토 디자인과 콘셉트가 비슷하군요.”

그녀가 R 크림의 케이스부터 평가했다.

“일단 디자인은 훌륭해요. 이것만 보고 사려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무명 브랜드가 백만 원은 좀….”

그녀가 선우현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선우현은 실망한 눈치가 아니었다.

유소율이 좀 더 현실적인 가격을 말했다.

“크림은 가방과는 달리 쓰면 없어지는 소모품이잖아요. 그래서 무명 브랜드는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십만 원도 어렵….”

선우현이 말했다.

“피부에 주는 효과가 활토처럼 좀 특별합니다.”

유소율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네?”

“놀라셨나 보네.”

“당연하죠. 그게 가능한 거였어요? 아니, 토마토를 갈아 넣으셨나?”

“태양 백화점 행사에서 활토 팩을 하는 걸 보고 크림에 갈아서 넣어봤는데, 그것도 효과가 좀 있지만 만들기 번거롭더라고요. 유통기한 문제도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유소율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서요?”

“활토를 키울 때 쓰는 고급 영양 성분을 크림에 직접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활력 토마토는 식물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운다. 그 촉진제의 원료로 레드 포션이 조금 들어간다.

이건 그 레드 포션을 직접 넣어 만들었다.

“그럼 설마 이것도 효과가….”

“활토 팩과는 좀 다른데, 일단 써보고 다시 이야기하죠.”

유소율은 괜히 시간을 끌 생각이 없다.

‘진짜로 효과가 있다면 다른 백화점에서도 노릴 거야. 소문나기 전에 잡아야 해.’

그렇다고 덥석 백만 원에 팔아주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오늘 일단 발라보고.’

“그럼 내일 다시 이야기할까요? 희망하시는 가격이 워낙 높으니까….”

“그러시죠.”

유소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참. 기왕 오셨는데 식사라도….”

“오후 두 시면 이미 밥을 먹었을 시간입니다만?”

“아…. 그러네요. 저도 먹었죠.”

***

선우현이 백화점을 나왔다. 김수선이 물었다.

- 밥 먹고 가도 되잖습니까?

“여섯 시였으면 먹었지. 아직 배 안 고파.”

- 선장님이 드디어 배가 불렀군요.

“진짜로 배가 부른 거야.”

***

유소율이 여자 화장실에 있는 파우더룸에서 R 크림의 뚜껑을 열었다.

“케이스는 고급스럽지만 크림은 평범해 보이는데….”

향도 평범하고 투명도나 색도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활토를 갈아 넣은 건 아니라고 했지.”

그녀가 크림을 얼굴에 조금 발라보았다.

“바르는 감촉도 다르지 않아. 기능성 알갱이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야. 그럼 도대체 무슨 영양 성분을 어떻게 넣었다는 거지?”

상품기획 담당 직원이 파우더룸에 들어왔다가 인사했다. 그녀는 유소율이 들고 있는 크림을 보았다.

“어머나. 신상 명품이에요? 엄청 있어 보이네요.”

“음…. 테스트하라고 받은 건데, 발라 볼래요?”

“넹!”

그녀는 옆에서 여직원이 크림을 바르는 걸 보며 물었다.

“느낌이 어때요?”

“글쎄요? 명품 크림의 느낌은 안 나는데요. 금가루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나 향도 평범하고요.”

“그렇죠?”

그녀가 지시했다.

“다들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요.”

그녀가 태양 백화점의 상품기획 담당 직원들을 소집했다. 그런 후에 선우현이 주고 간 크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새로 들여올까 고민하는 신상인데, 다들 발라봐요.”

여자 직원들이 크림을 조금씩 손등에 발랐다.

유소율이 말했다.

“난 얼굴에 발랐어요.”

직원들 얼굴에도 조금씩 나눠 발랐다.

“남자분들도요.”

결국 회의에 참석한 모든 직원이 크림을 얼굴에 발랐다.

유소율은 일부러 이 크림과 활력 토마토의 관계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야 더 객관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어서다.

그녀는 두 시간 후에 직원들의 자리로 찾아가 상태를 확인했다.

‘트러블이 생긴 사람은 없어. 효과는 아직은 잘 모르겠고.’

유소율은 평가를 보류했다.

‘선우현 씨를 내일 만나기로 했으니까, 내일까지 기다려보자. 평범한 크림보다 조금 좋은 정도라면, 최대 십만 원까지는 받아보겠다고 잘 설득해 봐야지.’

오후 6시에 그녀의 어머니인 백화점 부사장이 찾아왔다.

“너는 아직도 퇴근할 준비를 안….”

그녀가 책상 위에 있는 R 크림을 발견했다.

“그건 뭐니? 처음 보는 건데.”

“아는 사람이 만든 건데 입점할지 말지 테스트하는 거야.”

“남자야?”

“남자는 맞는데,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좋은 거면 나도 좀 써보자.”

유소율이 머뭇거렸다.

“음…. 일단 피부 트러블은 없어 보이긴 해. 특이한 향도 없고.”

“뭘 그렇게 망설여?”

그녀의 어머니가 R 크림의 뚜껑을 열고 듬뿍 찍어 얼굴에 발랐다.

“향이 평범하네. 감촉도 평범하고.”

“그치? 그래서 고민이야.”

“디자인은 좋은데 무명 브랜드니까 1층은 어렵겠다. 통로 중간에 작은 가판이라도 하나 세워서 팔아보던가.”

“좀 더 시험해보고. 이거 오늘 받았단 말이야.”

“오늘 엄마랑 식사하는 날인 거 알지?”

부사장의 엄마는 이 백화점의 사장이다.

“아!”

“네가 또 그럴까 봐 데리러 왔다. 가자.”

“일 많은데….”

“밥 먹고 와서 해.”

“알았어.”

유소율이 R 크림을 핸드백에 넣고 사무실을 나왔다.

태양 백화점의 사장인 유소율의 할머니는 반쯤 은퇴한 상태다. 백화점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출근하지만, 평소에는 부사장이 사장 대행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식사 도중에 R 크림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거 살펴보느라고 늦을 뻔했다니까요.”

할머니가 손짓했다.

“가져와 봐. 좋은 거면 나도 좀 발라보게.”

유소율이 망설였다.

“할머니까지요? 괜찮은데….”

“아까워서 그런 거니?”

“아니요. 이거 이제 막 나온 거라서, 괜찮은지 아직 잘 몰라요.”

“너 내 딸 얼굴에는 잘만 발랐다면서?”

“엄마가 그냥 찍어 바른 거예요.”

유소율은 결국 할머니의 얼굴에 R 크림을 발라주었다.

유소율은 식사 후에 회사로 돌아와 일했다.

그날은 밤늦게 약속이 또 있었다. 그녀는 밤 10시에 친구가 주최한 작은 파티에 들러 술을 마셨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떴다가, 평소보다 밖에 밝다는 걸 깨달았다. 얼른 시계를 확인했다.

“늦었다아아!”

어제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 요즘 일이 많아 야근도 거의 매일 했다.

피곤으로 지친 몸에 알코올이 더해지자 몸이 완전히 퍼졌다. 그녀는 결국 늦잠을 자 버렸다.

스마트폰의 알람이 아침 일찍 울렸지만 잠결에 꺼버렸다.

“이런 날은 진짜 활력 토마토 하나 먹고 싶다아!”

그녀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대충 씻고 화장도 급하게 했다.

오늘따라 화장이 잘 먹혀서 그나마 시간을 조금 절약할 수 있었다.

그녀가 차를 몰고 백화점에 도착했다. 차는 지하주차장에 세운 후에,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시계를 보았다.

“서둘렀는데도 늦었어!”

최소한 정시에는 출근해야 평소의 빈틈 없는 유소율 이사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늦게 일어나 평소보다 좀 늦었다.

“일찍 와서 다른 부서에 회의라도 갔다 온 척해야겠다.”

엘리베이터가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 그녀의 방으로 또박또박 걸어갔다. 표정도 일부러 당당하게 짓고 허리도 쭉 폈다.

이사실은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과 붙어 있다. 그녀가 사무실을 통과하자 사람들이 인사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마주 인사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뭔가 이상한데?’

상품기획 팀원들의 얼굴이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

‘뭐지? 오늘 나만 빼고 단체로 놀러 가나?’

그녀가 팀원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얼굴이 탱글탱글해져서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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