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10화 (110/281)

110. R 크림

선우현은 화장품 가게에 가서 흔히 파는 크림을 하나 샀다. 그런 후에 레드 포션 전용 주입 장치에 포션을 장착하고 사용량을 0.1%로 세팅했다.

주입기에서 미세관이 하나만 빠져나왔다. 그 작은 관에서 레드 포션이 아주 조금 흘러나와 크림에 스며들었다.

그는 그 크림을 잘 섞은 후에 최종훈을 만났다.

“크림 샘플인데, 특이한 성분이 검출되는지 확인 좀 해줘요.”

“우리 회사 연구소에 맡겨서 즉시 분석하게 하겠습니다.”

“정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선우현 씨가 맡긴 일인데 당연하죠.”

***

이튿날 결과가 나왔다. 최종훈이 선우현을 만나 설명했다.

“이거 화장품 가게에서 흔히 파는 그냥 크림인데요?”

“특이한 건 안 나왔습니까?”

“같은 브랜드의 크림을 사다가 비교해봤는데, 성분에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세한 차이요?”

“그런데 그건 다 자연계에 흔히 존재하는 성분이고, 특이하다고 할만한 건 전혀 없다고 합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레드 포션의 핵심 성분을 지구의 기술로 검출하는 건 무리죠.

“그러면 이제 크림을 생산해줄 업체만 있으면 되겠군요. 최 사장님이 아는 곳 있습니까?”

“얼마나 많이 만드실 겁니까?”

“대량은 아니고, 50g짜리 얼굴에 바르는 크림 천 개 정도?”

“그럼 50kg 정도인데, 그 정도면 만들어줄 업체는 많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상품화하기엔 양이 좀 적은데, 샘플인가요?”

“아니요. 그냥 천 개만 만들어서 비싸게 팔 겁니다.”

최종훈은 얼마 전 백화점 행사에서 본 활토 팩이 생각났다

“어? 혹시…. 크림에 활토를 갈아 넣으시려고….”

“아니요. 다른 게 들어갑니다.”

“아니군요. 난 또. 그럼 어떤 게 들어갑니까?”

“레드 포션이요.”

“예. 레…. 예?”

최종훈은 깜짝 놀랐다.

그는 레드 포션 덕분에 다리의 후유증을 벗어났다.

“아니, 그 귀한 걸 화장품에….”

“레드 포션은 만들기 어려운 거긴 한데, 그렇다고 못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와. 기적의 약인 레드 포션을 직접 화장품에 첨가하면…. 효과가 기대되는데요?”

“소량이라도 비싸게 팔 거니까, 용기나 포장 케이스도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소량 생산을 해주는 업체 중에서 조건이 맞는 곳을 찾겠습니다. 저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제 얼굴에 잔주름이 슬슬…. 하, 하하.”

크림 생산 업체는 최종훈이 찾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제품 디자인까지 그 업체에 맡기면, 평범한 기존 용기를 그대로 쓸 게 뻔하다.

그래서 선우현은 명품 디자이너 채연서를 만났다. 선물로 토마토도 몇 개 가져갔다.

채연서가 반가워했다.

“어머어.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뭘 이런 걸 다….”

“그럼 다음에는 빈손으로 오는 거로.”

“예의상 한 말이에요. 다음에도 활력 토마토 꼭 부탁해요.”

선우현이 화장품 용기를 하나 꺼냈다.

그는 가게에서 파는 크림에 레드 포션 0.1%를 넣어 샘플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걸 천원샵에서 산 작은 통에 일부만 옮겨 담아왔다.

“이거 한 번 발라봐요.”

“이게 뭔데요?”

“내가 새로 만들려는 크림인데, 효과가 괜찮아요.”

채연서가 작은 통을 받으며 물었다.

“여기에 이상한 거 넣은 건 아니죠?”

“이상한 거 넣었는데.”

“네?”

“몸에 나쁜 건 아니니까 한번 써봐요.”

레드 포션은 원래 사람 몸에 주사해 사용해도 부작용이 없다. 피부에 조금 바른다고 해서 포션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고마워요. 언니랑 나눠 쓸게요.”

“그럼 더 좋고.”

테스트 인원이 늘어나면 나쁠 건 없다.

“그런데 이거 주려고 저를 만나자고 한 거예요?”

“그 화장품의 디자인을 맡기려고요. 크림 용기부터 포장 케이스까지 전부 다.”

채연서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런 건 그냥 부탁해도 되는데, 뭘 이렇게 선물까지….”

“그럼 다음부터는 역시 빈손으로….”

“선물 너무 잘 받았다고요. 다음에도 활토 잊지 말아요.”

***

이튿날 채연서가 선우현의 옥탑방 옥상으로 찾아왔다. 그녀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이 크림 도대체 뭐예요?”

“효과 있어요?”

“설마 스테로이드나 아니면 보톡스 비슷한 그런 거 들어간 거 아니죠?”

“몸에 나쁜 건 안 넣었습니다.”

“근데 피부가!”

그녀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켰다.

“일주일쯤은 일 하나도 안 하고 놀고먹은 것처럼 좋아졌어요!”

“효과 있다니 다행이네요.”

“저만 이런 줄 알아요? 우리 언니는 나이가 있는데 와. 크림만 발랐는데 눈가에 잔주름이 펴지더라니까요?”

김수선이 말했다.

- 반응을 보면 활력 토마토를 갈아 넣었을 때보다 효과가 더 좋아 보입니다. 레드 포션 희석액이 피부에는 더 좋나 봅니다.

“레드 포션은 원래는 이렇게 화장품에 섞어 쓰는 게 아닌데 말이야.”

- 우리 오천 년 숙성 포션은 지구연합의 기존 포션에 추가 효과가 붙었으니까요.

채연서가 말했다.

“그런데 크림이라 그런지 효과가 오래 안 가요. 저는 어젯밤에 바르고 언니는 낮에 먼저 발랐는데, 하루 지나니까 언니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갔어요.”

“크림이니까 당연히 매일 발라줘야죠. 아침저녁으로 바르면 더 좋고요.”

“샘플을 조그만 거 하나 주셨잖아요.”

“만들어둔 게 별로 없어서.”

“나는 더 많은 그 크림이 필요해요! 더 주세요! 우리 언니 것도 내놔요!”

선우현이 탁자 앞 의자를 가리켰다.

“좀 더 덜어줄 테니까 일 이야기부터 합시다.”

“좋죠!”

“일단 천 개만 생산할 겁니다. 하나당 용량은 50g.”

채연서가 의자에 앉아 옥상의 활력 토마토 화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디자인은 활력 토마토와 같은 콘셉트로 가야죠. 활토는 활력이 생기고, 이건 주름이 없어지고. 둘 다 몸에 좋아 보이잖아요.”

“완전히 똑같이 디자인할 건 아니지요?”

“당연하죠. 시그니처 문양은 그대로 가는데, 디테일한 부분은 제품 특성에 맞춰서 달라져야죠. 하나는 식품이고 하나는 화장품이니까요.”

“맡을 겁니까?”

“당연하죠!”

“이번 디자인의 대가로 원하는 건?”

“당연히 이 크림 정기 구매권! 디자이너 할인가로!”

“언니분 것도 필요하다면서요?”

“생각해 보니까 우리 엄마 것도 필요하네요? 아니다. 아빠도 너무 늙으셨어요.”

“생산량이 천 개라니까요?”

“어머나.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팍팍 좀 만드세요. 이거 진짜 만들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릴 거예요.”

“원료가 대량생산이 안 되는 거라서.”

“아… 토마토도 그렇더니 이번에도….”

“그래도 뭐, 연서 씨 가족이 쓸 만큼은 줄 수 있겠네요.”

채연서가 슬그머니 간을 보았다.

“분명히 이모도 달라고 할 텐데….”

“어허.”

그녀가 즉시 꼬리를 말았다.

“이모는 엄마 선에서 커트해야죠. 암요. 우리 쓸 것도 부족한데요.”

선우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2차 생산을 하게 되면 그때 좀 신경 써줄 테니까….”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 레드 포션 하나 더 정제하는 거로 안 끝날 줄 알았습니다. 저는 어디서 또 자원과 에너지를 아껴야 하려나.

선우현이 말을 조금 바꾸었다.

“나중에 더 만들 수는 있는데, 지금은 딱 천 개만 만들 겁니다. 그거 고려해서 디자인 잘해봐요.”

채연서는 나중에 더 만든다는 말을 듣고 활짝 웃었다.

“제 이름 걸고 디자인하는 데다가 제 피부 건강도 걸려 있잖아요. 당연히 최고로 해야죠. 오늘 당장 작업 시작할게요! 아! 이 크림 이름이 뭐예요?”

“음….”

이 크림에는 레드 포션이 미량 첨가되어 있다.

“R 크림?”

***

제품을 만들 업체를 최종훈이 알아왔다. 선우현이 최종훈과 같이 업체를 방문했다.

“공장이 아담하군요.”

그 회사는 경기도 한적한 곳에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최종훈이 설명했다.

“제가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여기가 기본 크림의 품질이 좋습니다. 소량 주문생산 경험도 많고요.”

“바빠 보이지는 않는데.”

“품질이 좋은 대신에 다른 곳보다 단가가 조금 높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주문하면 빠른 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냥 평범한 주문생산인 것처럼 하면 되겠군요.”

“그렇죠. 우리가 R 크림을 얼마에 팔든 이 공장에서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니까요.”

선우현이 말했다.

“첨가물이 뭔지 궁금해하지도 않을 테고요.”

“벌꿀을 넣든 인삼 농축액을 넣든 아니면 달팽이 점액을 넣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더군요. 주는 대로 넣는답니다. 비법 재료인 경우는 직접 넣을 수도 있습니다.”

“딱 좋은 곳을 알아내셨네요.”

“흐흐. 김 비서가 고생했습니다.”

옆에서 김찬혁이 말했다.

“제 일처럼 열심히 했습니다.”

“뭐 드릴 건 없고, 찬혁 씨 여자친구가 R 크림을 좋아하시려나….”

“헉! 주시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도 계신데….”

“설마 달랑 하나만 주겠습니까?”

“믿고 있었습니다!”

선우현이 공장으로 걸어갔다.

“일단 공장 답사는 해야…. 어?”

공장 사람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으아아!”

“막아!”

지게차 한 대가 공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운전석에 사람이 없었다.

지게차가 가는 방향에서 공장 사장이 문을 닫으려고 애썼다. 지게차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어서다.

그런데 문이 커서 닫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대로 두면 사장이 지게차에 치일 상황이다.

“뭐지? 기계의 반란인가?”

- 설마요.

선우현이 지게차를 쫓아가 운전석에 뛰어올랐다. 가속페달 아래쪽에 음료 캔이 구겨지고 비틀어진 채로 끼어 있었다.

“반란이 아니라 사고네.”

선우현이 그 캔을 발로 툭 차서 빼낸 후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지게차가 정지했다.

선우현이 지게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휴우우. 살았다.”

“저게 공장으로 뚫고 들어갔으면 기계 다 망가졌을 거야.”

“기계 새로 살 돈은 없을 테니까 그랬으면 공장 망했겠지.”

“그래서 사장님이 목숨 걸고 문 닫으려고 하신 거잖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누구….”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물었다.

“여기서 생산해도 되는 거 맞지요?”

“그…렇겠죠?”

***

생산 공장은 그곳으로 결정했다.

며칠 뒤에 채연서가 디자인 샘플을 가져왔다.

그녀가 모든 샘플을 옥탑방 옥상 평상 위에 진열했다.

“이건 제품 패키지 디자인, 이건 쇼핑백.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크림을 담는 용기 디자인이에요.”

“샘플이 빨리 나왔네요?”

“토마토 같은 농산물보다는 이쪽이 제 전문분야라서 아는 업체가 많아요. 그중에 실력 좋고 빨리 만들어줄 수 있는 곳에서 했어요.”

“본 제품 생산은 얼마나 걸립니까?”

“겨우 천 개 정도는 돈만 많이 주면 편법을 써서 빨리 만들 수 있어요. 필요하면 제작용 금형을 손으로 깎아서라도 만들어야죠.”

“역시 채연서 씨에게 맡기길 잘했습니다.”

“당연하죠. 저 채연서예요. 그런데요.”

채연서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제품은 언제 나와요?”

“저번에 준 크림이 남았을 텐데요?”

“그게 문제가 있더라고요.”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이 하시는 일이 다 그렇….

채연서가 설명했다.

“바를 때마다 피부 개선 효과가 너무 확실히 보이니까 자꾸 쓰게 돼요. 얼굴에 안 바른 곳 없나 확인하면서 꼼꼼히 바르게 되고요. 손에도 살짝 발라요. 그래서 크림이 너무 빨리 없어져요.”

- 다 그렇게 잘 되지요. 암요.

선우현이 물었다.

“그렇게 자주 쓰게 되면, 다 쓰고 나면 다시 살 생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돈이 안 아깝겠냐고요. 비싸게 팔 건데.”

“당연하죠! 가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사야죠!”

“음…. 얼마 정도 예상합니까? 이쪽 전문가니까 잘 알겠네요.”

“단순 보습이 아니라 초고기능성 크림이잖아요? 에센스나 다른 이름을 써도 되는데…. 어쨌든 크림은 일단 십만 원이면 굉장히 좋은 거 사요.”

김수선이 말했다.

- 천 개를 팔면 일억이군요. 괜찮네요.

“거기다 기능이 엄청 좋고 브랜드 가치까지 있으면 가격이 막 올라가죠. 이삼십 만원도 가요.”

- 호오. 이삼억. 괜찮….

“진짜 최첨단 성분에 최고급 고기능성 화장품은 백만 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 천 개면 십억? 선장님! 당장 레드 포션 하나 더 재처리하겠습니다!

“재처리할 에너지 없다며.”

- 쥐어짜야죠.

선우현이 채연서에게 물었다.

“그럼 이걸 백만 원에 팔면 사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이건 제가 지금까지 써본 그 어떤 화장품보다도 효과가 좋아요. 더 비싸도 살 사람 많…. 아.”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선우현이 말했다.

“문제가 있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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