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수제 화장품
선우현과 박서윤은 경찰서로 이동해 상황을 설명했다.
오토바이는 일단 공원에 두고 왔다.
두 사람은 경찰서에서 일을 마친 후에 택시를 타고 집이 있는 동네로 돌아왔다.
박서윤은 동네에서 화장품 재료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크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몇 개 샀다.
선우현이 물었다.
“화장품 재료에 익숙하네요?”
“예전에는 항상 만들어서 썼거든요. 지금은 월급을 받으니까 로션이나 크림도 사서 쓰지만요.”
“화장품을 만들 때 토마토는 어떤 식으로 쓰려고요?”
“방법은 생각 중이에요. 어차피 토마토 하나로는 여러 가지는 못 하니까 하나를 잘 선택해야죠.”
“음…. 몇 개 더 줄 테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요.”
“어머. 진짜요? 두 개만 더 주세요. 생각나는 방법이 세 가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만들면 어떻게 다 쓰게요?”
“예전에도 많이 만들어서 남는 건 주변에 나눠주고 그랬어요. 회사 가서 비서실 직원들이랑 나눠 쓰면 돼요.”
***
선우현은 옥탑방으로 돌아와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행사에서 토마토 팩을 하는 거 보셨지요?”
- 예. 효과가 정말 좋았죠. 역시 활토입니다.
“그걸 팩에 쓰는 걸 보면, 활토가 피부에 좋다는 걸 아는 사람이 이미 있나 보더군요.”
- 화장품 회사에서 활토를 분석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박서윤은 수작업으로 활토 크림을 만들려고 한다.
“화장품 회사에서 활토를 넣은 화장품을 생산할 계획이 있습니까?”
- 생각은 굴뚝같겠지요. 하지만 원료인 활토를 안정적으로 구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만들어 팔겠습니까? 그래서 그 효과가 어디서 나오는지 연구 중이라더군요.
“그래서 찾았답니까?”
- 전혀요. 기존 토마토의 좋은 성분이 몇 배로 농축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찾아냈답니다. 그래서 평범한 토마토를 농축해서 비슷한 효과를 찾아내는 실험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선우현이 전화를 끊었다.
“크림이 양산되면 서윤 씨한테 하나 사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그러면 괜히 수제품을 안 만들어도 되잖아.”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저한테도 좀 선물해 보시죠. 저도 얼굴이 있습니다만?
“너한테도 당연히 보내줘야지. 우주왕복선을 사면 말이야.”
- 삐뚤어질 테다!
“수선아. 너는 이미 삐뚤어져 있다.”
- 반사.
***
박서윤은 주말에 세 가지 방법으로 크림을 만들었다.
만드는 방식은 다 달랐지만 모두 활력 토마토가 하나씩 들어갔다.
“먹어도 되는 토마토를 섞어 만들었으니까 피부에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일요일에 얼굴에 하나, 양손에 각각 하나씩 세 가지 크림을 발랐다. 월요일에도 그렇게 바르고 출근했다. 문제가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몸에 발라 테스트했다.
그날 오전에 비서실 여자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박 대리. 주말에 어디 좋은 데 갔어?”
“집에 있었는데요.”
“에이. 어디 갔다 온 거 같은데.”
“저는 집이 제일 편하고 좋아요.”
그녀는 예전에는 빨간 날에는 알바를 했다.
명절 때는 시급을 잘 쳐주고 어차피 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풀타임으로 일했다.
이제는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 그래서 그녀는 쉬는 날은 집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동료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평소보다 얼굴이 더 좋은데.”
다른 여자 직원이 쓱 다가왔다.
“박 대리는 원래 얼굴로 연예인 뺨을 때리잖아요.”
“피부 봐봐. 피부.”
“어머. 진짜 피부에서 광이 난다.”
“그래서 주말에 피부과에서 시술이라도 받았나 했는데, 아니야?”
박서윤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제 손은 어때요?”
“어머. 손도 참 곱다.”
“직접 만든 크림을 발랐거든요.”
“으응?”
“세 종류를 만들었는데요. 테스트하려고 얼굴에 하나, 손에 각각 하나씩 발랐어요.”
“크림만 발랐는데 이렇게 광이 난다고? 서윤 씨 혹시 화장품 제조의 신이야? 아니, 회사 왜 다녀? 그냥 창업해.”
박서윤이 웃었다.
“제가 기술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효과가 이렇게 확실한데?”
“회장님이 드시는 토마토 있잖아요.”
“있지. 전용 장비에 보관하고 회장님만 드시는 거. 몸에 좋은 거라며.”
“금요일 밤에 회장님 수행하면서 백화점 VIP 행사에 갔었는데요. 그 행사가 그 토마토 특판 행사였거든요. 그때 당첨됐어요.”
“어머. 좋겠다. 난 그거 맛이 진짜 궁금했거든. 그거 어떻게 했어? 먹었어? 아니면 팔았어?”
“행사장에서 그걸로 얼굴 팩을 하는 걸 보고, 크림 만들 때 넣어봤어요. 어때요? 좋아 보여요?”
동료 여자 과장이 박서윤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세상에. 손 투명한 것 좀 봐.”
다른 동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기야. 혹시 말이야. 그 화장품 남았어?”
“많이 만들었는데, 좀 나눠드려요?”
재료로 사용한 토마토가 커서 크림의 양도 많아졌다.
“진짜? 고마워! 얼마야?”
“에이.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럼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술도 살게!”
동료 여자 과장도 나섰다.
“내일 점심은 내가 살게. 나도 좀 나눠줘. 내가 우리 애랑 남편 키우느라 폭삭 늙었잖아.”
“혹시 누가 필요할까 싶어서 샘플 통에 몇 개 덜어왔는데, 드려요?”
그 작은 크림 통은 평소에 쓰고 나온 걸 모아둔 것이다. 샘플을 자주 받아 써서 남은 통도 많았다.
“고마워!”
***
이튿날 비서실 여자 과장이 출근하다 홍보팀 직원과 마주쳤다.
“어머나. 정 과장님. 어떻게 날이 갈수록 젊어지세요?”
“그치? 자기가 보기에도 그렇지?”
“네? 호호. 농담…으로 말한 거였는데 다시 보니까 피부가 농담이 아니네요? 좋은 거 있으면 정보 공유 좀 해줘요.”
“귀한 건데.”
“역시 뭔가 있구나? 비싸요?”
“그게 말이야. 자기만 알아. 우리 박서윤 대리 알지?”
“당연히 잘 알죠. 저랑 일 여러 번 했어요.”
“박 대리가 만든 수제 화장품을 발랐는데, 아침에 거울 보니까 피부가 다른 거 있지?”
홍보팀 직원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세상에. 달팽이라도 갈아 넣었대요?”
“더 귀한 재료로 만들었대.”
“진짜요?”
“재료가 워낙 귀해서 더 못 만드는데, 이번에 많이 만들어놨다고 해서 좀 얻었…. 어디 가?”
“경쟁 붙기 전에 박 대리한테 달달구리라도 사다 주려고요!”
박 대리는 홍보팀 직원에게 작은 통 하나를 나눠주며 말했다.
“직접 만든 거니까, 혹시 이상 있으면 더 바르지 말고 저한테 꼭 말해줘요.”
다른 직원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주로 박서윤과 아는 사이인 직원들이었다.
그녀는 집에 남겨둔 용기가 부족해 어제 천원샵에서 작은 통을 여러 개 사서 크림을 덜어왔다.
찾아온 직원 중에는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가 사실 피부 트러블 때문에 아무 화장품이나 못 쓰는데, 하도 좋다니까 욕심이 나서….”
“음…. 하나 드릴 테니까, 발라보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멈추세요.”
“고마워요.”
그날 저녁때 박서윤이 옥상에 올라왔다. 수요일에 출근할 때 가져갈 박길성 몫의 토마토 세 개를 미리 수확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에 챙기는 게 더 좋지만, 선우현이 그때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집에 없을 수도 있다.
선우현은 라면을 먹고 있었다.
“출출하면 라면 하나 더 끓일까요?”
“네.”
“김치?”
“당연하죠.”
“계란은?”
“안 깨고 넣는 걸 좋아해요. 수란 느낌을 내면 더 좋고요.”
“냉동 만두도 있는데.”
“어머나. 럭셔리해라.”
선우현이 라면을 하나 더 끓였다.
몇 분 후에 박서윤이 그 라면을 냄비째로 받아서 젓가락으로 먹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도 되는데.”
“이게 익숙해요. 김치 맛있네요.”
“대기업 김치라서 맛있는 겁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박서윤이 말했다.
“시험 삼아 만들어본 화장 크림 말인데요.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요.”
“얼마나요?”
“달라는 사람이 많아서 거의 다요.”
“아니, 그걸 왜 다….”
“효과가 좋은지 어떤지 평을 좀 들어보려고요. 제 얼굴에만 발라보면 잘 모르잖아요.”
“그 크림을 테스트한 거군요.”
“선우현 씨한테 신세 많이 지고 있는데 도움이 됐으면 해서요.”
선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토마토 주스라도 한 잔 드릴까?”
“앗! 고맙습니다! 그거 바라고 한 건 아닌데!”
“알아요.”
***
길성 본사 여직원들 사이에서 박서윤이 만든 수제 화장품이 화제가 됐다. 받아간 사람이 많은 만큼 피드백도 많았다.
비서실 여자 과장이 말했다.
“박 대리. 나 이거 진짜 아껴 쓰잖아. 다 쓰면 못 구할 거 같아서.”
수제 크림을 조그마한 통에 덜어줬기 때문에 몇 번만 써도 줄어드는 게 표가 났다.
“또 드리고 싶지만, 재료가 귀한 거라서요.”
“알지. 그래도 혹시 또 만들게 되면 꼭 좀 부탁해.”
피부에 트러블이 있다던 직원도 찾아와서 환호했다.
“저 원래 아무 화장품이나 못 쓰거든요? 진짜 고급품만 써야 하는데, 이 크림은 진짜 좋다길래 써봤거든요?”
“어땠어요?”
“장난 아니에요. 트러블이 다 뭐예요? 원래 있었던 트러블도 조금이지만 진정이 되더라니까요?”
“다행이네요.”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요. 혹시 이거 더 구하려면….”
“재료가 워낙 귀한 거라서요. 이제 제가 바를 거밖에 없어요.”
그 크림의 효과는 탁월했다. 하지만 보톡스나 피부과 시술처럼 효과가 오래 가는 건 아니다.
비서실 과장이 푸념했다.
“진짜 아끼려고 했는데, 이거 바른 날과 안 바른 날이 확실히 달라. 그래서 안 바를 수가 없다니까?”
“안 발랐다고 전보다 나빠지진 않죠?”
“에이. 당연히 아니지. 오히려 안 바른 날도 예전보다는 피부가 조금 좋아진 느낌이 들어. 기분 탓인가?”
그 크림도 다른 평범한 크림처럼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계속 좋은 피부 상태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그 크림을 발라야 했다.
그날 밤에 박서윤이 선우현을 다시 찾아가 피드백을 전달했다.
“다들 더 만들 수 없냐고 물어서, 재료가 귀해서 이제 없다고 했어요.”
“테스트는 그만하면 됐으니까, 남은 건 서윤 씨 발라요.”
“네.”
그녀가 옥상에서 내려간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화장품을 만들어볼까?”
- 네?
“베이스가 되는 크림은 서윤 씨도 만들 수 있을 만큼 기본 제조법은 간단하잖아. 파는 크림은 거기에 기능성 추출물을 뭘 넣었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 그래서 토마토를 갈아 넣으시게요? 그러려면 3층까지 스마트 농장을 확장해 토마토 생산량을 더 늘려야겠네요? 여기도 에너지 부족이 심각해서 어렵지만, 선장님도 그걸 다 관리하시려면….
“아니. 레드 포션을 직접 부어보려고.”
- 네?
“그러면 급속성장촉진제를 만들 필요도 없고, 3층까지 스마트 농장을 확장할 필요도 없잖아.”
- 선장님?
“활력 토마토의 추가 효과는 결국 5000년 동안 숙성된 레드 포션 덕분이잖아. 그러니까 크림 원료에 포션을 직접 부어도 효과는 비슷하지 않을까?”
-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요?
“수선아. 레드 포션 재처리한 거 있지?”
- 예비로 가지고 있습니다. 선장님이 가지고 계신 걸 또 홀라당 써버리면 바로 보내드리려고요.
“더 복원해놔. 지금 있는 건 써야겠다.”
- 선장님. 레드 포션을 얼마나 쓰시게요?
“왜? 남아돌잖아.”
- 남아돌죠. 여기서 남아도는 건 변질된 레드포션과 데이터가 손상되고 흩어진 메모리뿐이니까요.
“그런데 왜 물어?”
- 대규모 크림 공장에 쓸 만큼 포션을 재처리할 수가 없으니까요. 레드 포션은 남아돌지만, 선체 유지에 쓸 에너지와 자원도 부족한데 재처리에 집중할 수는 없습니다.
“대규모로는 당연히 안 만들지. 일단 포션 하나만 크림 재료가 담긴 통에 부어볼 거야.”
- 얼마나 큰 통을 생각하십니까?
“천 개 정도 만들 수 있는 분량에 레드 포션 하나를 넣는 거지. 그렇게 만들어서 고급품으로 포장하고 소량 판매를 해볼까 싶다.”
- 그렇게 희석해서 만든 크림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토마토 하나에 들어가는 양보다는 진할걸?”
- 그것도 그렇네요. 그리고 한 개 정도는 써도 되죠. 화장품 생산은 직접 하시게요?
“아니. 우리에게는 유능한 현지 협력자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