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강변 II
선우현이 스포츠카를 타고 온 두 놈에게 물었다.
“야. 서윤 씨 따라왔냐?”
박서웅이 옆에서 실실 웃었다.
“왜? 놀랐냐? 우리가 원래 한 번 꽂히면 포기할 줄을 모르거든.”
“이것들을 강바닥에 꽂아버릴까.”
박서웅이 가죽장갑을 끼고 선우현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런데 이 새끼가.”
박서웅이 선우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지금 여자 앞이라고 가오 잡….”
선우현이 그 손을 잡아채 확 비틀었다.
“으, 으아아! 손! 손!”
“부러뜨릴까….”
선우현이 잠시 고민했다. 쫓아온 것까지는 확실한데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조폭이나 청부업자도 아니다.
선우현이 박서웅의 팔을 밀었다.
“야. 보내줄 때 가라.”
박서웅이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잡고 이대현이 있는 곳까지 후퇴했다.
“이, 이 새끼….”
“가라고.”
박서윤이 말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말해준 적 없는데.”
“음? 그 짧은 시간에 뒷조사했나 보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야. 가지 마라.”
박지웅이 오른손목을 주무르며 협박했다.
“이제 겁이 좀 나냐? 우리가 누군지 알아? 얘네 아버지는 기업 사장님이야. 너쯤은 묻어버릴 수 있다고.”
“회사 이름.”
“뭐?”
“그 회사 이름 말하라고.”
“이 새….”
갑자기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박지웅이 주차장 진입로 쪽을 돌아보았다.
오토바이 여러 대가 그 주차장을 향해 달려왔다.
박지웅이 실실 웃었다.
“흐흐흐. 애들 왔다. 너 이 새끼. 조금만 기다려라. 대현아. 저 새끼가 기습하기 전에 내 뒤로 피해라.”
이대현이 불평했다.
“이 새끼가 모양 빠지게. 피하긴 뭘 피해.”
오토바이 다섯 대가 주차장에 들어왔다. 남자 다섯 명과 여자 두 명이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형님! 오늘 좋은 건수 있다면서요?”
박지웅이 말했다.
“오늘 일당은 저번의 따블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대현이 앞으로 조금 움직여 눈을 가늘게 뜨고 선우현을 쳐다보면서 이죽거렸다.
“야. 너. 이제 상황파악이 좀 되냐?”
“조수석에 타고 온 놈이 주로 떠들더니, 패거리가 늘어나니까 운전석도 움직이네?”
“너 내가 누군지 아냐?”
“내가 그거 알면 너 큰일 나.”
“이 새끼가.”
“아니다. 이제 알아야겠다.”
이대현이 지시했다.
“일단 저 새끼는 패서 기 좀 죽이고 끌고 와. 박서윤 씨는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오토바이를 타고 온 놈 중 하나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형님! 형수님은 저희가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선우현이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며 말했다.
“수선아. 저놈들 목표는 서윤 씨인데, 왜 나한테 덤비는 걸까?”
- 만만해 보여서겠죠.
선우현이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말했다.
“아. 내가 만만하구나.”
박서윤이 두 주먹을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렸다.
“내가 왜 저놈 형수라는 거야? 기분 나빠.”
선우현이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일단 이놈들부터 닥치게 하자.”
제일 앞에서 걸어오던 놈이 주먹을 들었다.
“이 새끼. 당장 꿇….”
선우현이 앞으로 걸어가며 그놈의 목을 툭 쳤다.
“켁!”
한 놈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른 놈들은 당황했다.
“어?”
선우현이 계속 걸어갔다. 두 번째 놈이 주먹을 날렸다. 날아오는 팔을 잡고 몸을 휙 끌어당긴 후에 공중에 띄웠다.
그놈은 위로 높이 떠올랐다가 등부터 주차장 바닥에 떨어졌다.
“케에엑!”
세 번째 놈이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이 새끼야!”
“와. 칼이다.”
선우현이 그놈의 팔을 잡아 등 뒤로 비틀었다. 팔이 뚝 부러졌다.
“으아악!”
칼은 손에서 떨어져 주차장 바닥에 떨어졌다. 쇳소리가 쨍하고 났다.
남은 두 놈 다 겁을 집어먹었다. 한 놈이 뒷걸음쳤다.
선우현이 더 빨랐다. 도망치려는 놈의 다리를 콱 걷어찼다.
다리를 맞은 놈이 앞으로 크게 넘어지며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마지막 한 놈이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휘저었다.
“으아아아!”
선우현이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다. 발이 휘젓는 팔 사이로 파고들어 그놈의 배를 걷어찼다.
“케엑!”
걷어차인 놈이 뒤로 날아가 스포츠카의 보닛에 떨어졌다.
박서윤은 선우현을 따라 걸어왔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구두로 툭 차서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이제 오토바이를 타고 온 일곱 중에 서 있는 사람은 여자 두 명뿐이다. 둘 다 공포에 질려 있었다.
박서윤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이 다급히 말했다.
“자, 잘못했어요.”
“우리는 그냥 저 오빠들 따라온 것밖에 없….”
박서윤이 갑자기 돌려차기를 날렸다. 턱을 맞은 여자가 핑그르르 돌다가 비명도 못 지르고 나자빠졌다.
마지막 여자가 갑자기 뒤로 돌아서 오토바이로 도망치려고 했다.
박서윤이 상대의 머리채를 콱 잡아당겼다.
“꺄악!”
“어딜 도망가?”
“사,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선우현이 말했다.
“역시 서윤 씨 발차기는 일품이라니까.”
- 다리가 길고 예뻐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어쨌든 일품이잖아.”
박서윤이 머리채를 놓으며 말했다.
“네가 가서 죽은 놈 있는지 확인해.”
“히익! 주, 죽었어요?”
“안 죽었을 거야. 아마.”
그 여자는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기절한 여자부터 확인했다.
“사, 살아있어요!”
“저놈들도 다 확인해.”
“네!”
선우현이 이대현을 돌아보았다.
“야. 하던 이야기 계속해야지? 회사 이름.”
이대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박지웅을 향해 욕을 했다.
“이 새끼야. 제대로 된 애들 부른 거 맞아?”
박지웅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저, 저럴 리가 없는데….”
“넌 나중에 두고 보자.”
이대현이 선우현을 향해 말했다.
“어이. 이쯤에서 멈추는 게 서로 좋을 거다.”
“나랑 의견이 다르네.”
“내가 이것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마오션스 알지?”
“알아야 하냐?”
박서윤은 길성 비서실에 근무한다. 회장 수행비서 일도 종종 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여러 회사의 기본 정보와 관계를 제법 많이 안다.
그녀가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오마오션스는 재성퍼시픽의 주요 거래처예요. 규모는 비슷해요.”
“아아. 재성퍼시픽은 알지.”
섬 촬영 사건 때 사고를 친 배우 김승빈이 재성퍼시픽 사장의 아들이다.
이대현의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 너 하나쯤은 묻어버릴 정도로 큰 회사라는 것도 알겠네. 오마오션스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다.”
“어. 그러냐.”
“그러니까 이쯤에서 화해하고 서로 갈 길 가자. 나도 네 여자는 이제 안 건드릴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김승빈은 알고 보니 도둑놈이었는데, 그럼 너는 뭘까?”
“내가 뭐가 아쉬워서 좀도둑질을 한다는 거냐?”
“김승빈은 돈이 없어서 도둑질을 했냐?”
“어쨌든 나는 그런 놈이 아니다.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일단 차를 좀 뒤져보자. 뭐가 나오나.”
이대현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거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듣네!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시끄럽다.”
이대현이 뒤로 물러나며 박지웅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막아!”
박지웅은 겁이 나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 아니, 쟤들이 다 나가떨어졌는데 나 혼자 어떻게….”
선우현이 박지웅을 돌아보았다.
“아. 맞다. 너 백화점 주차장에서도 나한테 화냈지?”
“제, 제가요? 아닐 걸요?”
“너 맞아.”
선우현이 차의 문을 열었다.
“차 내부가 지저분한 게 네놈들 속하고 똑같구나.”
그가 조수석 앞에 있는 글로브박스를 당겼다. 열리지 않았다.
“잠겼네?”
이대현이 말했다.
“그거 고장 나서 안 열….”
선우현이 글로브박스를 힘으로 당겼다. 플라스틱이 부서지며 잠금장치가 떨어져 나갔다.
글로브박스 안에는 담배 같은 잡다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뭐야. 별거 없네.”
“그렇지? 원래 별거 없….”
“그런데 너 왜 식은땀 흘리냐?”
“어? 어? 아니, 내가 몸에 병이 있어서….”
“수상한데?”
선우현이 글로브박스를 두 손으로 잡고 뜯어냈다.
이대현이 다급한 소리를 냈다.
“헉! 안돼!”
선우현이 글로브박스 뒤쪽을 보았다. 납작한 금속 상자가 붙어 있었다. 두께는 목캔디나 겨우 넣을 정도로 얇았다.
“이건 뭘까?”
이대현이 선우현에게 덤벼들었다.
“그거 이리 내놔!”
선우현이 이대현을 발로 툭 밀었다. 덤벼들던 놈이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으악!”
선우현이 금속 상자의 뚜껑을 돌려 열었다.
안에는 작은 알약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비타민제냐?”
이대현이 허겁지겁 일어나며 말했다.
“비타민 맞아. 그거 비타민 C야!”
“그래? 나는 당연히 마약인 줄 알았네.”
“오해….”
“이승빈은 좀도둑인데 너는 약쟁이구나. 어쩐지 술까지 마신 놈이 눈이 돌아가서 쫓아오더라니.”
선우현이 박지웅을 쳐다보았다.
“너도냐?”
“나, 나는 아니야!”
“그래. 아니겠지. 경찰서에서 머리카락 몇 개만 뽑아 검사하면 네 결백이 증명될 거다.”
박지웅의 눈동자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씨발!”
그는 욕을 하며 뒤에 늘어선 오토바이를 향해 달려갔다.
선우현이 컵홀더에 꽂혀 있는 물병을 꺼냈다. 뚜껑을 따지도 않아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박지웅이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선우현이 물병을 던졌다. 빨랫줄처럼 날아간 물병이 박지웅의 머리를 때렸다.
“켁!”
박지웅이 오토바이와 함께 옆으로 넘어갔다. 오토바이가 박지웅의 다리를 찍어눌렀다.
“으아악! 내 다리!”
선우현이 이대현을 보았다.
“야. 이제 너 하나 남았네?”
이대현도 눈알을 굴리다가 급히 제시했다.
“한 장 줄게!”
“한 장이 얼마야?”
“천만 원!”
“누굴 거지새끼로 아나. 어딜 천만 원으로 매수하려고 들어? 더 불러봐.”
“이, 일억! 이게 최대야! 몰래 마련할 수 있는 돈은 이게 최고라고!”
“겨우 그걸로 되겠냐?”
“그럼 얼마를 원하는데?”
“우주왕복선을 살 수 있을 만큼.”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정확히 말하면 우주왕복선 회사를 사야 합니다. 그래야 화물을 여기로 몰래 보내죠.
“저놈한테 그럴 돈은 없잖아.”
- 없겠죠.
선우현이 이대현에게 말했다.
“협상 결렬이네. 너 교도소 가야겠다?”
“내, 내가 체포된다고 해서 교도소에 갈 거 같아? 우리 집에 돈 많아! 그리고 너 그 통, 네 손으로 열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증거가 안 될 거라고!”
“아. 그러네. 이것만으로는 빠져나갈 수도 있겠네.”
선우현이 이대현을 걷어찼다. 이대현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케엑!”
“그럼 일단 여기서 좀 맞자.”
“끄아악!”
“맞다 보면 교도소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
“켁! 살려….”
박서윤이 뒤에서 속삭였다.
“그 통이 증거가 되게, 도로 잘 붙여놓는 게 어떨까요?”
“이놈도 머리카락 몇 개만 뽑아서 검사하면 마약 투약 증거가 나올 겁니다. 그게 이 약하고 성분이 똑같을 테고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대현은 박서윤의 말은 못 들었지만, 선우현의 설명은 들었다. 그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물었다.
“그, 그럼 나는 왜 때린….”
“이놈이 아직도 정신이 있네?”
“끄아악!”
선우현이 몇 대 더 걷어찼다. 이대현은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박서윤이 물었다.
“신고할까요?”
선우현이 이대현을 마무리로 한 대 더 걷어차면서 말했다.
“최 사장님한테 먼저 연락하고 신고합시다.”
***
최종훈이 한강 생태공원으로 달려왔다.
경찰은 이미 도착해서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박서윤이 한쪽에서 주장했다.
“우리가 피해자라니까요?”
“그렇지만 상대편이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주장하잖습니까? 현장 상황도 그렇고….”
“겨우 우리 두 명이 아홉이나 되는 놈들을 습격했겠어요? 우리는 진짜 죽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운 좋게 이긴 거예요.”
“상대편 말은 달라서….”
“지금 오토바이 폭주족이랑 마약중독자들 말을 선량한 피해자보다 더 믿으시는 거예요?”
“아이고. 그건 아닙니다. 진정하시죠.”
최종훈이 선우현의 옆에서 말했다.
“박서윤 대리가 저런 면이 있네요.”
“이런 경험이 쌓여서 스킬이 늘었나 봅니다.”
박서윤은 납치당한 경험만 벌써 두 번이다.
“우리 변호사도 스킬이 늘었던데요. 지금 오고 있는데, 이런 일에 경험이 많아져서 잘 처리할 수 있다더군요.”
그 변호사는 예전에는 이런 특수한 사건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런데 최종훈의 의뢰로 선우현을 몇 번 돕다 보니 경험이 쌓였다.
“변호사님한테 활토라도 몇 개 보내줘야겠네요.”
“그러면 무척 좋아할 겁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오마오션스도 활토 구매자 명단에 있습니까?”
“있습니다.”
“빼시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선우현이 스포츠카를 가리켰다.
“거기 사장 아들이 저 약쟁이인데, 오늘 우리를 습격했거든요.”
“명단에서 앞으로 영원히 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