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06화 (106/281)

106. 수작

유소율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두 분께 지금 이 자리에서 활력 토마토로 팩을 해드리겠습니다. 희망하시는 분?”

지금 이곳에 온 손님 중에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따지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들은 남들 앞에서 얼굴에 팩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어서 멈칫거리기만 할 뿐 손을 들지는 못했다.

그런 체면을 덜 따지는 사람 네 명이 손을 들었다. 모두 젊은 여자였다.

유소율이 원하는 연령대가 아니었다. 그녀가 조건을 바꾸었다.

“물론 팩을 여기서 하는 건 아닙니다. 안쪽에 들어가서 받고 나오셔야죠.”

그 말을 듣고 여섯 명이 더 손을 들었다.

유소율이 그중에서 중년 여성 두 명을 골랐다. 그런 후에 옷깃 무전기에 말했다.

“준비됐죠?”

- 1분만 더….

“누구 보내서 손님 두 분 모시고 들어가요. 준비는 그사이에 끝내요.”

선정된 중년 여성 두 명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행사장을 벗어났다.

유소율은 두 사람의 사진을 남겨 비포와 애프터를 비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비포 사진은 손님이 싫어할 게 뻔해서였다.

행사가 계속 진행됐다.

20분 후에 두 사람이 돌아왔다. 카메라가 두 사람을 향했다. 대형 스크린에 두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어머.”

활토 팩을 받은 50대 여성을 잘 아는 사람이 말했다.

“윤 여사님 진짜 보톡스라도 맞고 오신 거 같다.”

윤 여사가 뺨에 손끝을 대 감촉을 즐기며 말했다.

“보톡스하고는 다르죠.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진짜 피부에서 윤기가 나는데요?”

“십 년은 젊어지신 것 같아요.”

얼굴에 로션을 많이 발랐다고 해서 며칠 뒤까지 그 효과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마스크팩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효과가 하루만 유지돼도 다행이다.

게다가 활토를 먹어서 생기는 활력 효과는 하루면 사라진다.

그래서 다들 활토 팩의 효과가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그래도 욕심이 났다.

“몸에 그렇게 좋다는 거니까, 피부에도 좋겠지.”

“피부에 콜라겐이라도 생성해주나?”

“설마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저걸 계속 쓰면 피부가 조금씩 좋아지겠지?”

선우현이 스크린에 비춰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작게 말했다.

“수선아. 활토로 팩을 하면 피부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냐?”

-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먹을 것도 없어서 해본 적이 없는데.

“확실히 개선 효과가 있어 보이는데? 저게 왜 되지?”

- 효과가 오래 가는지는 하루가 지나봐야 압니다. 활토를 직접 먹었을 때의 활력 증가 효과는 하루 정도만 유지되잖습니까?

선우현이 박서윤에게 다가가 물었다.

“박 회장님 말입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활토를 드신 날은 본사는 물론이고 계열사까지 다 관리할 정도로 기운이 넘치세요.”

“안 드신 날은요? 예전처럼 기력이 없습니까?”

박서윤이 방긋 웃었다.

“아니요. 드신 날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안 드신 날도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래서 활토가 산삼보다 좋은 보약이라고 칭찬 많이 하세요.”

“그렇군요.”

선우현이 대형 스크린을 보며 작게 말했다.

“수선아. 팩을 자주 해서 매일 주름 없는 상태를 유지하면 장기적으로는 피부 노화 방지 효과가 생길 수도 있겠다.”

- 지구연합에서는 피부에 미세한 상처를 낸 후에 레드 포션으로 회복해 주름을 개선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활토에는 상처 치료 효과가 없잖아.”

- 그거야 상처에 문질러본 적이 없으니 모르죠. 한 번 문질러보시죠.

“나중에 나쁜 놈 잡으면 그놈 상처에 좀 문질러봐야겠다.”

-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차피 선장님이 아픈 것도 아닌데 막 문질러보십시오.

“당연히 그러려고.”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선우현 씨의 토마토는 정말 대단하네요. 얼굴 팩도 가능할 줄은 몰랐어요.”

“저 정도야 기본이죠.”

“왜 미리 말씀 안 해주셨어요?”

“음…. 사실 내가 팩을 해본 적이 없는 데다가, 구하니 씨는 피부가 이미 좋으니까….”

“아니에요. 저 사실 스무 살 때보다 못해요.”

구하니에게 활토를 먹어서 생기는 활력 효과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다. 그녀는 젊다. 요즘은 스케줄도 조금만 잡기 때문에 체력이 부족한 날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피부는 이야기가 다르다.

“팩을 테스트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요? 제 얼굴에 해도 되는데.”

“그러니까 활토를 더 달라는 거지요?”

구하니가 방긋 웃었다.

“제가 정말 열심히 테스트하고 사진도 매일 보내드릴게요.”

박서윤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저도 그거 잘할 수 있어요. 팩 효과 테스트요.”

구하니가 박서윤을 보며 당황했다.

“와. 그 얼굴에 활토 팩까지…. 얼마나 더 예뻐지려고.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제가 알바 많이 하고 험하게 자라서 피부가 좀 안 좋아요.”

“지금 거기서 더 좋아지면 배우들은 뭐 먹고 살라고….”

“네?”

“아니에요.”

선우현이 말했다.

“두 사람 다 김칫국 드링킹 잘하시네.”

여자 손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들이 추첨권을 꼭 쥐고 말했다.

“활토 당첨되면 팩부터 해야지!”

“여보. 나 돈 버느라 고생하니까 내가 먹으라며.”

“내가 팩 하고 나면 먹어요.”

“아니, 더럽게….”

“내가 더러워?”

“어? 아니야. 팩 해야지. 당신 해.”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유소율이 생각했다.

‘이제 엄마나 할머니가 구하는 활토는 나한테 안 넘어오겠네. 두 분 다 팩을 하는 데 쓰시겠네. 아니면 반만 먹고 반은 팩을 하시려나?’

시간이 지나면 분위기는 더 달아오겠지만, 이 VIP 이벤트 행사를 밤새도록 할 수는 없다.

유소율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오늘의 메인 이벤트.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건강에도 좋고 기운도 나며, 특히 피부에도 좋은….”

그녀가 그 말을 했을 때는 젊은 여자들까지 눈을 반짝거렸다. 유소율이 활토 상자 스무 개를 가리켰다.

“활력 토마토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직원이 투명한 아크릴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에는 숫자가 적힌 공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상자는 앞면을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뭘 뽑는지 보실 수 있지만, 뽑는 사람은 볼 수 없죠. 지원하실 분?”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스포츠카를 몰고 온 이대현이 말했다.

“저거 못 사면 집에 가서 욕 많이 먹을 텐데.”

그 차를 얻어타고 온 박지웅이 실실 웃었다.

“에이. 당첨되겠지.”

“네가 당첨되면 활토 구매권을 나한테 넘겨.”

“얼마 줄 건데?”

이대현이 박지웅을 돌아보았다.

“너를 여기 데려온 게 난데, 돈을 왜 주냐?”

“아니, 그래도….”

“나 아니었으면 너 여기 못 왔다. 그럼 추첨도 못 했다고.”

“알았어. 당첨되면 주면 되잖아. 대신에.”

박지웅이 실실 웃었다.

“그럼 구하니랑 쟤 꼬시면 파트너는 내가 정하는 거다?”

“봐서.”

추첨이 시작됐다. 유소율이 먼저 공 하나를 뽑았다.

당첨자가 환성을 질렀다.

“아자!”

구하니는 두 번째 공부터는 지원자에게 맡겼다.

두 번째 지원자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가 손을 통에 넣고 움직였다.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통속에 들어 있는 공도 보이고 손도 보였다.

중년 여성이 다급히 말했다.

“거기 말고! 그 옆에! 그거!”

남성이 손을 옆으로 옮겨 공을 잡은 후에 번쩍 들었다.

“뽑았다!”

다른 손님이 항의했다.

“아니, 가르쳐주면서 뽑는 게 어디 있습니까?”

정작 중년 여성은 당황했다.

“그 번호가 아니잖아!”

“어? 이거 뽑으라며?”

“어떻게 그거 하나를 못 뽑니? 왜 맨날 꽝만 뽑아?”

남편이 불평했다.

“그래서 내가 마누라도 꽝을 뽑았나? 학창시절 소개팅 때 그 머리 리본만 안 뽑았어도….”

“집에서 쫓겨나고 싶니?”

유소율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이 투명한 통은 마치 어항 속의 손처럼 대상의 위치가 실제와 다르게 보입니다. 손이 공과 비슷한 위치로 갈 수는 있는데, 정확히 잡으려고 하면 다른 공이 뽑히죠.”

다른 사람이 물었다.

“그럼 원하는 번호 근처에서 적당히 뽑으면 확률을 높일 수 있잖습니까?”

“맞습니다. 그게 이 추첨의 재미죠. 다시 도전하실 분?”

손을 드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선우현이 말했다.

“뽑기 상자 만들어주길 잘했네.”

저 상자는 선우현이 만들었다.

아크릴과 물을 이용한 빛의 굴절, 거울, 그리고 공의 무게 변화를 이용한 간단한 트릭 상자였다. 설계도면은 지원위성에 남아 있었다.

효과는 좋았다.

유소율이 지원자 한 명을 고르면 그 사람이 단상에 올라와 추첨 상자에 손을 넣었다. 그러면 같이 온 일행이 열심히 방향을 알려주었다.

요령은 공을 정확히 잡지 않고 그 근처의 다른 것을 뽑는 것이었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공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유소율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우리 VIP 행사가 이렇게 즐겁게 진행된 적이 있었나요?”

옆에서 행사 담당 직원이 대답했다.

“아니요. 원래 체면 따지는 분이 많아서 차분하게 진행되는 편입니다. 참여형 이벤트를 진행해도 호응이 적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즐거워 보여요.”

“네. 고객들이 저렇게 신나 하시는 거 처음 봅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안다.

‘다른 백화점에서는 구할 수 없으면서도 꼭 갖고 싶은 상품. 그리고 저 뽑기 상자. 그 두 가지의 시너지 효과야.’

그녀가 지시했다.

“뽑기가 끝나면 저 상자는 천으로 씌워요. 아무도 내부 구조를 살펴보지 못하게.”

“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내 방으로 가져와요. 내가 직접 보관하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선우현을 슬쩍 보았다. 상품으로 활토를 제공한 사람도, 뽑기 상자를 만들어준 사람도 모두 선우현이다.

그녀가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역시 친하게 지내야겠어.”

추첨 번호 24번이 나왔다.

구하니가 말했다.

“아. 나 당첨됐다.”

문제는 가격이다.

당첨됐다고 해서 상품을 공짜로 주는 게 아니다. 백만 원을 내야 활력 토마토를 받을 수 있다.

“백만 원이나 쓸 수는 없는데.”

그녀가 이사 간 건물의 옥상과 4층에서 선우현이 활력 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선우현이 가끔 하나씩 주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도 여기에 백만 원을 쓸 수는 없다.

구하니가 옆에서 말했다.

“그럼 그 당첨권 저한테 팔아요.”

“우리 회장님 드려야죠.”

“쳇.”

박서윤이 박길성을 찾아가 당첨 사실을 알렸다. 당첨권을 준다고 하자 박길성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박서윤 대리가 가져야지.”

“저는 상품에 백만 원이나 쓸 수 없어서요.”

“아….”

박길성이 가볍게 탄식한 후에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주었다.

“그럼 내 카드로 사서 네가 맛있게 먹어라. 오늘 수고했으니 주는 보너스라고 생각해.”

옆에서 최종훈 사장이 한마디 했다.

“박 회장님. 좀 전에 들으니까 피부 미용에도 좋다던데요.”

“그래. 피부에 써도 되겠구나.”

박서윤이 가만히 생각하다 말했다.

“그러면 수제 화장품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응?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

“예전에는 소주에 글리세린을 타서 로션 대신에 썼습니다. 나중에는 로션이나 크림 같은 화장품의 기본적인 조합법을 배웠습니다.”

“어…. 그, 그래.”

박서윤이 돌아가고 난 후에 박길성이 탄식했다.

“최 사장. 내가 죄가 많아.”

“저야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만, 해결법을 찾고 계시잖습니까?”

“시간이 더 필요해. 그때까지는 참아야 하는데….”

박길성이 박서윤을 보며 말했다.

“내가 마음이 무거워.”

***

VIP 행사의 판매 시간은 끝났다. 남은 시간은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대현과 박지웅이 박서윤 쪽으로 접근했다.

처음부터 구하니를 꼬시려 하면 씨도 안 먹힐 걸 안다. 그래서 일부러 만만해 보이는 박서윤을 노렸다.

이대현이 명함을 내밀었다.

“오마오션스의 이대현 차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옆에서 박지웅이 바람을 잡았다.

“이 친구가 로열 블러드라서 벌써 차장입니다. 하하하.”

“야. 나 실력으로 올라갔다.”

“알지. 너 유학파잖아. 그렇다고 아버님께서 사장님인 게 없던 일이 되는 거 아니잖아.”

박지웅이 일부러 오버를 떨었다. 그러면 이대현은 그런 식의 평가를 싫어하는 척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건 여자를 꼬실 때 자주 쓰던 수법이다.

게다가 이대현은 꽤 잘생겼다.

그들의 이런 수작이 매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 확률은 제법 높았다.

박서윤이 말했다.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제가 일행이 있어서요.”

“예?”

“가시라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