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추가 효과
박지웅이 박서윤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런 미녀를 너 혼자 보고 있었냐?”
이대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쟤는 나도 지금 봤어. 장난 아니네.”
“누구지? 영화배우인가?”
“영화에서 본 적 없는데?”
박길성 회장은 오늘 행사에 박서윤을 데려오면서 파티 참석 복장을 핑계로 옷을 한 세트 더 맞춰주었다. 메이크업도 전에 방문한 곳에서 하게 했다.
이대현이 말했다.
“신인배우인가?”
박지웅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내가 꼬실 수도 있겠는데?”
이대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야. 너 나랑 경쟁하려고?”
“뭐? 아니, 내가 먼저 봤잖아.”
“뒷모습은 내가 이미 보고 있었어. 뒤태도 참 예쁘더라고. 네가 포기해.”
“야. 이런 좋은 기회를 어떻게 포기…. 어? 저 새끼?”
선우현이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박서윤과 구하니가 선우현을 보며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저 새끼 아까 주차장에 그 오토바이 새끼잖아.”
이대현도 인상을 썼다.
“저 새끼 정체가 뭐지? 어떻게 저기 낄 수 있지?”
이대현이 그들을 노려보면서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짐작했다.
“팔짱 끼거나 손을 잡는 건 아니네.”
“싸구려 오토바이나 타고 온 놈이니까 부자도 아니야.”
“지금은 구하니하고 이야기하고 있어. 연예계 관계자인가 보다.”
“아. 그래서 초대장을 받았구나. 배우한테 간 초대장인데, 배우가 안 가니까 자기가 대신 온 거야.”
“그럼 매니저인가?”
“그냥 기획사 직원일 수도 있지.”
그들은 선우현을 주차장에서부터 만만하게 봤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대현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쟤들 꼬시자.”
“구하니는 어려울 거라며?”
“구하니는 저 예쁜 여자를 꼬시면서 자연스럽게 찔러나 보는 거지. 성공하면 미녀가 둘이야. 하나는 완전 내 취향의 미녀고 하나는 톱스타. 둘 중 하나만 손에 넣어도 대박이지.”
박지웅도 실실 웃었다.
“여기 오기 잘했다. 흐흐.”
이대현이 말했다.
“활력 토마토도 최소한 하나는 사가야 해.”
“그 토마토가 그렇게 중요해?”
“중요해. 아버지가 꼭 구해오라고 날 보낸 거니까.”
“그래도 한 사람당 하나씩은 돌아가겠지.”
이대현이 실내를 둘러보았다.
“참석자 숫자를 봐라. 초대장 하나에 1개씩 팔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경쟁해서라도 사야 해.”
VIP 행사장의 대형 스크린에 각 상품 정보가 하나씩 나왔다. 백화점의 직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상품을 설명했다.
그러다 메인 이벤트 시간이 찾아왔다. 무대의 조명과 음악이 바뀌었다.
유소율 이사가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녀가 간단히 인사한 후에 말했다.
“많은 분께서 기다리시던 시간이죠.”
백화점 직원명이 새로운 이동식 매대를 그녀의 앞에 옮겨놓았다. 그녀가 매대를 덮고 있는 천을 부드러운 동작으로 당겼다.
그 매대에는 작은 상자 스무 개가 쌓여 있었다.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특별한 보양 식품을 판다더니 저거인가 본데?”
“산삼을 담는 형태는 아닌데?”
“상자가 고급스럽긴 하네.”
유소율이 상자 하나를 들고 뚜껑을 열었다. 그녀의 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상자 내부 모습이 나왔다.
상자 안에는 토마토가 딱 하나 들어 있었다.
“어? 토마토네?”
“아니, 왜 명품이 들어 있을 것 같이 생긴 상자에서 토마토가 나와?”
활토가 뭔지 아는 사람들은 상자가 쌓여 있는 걸 보고 감탄했다.
“이야아. 활력 토마토가 스무 개라니. 태양 백화점의 명품 확보 능력이 대단한데?”
대형 스크린의 내용이 활력 토마토 홍보용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 사진은 태양 백화점 홍보팀이 만들었다.
유소율이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 상품의 이름은 활력 토마토입니다. 저희가 VIP 고객님들을 위해 어렵게 입수했습니다.”
몇 사람이 박수를 쳤다.
“멋집니다.”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당황했다.
“이게 무슨 장난질이지?”
스크린에 활력 토마토의 성분 분석 결과가 도표로 표시됐다. 그래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덕분에 몸에 좋은 성분이 월등히 많다는 걸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건강에 참 좋은 토마토죠.”
손님 중에서 무대 근처에 서 있던 사람이 불평했다.
“토마토가 오늘 메인 상품이라고? 특별 보양 식품이라고 해서 시간 내서 방문했는데,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장난 아닙니다. 몸에 정말 좋습니다.”
“토마토는 원래 몸에 좋습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맛도 좋습니다. 일단 맛을 보시죠.”
직원들이 미리 준비된 맛보기용 토마토를 가져왔다. 얇게 썰어 하얀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였다. 그 토마토 조각은 조그마한 접시에 하나씩 담겨 있었다.
접시는 한 사람에게 하나만 제공됐다.
항의한 사람은 투덜댔다.
“됐습니다.”
활력 토마토가 뭔지 아는 손님들은 준비된 맛보기 샘플이 모자랄까 봐 얼른 그걸 받았다.
그들은 샘플용 조각을 맛본 후에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음. 활력 토마토 진품이군.”
그 샘플의 옆에는 치즈가 곁들여져 있었다. 토마토만 먹어도 되고 치즈와 함께 먹어도 괜찮았다.
“치즈도 잘 어울리는데? 오늘 활토를 사면 이렇게 먹어야겠어.”
선우현도 서비스 활토를 맛보았다.
“내가 준 홍보용을 이렇게 쓰네.”
- 맛있습니까?
“치즈랑 곁들여 먹으니까 새로운 맛이 난다. 주스나 스파게티만 만들어 먹을 게 아니라, 앞으로는 이렇게도 먹어봐야지. 그리고 이 치즈도 오늘 행사 상품이야. 머리 잘 썼어.”
상자 스무 개를 보며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활토 스무 개면 많은 건 맞는데, 참석자가 훨씬 더 많잖아.”
“이거 경쟁이 심하겠어.”
활토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와. 이건 맛이….”
“토마토 맛인 건 맞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직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한 조각은 너무 적어. 더 줘봐요.”
직원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샘플은 참석하신 분에 딱 맞춘 수량만 준비됐습니다.”
“저기 안 먹는다는 사람 있잖아요. 그거 나 주면 되겠네.”
처음에 유소율에게 불평하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환호하며 먹는 모습을 보고 맛이 궁금해졌다.
“음…. 기왕 가져왔으니까 맛은 봐야지. 그래 봐야 토마토겠지만.”
그가 샘플을 입에 넣었다.
“어?”
그가 알던 토마토가 아니었다. 입에 넣은 한 조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무슨 맛이….”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샘플은 한 사람당 한 조각씩만 제공됐다.
그 사람이 앞을 보았다. 온전한 토마토 스무 개가 개별 상자에 들어 있었다.
“험험. 맛은 좋군요. 그건 인정합니다. 좀 사도 되겠어.”
유소율이 씽긋 웃으며 화면을 넘겼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개당 가격은 백만 원입니다.”
오늘 처음 활토를 맛본 사람 중 일부가 불만을 터트렸다.
“과일 하나에 백만 원은 지나친 거 아닌가?”
“맛이 좋긴 하지만, 백만 원은 선을 넘었지.”
같은 VIP 손님이라 해도 사람마다 돈 씀씀이는 차이가 있었다. 손님 중 일부는 다르게 생각했다.
“이렇게 맛있는데 가격 때문에 안 산다면 내가 사야지.”
“스무 개 다 내가 사고 싶다.”
오늘 처음 활토를 맛본 사람들도 그런 반응을 보였다.
활력 토마토에 대해 이미 알던 사람들은 다른 반응이 더 있었다.
“백화점에서 물량을 확보해서 판다길래 가격을 올려받는 조건인 줄 알았는데 그대로군.”
“가격은 항상 고정이었으니까. 웃돈 주고 넉넉히 살 수 없어서 아쉬우면서도, 나보다 부자가 물량을 다 쓸어가지 않아서 좋더라고.”
유소율이 VIP 행사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준비된 활력 토마토는 총 20개이며, 구매권 추첨은 30분 후에 하겠습니다.”
백화점 직원들이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추첨권을 한 장씩 나눠주었다. VIP는 물론이고 같이 온 사람에게도 추첨권이 한 장씩 제공됐다.
사람들이 활력 토마토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첨을 기다렸다.
살짝 흥분한 사람은 다른 행사 상품을 더 쉽게 사들였다.
30분이 지난 후에 유소율이 말했다.
“이제 활력 토마토가 몸에 얼마나 좋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들 30분 전에 한 조각씩 드셨을 겁니다. 조금만 드셨는데도 평소보다 몸에 활력이 생기는 분이 계실 겁니다.”
경험자들은 그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늘 처음 먹어본 사람들은 살짝 놀랐다.
“어?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덜 피곤한데?”
“이 시간쯤 되면 컨디션이 떨어지곤 했는데, 오늘은 계속 서 있는데도 괜찮군요.”
유소율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한 조각만 드셨는데도 활력 토마토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느낌이 오시지요? 이 정도면 특별 보양 식품이라는 저희 소개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오늘 참석자 중에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것을 이것저것 많이 먹어봤다. 하지만 이렇게 즉시 반응이 오는 보양식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의심하는 사람이 생겼다.
“몸에 반응이 너무 확 오는데, 혹시 그 토마토에 이상한 게 들어 있는 거 아닙니까?”
“약을 탔나 싶으신 거지요?”
“어….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이거 약빨인 거 같아서.”
김수선이 말했다.
- 약발이긴 하지요. 토마토를 키운 촉진제에 레드 포션이 들어갔으니까요.
“포션은 여유 생길 때 더 정제해 둬.”
- 에너지에 여유가 있었을 때가 언제였더라….
유소율의 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오늘 이벤트 상품 광고가 모두 사라졌다. 대신에 화면 전체를 성분 정밀 분석 보고서가 채웠다.
“활력 토마토를 전문기관에서 분석한 결과입니다. 저희 백화점만 이런 조사를 한 게 아닙니다. 기존에 활력 토마토를 드시던 분 중에, 이런 분석을 돌려본 분이 여럿 계실 겁니다. 결과는 모두 같았지요.”
그녀가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수상한 약물? 전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농약 성분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아래쪽 항목을 가리켰다. DNA 검사 결과였다.
“심지어 유전자 검사 결과도 시중에 파는 기존 토마토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녀가 이번에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다른 부분은 이것뿐입니다. 몸에 좋은 성분들이 기존 토마토의 몇 배가 들어 있습니다.”
의심했던 남자가 물었다.
“아니, 다 똑같다면서 어떻게 그런 좋은 성분만….”
“토마토 장인이 정성을 다해 키워서 그렇습니다.”
다른 손님이 손을 들었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 활력 토마토가 재배됩니까? 그걸 들여온 겁니까?”
“아니요. 이건 순수한 국산이며, 전 세계에 단 한 분뿐인 토마토 마스터가 특별한 비법으로 직접 키웠을 때만 이런 명품 토마토가 열립니다.”
사람들은 이미 한 조각씩 먹어보고 그 효과를 몸으로 느꼈다. 거기다 귀하다는 설명까지 들었다.
“대단합니다. 진짜 명품 토마토군요.”
유소율이 자랑했다.
“오늘 밤에 잠을 평소보다 잘 주무실 겁니다. 하나를 다 드시면 숙면 효과도 있습니다. 한 조각만 드셨어도 효과가 조금은 있겠지요.”
이미 먹어본 사람들이 말했다.
“확실히 활토를 먹은 날은 잘 잡니다.”
“잠만 잘 자나요? 이거 하나 먹으면 하루 정도는 정말 이십 년은 젊어진 기분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중년 여성이 말했다.
“난 저걸로 얼굴에 팩을 해봤는데, 피부에도 정말 좋더라. 주름도 줄어들고 피부가 탱글탱글해진다니까?”
“어머! 팩! 그 생각을 못 했네!”
유소율의 귀에도 얼굴에 팩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녀는 아차 싶었다.
‘활토가 피부에도 효과가 있는 줄 알았으면 초대손님을 더 다양하게 선정했을 텐데.’
오늘 초대된 VIP는 대부분 건강에 관심이 많을 나잇대의 사람들이다. 활력 토마토가 몸에 좋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선정했다.
그런데 손님 중에는 가족의 초대권을 승계받아 온 사람들이 있었다.
초대 당사자가 백화점에 미리 연락해서 다른 사람이 간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요청은 다 받아주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면 고객이 기분 나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석자 중에는 젊은 사람이 좀 있긴 했다.
유소율은 아쉬웠다.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을 고객들을 많이 초대할걸. 여배우도 중년으로 한 명 미리 선정해서 팩을 해주고 여기서 그 소감을 말하게 할걸.’
태양 백화점에서 접근성이 제일 좋은 1층에는 명품관과 고가의 화장품 판매 매장이 많았다.
‘피부에 관심이 많은 여성 VIP 고객을 많이 확보하면 1층 매출이 확 늘어날 텐데.’
그런데 피부미용 효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따로 더 초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기존 초대손님이나 아니면 동반 1인으로 온 사람 중에 적당한 대상자가 좀 있었다.
‘최적의 고객 구성은 아닐 수 있어도, 소문은 낼 수 있겠다.’
판매용 스무 개 외에, 홍보용으로 받은 활력 토마토가 아직 남아 있었다. 원래는 특별 추첨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계획을 바꾸었다.
그녀가 옷깃의 무전기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이벤트용 활토로 얼굴 팩을 할 거예요. 준비해요.”
- 예? 팀장님. 갑자기….
“서둘러요. 5분 줄게요.”
3분 후에 그녀가 고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먹어서 좋은 과일이니까 얼굴에 팩을 해도 좋겠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