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행사장
태양 백화점의 VIP 초대장이 구하니에게 전달됐다.
행사장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초대한 건 아니다. 구하니는 고객으로 초대했다. 그렇지만 큰손이라서 초대한 건 아니다.
유소율 이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참석 대상자를 선정해 초대권을 보냈다.
구하니의 경우는 예전에 태양 백화점의 광고를 찍은 인연이 있었다.
구하니는 처음에는 초대장을 단순 홍보물로 생각하고 던져두었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우편물을 정리할 때 뜯어보았다.
“어머! 활토를 백화점에서 팔아?”
구하니는 가끔 선우현의 동네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를 만나 직접 활토를 구한다. 그 정도만 해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손에 넣을 수 있다.
“활토는 많을수록 좋지.”
날짜를 확인했다. 행사는 내일 밤이었다.
“아. 내일 스케줄이….”
그녀는 요즘은 외부 행사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대신에 이런저런 개인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중에는 작곡을 공부하고 곡을 쓰는 것도 있다.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노래를 부르는 데에만 있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작곡을 틈틈이 공부했고, 몇 번 자작곡으로 발표한 적도 있다. 그중에 히트작은 없지만, 반응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내일은 작곡 공부를 하려던 날이다.
“밤에는 백화점에 가서 머리 식히고 와야지.”
***
곽수천은 그의 아버지가 한 말을 듣고 활짝 웃었다.
“태양 백화점에서 하는 VIP 이벤트에 가라고요? 저 그럼 이사로 복직하는 건가요?”
“이놈의 자식이!”
“아, 아니에요?”
“거기 가서 알바나 해!”
“그게 무슨….”
“거기서 알바를 하다가 유소율을 보거든 사과해! 네가 얼마나 반성하는지 보여주라고!”
곽수천이 항의했다.
“아니, 아버지. 제가 체면이 있지 어떻게 소율이한테….”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선처해달라는 탄원서 못 받으면 너 교도소 갈 수도 있어! 유소율에게 탄원서를 부탁하라고!”
“당연히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
회의실에서 유소율이 말했다.
“오늘 회의 주제는 내일 행사에서 활토 추첨을 어떻게 해야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가격이 고정가라서 경매로는 팔 수 없다.
그래서 활토 판매 방식은 추첨으로 결정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행사 관계자들이 손을 들고 의견을 제시했다.
“VIP 행사에 내놓은 상품 하나당 추첨권 하나를 주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의견도 나왔다.
“그러면 싼 상품만 많이 사는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금액 기준으로 추첨권을 주는 게 낫습니다.”
“고가의 상품을 산 고객에게는 추첨권도 더 주고 추첨 확률을 높이는 강화권도 주는 겁니다.”
유소율이 물었다.
“잠깐만요. 종이 추첨권에 어떻게 강화 확률을 붙이죠?”
그 의견을 낸 직원이 설명했다.
“추첨권은 종이이지만 추첨 진행은 대형 스크린에 띄우는 전자식으로 하면 가능합니다.”
“행사는 내일입니다만, 그때까지 행사 상품에 강화 기능이 포함된 전자식 추첨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까?”
“IT팀이 야근하면….”
“IT팀과 합의는 된 이야기고요?”
“아니요. 그래도 이사님이 IT팀에 한 말씀 해주시면….”
“그 의견은 기각합니다. 나만 나쁜 년으로 만들지 마세요.”
유소율이 말했다.
“이번 VIP 행사의 목적은 내일 하루 수익을 얼마냐 내느냐가 목적이 아닙니다.”
내일 하는 행사는 하루짜리 단발이다. 내일 아무리 많이 팔아도 백화점 1년 매출에 비하면 얼마 안 된다.
“우리 태양 백화점의 명품 확보 능력을 VIP 고객에게 알리고 그분들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 의견이 더 나왔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결국 참석자 전원에게 구매 금액에 상관없이 추첨권을 1장만 주는 것으로 결정됐다.
“유소율 이사님. 그러면 VIP 고객과 같이 온 분은 어떻게 하지요? 초대권은 동반 1인으로 나갔는데요.”
“그분들에게도 추첨권을 드려야죠. 새로운 VIP 고객으로 끌어들여야 하니까요.”
***
유소율이 선우현을 만나 행사 진행을 어떻게 할지 설명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1인 1추첨이라….”
“경매 시스템으로 가면 고객이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효과도 그게 제일 좋고요.”
“그럼 추첨 상자는 내가 만들어줄 테니까 그걸 써요.”
“네? 직접 만드시게요?”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유소율은 선우현이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나름대로 추측했다.
‘우리가 추첨 상자를 만들면 속일 수도 있으니까 제안한 거겠지.’
“그러면 공정하겠네요. 상자를 만들어주시면 그대로 쓸게요.”
***
VIP 파티는 이튿날인 금요일 밤, 백화점이 문을 닫은 후에 열렸다.
선우현은 오토바이를 타고 백화점에 도착했다.
발렛 파킹 서비스를 받으려고 대기하는 차가 몇 대 있었다. 선우현은 그 뒤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잠시 후에 빨간색 스포츠카 한 대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차는 선우현이 서 있는 자리로 밀고 들어왔다. 크락션도 빵 하고 눌렀다.
선우현이 그 차를 쓱 쳐다보았다.
조수석 창문이 아래로 내려갔다. 젊은 남자 박지웅이 짜증을 냈다.
“야. 비켜.”
선우현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선아. 지상에는 시비 거는 놈이 너무 많다.”
- 그래서 거기 내려간 걸 후회하십니까?
“그건 아니지. 위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좋다. 저런 것들이야 나중에 잘 타이르면 되니까.”
- 주먹으로 타이르시게요?
“말보다 잘 통하더라고.”
선우현이 비키지 않자 조수석 문이 열렸다. 박지웅이 내리면서 화를 냈다.
“야. 비키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너 같은 놈이….”
선우현이 헬멧을 벗고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선우현의 몸은 탄탄한 근육 덕분에 강해 보인다. 짜증을 내던 놈이 움찔하더니, 앞쪽에다 대고 소리쳤다.
“야! 주차! 여기 아무나 줄 서면 돼?”
주차관리요원이 다가왔다.
박지웅이 기가 살아서 따졌다.
“통제 똑바로 안 해? 왜 초대받지도 않은 사람이 여기 있는데!”
주차관리요원이 난처한 얼굴로 선우현에게 물었다.
“손님. 지금은 백화점 영업시간은 끝났고 특별 행사만 남아 있는데, 혹시 초대장을….”
선우현이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초대장을 꺼내주었다. 그걸 본 주차관리요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확인했습니다.”
주차관리요원이 시비를 걸던 박지웅에게 설명했다.
“이분은 오늘 방문하신 VIP 손님이 확실하십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VIP가 왜 그런 싸구려 오토바이를….”
선우현이 말했다.
“남의 차 얻어타고 오는 동반 1인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이, 이….”
스포츠카 운전석에서 이대현이 말했다.
“야. 타. 쪽팔리잖아.”
“알았다고.
박지웅이 선우현에게 손가락질했다.
“너 얼굴 기억해뒀다.”
“그러냐? 나도 기억해뒀는데. 네 얼굴은 물론이고, 운전하는 사람까지.”
“이….”
이대현이 다시 말했다.
“야. 타라고.”
박지웅이 식식거리면서 조수석에 탔다.
“아오. 저 새끼.”
이대웅이 한소리 했다.
“야. 여기서 소란 피우면 어떻게 하냐?”
“오토바이가 안 비켜주잖아. 그리고 겨우 이런 것 가지고 뭘 그래? 저놈 분명히 다른 사람 대신에 온 거야. 아니면 저런 싸구려 오토바이를 타고 이 행사에 올 리가 없잖아.”
이대현이 인상을 썼다.
“누가 저놈 신경 쓰는 줄 알아?”
“응? 그럼?”
“여기 주차 기다리려고 줄 선 사람들은 다 어디서 한자리하는 사람들인데, 네가 그러면 좋게 보겠냐?”
“어? 아….”
“내가 그래서 차에서 안 내린 거야. 너도 좀 배워라. 가끔은 평판을 신경 써야지.”
박지웅이 투덜댔다.
“그런 건 좀 미리 말해주지.”
선우현이 오토바이에 다시 타며 말했다.
“안 덤비네.”
- 거기서 주먹으로 타이르면 좀 그렇잖습니까? 목격자가 많으니까요.
“운이 참 좋은 놈들이야.”
- 그건 그렇습니다.
***
선우현이 행사장에 들어갔다.
오늘 행사에 사용되는 활력 토마토는 최종훈을 통해 백화점에 넘겼다. 최종훈은 김찬혁을 시켜 세금 신고 등의 서류 작업을 해결했다.
최종훈이 선우현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선우현 씨. 오셨군요.”
“최 사장님은 일찍 오셨네요.”
“동생을 데려오느라 좀 서둘렀습니다. 하하하.”
최종훈의 옆에서 최민영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최민영이에요.”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빠가 좋은 말 해줬어요?”
“옛날에는 귀여웠다는 이야기?”
“그건 어릴 때 이야기인데….”
그녀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그들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선우현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다시 인사했다.
“활력 토마토 정말 고마워요. 오늘도 그걸 먹고 힘이 나서 여기 왔어요. 예전 같았으면 이런 파티는 어려웠을 거예요.”
“도움이 됐다니까 다행입니다.”
“그 토마토를 먹은 날은 이상한 꿈도 안 꿔요. 진짜 신기해요.”
“꿈이요? 악몽 같은 건가요?”
“음…. 그냥 특이한 꿈이에요.”
박길성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이거 선우현 씨와 최 사장이 같이 있군.”
최종훈이 인사했다.
“박 회장님께서 어쩐 일로 직접 오셨습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어볼까 해서.”
“하하. 농담도….”
최종훈의 눈에 뒤에 서 있는 박서윤이 보였다. 그는 박서윤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농담이 아니군요.”
“활력 토마토 이야기야. 활토. 마침 최 사장을 본 김에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최민영이 선우현의 옆에 서서 제안했다.
“그럼 두 분 이야기하시게 우리는 저쪽으로 갈까요?”
박서윤도 선우현의 옆으로 움직였다.
“그럼 저도 회장님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잠시 선우현 씨와 같이 있겠습니다.”
선우현도 맛있는 걸 좋아한다.
이 VIP 행사는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됐다. 한쪽에는 핑거 푸드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선우현이 두 사람과 그쪽으로 이동했다.
“맛있어 보이네요.”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구하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하니가 선우현을 보고 방긋 웃었다.
“어머. 선우현 씨. 활토 특판 행사를 한다길래 혹시 오시나 싶었는데, 역시 오셨네요.”
옆에서 동반 1인으로 참석한 방송국 막내 작가 안유정이 인사했다.
“우현 오빠 안녕? 그런데 옆에 두 분은 누구세요? 설마 양다리?”
구하니가 안유정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미쳤니?”
“아얏! 농담이야! 두 분 죄송해요. 제가 요즘 하니 언니랑 드라마에 빠지는 바람에…”
선우현이 소개했다.
“이분은 길성 비서실의 박서윤 대리. 이분은 JHC 테크 최종훈 사장님의 동생 최민영 씨. 저쪽에서 박 회장님과 최 사장님이 대화 중이라 내가 두 분을 잠시 에스코트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안유정 씨. 방송 작가입니다.”
안유정이 얼른 말했다.
“저는 한 분은 틀림없이 배우인 줄 알았어요!”
최민영이 웃었다.
“어머. 제가 그 정도는 아닌데.”
“당연히 아니죠.”
“네? 아니, 나도 어디 가면 안 꿇리는데….”
“저도 다른 데서는 그런데, 여기선 좀 꿇려요. 하니 언니랑 저분 옆에 있으면 비교돼서.”
***
곽수천은 오늘 파티에서 알바로 일했다.
행사 담당자는 알바의 신원조회까지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곽수천 같은 일일 알바는 행사장에 직접 들어가지 못한다.
곽수천은 행사 준비를 할 때는 짐을 날랐고, 행사가 시작된 후에도 행사장 밖에서 짐을 날랐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그는 틈만 나면 행사장 쪽을 기웃거렸다.
“소율이를 만나서 사과하고 탄원서에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어이! 자꾸 농땡이 피울 거냐!”
“갑니다!”
***
태양 백화점의 VIP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늘 행사는 경매가 아니다. 상품의 가격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 그래서 분위기는 차분했다.
진행자가 VIP 특판 상품을 하나씩 소개했다. 어떤 건 값이 쌌고, 어떤 건 구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상품을 사거나, 한쪽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소개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곳곳에 배치된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그 직원이 이동식 매대에 상품을 올려 가져왔다. 손님은 그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됐다.
행사장에는 이미 다 준비된 상태로 천만 덮여있던 전시대도 여러 개 있었다. 그런 전시대의 천도 모두 치워졌다.
유소율은 오늘 행사를 파티 형식으로 꾸몄다. 그래서 가벼운 술이 나왔다.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왔다가 선우현과 시비가 붙었던 두 놈이 샴페인 잔을 들고 홀짝였다. 그들은 여자를 꼬셔볼까 하고 주변을 탐색했다.
조수석에 타고 온 박지웅이 한쪽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와. 저기 구하니다.”
이대현이 피식 웃었다.
“지금 봤냐? 나는 이미 보고 있었다.”
“오늘 상대로 구하니 어때?”
“구하니는 무리지. 톱스타를 우리가 어떻게 꼬시냐?”
박서윤은 파티에 나온 핑거 푸드를 먹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여기서 저녁 식사를 해결할 생각이다.
구하니가 박서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박서윤이 돌아섰다.
박지웅의 눈이 커졌다.
“어? 저 여자 진짜 예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