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제안
두목이 권총을 뽑으며 외쳤다.
“당장 무릎 꿇….”
선우현이 팔을 휙 뻗었다. 손에 들고 있던 삼단봉이 마치 창처럼 날아가 두목의 오른쪽 어깨에 푹 꽂혔다.
“컥!”
그 충격으로 어깨가 옆으로 돌아갔다. 권총의 총구도 어깨를 따라 움직였다.
두목의 오른쪽에 있던 부하는 총구가 보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선우현이 바닥을 박차 두목을 향해 도약했다. 간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목이 황급히 권총으로 선우현을 겨누려고 했다.
선우현이 더 빨랐다. 그는 두목의 손을 잡아 부러뜨려 꺾으며 권총을 빼앗았다.
손목이 부러진 두목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두목의 왼쪽에 있던 놈이 황급히 쇠파이프를 들었다가, 선우현이 권총을 빼앗은 걸 보고 두 손을 위로 들며 뒤로 물러났다. 파이프가 바닥에 떨어져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총구를 피해 엎드렸던 놈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엎드린 자세 그대로 옆으로 샤샤샥 움직였다.
“바퀴벌레냐?”
“예! 저는 벌레입니다!”
선우현이 권총을 엎드린 놈을 향해 겨누었다.
“야. 이거 맞아봐라.”
“사, 살려주십쇼!”
선우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 슬라이드가 젖혀지며 탄환이 날아가 머리를 때렸다.
엎드린 놈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선우현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머리를 동그란 탄환이 계속 때렸다. 비명이 이어졌다.
“으아악! 으아, 으아?”
아프긴 한데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어? 나 분명히 총에 맞았는데….”
선우현이 말했다.
“비비탄 맞는다고 죽겠냐?”
“비, 비비탄?”
선우현이 권총 탄창을 뽑았다. 탄창에는 실탄이 아니라 배터리와 비비탄이 들어 있었다.
“겉모습은 진짜 정교하게 만들었네. 금속도 만히 썼어. 이 정도면 진짜 총보다 더 비싸겠는데?”
선우현이 두목을 보며 말했다.
“야. 이건 왜 가지고 다녔냐? 부하들이 배신 못 하게 하려고 그랬냐?”
두목은 부러진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은 채로 대답했다.
“그냥 멋으로 가지고 다녔다!”
“멋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쩐지 권총을 안 쏘고 입만 털더라.”
엎드려 있다가 비비탄을 맞은 놈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권총만 믿고 있었는데! 그래서 저 괴물을 이길 줄 알았는데!”
선우현이 말했다.
“꿇어.”
“예? 예!”
그놈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두 손을 들고 있던 놈은 다른 판단을 했다.
‘진짜 총이 아니니까 맞아도 안 죽어!’
그놈이 갑자기 창고 밖으로 도망쳤다.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일단 튀었다.
일단 한 놈이 튀는 걸 보고 두목도 뒤로 돌아 뛰었다.
선우현이 권총을 어깨 뒤로 젖혔다가 야구공 던지듯이 던졌다. 금속으로 만든 묵직한 권총이 빨랫줄처럼 날아가 도망치는 놈의 다리를 때렸다.
“으악!”
그놈은 다리가 꺾이며 창고 문앞에서 앞으로 엎어졌다.
도망치던 두목은 눈앞에서 부하가 엎어지자 그대로 뛰어넘으려고 했다.
하지만 부러진 손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뛰지 못했다. 두목은 부하의 머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엎어졌다. 엎어지면서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컥.”
두목도 그대로 기절했다.
선우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삼단봉을 주웠다.
“저건 혼자 쇼를 하네.”
마지막 부하가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저, 저는 항복했으니까 살려주시는 거죠?”
“아니야. 너는 지금 나를 공격하는 중이야.”
“예? 그게 무슨….”
“나는 어쩔 수 없이 반격하는 중이고.”
선우현이 삼단봉으로 마지막 놈의 턱을 쳤다. 그놈은 턱이 돌아가며 뒤로 넘어갔다.
이제 납치 조직원들은 모두 기절했다.
곽수천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살았다!”
백태형도 마찬가지였다.
“이겼어!”
선우현이 곽수천을 돌아보았다.
“이제 너희들도 정산하자.”
곽수천과 백태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박서윤이 오른손을 들었다.
“저는 이제 움직여도 되죠?”
“물론이죠.”
박서윤이 선우현 쪽으로 이동했다. 유소율도 얼른 그녀를 따라갔다.
유소율이 선우현을 조심스럽게 보며 박서윤에게 물었다.
“저분은 혼자서 도대체 몇 명을 날려버린 거예요?”
“처음 보면 놀랄 수 있어요.”
“저분을 처음 본 건 아닌데.”
박서윤의 고개가 그녀 쪽으로 휙 돌아갔다.
“언제 봤죠?”
“백화점에서 식사하는 거 지나가다가 봤…. 그렇게 무섭게 보지 말아요. 서윤 씨 때문에 기억하는 거니까.”
“저요?”
“눈에 확 띄잖아요.”
박서윤이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이상하네요. 인터넷에서 많이 팔리는 옷을 산 건데.”
“아니, 옷 때문이 아니라….”
‘얼굴이 일반인이 아니라 연예인 같아서 알아본 건데.’
유서율이 얼른 설명을 추가했다.
“우리 백화점 식당가에서 서윤 씨를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같은 남자랑 밥을 먹더라고요. 특히 두 번째는 내가 앉으려던 자리에 먼저 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기억했죠.”
“아. 언제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우현 씨를 기억하는군요.”
선우현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아니면 미녀와 야수인 줄 알았는데….’
선우현을 보니 그때 했던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싶었다.
‘바보온달은 고구려의 칼싸움 잘하는 용맹한 장군이었고, 싸우는 모습이 야수인 것도 맞잖아.’
박서윤이 말했다.
“유소율 이사님. 왜 자꾸 선우현 씨를 힐끔거려요? 그러다 의심받아요.”
“네? 의심이요?”
“여기서 선우현 씨와 확실히 한 편인 사람은 저 혼자예요. 유서율 이사님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닌지 의심받는다고요.”
“어머. 아니에요. 저도 한편이에요. 같은 편이라고요.”
유소율이 곽수천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수천이 저거 아주 나쁜 놈이에요. 저는 저놈하고는 반대편이에요.”
곽수천이 울상을 지었다.
“소율아. 우리 사이가 겨우 이 정도였냐? 우리 동창이잖아. 친구잖아.”
“닥쳐! 우리는 쭉 경쟁자였어! 너 내 등 많이 쳤잖아!”
“그거야 백화점끼리 경쟁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어디서 수작이야!”
선우현이 곽수천에게 물었다.
“너 수작 부리는 중이냐?”
곽수천이 당황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아니야! 자빠져 있는 저놈들이 나한테서 돈을 뜯으려는 거 봤잖아! 나는 절대로 저놈들과 한패가 아니라고!”
“네가 저놈들을 고용했다가 배신당한 거 다 들었어. 한패 맞아.”
“저놈들을 고용한 건 내가 아니라 백 비서야!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백태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사님. 아까 말씀하신 변호사랑 보너스 1억이랑 새 차는 그대로인 거죠? 제 자리도 그대로고요?”
“당연하지!”
백태형이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저놈들을 고용한 거 맞습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너희들 또라이냐? 그런 작당을 왜 내가 보는 데서 하는데?”
곽수천이 백태형을 구박했다.
“그런 건 눈빛만 보고 알아들어야지, 왜 물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사님은 평소에 말을 잘 바꾸시니까….”
“내가 언제….”
선우현이 두 사람에게 성큼 다가갔다. 곽수천이 다급히 말했다.
“아니야. 말로 하자. 말로….”
“대화는 일단 주먹으로 해야지.”
선우현이 곽수천을 걷어찼다. 배를 얻어맞은 곽수천이 뒤로 쭉 밀려나 나동그라졌다.
“케엑! 주, 주먹이라더니….”
백태형이 몸을 움찔했다가 뒤늦게 말했다.
“나는 그게…. 꾸엑!”
“너는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선우현은 곽수천과 백태형을 한쪽에 몰아놓은 후에 본격적으로 두들겨 팼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발로 걷어차다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 손바닥으로도 때렸다.
“벌써 며칠째 얼마나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알아?”
- 더 패십시오. 저도 선체 수리할 시간을 쪼개서 그놈들을 감시하느라 바빴습니다.
“서윤 씨는 네놈들 때문에 이사도 했어!”
- 선장님? 저 때문에 패시는 게 아닙니까?
“케에엑!”
유소율이 움찔했다.
“너무 심하게 패는 거 아니에요?”
박서윤이 대답했다.
“살살 패는 거예요.”
“저게 어떻게 살살이예요?”
“청부업자들 꼴을 보세요.”
유소율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진 청부업자들이 보였다. 기절은 기본이고 그냥 봐도 상태가 안 좋은 놈들이 많았다.
반면에 곽수천과 백태형은 적어도 어디가 부러지진 않았다.
“아. 살살 패는 거구나.”
선우현이 두 놈을 바닥을 기어 다닐 때까지 팼다.
그런 후에 물었다.
“야. 이렇게 맞아가면서까지 서윤 씨를 납치하려 한 이유가 뭐냐?”
곽수천이 말했다.
“이렇게 맞을 줄은 몰랐…. 케엑!”
“대답.”
“납치가 아니라, 매수하려고 했습니다!”
“매수를 이런 곳에 끌고 와서 한다고? 너 내가 바보처럼 보이냐?”
- 바보인 거 눈치챘나 봅니다.
“케엑! 매수가 잘 안 돼서, 돈을 잘 받게 살짝 겁을 주려고…. 꾸에엑!”
“매수가 안 되면 금액을 올려야지, 그거 좀 아껴보겠다고 납치를 해?”
“그, 그게 아니라…. 꾸엑!”
유소율이 박서윤에게 물었다.
“서윤 씨. 혹시 금액을 올리면 넘어갈 생각이….”
“아뇨. 없어요.”
“역시 그렇죠?”
곽수천이 다급히 외쳤다.
“저는 그냥 활력 토마토를 어디서 구해오는지만 물어보려던 겁니다!”
“너한테는 안 팔아!”
“꾸에엑! 네가 왜 그걸 정해! 아니, 정하십니까!”
“내 마음이다!”
유소율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활력 토마토가 목표였어. 그래서 서윤 씨를….”
문득 의문이 들었다.
박서윤은 활력 토마토 농장의 위치를 알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유소율이 오늘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다가 접촉했다.
그런데 방금 선우현이 그 토마토를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걸 왜 저 사람이 결정하지?’
그녀는 박서윤이 선우현을 만나는 모습을 식당에서 두 번 보았다. 그때 모습을 떠올렸다.
‘국밥집에서는 튼튼한 가방을 가지고 있었어. 뭔가 귀중한 것을 보관하기 딱 좋은 가방….’
가방이 평범하지 않아서 그것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소율의 눈이 커졌다.
“어? 설마?”
두 놈이 기절했다. 이제 더 패도 아픈 줄을 모른다.
선우현이 두 놈을 버려두고 박서윤에게 다가왔다.
“서윤 씨. 위험할 때는 그냥 나를 불러요. 납치당하지 말고.”
“대신에 이놈들을 일망타진했잖아요.”
“괜히 고생하니까 그러지요.”
“고생하는 건 익숙해서 괜찮아요.”
유소율이 옆에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유소율 이사. 오늘 서윤 씨는 왜 만난 겁니까?”
“활력 토마토 때문에….”
“역시 저놈들하고 한패였구나!”
유소율이 급히 두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경쟁 관계라서 비슷한 시기에 박서윤 씨에게 접근한 것뿐이에요!”
“진짜입니까?”
“네! 저까지 납치된 거 보셨잖아요.”
“흐음. 일단 그렇다고 치고 넘어갑시다.”
이번에는 유소율이 물었다.
“혹시 선우현 씨가… 활력 토마토 농장을 하고 계세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역시 한패….”
“저도 방금 알았어요!”
유소율이 조금 전에 그렇게 판단한 근거를 쭉 설명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소소하게 키우는 거라서 농장이라고 할 규모는 아닌데.”
“역시 진짜였어!”
“먹어는 봤습니까?”
“네! 할머니가 주셔서 딱 한 번 먹어봤어요!”
“맛있지요?”
“진짜 맛있었어요! 비결이 뭐예요?”
“내가 정성을 담아 키웠으니까 맛있는 겁니다.”
“네?”
위성 궤도에서 레드 포션을 섞어 만든 급속성장촉진제의 추가 효과 덕분에 맛있다.
“그냥 그렇게 알아들어요.”
유소율도 어차피 활력 토마토의 재배 비법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태양 백화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백화점에서 팔 물건만 구하면 된다.
“그 활력 토마토, 우리 태양 백화점에서 꼭 팔고 싶어요.”
“유 이사님 할머니께 물어봐요. 그게 과일 매대에 쌓아놓고 팔 수 있을 만큼 구하기 쉬운 건지.”
선우현은 그만한 수량을 백화점에 공급할 이유가 딱히 없다. 돈을 더 벌고 싶으면 활력 토마토의 가격을 좀 올리면 된다. 그래도 사려는 사람은 많다.
가격을 백만 원으로 고정한 건 그래야 인맥을 통한 영향력 같은 부수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유소율이 얼른 말했다.
“당연히 과일 코너는 무리죠. 저도 이제 알아요.”
“그럼 어디서 팔게요?”
“VIP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행사를 기획하려고요.”
선우현은 시큰둥했다.
“그런 걸 해서 나한테 무슨 이익이 있다고. 지금도 사려는 사람이 생산량보다 많은데.”
유소율도 안다. 설득하려면 지금보다 좋은 점이 있어야 한다.
“활력 토마토가 명품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럼 지금은 명품이 아닌가?”
“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