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95화 (95/281)

95. 안전지대 II

선우현은 박서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채연서의 집으로 갔다.

채연서는 아파트 밖에 나와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그녀의 집에는 지금 언니도 있어서 선우현까지 집안에 들어가는 건 곤란했다.

세 사람은 일단 아파트 앞에 있는 카페로 갔다.

선우현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채연서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세상에. 나쁜 놈들.”

선우현이 어떻게 그때 박서윤을 구하러 갈 수 있었는지도 설명했다.

채연서가 감탄했다.

“와. 촉도 좋으시구나.”

설명을 듣다 보니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박 대리님은 왜 어제 선우현 씨를 만나서 활토를 받았어요? 난 JHC 테크에서 토마토 하나를 예쁜 상자에 잘 포장해서 퀵으로 보내주던데.”

활토 전용 상자는 물론이고 퀵으로 보낼 때 쓰는 상자도 채연서가 디자인했다.

박서윤이 대답했다.

“아. 저는 세 개씩 받아야 해서요. 직접 골라서 딸 때도 있고요. 그래서 가끔 선우현 씨를 만나서 직접 받아요.”

채연서가 선우현을 보며 항의했다.

“잠깐! 이건 아니지! 세 개씩라니! 나는 왜 하난데요!”

박서윤이 얼른 설명을 추가했다.

“제 거가 아니라 우리 회장님 거예요. 활토는 제 월급으로는 못 사요. 비싸서.”

선우현이 한마디 했다.

“직접 오는 손님한테는 가끔 주스 한 잔은 대접합니다.”

항상 토마토 주스를 주는 건 아니다. 커피를 줄 때도 있다.

“네. 그 주스 정말 맛있어요.”

“자주 와서 마셔요.”

채연서도 그 주스를 먹어본 적이 있다.

“맞아요. 거기서 먹는 토마토 주스는 정말 맛있죠. 자주 가도 되는 곳이었구나. 앞으로는 나도 자주 가야지.”

선우현이 물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굳이?”

“디자인 회의?”

“이미 패키지 디자인은 끝났는데?”

“어머. 설마 저랑 한 번만 일하고 끝낼 거예요? 나중에 쓸 것도 미리 구상해 둬야죠.”

세 사람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후에 카페에서 나왔다.

채연서가 말했다.

“서윤 씨. 우리끼리 집에서 한잔 어때요? 언니도 있으니까 셋이서.”

박서윤은 오늘 편의점에서 샀던 맥주가 생각났다.

“아! 맥주캔을 담은 봉지를 방에 떨어뜨리고 그냥 왔어요. 거기에 네 캔이나 있는데.”

“우리 집에 술 많아요. 아! 언니가 술꾼이라서요.”

***

선우현이 박서윤의 원룸 앞으로 돌아왔다.

아까 경찰서에 갈 때는 경찰차를 타고 이동했다. 박서윤을 데려다줄 때는 택시를 이용했다.

오토바이는 여기 놔뒀다. 그걸 가져가려고 돌아왔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에 타며 물었다.

“수선아. 도망친 놈은 지금 어디 있냐?”

박서윤을 포위한 세 놈을 잡았을 때, 70m 떨어진 곳에 숨어 있다가 도망친 놈이 있다.

- 청명 백화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백화점이 열려 있을 때?”

- 문을 닫은 후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청명 백화점에서 일하는 놈이겠네?”

- 그렇겠죠.

***

청명 백화점 이사 곽수천이 소리를 질렀다.

“백 비서! 어떻게 그런 일 하나 똑바로 못해!”

비서 백태형이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그는 일단 잘못했다는 시늉부터 한 후에 변명했다.

“사람들을 시켜 그 여자의 원룸도 뒤져보고, 일부러 겁도 줬습니다. 그런 일에 전문가인 놈들을 고용해서 진행했는데….”

“그런데 왜 실패하냐고!”

“지나가던 사람이 그렇게 싸움을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백태형은 좀 억울했다.

‘그렇게 잘 치는 놈이 끼어들 줄 누가 알았냐고.’

그는 선우현과 세 놈의 대화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세 놈이 당한 후에는 곧바로 도망쳤다. 그래서 선우현이 누구인지 몰랐다.

현장을 보지 못한 곽수천이 의심했다.

“그렇게 잘 싸우는데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확실해?”

“혼자서 둘을 제압한 걸 보면, 잘 싸우는 놈은 맞습니다.”

“왜 둘이야? 거기에 셋을 보냈다며?”

“마지막 놈은 그 여자의 발차기에 턱을 맞고 기절해서….”

곽수천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여자한테 처맞고 기절했다는 거야? 너는 도대체 얼마나 약해빠진 놈들을 보낸 거야!”

“죄송합니다.”

곽수천이 화가 난 이유는 또 있다.

“그렇게 실패했으면 잠수부터 타야지, 여기로 바로 오면 어떻게 해!”

“예?”

“일에 실패하자마자 여기로 왔다는 게 들키면, 내가 시켰다고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백태형은 자기도 모르게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폈다.

‘그래. 원래 뭐든 책임지기 싫어하는 인간이지.’

백태형도 아무 생각 없이 백화점으로 돌아온 건 아니다.

“오늘은 제 휴대폰은 꺼놓고 모든 건 대포폰으로 처리했습니다. 그 세 놈은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는 놈들이라 제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놈들을 찾아 처리하느라 돈이 더 들었습니다.”

그러느라 그가 중간에 빼먹으려던 돈까지 써야 했다.

“그놈들은 어떻게 찾았는데?”

“저번에 미행을 맡긴 놈에게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한 다리 건너서 안전하게 진행했으니까 안심하십시오.”

“그건 뭐 꼼꼼하게 잘했네.”

곽수천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거기서 그 여자를 도와준 놈이 만약 너를 봤으면? 그래서 너를 미행했으면?”

“제가 뒷걸음으로 거길 빠져나왔습니다. 제가 사라질 때까지 그 둘은 제가 있는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

곽수천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는 조심해서 해.”

백태형은 살짝 놀랐다.

“예?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계속 시도하라는 말입니까?”

“그럼 하다가 말려고 했어?”

“하지만 오늘 일이 크게 터졌는데….”

“어차피 안 들켰다며? 미행당한 것도 아니라며? 오늘 잡힌 놈들은 한 다리 건너서 고용했으니까 꼬리 자르기가 된다며?”

“그건 확실합니다.”

곽수천이 큰소리로 지시했다.

“그럼 결과를 내야지! 일만 하면 다야? 결과를 가져오라고!”

***

박서윤은 이튿날 채연서의 집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 냉장고의 재료로 간단한 아침을 준비했다.

채연서는 프리랜서라 기상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손님이 온 날이라 억지로 눈을 뜨고 일어나 아침을 받아먹었다.

“대박.”

일단 음식이 식탁 위에 놓인 모습부터가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맛도 좋았다.

“박 대리님은 얼굴도 예뻐. 업무 능력도 좋아. 거기다 요리도 잘해. 와. 사람이 이렇게 완벽해도 돼요?”

그녀의 언니 채승아도 요리가 마음에 들었다.

“자주 놀러 와서 자고 가요. 어제 술안주도 그렇게 맛있게 만들어주더니, 오늘 아침도 장난 아니네요.”

박서윤은 채연서의 집에서 바로 출근했다. 원룸에는 갈 수가 없어서 옷은 어제 입은 그대로였다.

회사에서 비서실 동료 여자 직원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 대리. 옷이 어제하고 같은데, 혹시 어제 외박한 거야?”

“아. 네. 사정이 있어서….”

그녀가 주변을 슬쩍 본 후에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혹시 남자친구?”

박서윤은 평소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니에요. 사정이 있어서 아는 분 집에서 잤어요. 여자들만 사는 집이에요.”

“에이. 난 또.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 통곡하는 거 보나 했더니. 실망이다.”

“통곡을 왜 하겠어요?”

“왜 안 하겠어?”

박길성 회장이 비서실에 나타났다. 비서실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길성도 박서윤의 옷을 보고 은근히 걱정하던 중이다.

‘서윤이가 외박을?’

그는 일부러 비서실에 찾아왔다가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외박 이유가 친구 집인 건 다행인데….’

그 부분은 마음이 놓였지만 다른 걱정이 생겼다.

‘무슨 사정이 있다는 거지?’

***

박길성은 회장실로 돌아갔다.

박서윤이 하는 일 중에는 회장실 테이블에 회의용 서류를 정리해 놓거나 간식 등을 챙기는 것도 있다.

박서윤이 서류 몇 부를 가지고 들어와 테이블에 한 부씩 올려놓았다.

박길성이 그런 그녀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아까 비서실에 들렀을 때 그런 이야기가 들려서.”

“네. 사정이 있어서요.”

“괜찮으면 무슨 사정인지 듣고 싶군.”

박서윤이 어젯밤에 겪은 사건을 설명했다.

박길성이 화를 벌컥 냈다.

“그런 나쁜 놈들을 봤나! 그놈들은 그래서 어떻게 했지?”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감옥에 처박아야지. 너는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예. 선우현 씨가 와줘서 괜찮습니다.”

“허. 다행이다. 다행이야. 선우현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 많아.”

“예. 제가 번번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박서윤이 회의 서류 정리를 마치고 회장실을 나갔다.

박길성이 회장실에서 혼자 고민했다.

“그 여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또 수작을 부렸나? 설마 아들놈들 짓은 아니겠지? 아직 준비가 덜 됐지만, 그놈들 짓이면 다 엎어버릴까?”

지금 상황에서 그러면 집안과 회사가 난장판이 된다.

“아니야. 저번에는 서윤이를 억류해 놓고 비서실에 들어온 이유를 대놓고 물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어. 그러면… 혹시 활력 토마토의 정보를 원한 건가?”

그 추측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나나 비서실장은 건드릴 수는 없지만, 박 대리는 만만해 보이니까…. 그렇게 된 거군.”

하지만 다른 고민이 남았다.

“서윤이가 사는 집을 최 사장이 확인했을 때는 어느 정도 보안은 되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는 전에 박서윤이 어떤 곳에서 사는지 알아봐 달라고 최종훈에게 부탁했다.

“그런 기술을 가진 놈들이 침입하는 걸 막을 정도는 아니란 말이야.”

박서윤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들었다.

“서윤이에게는 더 안전한 곳이 필요해.”

보안이 철저한 고급 아파트나 빌라를 얻어주면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대신에 그러면 박길성이 박서윤을 특별 대우한다는 것도 알려진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차라리 선우현을 경호원으로 고용….”

박길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활력 토마토의 주인이 뭐가 아쉬워서 개인 경호원을 할까.”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 회장님. 계열사 사장단이 왔습니다.

“기다리라고 해. 내가 정리할 게 좀 있으니까.”

- 알겠습니다.

박길성이 좀 더 고민했다.

“선우현은 서윤이가 위험할 때마다 구해줄 정도로 실력과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야. 어떻게 방법이….”

박길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선우현이 사는 그 건물. 옥탑방에 사람이 산다는 건, 그 건물에 임대하는 방이 있다는 거겠지?”

박길성이 즉시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최종훈이 박길성의 전화를 받았다.

“박 회장님. 요즘 전화를 자주 하십니다?”

박길성이 본론부터 꺼냈다.

- 선우현 씨의 옥탑방이 있는 건물 알지?

“당연히 잘 알지요.”

- 거기 빈방 나온 거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있나?”

“알아볼 것도 없습니다.”

박길성이 서운해했다.

- 거 내가 요즘 이런저런 일 좀 부탁했다고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게….

“아이고. 박 회장님. 그게 아닙니다. 제가 이 건물에 대해서 잘 압니다.”

최종훈은 지금 옥탑방 앞 옥상에 선우현과 있다.

- 아. 그래? 하긴. 최 사장은 선우현 씨와 가까우니까 주변 환경 정도는 파악하고 있겠군.

“그런데 이 건물에는 빈방이 없습니다.”

- 빈방이 없는 걸 어떻게 그렇게 바로 대답하나? 매물이 새로 나왔을 수도 있잖아.

최종훈이 스마트폰의 마이크를 막고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매물이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죠?”

“비서실 박서윤 씨는 이미 이유를 압니다.”

“아. 그렇다면야.”

최종훈이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박 회장님이니까 알려드리는 건데, 이 건물은 선우현 씨 겁니다.”

- 어? 그게 무슨 말이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전에 선우현을 봤을 때는 옥탑방에 살던데?

“그냥 이 옥상이 좋아서 옥탑방에 사는 겁니다.”

- 허….

“이 건물을 살 때 서류 문제를 제가 대신 처리해줬기 때문에 잘 압니다. 살던 사람이 계약이 끝나서 나가면 새로운 사람은 안 받고 있습니다.

- 그럼 최 사장이 건물 관리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건물의 법적인 문제나 세금 관리 같은 건 우리 김 비서가 합니다만….”

- 그러면 말이야. 거기 빈방 하나만 어떻게 안 될까? 기왕이면 안전하고 좋은 방으로. 서윤이가 거기로 이사 갔으면 해서 그래. 내 부탁 좀 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