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93화 (93/281)

93. 침입

청명 백화점 이사 곽수천이 소리 내어 웃었다.

“흐흐흐. JHC 사장은 못 건드려도, 길성의 일개 여자 대리 정도는 쉽게 다룰 수 있지. 그 여자에게서 밭의 주소나 농부의 이름을 알아내.”

비서 백태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방법까지….”

“일단 매수를 해봐. 천만 원이면 충분….”

곽수천은 오늘 행사장에서 유소율을 만났다가 정면에서 면박당한 일이 생각났다.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다. 이천만 원을 제시해. 당연히 뒤탈 안 생기게 잘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

박서윤은 차가 없다. 퇴근할 땐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녀가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백태형이 쓱 다가왔다.

“박서윤 씨?”

“아닌데요.”

백태형은 당황했다. 상대가 물어보자마자 아니라고 대답할 줄은 몰랐다.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농담도. 이런 미인을 착각할 리가 있습니까?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박서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이야기하시죠.”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럼 회사로 정식으로 찾아오시죠. 전 이만.”

박서윤이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백태형이 얼른 따라가며 말했다.

“천만 원.”

“무슨 뜻이죠?”

“천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걸어가며 물었다.

“그런 큰돈을 왜 주신다는 거죠?”

백태형은 ‘큰돈’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천만 원이면 통하겠는데?’

곽수천은 이천만 원으로 매수하라고 했다.

‘나도 남는 게 있어야지.’

“이야기 하나만 해주면 천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박서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 이야기가 우리 회사와 관계된 건가요?”

“그렇기는 한데,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박서윤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예? 아니, 왜 갑자기….”

“직원을 매수해 회사 정보를 빼내려는 산업스파이 혐의입니다.”

백태형은 또 당황했다.

‘이 여자 도대체 뭐지?’

가만히 있으면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다. 그는 뇌물을 중간에서 빼먹을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백태형이 다급히 말했다.

“이천만 원! 협상 잘하시네. 간단한 거 하나만 알려주면 이천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더는 못 줍니다.”

박서윤이 싸늘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백태형은 그 스마트폰을 빼앗으려다 멈칫했다.

지금 예쁜 여자가 갑자기 쫓아온 남자와 길거리에서 좋지 않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중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나빠지면 당장 개입할 것처럼 팔에 힘을 주는 남자도 몇 명 보였다.

백태형은 여기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가는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걸 깨달았다. 저 남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직송될 수도 있다.

“아, 아닙니다.”

백태형이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박서윤이 주변 사람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에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스마트폰은 걸어가면서 가방에 쓱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여고생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와. 저 언니 개쿨해.”

다른 곳을 보느라 그 장면을 놓친 친구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몰라. 개쿨해.”

***

백태형이 곽수천을 만나 보고했다.

“이사님. 박서윤을 접촉해봤는데 매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응이 차갑습니다.”

“돈 준다고 확실히 말했어?”

“예. 처음부터 이천만 원을 제시했습니다만, 씨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곽수천이 투덜댔다.

“비싸게 구네. 돈이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럼 포기할까요?”

“장난해? 매수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거 아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아내!”

“수단과 방법을, 어느 선까지….”

“백 비서. 그걸 왜 내가 정해줘?”

“예?”

“백 비서가 다 알아서 해야지.”

곽수천은 일부러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에 오만 원짜리 한 묶음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오백만 원이었다.

“사람 쓰려면 활동비 필요하지? 다 알아서 하고 나한테는 결과만 가져와.”

***

이튿날 퇴근 후에 박서윤이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지하철역 근처 노점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사서 집으로 걸어갔다.

“이사 갈 집 빨리 알아봐야 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녀는 퇴근한 후에는 모르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잠시 후에 문자가 들어왔다. 문자는 확인했다.

문자에 퇴근하는 그녀의 모습이 찍혀 있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에는 지금 들고 있는 순대와 떡볶이 봉지까지 찍혀 있었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이건….”

누군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같은 번호였다.

그녀가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어제 퇴근길에 따라왔던 백태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러게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야지.

“날 미행한 건가요?”

- 그냥 대화만 하자는 겁니다. 박서윤 씨는 돈이 생기고, 나는 간단한 정보 하나 얻고. 좋은 만남이 될 겁니다.

“거절하면요?”

- 사진을 봤을 텐데요. 현명하다면 거절 안 할 겁니다.

“그렇군요.”

박서윤이 전화를 끊고 갑자기 뛰었다.

백태형은 사람을 사서 박서윤을 미행했다. 그가 고용한 사람이 보내준 사진을 다시 박서윤에게 보내 협박도 했다.

미행 청부업자가 전화로 보고했다.

- 저 여자가 갑자기 뛰는데요?

백태형은 박서윤을 직접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두 다리로 뛰건 차를 타고 가던 계속 쫓아가야지 뭐합니까?”

- 도망가는 타깃을 미행하려면 비용이 추가됩니다만?

백태형이 인상을 썼다.

‘활동비 좀 더 삥땅 치려고 했더니.’

“돈 줄 테니까 계속 미행해서 집이 어딘지나 알아내요.”

- 알겠습니다.

백태형이 전화를 끊고 실실 웃었다.

“흐흐. 뛰어서 도망치는 걸 보면 내 목소리에 겁먹었군. 집으로 도망쳐서 떨고 있을 때 몇 번 더 전화로 협박하면 말을 듣겠지.”

곽수천은 박서윤을 이천만 원에 매수하라고 했다. 어제 백태형은 천만 원을 제시했다가 이천만 원으로 올렸었다.

“이러면 천만 원만 준다고 해도 가능하겠는데? 그럼 나한테 천만 원이 떨어지고, 활동비 남긴 것도 내 수입….”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미행 청부업자였다.

백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박서윤이 집에 들어갔나 보군요. 집 위치가 어디입니까?”

- 손님. 일이 복잡해졌는데요? 저 여자가 집에 들어간 게 아니라….

“왜요? 겁을 먹었는데 집이 아니면 어디 갈 데가 있다고?”

- 파출소로 들어갔습니다.

백태형은 당황했다.

“어? 뭐요? 어디로 가요?”

- 그 여자가 갑자기 뛴다고 했잖습니까? 집이 아니라 파출소로 직행했습니다.

“어? 어? 거길 왜….”

- 손님. 저 여자가 어디서 온 전화를 받자마자 뛰던데, 그거 손님이 걸었지요? 설마 본인 명의 휴대폰으로 전화한 건 아니겠지요?

백태형은 당당했다.

“내가 바보인 줄 압니까? 당연히 대포폰으로 연락했지!”

- 그렇군요. 그럼 그 대포폰으로 지금 저랑 통화하는 건 아니지요?

“어? 어? 같은 폰 맞는데….”

미행 청부업자가 불평했다.

- 아, 씨. 손님. 그럼 나도 대포폰 새로 장만해야겠네. 이것도 비용 추가되는 거 아시죠?

“아니, 내가 그걸 왜….”

- 배 째면 저도 쨉니다.

“주면 되잖습니까! 주면!”

- 대포폰은 내가 새로 구할 테니까 일단 만납시다. 통화하면서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그 폰은 부숴버려요. 돈 꼭 챙겨오시고요. 급히 구하는 거니까 할증 붙습니다.

“아, 돈 준다고!”

전화가 끊어졌다. 백태형이 대포폰을 보며 씩씩댔다.

“이 새끼가 나를 호구로 보나.”

그렇다고 안 만날 수도 없다. 이 청부업자는 어렵게 찾아서 고용했다. 일을 더 시키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박서윤의 행동도 그를 당황하게 했다.

“그 여자는 도대체 뭐야? 왜 예상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

박서윤은 파출소에 가서 문자로 받은 도촬 사진을 보여주고 통화를 녹음한 것도 들려주었다.

남자 경찰들이 화를 냈다.

“이런 나쁜 놈을 봤나! 어디입니까? 제가 당장 출동하겠습니다!”

젊은 순경이 앞으로 나왔다.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파출소장이 그 꼴을 보면서 말했다.

“잘들 한다. 평소에도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다들 모범경찰 표창 하나씩 탔겠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파출소장이 박서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형사팀장이 제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말해서 당장 조사하라고 하겠습니다.”

순경이 항의했다.

“소장님도 평소보다 더 친절하시잖습니까?”

“난 원래 모범경찰이었어.”

***

곽수천이 화를 벌컥 냈다.

“넌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백태형이 다급히 변명했다.

“저는 그냥 사진 한 장만 보내고 전화 한 통만 한 것뿐입니다. 협박한 것도 아니고, 돈 줄 테니까 그냥 이야기나 하자고 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그 여자가 파출소에서 그냥 나왔어?”

백태형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게…. 거기 있던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박서윤을 집에도 데려다주고….”

곽수천이 짜증을 냈다.

“그럼 신고가 접수된 거잖아! 젠장! 신고한 거 취소시켜!”

“예? 그걸 제가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백 비서가 알아서 하라고 했잖아!”

***

이튿날 박서윤이 선우현의 옥상으로 찾아갔다.

오늘도 선우현이 토마토 주스를 한 잔 만들어주었다.

그녀가 주스 잔을 받으며 물었다.

“오늘은 남는 거 주신 거 맞죠?”

4층에 있는 촉진제 공급장치를 수리한 지 며칠이 지났다. 이제 활력 토마토는 다시 넉넉해졌다.

“남는 거 맞아요. 익은 것도 많으니까 제일 좋은 거로 세 개 따가요.”

박서윤이 안심하고 주스를 조금씩 마셨다. 그녀는 이 주스가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었다.

박길성 회장이 먹을 토마토도 직접 잘 익은 것을 골라 땄다.

오늘은 활토 전용 상자도 있었다.

박서윤이 그 상자에 토마토를 담아 전용 쇼핑백에 넣었다. 그런 후에 주스를 마시며 옥상에서 전망을 감상했다.

토마토를 고르며 선우현과 이런저런 잡담도 했다. 그러다가 어제 있었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놈들이 저한테서 뭘 알아내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비서실에 있으면 회사 기밀을 많이 압니까?”

“아니요. 저는 일개 대리예요. 연구원도 아니고요. 저만 아는 기밀은 딱히 없어요.”

“그놈이 원하는 게 있을 텐데….”

“저는 회사 기술 정보는 빼낼 위치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는데, 전에도 그러더니 누가 왜 또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

박서윤은 비서실 업무로 왔기 때문에 오늘은 회사 차를 가져왔다. 그녀가 지상에서 옥상을 올려다보고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후에 차를 타고 떠났다.

선우현이 옥상에서 멀어지는 차를 보며 말했다.

“전에 서윤 씨를 노린 놈들이 또 노리는 걸까?”

-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때 그놈들을 덜 패서 다시 왔나?

그놈들은 현장에서 도망쳤다.

- 다른 놈들보다 덜 패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설마 그놈들이 다시 왔겠습니까?

“다른 놈들이 왔어도 시킨 놈은 같을 수 있잖아.”

***

박서윤은 회사로 돌아갔다가 그날 밤에 퇴근했다. 퇴근길에 동네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골랐다.

“오늘은….”

그녀는 네 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샀다. 거기다 소주도 한 병 샀다.

“쏘맥으로 하자.”

오늘은 술만 샀다. 안주는 집에서 만들면 된다.

그녀는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었다.

재료를 너무 조금씩 사면 단가가 올라간다. 그래서 한 번 할 때 넉넉한 양을 요리하고 며칠씩 같은 것만 먹곤 했다.

길성에 취직한 후에는 요리를 따로 배웠다.

원래도 요리를 잘했는데 그때 실력이 크게 늘었다.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보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그녀는 원룸에 산다. 1층 출입문에는 디지털 도어락과 CCTV가 있어서 최소한의 보안은 갖춰진 곳이었다.

그녀가 지내는 원룸 문에도 디지털 도어락이 있었다.

그런데 도어락의 번호를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이게 왜 고장 났지?”

그녀가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그냥 열렸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켰다.

방안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봉투를 떨어뜨렸다.

“도둑?”

그녀가 즉시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상황에서 방에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그녀가 건물 앞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데 112에 신고하기도 전에 세 사람이 쓱 다가왔다. 그중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이봐. 아가씨. 놀랐나 봐?”

셋 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문제는 세 사람이 접근하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박서윤을 세 방향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그녀가 1층 출입문 앞의 CCTV 카메라를 확인했다. 카메라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한 놈이 킬킬댔다.

“아. 저거? 당연히 CCTV부터 가렸지. 우리가 아마추어인 줄 알아?”

박서윤이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들고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세 사람을 번갈아 노려보며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

“흐흐흐. 귀엽네. 싸울 줄은 알고?”

여기는 원룸 건물 앞이다. 박서윤이 경고했다.

“나 험하게 자랐어. 비명 지르면서 싸울 거야.동네 사람들이 신고해줄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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