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높은 곳에서 부르는 노래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가수가 되고 싶은 거냐?”
- 저는 위성 궤도에 있으니 본격적인 가수는 무리죠. 얼굴 없는 가수의 디지털 싱글 정도면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단 네 목소리를 지상으로 보내야 하잖아. 그런데 너와 직접 통신이 가능한 장비는 내 귓속에 있는 인이어 통신기밖에 없…. 아니, 잠깐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인이어 통신기로 너와 대화할 때는 팔찌형 통신 중계기를 쓰잖아?”
지구연합의 기술력으로도 귓속에 있는 소형 근거리 통신기로 위성통신까지 하는 건 어렵다. 예산을 쏟아부어 작정하고 만들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필요한 게 통신 중계기다.
선우현이 차고 다니는 팔찌는 약간의 형태 변형이 가능하다. 지금은 그 팔찌를 스마트워치와 비슷한 형태로 변형해서 쓰고 있다.
그 팔찌가 인이어 근거리 통신기와 지원위성 사이에서 통신 중계를 담당한다.
그런데 그 팔지는 전에는 현지 협력자용 통신기로 사용했다. 지금은 충전 장비가 부실해 통신 중계기로만 쓰고 있다.
“수선아. 이 팔찌를 그냥 통신기로 쓸 수는 없나? 이 통신기는 스피커 기능이 있으니까 네 목소리를 팔찌로 받아서 녹음기에 녹음하면 되잖아.”
- 현재 팔찌의 에너지 충전 제한선이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상시 무전기로 쓰는 건 무리입니다.
“그럼 포기해야지.”
- 다만, 무리해서 가동하면 5분 정도는 무전기로 쓸 수 있을 겁니다.
“5분?”
- 제가 노래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시간이죠.
“그럼 5분 후에 다시 충전하면 또 5분을 쓸 수 있나?”
- 아니요. 한 번 무리하면 자가 복구 시간 동안은 쿨타임을 둬야 안전합니다.
“얼마나?”
- 일정한 기준이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내부 손상이 없어서 곧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운이 나쁘면 자가 복구에 한 달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통신 중계 기능은 자가 복구 중에도 유지되겠지?”
- 아마도요?
“그러면 가능은 하다는 소리네.”
김수선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선장님이 방법을 찾아내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냥 질러본 거 아니고?”
- 사실 그렇긴 합니다. 정말로 찾아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하다.”
- 이번에는 인정합니다.
선우현이 음악 기획사 폴라시의 사장 박대석에게 물었다.
“그 디지털 싱글 말입니다.”
“아! 하나 만들어드릴까요? 제 조카를 구해준 보답으로는 약하지만, 제가 작곡한 곡을 하나 드리겠….”
“아니요. 곡은 사양하겠습니다.”
선우현과 김수선은 은하소녀가 뜨지 못한 이유가 곡이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곡을 작곡한 사람이 박대석이다.
그래서 박대석의 곡은 거절했다. 게다가 아직 문제가 다 해결된 것도 아니다.
“제가 직접 노래할 건 아니고, 아는 사람 목소리로 디지털 싱글을 만들었으면 하는데요.”
“네? 아. 그래도 되긴 하는데, 혹시 그분이 노래를 잘합니까?”
“잘합니다. 아주 굉장히.”
박대석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정식으로 오디션을 보라고 하시죠!”
“그 친구가 사정이 있어서 한국에 못 옵니다.”
“아….”
“그리고 직접 노래한 녹음 파일 하나만 보내올 겁니다. 5분짜리로.”
“네?”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박대석은 당황했다.
“아니, 그래도 달랑 5분짜리 파일 하나는 좀….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양하게 녹음해봐야 하는데….”
“그리고 그 친구의 개인 정보는 사장님의 회사에도 밝힐 수 없습니다.”
“예? 그래도 회사에서 가수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서요.”
박대석은 이 조건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디지털 싱글을 만들고는 싶은데, 곡은 알아서 해결하고, 직접 녹음한 5분 미만 파일 하나만 줄 거고, 어떤 사람인지를 회사에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왜 그런….”
옆에서 구하니가 말했다.
“그런 조건이면 그냥 너튜브에 공개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요.”
선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어? 너튜브요?”
“네. 디지털 싱글을 내나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너튜브에 올리나 똑같잖아요.”
“너튜브라….”
“디지털 싱글은 제작 기간도 필요한데, 너튜브에 음원만 공개하는 거면 오늘 당장도 가능해요. 그분이 누군지 몰라도 한국에 들어올 필요도 없죠.”
구하니가 제안했다.
“노래를 진짜 엄청 잘한다면, 제가 SNS에 너튜브 링크를 찍어줄 수 있어요. 그러면 홍보도 조금 될 거예요.”
김수선이 말했다.
- 좋은데요?
“하니 씨는 천재인가 봅니다.”
“네? 제가요?”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네요. 와. 이런 방법이 있었네.”
- 구하니가 도움될 때가 다 있습니다.
“도움은 이미 됐지. 오늘 공연 입장권 구해줬잖아.”
- 저한테는 지금이 처음입니다.
선우현이 박대석에게 말했다.
“말씀하신 디지털 싱글은 그냥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 친구 노래는 너튜브에 공개하는 게 낫겠네요.”
박대석은 구하니가 홍보까지 해준다는 말에 급히 제안했다.
“아니, 저기, 제가 말씀하신 그 조건 그대로 디지털 싱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김수선이 마음을 정했다.
- 너튜브가 낫습니다.
“그냥 너튜브로 하려고요.”
***
우주소녀와 박대석이 간 후에 천호성이 구하니를 찾아왔다.
그는 구하니의 옆에서 선우현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어? 저놈은 아까 복도에서 본 그놈인데?’
그는 아까 선우현과 어깨가 부딪혀 시비를 걸었다가 겁을 집어먹고 물러났다.
‘하니랑 잘 아는 사이 같은데…. 설마 목격자가 있는 곳에서 나를 어떻게 하진 않겠지.’
그는 구하니에게 걸어가며 서둘러 본론부터 꺼냈다.
“하니야. 아까 그 토마토 말이야. 내가 그게 꼭 필요해서 그런데….”
선우현이 천호성을 째려보았다. 천호성은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물었다.
“좀 전에 같이 노래한 천호성 알죠?”
“압니다. 아까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어머. 잘됐다. 쟤가 선우현 씨의 토마토를 한 조각 맛보더니, 자기도 사고 싶다던데.”
“저놈한테는 안 팝니다.”
“네? 왜요?”
“복도에서 서 있는 나한테 어깨빵을 하더니, 내 탓을 하더라고요.”
“아…. 쟤가 나쁜 애는 아닌데, 옛날부터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연예인 병도 있고요.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도 하죠.”
“편들어주는 줄 알았더니, 욕이네요?”
“욕하는 거 아니에요. 쟤가 머리가 나빠서 그렇지 본성까지 나쁜 애는 아니거든요.”
“욕 맞은 거 같은데….”
천호성의 눈동자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아, 아니. 잠깐만. 하니야? 지금 그게 무슨 이야기야? 그 사람이 누구인데 뭘 판다고?”
“네가 말한 토마토 명인님. 너한테는 안 판대. 들었지?”
천호성이 선우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일생을 토마토에 바친 명인이 어떻게 저렇게 젊어!”
선우현이 말했다.
“내가 네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 오천 살이 넘으셨죠.
“그리고 너 그러다 손가락 부러진다.”
“내 손가락이 왜 부러지는데!”
“나한테 계속 손가락질하면 내가 부러뜨릴 테니까.”
천호성이 손가락을 얼른 오므렸다.
‘진짜 토마토 명인이 맞나 본데?’
그는 오늘 토마토 한 조각의 효능을 노래하며 체험했다. 한 조각만 먹었는데도 목의 컨디션이 공연 끝날 때까지 괜찮았다. 그 효과는 박하사탕이나 모과차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하나를 다 먹으면 더 좋겠지?’
그가 선우현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그 마약 토마토….”
“남들이 들으면 진짜 약이라도 들었는지 오해할라.”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데 약은 치지 않은 그 토마토, 그거 나한테도 좀 팔아주면….”
“가라.”
“내가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돈 준다니까? 얼마면 돼?”
“팔다리 멀쩡하게 보내줄 때 가라고.”
구하니가 옆에서 말했다.
“호성아. 이분 화나게 하면 진짜 다 꺾을지도 몰라. 너 그냥 빨리 가.”
천호성은 선우현의 눈빛만 보면 기가 죽었다. 그래서 일단 뒤로 물러났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천호성이 도망치듯 사라진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효과가 하루밖에 안 가는 걸 왜 저렇게 영약 찾듯이 찾을까?”
- 활토에 지속 효과가 있다고 오해하는 거 아닐까요?
선우현이 구하니를 보았다. 그녀는 토마토가 아니라 레드 포션을 목에 직접 맞았기 때문에 목소리가 완전히 회복됐다.
그런데 천호성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아. 저놈은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겠다.”
***
공연은 끝났다.
구하니의 일행은 일일 매니저를 봐준 안유정 한 명이라 따로 정리할 것이 없었다.
그녀가 안유정을 따로 만나 활력 토마토 상자를 하나 주었다
“이거 너 줄게.”
안유정이 활짝 웃으며 작은 상자를 받았다.
“어머어. 언니. 일당도 챙겨주면서 뭘 이런 명품까지…. 토마토네?”
안유정이 상자를 열어서 내부를 확인하며 물었다.
“이거 무슨 뜻이야? 조조가 순욱한테 빈 찬합 보낸 거랑 비슷한 거야? 이제 내가 필요 없는 거야?”
“그거 선우현 씨가 직접 키워서 준 토마토야.”
“앗! 그럼 먹어야지! 그런데 무슨 토마토를 이런 비싸 보이는 상자에 담아서 준대?”
“호성이가 그러는데, 그 토마토가 귀한 거래.”
“귀한 거면…. 이거 직거래 앱으로 팔아도 되나?”
“그거야 네 맘대로 해라. 난 약속이 있으니까 너 먼저 가.”
안유정은 당황했다.
“으응? 아니, 그럼 차는? 나는 뭐 타고 가?”
“옜다. 택시비.”
일일 매니저 알바비는 이미 넉넉히 줬다. 택시비는 추가금이다.
안유정이 얼른 오만 원짜리를 받았다.
“나 먼저 가려고 했어. 그런데 누구랑 약속이 있어? 내가 아는 사람이야?”
“선우현 씨.”
안유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으흥. 수상한데?”
“차 마시면서 너튜브 이야기나 하려는 거야.”
“알았어. 나는 빠져줄게. 좋은 시간 보내.”
“그런 거 아니라고.”
***
구하니는 공연을 나와 선우현을 다시 만났다.
공연장 근처에서 만나면 팬이 볼 수 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을 약속장소로 잡았다. 그들이 만난 장소는 칸막이가 있는 카페였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주신 토마토, 정말 맛있었어요.”
“내가 키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맛 하나는 토마토 중에 최고입니다. 과일 중에 최고라는 사람도 있고요. 음하하하.”
“인정. 진짜 최고였어요.”
“아껴뒀다가 혼자만 먹어요.”
“오늘 일일 매니저를 해준 유정이에게도 하나 줬는데….”
“아차. 유정 씨 것도 챙겨올걸. 같이 있는 줄 몰라서 그냥 왔는데.”
“아…. 그거 저만 챙겨주시려던 게 아니구나.”
“유정 씨에게는 하나 정도?”
구하니는 오늘 다섯 개를 받았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제안했다.
“우리 커피 말고, 나가서 술 마시면서 맛있는 거 먹을래요? 제가 다 살게요.”
“밥 먹으면서 너튜브 이야기나 제대로 해보죠.”
***
안유정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 활토 상자를 보며 고민했다.
“귀한 토마토라니까 직거래 앱으로 만 원에 팔아볼까? 아니다. 이 고급 상자만 해도 따로 사려면 만 원은 하겠다. 에라. 모르겠다.”
안유정이 활토 상자 사진을 찍어 직거래 앱에 오만 원에 올렸다.
“안 팔리면 내가 먹어야지.”
그녀는 그런 후에 인터넷에 들어가 오늘 공연 반응을 살폈다.
“역시 하니 언니 노래가 반응이 제일 좋아. 암. 그래야지.”
한참 인터넷을 하는데 직거래 앱 알림이 스마트폰에 떴다. 그녀가 앱 자체 메신저로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거 진짜 오만 원인가요?]
“너무 비싸긴 했나? 좀 깎아줄까?
[네. 일단은요.]
[진품 맞죠? 상자만 진짜고 토마토는 짝퉁인 거 아니죠?]
“토마토에 무슨 진품 짝퉁이 있어?”
상대가 이렇게 물어보니 자신이 없어졌다.
[확인해보고 사시던가요.]
[지금 바로 갈게요.]
안유정이 시간 약속을 10분 뒤로 정하고 집 근처 편의점 앞으로 갔다.
“오만 원은 너무 불렀나 보다. 현장 네고 할 거 같은데 얼마까지 깎아줘야 하려나.”
잠시 후에 고급 승용차가 그녀가 있는 곳 근처에 섰다. 그 차에서 명품 옷을 차려입은 여자가 내렸다.
그 여자가 안유정에게 다가와 물었다.
“활토 거래하러 오신 분?”
“네?”
“활력 토마토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아! 이거요?”
그녀가 집에서 대충 집어온 쇼핑백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녀가 그 상자를 받았다.
“상자는 맞네요.”
그런 후에 뚜껑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머. 진짜 활토네요?”
“메신저로 진품이냐고 물어보셨는데, 진품 맞죠?”
“당연하죠. 이 깊은 색과 균형 잡힌 모양은 활토의 특징이니까요. 그런데….”
그녀가 안유정에게 물었다.
“오만 원이란 거 진심이에요?”
안유정은 그녀가 값을 깎으려는 줄 알았다.
“현장 네고는 곤란하지만, 차비로 만 원쯤 빼 드릴 수는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 혹시 이거 또 구할 수 있어요?”
“아니요. 아는 언니한테 받은 거라서요.”
“좋은 언니를 뒀네요.”
그녀가 봉투를 하나 주었다.
“자요.”
안유정이 봉투를 열어보았다.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앗! 잘못 넣으셨는데요? 두 장이 들어 있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네?”
그녀가 차에 탔다.
안유정이 인사했다.
“십만 원이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내가 더 고맙죠.”
그녀가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
안유정이 감탄했다.
“와아…. 겨우 토마토 한 개 사겠다고 차까지 끌고 와서 십만 원이나 줬어. 자선사업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