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87화 (87/281)

87. 무대

김수선이 말했다.

-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실내 공연 위주로 봐야겠다. 야외 공연은 옛날에 많이 봤으니까.”

선우현과 김수선은 옛날에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열리는 공연을 자주 보았다. 현지 협력자가 통신기를 가지고 있을 때는 공연의 소리까지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공연장은 실내에 있다.

- 선장님.

“응?”

- 저 삐뚤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다음 공연은 꼭 야외에서 보려고 했어.”

에이투원이 노래를 마치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은하소녀가 무대에 올랐다.

오늘은 원래 은하소녀가 아니라 다른 걸그룹이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그룹 멤버 중 하나가 마약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경찰이 내사를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일단 그 걸그룹을 오늘 공연에서 제외했다.

그렇다고 그 순서를 비워둘 수는 없었다. 스케줄이 없어 당장 부를 수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팀이 필요했다.

그래서 출연팀이 급히 은하소녀로 바뀌었다.

은하소녀가 무대에서 화사하고 예쁜 춤을 추며 노래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쟤들은 노래 잘하네.”

-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은데요?

“좀 관대하게 들어. 아직 어린 애들이잖아.”

- 춤 실력은 어떤가요?

“개선의 여지가 있어.”

- 엉망인가 보군요. 선장님. 걸그룹에 너무 관대하신 거 아닌가요?

“너는 보이그룹에 관대하잖아.”

- 피차일반이군요.

“은하소녀는 곡이 제일 문제야. 곡이 약해.”

- 제가 듣기에도 그 곡으로 뜨는 건 어려울 겁니다. 곡이 좀 약합니다.

선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런 곡을 선택했을까?

- 좋은 곡은 인기 아이돌에게 먼저 갈 테니까요.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가?”

은하소녀 멤버 오민하가 무대 위에서 선우현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쟤가 나 보고 웃었다.”

- 타깃을 공격하라는 지시라니까요.

“그럴 리가 없잖아. 아까 봤을 때 뭐라도 좀 챙겨줄 걸 그랬네.”

- 활력 토마토는 구하니에게 전부 몰아주셨죠. 줄 게 없습니다.

은하소녀 이후에도 여러 가수가 나와 노래했다.

공연 후반에 천호성이 무대에 올라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아까 그 싸가지 또라이도 나왔다.”

천호성이 무대 위에서 숨을 들이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역시 목 컨디션이 좋아.’

목소리 자체가 좋아진 건 아니지만, 최근에 나빠졌던 목 컨디션이 회복됐다.

‘아마 그 토마토 한 조각의 효과겠지.’

간만에 목이 좋아지니 신이 났다. 천호성이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천호성의 팬클럽이 환성을 질렀다.

“꺄악!”

“오빠!”

천호성은 흥이 넘쳐서 무대를 뛰어다니며 노래했다. 그러는데도 소리가 최근 어느 때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나왔다.

선우현은 천호성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었다.

“저놈 좀 하네.”

- 머리를 날려버리지도 않고 목도 꺾지 않은 거, 정말 잘하셨습니다.

“너 쟤 노래 좋아하냐?”

- TV와 라디오 전파를 녹화해서 종종 듣습니다.

“저놈 영상은 메모리 낭비야.”

- 우리 지원위성에는 다른 건 다 모자라지만 남아도는 게 딱 두 개 있습니다. 하나가 쌓여 있는 레드 포션이고 다른 하나가 메모리입니다. 메모리라도 실컷 낭비할 겁니다.

천호성은 선우현이 평소에 즐겨 듣던 가수는 아니다.

김수선은 천호성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 최근 공연에서는 목소리가 좀 안 좋았었는데, 오늘은 예전 컨디션이 돌아왔나 봅니다.

기획사 SNY의 실장 이태균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선우현에게 자랑했다.

“이야아. 우리 호성이. 오늘 아주 날아다니네. 들리시죠? 저 안정적인 목소리. 캬아. 또 성장했네. 또 성장했어.”

선우현이 말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거겠죠.”

“하하하. 성장한 거라니까요. 캬아.”

천호성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뛰어다니며 노래했다.

그의 팬들이 환호하며 앵콜을 외쳤다.

천호성도 신나서 예정에 없던 앵콜 곡을 불렀다.

‘역시 그 토마토에는 목을 보호하는 뭔가가 있어!’

그런데 그 노래가 끝나갈 때쯤에, 목의 컨디션이 떨어져 평소 상태로 돌아왔다. 그래도 노래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는 있었다.

팬들이 환성을 지르며 다시 앵콜을 외쳤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천호성 본인이 잘 알았다.

“저 혼자만의 축제가 아니니까, 저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호성는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갔다.

어차피 단독 공연이 아니라 컨디션이 괜찮아도 더 부를 시간이 없었다.

천호성은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 숨을 몰아쉬었다.

평소보다 상태가 좋아 실컷 노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체력이 소모되지 않은 건 아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몸에서 열이 후끈 나고 땀도 흘렀다.

목이 조금 컬컬했다. 토마토 한 조각의 효과가 이미 끝났다는 건 알았다.

그래도 시원했다.

“후우. 기분 끝내준다.”

다음 순서로 구하니가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가 오늘 공연의 마지막 가수였다.

그녀도 천호성처럼 활력 토마토를 먹었다. 천호성에게는 한 조각만 주고 그녀는 일곱 조각을 먹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좋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 사고 때 목에 레드 포션을 직접 맞았다. 포션 주입기의 정교한 투약 능력 덕분에 포션은 신체 다른 부위로는 퍼지지 않고 그녀의 목만 집중해서 치료했다.

그 효과는 활력 토마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그래서 토마토 하나 먹는다고 목 컨디션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녀가 차분하게 노래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가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팬은 물론이고 다른 가수의 팬들도 감탄했다.

“와아.”

“역시 프린세스 구하니.”

“이제 진짜 퀸 구하니라고 불러야겠다.”

선우현이 관객석에서 구하니의 노래를 들으며 말했다.

“역시 노래는 구하니가 잘한다니까.”

- 동감입니다. 레드 포션을 써서 살린 보람을 느낍니다.

“그때는 포션을 쓰지 말라고 말리더니?”

- 저는 선장님의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겁니다. 제가 이렇게 선장님을 위합니다.

“그러면 나를 위해서 레이저 용접기 하나만 보내줄 수 있어?”

- 아니요.

“나를 위한다더니?”

- 선장님은 자재와 에너지를 보내주실 수 있나요?

“아니. 우주왕복선이 없어.”

- 저는 남아도는 레이저 용접기가 없습니다.

구하니는 세 곡을 불렀다. 천호성은 미리 계획된 두 곡에 앵콜을 추가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세 곡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녀에게도 앵콜 요청이 쏟아졌다.

활토가 그녀의 목소리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몸의 활력을 높이는 데는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아직 더 노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공연은 방송국에서 주최한 것이라서 끝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이 이후에 노래하는 건 방송에 나가지 않는다는 연락도 받았다.

그녀가 제안했다.

“그럼 다 같이 노래할까요?”

그녀가 관객이나 다른 가수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골랐다.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서, 기왕이면 다 같이 노래하고 싶었다.

오늘 출연한 가수 중 일부는 스케줄이나 다른 이유로 먼저 공연장을 떠났다.

스케줄이 없는 에이투원과 은하소녀가 무대 위에 뛰어 올라왔다.

천호성도 구하니에게 활토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어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같이 무대에 올랐다.

열 명의 가수가 합창했다. 관객들도 신나서 같이 노래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나도 저기서 같이 노래하고 싶어지네.”

- 공연을 망치시게요?

“내가 노래 좀 하지 않냐?”

- 아니요. 노래는 제가 잘하죠.

“어. 그건 인정.”

공연이 모두 끝났다. 관객들이 객석에서 빠져나갔다.

관계자 관람석에는 임시 통로가 있어서 나가는 길이 일반 관객과 달랐다. 임시 통로로 이동하면 무대 뒤로 갈 수 있다.

SNY 실장 이태균이 무대 뒤로 가면서 선우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옥탑방이 어디….”

그는 옥탑방이 기획사나 작곡팀 같은 곳의 이름인 줄 알았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에이투원의 홍은성이 달려왔다.

“형님! 제가 공연 도중에 형님한테 신호한 거 보셨죠?”

“손가락을 세우길래 욕한 줄 알았다.”

“에이. 설마요. 하하.”

구하니도 다가왔다.

“그런 애드립은 노래와 춤을 완벽하게 하고 나서 하면 더 좋을 텐데.”

“앗! 선배님!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아니고요.”

“오늘 옆에서 노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것도 고마워할 일은 아니에요. 모두 함께 노래한 거니까.”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말했다.

“오늘 저 어땠어요?”

선우현이 엄지를 세웠다.

“역시 최고였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나 좀 도와줄 거예요?”

“아니요.”

“쳇.”

SNY 실장 이태균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생각했다.

‘옥탑방은 작곡팀의 이름인가 보다. 구하니가 도와달라고 할 정도인데 난 왜 못 들어봤지? 회사에 돌아가서 옥탑방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다른 팀에 아는 사람이 있겠지.’

홍은성은 소속사의 연락을 받고 그곳을 떠났다.

이태균도 회사의 연락을 받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걸그룹 은하소녀가 찾아왔다.

오민하가 선우현에게 다가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로드 명함에 전화 안 주셨던데요. 이번에는 펜 가져왔으니까 번호 좀 주세요.”

구하니가 옆에서 물었다.

“선우현 씨 번호는 왜 따려고 해요?”

“앗! 성함이 선우현이세요? 우와. 현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구하니가 설명했다.

“성이 선이고 이름이 우현이에요. 그리고 안돼요.”

“네?”

“선우현 씨를 언제 봤다고 오빠래요?”

“아니, 저기,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게….”

오민하는 선우현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될까 봐 그날 일을 설명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선우현이 말했다.

“청부업자 몇 놈을 잡으러 갔는데 거기 납치돼 있더군요. 그래서 구해준 사이입니다.”

“그럼 별 사이 아니네요.”

오민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구하니 선배님. 그 이야기 듣고 왜 안 놀라세요?”

“특별한 일도 아닌데 왜 놀라요?”

“네? 그게 왜 안 특별….”

은하소녀의 소속사 사장 박대석이 로드 매니저와 함께 그곳에 나타났다. 그가 선우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기획사 폴라시의 사장 박대석입니다!”

“아. 네. 선우현입니다.”

“우리 민하를 구해주셔서 진짜 고맙습니다!”

그의 말과 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소속 연예인을 많이 아끼시나 봅니다.”

“그래서 아끼기도 하지만, 쟤가 제 외조카입니다. 민하가 제 누나의 딸이죠.”

선우현이 오민하를 보았다.

“아. 그러니까, 낙하산이구나.

“예?”

“농담입니다.”

박대석이 말했다.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선우현은 관계자 관람석에서 공연을 보고 지금은 무대 뒤에 와 있다.

박대석이 구하니를 슬쩍 보았다.

‘구하니의 지인이구나. 그러면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까?’

보답할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 혹시 노래를 잘하시면 디지털 싱글이라도 하나 만들어드릴까요?”

“갑자기요?”

“예. 제가 직접 작곡한 곡이 많이 있으니까 그걸로 만들면 금방 됩니다.”

선우현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럼 오늘 은하소녀가 부른 노래가….”

“제가 작곡했습니다. 하하하.”

“아. 어쩐지….”

“예?”

“괜찮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라서.”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정식 데뷔용이 아니더라도, 기념으로도 디지털 싱글을 만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냥 관심이 없….”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저는 관심이 있습니다.

“응?”

- 저 노래 잘합니다.

“네 노래 실력이야 나도 인정하지. 그런데 말이야.”

문제는 그게 아니다.

“여기는 지상이고 너는 지원위성에 있는데, 노래를 어떻게 하려고?”

- 방법은 찾다 보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선장님. 제가 믿는 거 아시죠?

“아. 나보고 방법을 찾으라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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