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입장권
지원위성에서는 인터넷이 안 된다. 아날로그 TV와 라디오 전파 수신 정도만 가능하다.
민간 위성 송신기로 TV 방송용 영상 전파를 옥탑방 옥상에서 위성으로 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전파 감시 시스템에 걸린다.
선우현과 김수선은 4층에 장비 설치 작업을 할 때 썼던 방법을 확장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
선우현이 CCTV 카메라를 가리켰다.
“저 카메라를 4층 내부에 16대를 설치했습니다. CCTV 제어시스템은 저쪽에 있고요.”
그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은 서버가 아니라 옥상에 있는 대형 모니터로 전송된다. 대형 모니터에는 16대의 카메라가 보내는 영상이 8초씩 순서대로 나온다.
그렇게 하면 김수선은 위성에서 지상 관측 카메라로 4층 내부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 영상 정보를 재배실의 제어장치였던 선체 안정화 보조 장치에 연결하면, 식물 관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간단히 뽑을 수 있다.
선우현이 설명했다.
“분석을 마친 서버에서 제어 데이터가 돌아오면, 여기 이 장치가 그 정보 그대로 비료와 영양제, 광원 투입량 등을 조절합니다.”
지원위성에서 지상에 있는 그 장치로 데이터를 직접 보낼 수는 없다. 김수선이 음성으로 입력 데이터를 불러주면, 선우현의 손으로 직접 입력해야 한다.
그런 수작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선우현이 직접 하나하나 식물 상태를 관찰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 데이터는 자주 입력하면 좋지만 며칠에 한 번만 입력해도 된다.
다만 입력 기간을 길게 잡을수록 오차가 발생한다. 오차가 생기는 만큼 수확량이 줄어들 수 있다.
그것만 감수하면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것도 가능하다. 대신 수확해줄 사람만 구하면 된다.
최종훈이 눈을 반짝였다.
“멋진 걸 만드셨네요. 이걸 아예 공장형 스마트 팜으로 확장하는 건 어떠십니까?”
“공장이요?”
최종훈이 두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러니까 십 층 정도 되는 빌딩형 공장을 사서, 거기다 대규모로 이 시설을 설치하는 겁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빌딩 규모로 사용할 촉진제를 만들라고 하시면 저 화낼 겁니다.
최종훈도 거기까지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꼭 활력 토마토가 아니어도 됩니다. 특별한 영양제 없이 일반 작물을 재배해도 괜찮습니다. 이 시스템을 쓰면 도시 내부에 친환경 빌딩형 농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싫은데요.”
“아…. 싫으시구나. 채소 같은 것만 친환경으로 대량생산해서 유통해도 대박인데….”
그 사업은 할 수가 없다. 이 시스템은 겉보기에만 전자동이지 실제로는 반자동이다.
선우현이 말했다.
“규모를 키우면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이 기술은 그냥, 딱 이 정도가 좋습니다.”
최종훈은 선우현이 기술에 대해 하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정말 좋은 사업 아이디어인데, 아쉽습니다.”
최종훈이 4층 실내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싶긴 하네요. 이제 활토 생산량이 많이 늘겠는데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까?”
최종훈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니요. 방금 말씀드린 공장형 빌딩에서 활토를 키운다 해도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갑니다. 지구에는 우리나라 사람만 사는 게 아니니까요.”
한국에 사는 한국인은 오천만 명쯤 된다. 그런데 지구 전체에는 팔십억 명이 산다.
선우현이 말했다.
“수출할 만큼 많은 양은 안 나옵니다.”
“당연하죠. 우리 먹을 것도 모자란 데 수출이라니요. 나중에 선물로 조금씩 보낸다면 모를까.”
***
최종훈이 박길성 회장을 만났다. 거기서 스마트 농장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에 선우현 씨가 토마토 재배 규모를 확장했습니다.”
박길성의 표정이 대놓고 밝아졌다.
“그래? 그럼 이제 더 많이 살 수 있겠구나!”
“이미 일주일에 세 개씩 드시잖습니까?”
“일주일에 겨우 세 개야. 농장은 어디에 새로 만들었는데? 땅이 더 필요하면 내가 좀 구해줄까?”
“땅이 아니라 그 옥탑방 건물 4층에 스마트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어? 그래?”
“제가 가봤는데 최첨단 시설을 직접 만들었더라고요.”
“역시 실력이 대단하네. 그럼 이제 한겨울에도 활토를 키울 수 있겠는데? 내가 겨울이 오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거든.”
“당연하죠.”
박길성이 박수를 쳤다.
“내가 이래서 과학자를 좋아한다니까. 나도 공대 출신인 거 알지? 선우현 씨도 공대 맞지?”
“학교를 어디 나왔는지는 안 물어봐서 모르는데요.”
“유학파려나?”
“글쎄요.”
“공대 맞겠지. 같은 공대끼리 편의 좀 봐주면 좋을 텐데.”
“이미 충분히 봐 드리는 것 같은데요.”
박길성이 활력 토마토를 보며 말했다.
“최 사장. 그거 알아? 나는 활토를 일주일에 세 개를 먹잖아? 그런데 요즘은 활토를 먹지 않은 나흘도 컨디션이 예전보다 좋아.”
“예? 저는 안 그렇던데….”
“박 사장은 젊잖아. 그래서 우리 주치의랑 이야기해봤거든? 내가 일주일에 사흘 동안은 활발히 움직이니까, 그때 운동이 많이 돼서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활토를 드신 날은 평소보다 많이 움직이셔도 몸에 무리가 안 가니까, 운동 효과가 좋겠네요.”
박길성이 입맛을 다셨다.
“활토를 먹는다고 젊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건강은 되찾고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더 자주 먹으면 더 좋겠지?”
“제가 공급하는 분 중에는 박 회장님이 제일 자주 드십니다만?”
박길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회사에서 만든 그 소형 금속 부품 가공 기술 말이야. 그거 괜찮다며?”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저희도 그 기술의 가치를 깨달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걸 개발한 사람들이 왜 놀라?”
“그 기술을 개발한 건 우리 회사가 아니니까요.”
“응?”
“선우현 씨가 개발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라이센스 판매와 기술 지원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박길성은 당황했다.
“선우현은 생명공학자 아녔어?”
“재료 공학 쪽으로도 천재적인 능력자죠.”
“허…. 거기다 무술 고수라며. 정말 탐 나는 인재일세.”
“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제가 벌써 했죠. 그런 건 포기하시죠.”
“알지. 이 토마토만 팔아도 어디서 월급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박길성이 본론을 꺼냈다.
“이렇게 하지. 그 금속 부품 제조 기술 말이야. 우리 회사에서 쓸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할게. 사소한 문제 정도는 넘어가게 힘도 쓰고. 그러면 활토를 더 살 자격이 되겠지?”
최종훈이 웃었다.
“박 회장님. 아직 소문 못 들으셨군요.”
“뭘?”
“이미 국내외 여러 생산 업체에서 그 기술의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
“길성에서 지금 당장 계약하자고 해도 대기열 열한 번째쯤에 들어가겠네요.”
“아니, 그 기술이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만큼 좋은 기술이거든요. 어떻게, 길성도 대기 명단에 넣어드릴까요?”
“새치기는 안 될까?”
“선우현 씨한테 새치기를 원하신다고 전할까요?”
“아니.”
***
방송국의 음악 전문 프로그램에서 얼마 전부터 공연을 하나 기획했다.
방송국이 작정하고 준비한 공연에 여러 기업이 협찬했다. 초대가수도 괜찮은 사람들로 섭외됐다.
구하니는 요즘 전성기 때의 인기를 되찾았다. 목소리도 스무 살 때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녀는 피디가 직접 찾아가 1순위로 섭외했다.
다른 가수들도 초대받았다. 그중에는 아이돌 그룹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준비한 공연이라서 입장권은 무료였다.
그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은 많고 입장권도 공짜인데, 관객석의 규모는 정해져 있다. 당연히 경쟁률이 높았다.
입장권은 추첨으로 배포하기로 결정됐다.
여러 가수의 팬들이 입장권을 얻으려고 열심히 응모했다. 그중에 일부만 당첨돼 입장권을 이메일로 받거나 우편으로 전달받았다.
오늘이 바로 공연 당일이다. 선우현이 인터넷으로 그 공연 관련 글을 보며 말했다.
“나 이거 진짜 보고 싶었는데.”
- 신청은 하셨잖습니까?
“추첨에서 똑 떨어졌지.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야. 다들 이걸 왜 그렇게 가서 보려는 거야? 그냥 TV에 중계되는 거 봐도 되잖아?”
- 그러는 선장님은요?
“나야 이런 공연은 위성 궤도에서 백 년 가까이 TV로 봤잖아. 더 옛날에는 야외 공연을 오디오도 없이 영상만 봐야 했다고. 그러니까 난 현장에서 볼 자격이 있어.”
- 그럼 저는요?
“응? 어….”
- 저도 볼 줄 압니다.
“수선아. 내가 보고 너랑 합쳐서 평균을 내면, 너도 반쯤은 본 거잖아? 그러면 이익 아니냐?”
- 아니죠.
“어. 아니지. 알아.”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 훗. 괜찮습니다. 어차피 선장님도 그 공연을 못 보시잖아요.
“TV로 볼 거야.”
전화가 걸려왔다. 선우현이 발신자를 확인했다. 구하니였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이게 누구십니까? 하니 씨 아닙니까?”
- 어머. 선우현 씨가 이렇게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시는 건 처음이에요.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아뇨. 없는데요.”
김수선의 놀림을 회피하려고 반갑게 받았을 뿐이다.
구하니가 물었다.
- 아, 네. 제 톡은 확인하셨죠?
“톡이… 와 있었네요.”
그 톡은 며칠 전에 날아왔다. 내용은 바로 오늘 시간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우현은 며칠 동안 그 톡을 확인도 안 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혹시 제 톡만 확인을 안 하시는 건….
“톡을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못 보고 넘어갔습니다.”
- 아. 그러시구나. 다행이네요.
“그런데 여기 적힌 날짜가 오늘이네요?”
- 오늘 KMTV 방송국에서 공개방송으로 공연을 하나 해요. 저도 나와요.
“압니다.”
- 혹시 시간 되시면 보러 오셨으면 해서요.
“놀리려고 전화하셨구나. 입장권이 없어서 못 갑니다.”
- 저한테 초대가수 몫으로 나온 입장권이 있어요. 그거 쓰시면 돼요.
선우현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래요? 그러면 가야죠.”
- 아. 그런데 표가 딱 한 장 있어서….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같이 갈 사람도 없습니다.”
구하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 어머어! 잘됐네요! 대기실로 저를 찾아오시면 표를 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후에 선우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수선아. 봤냐? 난 입장권 구했다.”
- 삐뚤어질 테다.
***
선우현이 즉시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후에야 중요한 문제를 깨달았다.
“수선아. 하니 씨한테 입장권을 받으려면 대기실에 가야 하는데, 입장권이 없으면 입구에서 막혀서 대기실까지 갈 수가 없네?”
삐뚤어진 김수선이 말했다.
- 구하니가 선장님을 멕인 것 같습니다.
“에이. 설마 그러겠냐?”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진짜 멕이는 건가?”
-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만나서 진짜인지 물어봐야지.”
- 입장권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시게요?
“내가 옛날에 했던 임무 중에 장거리 정찰 작전이 많았거든. 그런 작전에서 살아남으려면 뭘 잘해야 하는지 알아?”
- 은밀한 침투요.
“어. 그거. 여기 침투하는 것 정도는 간단하지.”
선우현은 공연장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쪽에도 출입구가 있었다. 주로 짐이나 장비를 이동할 때 쓰는 문이었다.
문 앞에는 경비원이 서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면 되겠네.”
- 경비원을 제압하실 겁니까?
“경비원이 기절하면 난리가 날 텐데 공연을 어떻게 보냐? 진행요원이 저기로 장비 같은 걸 이동시킬 때 은밀하게 침투….”
- 선장님. 홍은성을 발견했습니다.
“홍은성이 누구야?”
- 섬 예능 촬영 사건 때 배우 김승빈과 같이 있던 아이돌 가수 말입니다.
선우현이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 마약조직원 놈들하고 싸울 때 삽이라도 든 녀석이네. 쟤는 그나마 갱생의 여지가 있더라.”
홍은성이 에이투원 멤버들과 함께 공연장 뒷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선우현을 발견했다.
홍은성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형님!”
“야. 너 때문에 들켰잖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