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79화 (79/281)

79. 고교 선수

한성고등학교 야구부 김인혁이 선우현의 앞자리에 앉았다.

“여기 순대국밥 특 주세요! 형! 진짜 어떻게 여기서 만나요?”

“내가 호랑이 새끼를 구해줬더라?”

“제가 범 같다는 말은 자주 들어요.”

“곰 같다는 말이겠지.”

선우현이 스마트폰에 뜬 기사를 보여주었다.

“너 구해주지 말고 그냥 아저씨 소리나 들을 걸 그랬어.”

김인혁은 기사를 보고 급히 손을 흔들었다.

“헉! 이건 아니에요! 이건 그 기자 아저씨한테 당한 거예요! 아저씨라고 불렀더니 이런 농담을 기사로 막 쓴 거라고요.”

“진짜냐?”

“당연하죠. 그 기자 아저씨는 농담을 다큐로 받더라니까요?”

선우현이 김인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걸 믿어도 되나.”

“그럼요. 제가 바로 믿음의 승리투수이자 신뢰의 홈런타자인 김인혁입니다.”

“그건 됐고. 너 나 어떻게 찾아냈냐?”

“예?”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김인혁이 눈을 껌뻑였다.

“몰랐는데요?”

“응? 그런데 왜 여기 있어?”

“여기 우리 동네니까요.”

“너 우리 동네에 사냐?”

“어? 형도 이 근처에 살아요?”

선우현이 앞에 놓인 접시를 가리켰다.

“순대 먹을래?”

“우와. 모듬 순대다! 이거 진짜 좋아하는데!”

김인혁이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려 순대를 집어 먹었다.

선우현이 한마디 했다.

“야채 순대랑 고기 순대만 골라 먹으면 당면만 들어있는 찰순대는 누가 먹냐? 나냐?”

“제가 운동선수라서 단백질과 섬유질이 필요해서요.”

“아. 그러냐.”

선우현이 공격을 걸었다.

“그 여자애랑은 어떻게 됐어?”

“네?”

“너는 데이트인 줄 알았는데 그 여자애는 그냥 친구랑 한강공원에 놀러 나온 줄 알았던….”

“아니, 그 이야기를 왜 밥 먹는데…. 그리고 걔랑은 진짜 통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건 네 생각이고.”

“골고루 먹을게요.”

***

한강공원 전망탑 사건 때 구출된 사람을 라디오 방송에서 섭외해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분이 갑자기 탑 계단을 뛰어 올라오더니, 우리보고 빨리 내려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빠져나오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처음에는 미친놈이 떠드나 보다 하고 무시했죠.]

[모두 내려간 건 아니지요?]

[김인혁 그 학생은 그분을 출렁다리에서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출렁다리 위에서 미친놈, 아니, 미친 분하고 싸우면 위험하니까 우리는 일단 거기서 빠져나왔죠. 밑에 내려와서 따지려고요. 그런데!]

[그때 탑이 무너졌군요.]

[그렇죠. 무너진 탑 쪽은 그분이 막고 있어서 우리는 반대편 탑으로 내려오는 중이었거든요. 어휴.]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소리가 난 후에 이야기가 이어졌다.

[탑을 내려오는데 저쪽 탑이 갑자기 중간이 꺾이면서 무너지는 게 보이는 겁니다. 출렁다리도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여러 조각으로 끊어졌고요.]

[놀라셨겠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죠. 다들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밑으로 내려온 후에 보니까, 그분이 김인혁 학생을 구해서 마지막으로 내려오더라고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그 남자분에 대해 기억하시는 게 더 있습니까?]

[음…. 젊은 남자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데요.]

[제가 그때 워낙 놀라서 자세히 설명할 만큼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도 다시 보면 확실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라디오 진행자가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그 사람은 그 탑이 무너질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항간에는 그 이유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남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 거기에 없던 사람들이나 음모론을 만드는 겁니다! 거기 있었으면 그런 말 못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실 그때 다리가 좀 흔들리긴 했습니다. 그걸 보고 눈치챈 거겠죠.]

[출렁다리니까 흔들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아! 그렇지요!]

[선생님?]

[그러니까…. 아! 이상한 소리도 조금 났습니다. 우리는 그 소리가 왜 나는지 몰랐지만, 그분은 알았던 거겠죠.]

라디오 진행자가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경찰에서는 그분께 용감한 시민상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면 저희 쪽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필요한 절차는 저희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

김인혁이 식당에서 선우현과 같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형. 경찰에서 형한테 용감한 시민상을 준다던데요? 저한테 형이 혹시 연락했냐고 물어봤었어요.”

“난 됐다.”

김인혁이 감탄했다.

“역시 쿨하다. 나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받을 텐데.”

“넌 그 상을 받아서 뭐하게?”

“용감한 시민상 받은 야구선수. 있어 보이잖아요.”

“너 야구 하기엔 힘이 좀 약해 보이던데.”

“저 강타자에 에이스거든요?”

선우현이 스마트폰으로 김인혁의 이름을 검색했다.

“안 나오는데?”

“강타자에 에이스가 될 뻔했는데, 슬럼프가 좀 와서 그래요.”

“그래. 그날 보니까 운동 별로 못할 거 같더라. 어떻게 운동선수가 그걸 못 올라가냐.”

“그때는 너무 겁나서 팔에 힘이 안 들어간 거거든요?”

“뻥 치고 있네.”

“진짜예요. 저 예전엔 진짜 프로 선수 못지않은 파이어볼러 투수에 거포 강타자였거든요?”

“그래. 얼른 더 커서 그런 선수 돼라.”

“안 믿으시네.”

“너 같으면 믿겠냐?”

“그러면 모듬 순대 한 접시만 더 사주세요.”

“왜 이야기가 갑자기 그렇게 바뀌는데?”

“많이 먹고 쑥쑥 커서 거포 강타자에 파이어볼러 되려고요.”

***

선우현이 밥을 다 먹고 계산하고 식당을 나가며 말했다.

“먹고 와라.”

김인혁이 남은 순대를 입에 밀어 넣었다.

“다 먹었어요. 같이 가요.”

“선수가 아니라 돼지였구나.”

“체중이 나가야 장타를 치죠.”

“넌 도루는 못 하겠다. 어쩐지 탑에서 위로 올려줄 때 무겁더라.”

두 사람은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선우현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김인혁이 따라왔다.

“뭐야? 왜 따라와?”

“우리 집도 이쪽인데요?”

선우현이 한숨을 쉬었다.

“악연인가….”

- 악연일 겁니다.

“네?”

그 식당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실내 야구 배팅 연습장이 있었다.

김인혁이 그곳을 가리키며 큰소리쳤다.

“형. 내가 저기서 진짜 강타자라는 거 보여줄게요.”

“선수가 저런 일반인용 시설에서 뭘 증명할 수 있는데?”

“공 때리는 소리랑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타구를 보면 느낌이 올 걸요?”

지원위성 내부에는 야구 같은 운동을 할 곳이 없다. 지상에 내려온 후에도 스포츠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럼 나도 해볼까?”

“흐흐. 내가 시범 보여줄게요. 그런 의미에서 배팅비는 형이 내요.”

“내가 물귀신을 구해 준 거 아닌가 싶다. 얼마인데?”

“저기는 공 열 개에 이천 원이요.”

타석은 두 개가 비어 있었다. 김인혁이 공의 속도를 최고로 세팅한 후에 타석에 들어갔다.

“잘 봐요. 이게 진짜 선수의 타격이니까.”

기계에서 시속 130km짜리 직구가 튀어나왔다.

김인혁이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고교 야구선수라 타구 자세는 그럴듯했다.

네 번의 타격을 한 후에 선우현이 물었다.

“너 강타자 맞냐?”

“미래의 거포 강타자죠.”

“거포가 되려면 일단 공을 배트에 맞혀야 하지 않냐?”

김인혁이 둘러댔다.

“슬럼프 때문에 잘 안 맞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지금 최고 구속으로 세팅해서 공 속도가 시속 130km까지 나오거든요? 이 정도면 실제 경기랑 큰 차이가 없는 속도거든요?”

“너는 실제 선수잖아. 기계로 쏘는 공은 실제 경기보다 더 잘 쳐야지.”

“그건 그렇지만, 이게 보기보다 어렵거든요?”

공 열 개가 순식간에 끝났다. 김인혁이 타석에서 나왔다.

“형은 70km로 낮춰서 해봐요. 초보자가 무리하면 다쳐요.”

“귀찮게 뭘 바꾸냐. 그냥 하지 뭐.”

김인혁이 나오고 선우현이 타석에 들어갔다.

기계가 쏘는 야구공이 다시 날아왔다.

선우현의 동체 시력은 130km짜리 투사체쯤은 정확히 볼 수 있다. 반사신경도 그쯤은 대응하고 남을 만큼 좋았다.

타격형 근거리 무기로 타깃을 때리는 건 원래 잘한다.

선우현이 배트를 가볍게 휘둘렀다. 배트 한복판이 공을 정확히 때렸다.

땅 소리가 시원하게 났다. 공은 빨랫줄처럼 날아가 반대편 벽의 그물을 때렸다.

김인혁이 말했다.

“와. 운이 좋네요?”

“실력이다.”

“하긴. 형이 힘이 엄청 센 건 아니까 운 좋으면 빨랫줄도 가능….”

다시 땅 소리가 났다.

“어?”

선우현이 날아오는 공을 계속 쳤다. 한 방향으로만 치지도 않았다.

김인혁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형. 혹시 공을 왼쪽 오른쪽으로 교대로 날리는 거예요?”

“어. 같은 방향으로만 보내면 지루하잖아.”

“아니, 그게 말이….”

“알았어. 한쪽으로만 칠게.”

이미 여섯 개를 쳤다. 나머지 네 개의 타구는 모두 오른쪽 위로 날아가 꽂혔다. 위치도 완벽하게 일치했다.

열 개의 공이 끝났다. 놓친 것도, 빗나간 것도 없었다.

김인혁이 입을 벌렸다.

“와….”

선우현이 타석에서 나오며 말했다.

“일반인이 쳐도 쉬운데?”

“파워가 일반인이 아닌데요?”

“왜 파워만 감탄하냐? 열 개 다 정확히 때린 건 안 보이냐?”

김인혁이 현실을 부정했다.

“제가 직구로 세팅해놔서 직구만 날아오니까 치기 쉬운 거예요. 진짜 경기에서는 변화구도 섞여서 날아오고 심리전도 하고 되게 어렵거든요?”

“그 똑같은 위치의 직구를 넌 못 치던데?”

“저는 슬럼프 때문에 그렇다니까요?”

“그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지.”

김인혁이 반발했다.

“그럼 변화구 해봐요. 변화구. 저 기계는 변화구 세팅도 되거든요?”

기계의 구종을 다시 세팅하고 김인혁부터 타석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커브 열 개가 날아왔다. 김인혁은 공을 직구 때보다 더 많이 놓쳤다.

선우현이 친 공은 모두 같은 지점에 날아가 꽂혔다. 오차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이제는 다른 타석에 섰던 사람들도 구경하러 왔다.

“와. 선출이야?”

“저 정도면 현역 선수겠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설마 프로는 아니겠지.”

선우현이 김인혁에게 말했다.

“봤냐?”

김인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프로 모드! 공이 랜덤으로 날아오는 프로 모드로 세팅해놓고 해봐요!”

“오냐. 너부터 해라.”

김인혁은 프로 모드에서는 열 개의 공 중에 여덟 개를 놓쳤다. 나머지 두 개는 파울과 땅볼이었다.

선우현은 프로 모드에서도 여전히 같은 곳에 공을 꽂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하나도 안 놓치는 건 아마추어도 그럴 수 있는데, 전부 다 같은 위치에 정확히 꽂는 것 좀 봐. 프로 맞나 본데?”

김인혁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 형은 프로 아니거든요? 완전 아마추어거든요?”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아니, 왜 프로를 안 한대?”

“저렇게 한 점에 타구를 꽂을 실력이면 그냥 프로 해도 되겠는데….”

선우현이 공을 다 치고 타석에서 나왔다. 사람들도 흩어졌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제 격차를 알겠냐?”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의 신체 능력으로 자라나는 학생의 꿈과 희망을 짓밟으니까 재미있으십니까?

“다시 만나면 혼내주라며.”

- 그러네요. 투수 쪽도 밟아주시죠.

선우현이 김인혁에게 물었다.

“야. 투수 능력도 비교해볼까? 누가 더 잘 던지는지?”

김인혁이 큰소리쳤다.

“당연히 공은 제가 더 잘 던지는데요? 저 미래의 강속구 투수거든요?”

“또 미래냐?”

“아직 미래가 창창한 고등학생이잖아요.”

“여기서 공도 던질 수 있지? 그럼 그것도 시합해 보자.”

김인혁이 당당하게 말했다.

“아뇨. 투구 라인은 딱 한 칸 있는데 지금 사람이 있어요. 제 실력을 보여줄 방법이 없어서 아쉽네요.”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실없는 놈.”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그러니까 사귀지도 않은 여자애한테 차이지.”

“그런 거 아니거든요? 분명히 느낌 왔거든요?”

“그건 너 혼자만의 생각이라니까.”

김인혁이 진심으로 물었다.

“그런데 형. 진짜 그 실력으로 왜 야구선수 안 해요? 훈련만 좀 받으면 프로에서도 통할 것 같은데요.”

“훈련 안 받아도 충분히 통할 거야.”

“근데 왜 안 해요?”

“야구선수를 해서는 우주왕복선을 못 사.”

“네?”

“그런 게 있어.”

0